삼국지 따위 고전 군담소설을 읽으면서 장수들의 초인간적 용맹에 감탄하는 한편, 사졸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데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소설에서 사졸들은 깃대로 해를 가리면서 먼지가 보얗게 일 지경으로 기세 좋게 달려오다가도 북이나 두드리거나 소리나 지르고 만다. 싸움에 참가해보았자 어쩌다가 화살을 비 오듯 쏘아대도 장수가 창칼을 한 번 휘두르면 화살이 전부 퉁겨 나간다. 사졸들은 통나무와 돌을 굴릴 때나 잠시 쓸모가 있을 뿐이다.

 

원저를 보면 걸핏하면 장수들이 만나서 수십 합, 심지어 수백 합씩 겨루어 승부를 가르는데 사졸들은 장수들의 놀라운 무예를 멍하니 구경만 하니까, 묘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문열 씨가 보는 이들의 의문을 풀어주려고 노력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솔직하게 말해 이문열 씨의 삼국지를 보면서 필자가 가장 기가 막혔던 대목이 바로 그런 해석이다.

 

황건군을 진압하려고 유비(劉備)가 선봉군을 이끌고 싸움터에 나선다. 황건군의 부장 고승이 긴 창을 휘두르며 달려 나오니 장비(張飛)가 사모를 치켜들고 말을 달려 맞선다. 그러나 고승은 장비와 겨우 몇 번 부딪히고 장비의 창에 꿰어 땅에 떨어진다. 유비가 돌격 명령을 내리자 황건군은 대패한다.

 

이 대목에서 이씨는 고대 전쟁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 사졸들의 무기와 갑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사졸들 사이로 두꺼운 갑주에 몸을 싼 장수가 말 위에서 길고 무거운 무기를 휘두르며 뛰어들 때에는 그와 똑같은 장수가 아니면 사졸들로서는 막을 길이 없었다. 그것이 당시의 싸움이 일쑤 장수들 사이의 기병전 만으로 결판 짓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뒷날 잘 조련된 갑졸(甲卒)들에 의한 대(對)기병전술이 발달되기까지 몇 백 년이고 그런 형태의 싸움은 반복되었다.

 

그 싸움에서도 그랬다. 한 창에 고승을 떨어뜨린 장비가 고리눈에 호랑이 수염을 곤두세우고 장팔사모를 휘둘러 적진으로 뛰어들자 대장을 잃은 졸개들은 사태 무너지듯 밀리기 시작했다. 그걸 다시 현덕의 인마가 뒤쫓으니 황건적들은 산골짜기의 저희 본진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탁월한 글 솜씨에 비해 해석은 너무나 황당하다. 중국 고대의 전략가들이 정말 넋이라도 있다면 땅 속에서 뛰어나와 항의라도 할 만한 일이다. 삼국 전후인 서기 2~3세기경이라면 《손자병법》이 세상에 나온 지도 수백 년이 지난 후다. ‘군사는 국가의 대사’ 인데 사졸들을 아예 장수들에게 맞아죽으라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내놓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상세히 말하자면 길어지니 알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첫째, 옛날 사졸들은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진시황릉의 병마용을 보면 갑옷을 아주 잘 차려입었다. 황건군 같은 농민군은 물론 국가의 정규군처럼 차려입을 수는 없었겠지만 나름대로 보호는 하게 되어 있었다.

 

둘째, 장수들 개인의 힘은 아주 약하다. 역시 병마용을 보면 활을 쏘는 사람들이 적을 멀리서 막아버리게 되어 있다. 가지가 달린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땅에 박으면 말이 달려들 수 없었고, 필요할 때 구덩이나 참호를 파놓으면 아무리 날고뛰는 장수도 건너오지 못했다. 만약 장수 하나가 그렇게 많은 사졸을 상대할 수 있다면 아예 군대를 모집할 필요도 없이 갑옷 입고 말 탄 장수만 몇 명 있으면 되지 않았겠는가?

 

셋째, 옛날의 장수들이라고 그런 식으로는 싸우지 않았다. 십만 대군이 움직이면 하루에도 천금이 나간다고 했는데 사졸들이 바보같이 밥만 축내면서 구경만 하도록 세워둘 장수가 어디 있겠는가? 또한 사졸들이 움직이며 싸운다면 힘이 들더라도 땀이나 흘리고 나면 시원하겠지만 선자리에서 온종일 남의 싸움이나 구경하노라면 다리가 저려오고 오줌이 마려워서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격이다.

 

예부터 장수의 역할은 개인기로 싸우는 데 있지 않았다. 현대전에서 어느 사령관이 일선에서 돌진한다면 그처럼 한심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 장수는 어디까지나 사졸들을 잘 훈련시켜 진을 이루고 화력과 무력을 잘 배치해야 한다.

 

이렇게 잠깐 분석해보면 소설과 현실의 차이가 느껴지지만 삼국지를 비롯하여 중국의 많은 군담소설에서 항상 장수끼리의 싸움으로 전투의 승부가 결정되고, 조선 시대의 군담소설에서도 장군과 장군의 대결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한다.

 

《박씨부인전》같은 가상소설은 물론이요, 실제 사실에 근거해 엮은 《임진록》에서마저 이순신 장군은 적군의 배에 뛰어올라 적장과 신비한 검술을 겨룬다. 잘 알다시피 실제로는 그가 그렇게 싸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삼국지 따위 중국 군담소설에서 비롯된 영향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그러면 왜 소설에서 장수들이 마주쳐 몇 십 합, 몇 백 합씩 겨루는 방식이 싸움의 표준 도구가 되었을까?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삼국지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장수들 사이의 대결 이야기를 꾸며냈기 때문이다. 이 장수가 저 장수와 잠깐 부딪혔다가 사졸 둘을 죽이고 나서 다른 장수와 마주쳤다는 식으로 사실대로 묘사하면 별 재미가 없다. 이야기가 이야기같지 않게 되니 죽도 벌어먹기 어렵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국의 이야기꾼들은 ‘책의 한 줄 내용을 가지고 사흘쯤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를 가져야 밥을 먹고 살 수 있다. 그러자면 어느 인물의 능력을 한껏 부풀려서 이야기를 길게 빼는 게 가장 편하다. 그럴 때는 또 거기에 초인간적인 능력을 부여하면 재미가 배가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낱말도 슬쩍 집어넣는다.

 

현대에 활약하는 중국 이야기꾼들의 엄청난 과장을 예로 들어보자.

 

“문추가 칼을 번쩍 들어 내리치는데 조운이 창을 비껴들고 탁 내리쳤다. 그러자 ‘땅’ 소리와 함께 그 칼은 문추의 손에서 벗어났따. 저 멀리 하늘가에서 뭔가 윙윙거리며 빙빙 돌기에 문추가 이거 어디에서 유에프오(UFO)가 날아오는가 하고 쳐다보니 아이고, 자기 칼이었다.”

 

신비한 힘을 믿는 옛날 청중과는 달리, 현대 청중들은 너무 비현실적인 과장을 믿지 않기에 유능한 이야기꾼들은 장수들의 능력을 한껏 부풀렸다가도 합리적인 해석을 가한다. 그런 재치에 필자도 웃음을 터뜨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꾼도 있다.

 

“악비가 여진족의 장수와 만나 창으로 작살을 받아치니 그 작살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 사흘 만에야 땅에 떨어졌다.”

 

청중들이 ‘뻥이야’ 하면서 믿지 않을 때, 한마디 보탠다.

 

“그 작살은 나뭇가지에 걸렸다가 사흘 후에야 바람에 날려 떨어졌으니까.”

 

중국 고전소설이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문인들이 구전 이야기를 문자화하여 책을 펴낼 때에도 의식적으로 주인공들이 초인간적 능력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야기나 소설만이 아니라 무대극에서도 뭇사람들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을 만들 수 없다 보니 장수들만 나와 일대일로 겨뤘다.

 

이러나저러나 그런 무술시합이 싸움의 표준으로 굳어진 다음, 봉건시대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른 식으로 쓰면 군담소설로 인정해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고대의 싸움에서 장수들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투력을 알맞게 분배하기 위해 그렇게 되었지 적장이 달려올 때 사졸들이 날 잡아 잡수 하고 다소곳이 죽기를 기다릴 리가 있겠는가?

 

이름 없는 병졸에게 죽은 명장이 그 얼마더냐. 원소의 맹장 문추를 보더라도 소설에서는 관우가 죽였다고 썼지만 정사에는 그저 조조의 군대가 싸움에서 이겨 문추를 죽였다고 되어 있다.

 

문추의 죽음이 어느 한 사람의 공로로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지러이 날리는 화살에 맞아죽었거나 어느 하급군관, 심지어 어느 사졸의 손에 죽었기에 정사의 ‘조조전’ 에 죽인 자의 이름을 넣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야사에서는 관우의 공로로 둔갑했지만.

 

근엄한 학자들은 엄숙하게 장수들의 그런 무술 경기는 제왕장상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이른바 영웅사관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삼국지보다 아득하게 앞선 옛날에 나온 호머의 《일리아드》도 영웅들 사이의 대결, 특히 단독대결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니 동서고금의 이야기꾼들은 모두 다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야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에 정통한 모양이다.

 

그런데 옛날에 장수들만의 겨룸이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장수들이 한 번 어울려 싸우다가 갈라지는 걸 가리켜 ‘합(合)’ 이라는 개념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대부대를 떠나 장수들끼리 마주쳤다면 일 대 일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조운과 문추의 싸움이 그러하다. 다른 장졸들이 달려올 때까지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운다.

 

또 평소의 훈련에서도 장수들의 무예시합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보면 수호지에 나오는 양지와 주근의 무예 겨룸, 창날을 뽑고 천으로 창대 끝을 싸서 석회를 묻힌 다음 창법을 겨룬다.

 

사오십 합 지난 다음 살펴보니 양지는 왼쪽 어깨에 흰 점이 하나 있는데, 주근은 온몸이 얼룩덜룩하여 마치 두부를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실전이라면 주근이 수십 번이나 말 아래로 떨어져야 했으니 죽은 지 옛날이다.

 

싸움판의 가혹한 실정보다 장수들의 평소 훈련에 보다 익숙한 이야기꾼들이 ‘합’ 을 단위로 하는 싸움법을 과장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처럼 장수들의 겨룸은 대체로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난 특수상황이었고, 이 밖에 양군의 총수가 약정하고 단독대결로 승부를 가르자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과는 항상 시원치 않았다.

 

춘추 시대의 싸움에서는 결투에서 진 자가 패배를 시인하기는 고사하고 비열하게도 품에 감췄던 비수로 적수를 찔러 죽이는 것으로 끝났고, 항우의 단독대결 제의에 유방은 ‘슬기를 겨룰지언정 용맹을 겨루지는 않겠다’ 고 대응했다. 삼국지에서 이각과 곽사의 결투 역시 싱겁게 끝난다.

 

이문열판 삼국지를 볼 때, 늘 ‘이것이 도대체 고대 중국의 전투를 그린 책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 무척 곤혹스러웠다.

 

우선 창을 쓰는 법을 보자. 이씨의 글에서 창을 쓰는 장수들은 일단 싸움판에 나서기만 하면 ‘창을 끼고’ 달려 나간다. 화극 역시 항상 장수에게 끼인다.

 

필자가 아는 중국 무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을 그린 영화를 보면 기사들이 무거운 창을 한 팔로 들어 겨드랑이에 끼고 마주 달려가면서 서로 냅다 찌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씨의 글은 그런 장면을 연상케 한다.

 

‘끼다’ 라는 말은 뜻이 상당히 많지만 인간이 물건을 ‘끼는’ 동작은 두 가지뿐이다.

 

1. 제 몸의 벌어진 사이에 넣어 죄어서 빠지지 않게 않다.

2. 걸려 있도록 꿰다.

 

암만 보아도 창을 낀다면 겨드랑이에 껴야겠다.

 

그리고 ‘끼다’ 를 ‘껴들다’ 의 준말로 보았나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껴들다’ 는 물건을 두 팔로 끼어서 든다는 뜻이다.

 

장수들이 창이나 화극을 들고 말을 달리는 경우 원문에서는 쳐들었다는 ‘정(挺)’ 자를 썼다. 이전의 한글 삼국지 판본에서는 창을 드는 장수들이 창을 ‘꼬나들었다’ 고 옮겼는데 ‘꼬느다’ 는 꽤 무거운 물건의 한쪽 끝을 쥐고 번쩍 치켜들어서 내뻗친다는 뜻이라 정확한 표현이다.

 

어떻게 보든 창을 끼고 싸운다는 건 실제와 맞지 않는 말이다. 중국 무술에서 창은 두 손의 아귀를 창날 쪽으로 향해 창대를 쥐는 것이 상례다. 아주 특수한 경우 한 손으로 창대 끝을 쥐고 한껏 내뻗치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 팔과 창이 일직선을 이루면 ‘태공조어(太公釣魚)’ 라는 법수가 된다.

 

이 밖에 몸을 돌리거나 패배하여 달아날 때에는 아귀가 창날과 반대되게 창대를 쥐고 간다.

 

사소한 일이지만 ‘창을 끼고’ 싸우는 식의 책이 널리 퍼지면 한글을 바로 쓰는 법도 잊혀지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물론 옛날 장수들이 창 따위 무기를 전혀 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조 수하의 맹장 전위가 처음 나왔을 때 묵직한 쌍철극을 끼고 말 위에서 재주를 보인다. 하지만 두 손으로 잡고 쓰는 긴 창을 겨드랑이에 끼면 불편하기 짝이 없고, 위력도 발휘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대도(大刀)를 찬다’ 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중국어에서 ‘다다오(大刀)’ 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긴 자루가 달린 큰칼과 짧은 자루가 달린 비교적 작은칼, 후자는 ‘딴다오’ 라고도 불린다.

 

항일전쟁 시기에 칼을 쓰는 중국군 부대 ‘다다오두이’ 가 백병전에서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런 다다오는 바로 짧은 자루가 달려 등에 지거나 허리에 찰 수 있는 칼을 가리킨다.

 

그러나 고대 전쟁소설에 등장하는 다다오는 거의 다 자루가 기다란 칼이다.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바로 전형적인 대도인데 그런 칼을 어떻게 허리에 찰 수 있단 말인가?

 

칼을 잘못 상상하다 보니 하후연은 ‘칼도 제대로 뽑아보지 못하고’ 황충의 칼에 맞아 죽고 마는가 하면 위연은 ‘활을 버리고 칼을 뽑아들더니’ 조조가 있는 언덕으로 뛰어오른다. 이 모두가 긴 자루가 달린 큰칼을 칼집에 들어 있는 검(劍)으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오류다.

 

칼을 놀리는 법을 몰라 이상한 말이 나온 대목을 보자.

 

‘형과 아우가 차례로 끔찍한 꼴을 당하는 걸 보자 한요는 눈이 뒤집혔다. 칼을 휘두르며 조운을 찍어 넘기려고 미친 듯 덤볐다. 조운은 문득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보검을 뽑아들었다.

 

조운의 손에서 퍼뜩 칼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벌써 한요는 성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칼을 맞고 비실대는 그를 조운이 사로잡아 자기 진채로 끌고 가버렸다.’

 

원문은 아주 간단하다.

 

‘말을 놓아 달려 들어온 한요는 보도를 번쩍 쳐들어 조운을 똑바로 겨누고 내리찍었다. 조운은 창을 땅에 내버리고 칼을 슬쩍 피하더니 한요를 냉큼 사로잡아 자기 진으로 돌아왔다.’

 

본문의 피한다는 뜻의 ‘산꿔’ 는 ‘번개같이 피한다’ 고 해도 괜찮다. 헌데 이문열판에서는 조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칼 빛으로 변했다. ‘산’ 이 번개라는 뜻도 지니기에 이런 오류가 생기지 않았을까?

 

제갈량이 죽은 다음 오나라 황제 손권은 촉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보증한다.

 

‘금으로 깃을 만든 화살 하나를 가져오게 해서 꺾으며 맹세했다.’

 

금으로 깃을 만들면 너무 무거워 화살이 날지 못한다. 원문의 ‘금비전’ 이란 촉에 금을 박은 화살로 조조가 허도에서 황제와 함께 사냥을 할 때 빌린 황제 전용 화살이다. 헌데 허도의 사냥 대목에서 화살은 거의 정확하게 설명했으나 활은 또 이상하게 틀렸다.

 

‘활은 보석을 아로새긴 보궁(寶弓)에 화살은 금으로 된 촉을 가진 금비전이었다.’

 

나관중본을 보면 천자만이 조궁(雕弓)을 지닐 수 있고 금비전을 쓸 수 있다고 하면서 금비전이란 살촉에 금을 박은 화살이요, 조궁이란 ‘적색니금궁’ 이라고 밝혔다. 이금(泥金)이란 금박과 아교풀로 만든 금빛 도료로서 청색과 적색 두 가지가 있다. 또 ‘조(雕)’ 는 조각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채색 그림으로 장식한다는 뜻도 갖는다. 황제의 활은 적색 이금의 그림으로 장식된 활이었다.

 

모종강본에서 천자가 찬 활을 ‘보조궁(寶雕弓)’ 이라 했더니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보석을 아로새긴 활이라고 풀어쓴 모양이다. 기실 모종강본에서는 황제가 탄 소요마(逍遙馬), 금비전과 글자 수를 맞추려고 ‘보(寶)’ 자를 하나 더 보탠 듯한데 엉뚱한 풀이가 되었다.

 

모종강본에서는 삭제되었으나 나관중본에는 관우가 원소의 군대를 비웃어 하는 말이 있다.

 

“마치 금으로 만든 활이요, 옥으로 만든 화살 같습니다.”

 

옥으로 만든 화살은 전혀 쓸모없는 물건인데 희한하게도 이문열판에 ‘옥으로 된 화살촉’ 이라는 말이 비유로 나온다.

 

유비가 두 번째로 제갈량을 찾아갈 때였다. 겨울철이라 눈이 내리니 산천의 모습이 멋지게 변한다.

 

‘이내 세상은 눈에 덮여 산은 옥으로 된 화살촉 같아지고 숲은 은으로 단장한 듯 희게 변했다.’

 

여기까지는 이대로 보아도 우리글의 뜻이 너무 이상하지는 않다. 허나 유비가 손권의 누이와 결혼하는 신방의 분위기는 괴상하다.

 

‘방안 가득 창칼과 화살이 늘어서 있고, 시중드는 계집종들도 모두 칼을 찬 채 양편으로 갈라 서 있었다.’

 

화살은 대체로 전통에 넣지 늘어 세우지 않는다. 이문열 씨가 ‘무리, 무더기, 떨기, 떼’ 또는 ‘한 곳에 모이다, 빽빽이 둘러서다’ 라는 뜻인 ‘추’ 를 화살촉이라는 ‘주’ 로 잘못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앞에서는 ‘산은 옥을 모아놓은 듯 아름다웠다’ 로 해야 하고, 뒤의 신방에서는 ‘창칼이 즐비했다’ 고 해야 맞는 글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지지자들이 리더를 에워싸면 ‘추융’ 이라고 하는데, 리더 곁에 화살촉이 늘어섰다고 해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