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 촉서
법정은 자가 효직이고, 부풍군 미현 사람이다. 조부 법진은 청렴한 절개로 높은 명성이 있다. 건안 초, 천하에 기황이 들었는데, 법정은 같은 군의 맹달과 함께 촉으로 들어가 유장에게 의지했다.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 신도현의 현령으로 임명되었고, 후에 불려가 군의교위로 임명되었다. 그는 중임되기 전에 그 주에 거주하는 동향 사람들의 품행이 바르지 못하다는 비방을 받아 뜻을 얻지 못했다.
익주별가 장송은 법정과 서로 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유장이 큰일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 항상 남몰래 탄식했다. 장송은 형주에서 조조와 회견하고 돌아와 유장에게 조조와의 관계를 끊고 유비와 교류할 것을 권유했다. 유장이 말했다.
“누가 사자의 임무를 할 수 있습니까?”
장송은 곧 법정을 천거했다. 법정은 사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법정은 돌아와 장송에게 유비에게는 영웅다운 재략이 있다고 설명하고 은밀히 상의하여 계획을 세워 함께 받들어 섬기기를 원했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다. 후에 유장은 조조가 장수를 파견하여 장로를 정벌하려는 소식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장송은 유장에게 유비를 맞아들여 그로 하여금 장로를 토벌하도록 설득하고, 다시 법정에게 명령을 전하도록 했다. 법정은 유장의 뜻을 전한 후, 은밀히 유비에게 계책을 바쳤다.
“장군의 영웅다운 재략에 의지하고, 유목의 유약함을 틈타도록 하십시오. 장송은 주의 고관대신이므로 내부에서 호응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익주의 풍부한 자원에 의지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험준한 지세에 기대십시오. 이것으로써 사업을 성취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습니다.”
유비는 법정의 계책이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장강을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장과 부현에서 만났다. 북쪽으로 가맹까지 갔지만, 얼마 안가서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졌으므로 유비는 남쪽으로 군대를 돌려 유장을 취하려 했다.
정도는 유장에게 건의했다.
“좌장군(유비)은 멀리 본거지를 떠나 우리를 습격하는데, 그의 병력은 만 명을 채우지 못했으며, 병사들은 복종하지 않고, 들녘에 있는 곡식에 의지한 채 군대에는 치중이 없습니다. 계략을 짠다면, 파서군과 재동현의 백성들을 전부 쫓아 부수 서쪽으로 들어가도록 하여 창고 속의 식량과 들녘의 곡식을 일제히 불태우고, 높은 보루와 깊은 계곡을 만들어 안정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유비가 도착하여 싸우기를 청해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장기간 식량을 얻을 곳이 없으니, 백일도 못 되어 틀림없이 스스로 퇴각할 것입니다. 그들이 후퇴할 대 공격하면 반드시 잡을 수 있습니다.”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근심하며 법정에게 물었다. 법정이 말했다.
“유장은 정도의 계책을 끝까지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심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장은 과연 법정의 말과 같이 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적에게 대항하여 백성을 안정되게 한다는 것은 들었지만,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한다는 것은 듣지 못했소.”
그리고 정도를 파면시키고 그의 계책을 사용하지 않았다. 유비의 군대가 낙성을 포위하자, 법정은 편지를 써서 유장에게 말했다.
“나 법정은 임무를 받았지만 재능이 부족하여 우호관계를 깨지게 했습니다. 주위에 있는 자들이 일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지 않고 반드시 모든 허물을 저에게 돌려 저로 하여금 평생을 치욕스럽게 살도록 하고, 그 치욕이 그대에게까지 이르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 밖에서 몸을 훼손시켜 가며 감히 돌아가 보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다시 저의 소식을 드는 것을 싫어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이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덕을 생각하면 매우 슬픕니다. 그러나 일이 발생한 전후로 하여 진심을 피력하려고 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 감정을 숨기고 다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어리석고 책략이 부족하며, 충성으로 그대를 감동시키지 못하여 이러한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나라 일이 이미 위급하게 되어 재화는 곧 닥치려고 합니다. 저는 비록 밖에서 떠돌고 있으며, 말은 증오와 비난을 야기시킨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속의 생각을 모두 토로함으로써 마지막 충심을 다하고 싶습니다. 명장군의 본심은 저 법정이 압니다. 실제로는 구구하게 좌장군의 마음을 잃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이와 같은 국면에 이르게 된 것은 주위 사람들이 영웅의 행동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의를 저버리고 맹서를 어길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분위기에 좌우되고 일월의 경과, 이목의 기쁨을 추구하고 그대 곁에 붙어 아부하며, 장래를 생각하여 국가를 위한 싶은 계획을 기획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사태의 변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세력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지 않은 채, 좌장군의 현 멀리 나온 병사들에게는 식량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수로 적은 수를 공격하려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소에서 이곳까지 도착하는데, 지나는 곳은 파괴되었고, 당신의 이궁이나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는 날마다 부서져 가고 있습니다. 성아래에는 비록 만 명의 병사가 있지만 모두 전쟁에서 진 병졸이며 무너진 군대의 장수들인데, 만일 한 번 전쟁을 하려고 결심한다면 병사와 장수들의 세력은 실제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장기간 유지할 식량을 계산하기를 희망한다면, 현재 이곳 진영의 수비는 이미 단단하고 식량은 벌써 축척해 놓았지만, 명장군의 토지는 깎여가고 백성들은 나날이 곤궁해지며, 적대하는 자는 많아져 식량을 제공해야 되는 곳은 먼 곳까지 확대될 것입니다. 저의 계산에 의하면, 먼저 식량을 다 먹으면 다시 오랫동안 싸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대치하는 것은 서로 견디지 못합니다. 지금 장익덕의 수만 군사가 이미 파동을 평정하고 건위 경계 지역으로 들어와 군사를 나누어 자중, 덕양을 평정시켰으며, 세 갈래 길에서 일제히 침입해 오니, 어떻게 막겠습니까? 본래 명장군을 위해 계략을 세우는 자는, 틀림없이 이 군대는 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식량이 없으며, 군수 물자의 수송이 미치지 못할 것이며, 병력은 적고 후속 부대는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현재 형주 길은 소통되었고 병력은 열 배나 되며, 게다가 손권이 동생과 이이, 감녕 등을 파견하여 뒤를 잇게 했습니다. 만일 공격하는 자와 수비하는 자가 세력을 다툼에 있어서 토지로써 승자를 결정짓게 된다면, 지금 유비는 파동군을 완전히 차지했고, 광한군, 건위군은 벌써 절반 넘게 평정되었으며, 파서 한 군 또한 또 명장군의 소유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익주에 의지하고 있는 곳은 오직 촉나라뿐인데, 촉나라 역시 파괴되었습니다. 3분의 2를 잃었고 백성과 관리들은 피곤에 지쳐 있으며 혼란을 만들려고 생각하는 자는 10호 가운데 8호나 됩니다. 만일 적이 먼 곳으로 향한다면 백성들은 노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적이 접근한다면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광한군의 여러 현은 분명한 예가 됩니다. 또 어복과 관두는 사실 익주의 복과 재앙을 만드는 문인데, 지금 두 문은 모두 열려 있고 견고한 성은 모두 함락되었으며 군대들도 나란히 패배했으며 병사와 장수가 함께 다했습니다. 적군은 여러 갈래의 길에서 나란히 나아가 이미 중심부까지 진입하였는데, 당신이 앉아서 성도와 낙현을 지키고 있는 것은 존망의 대세가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그 표면상의 것만을 비교한 것이고, 그밖의 여러 사정은 언어로 다 헤아리기 곤란합니다.
저 법정은 어리석은데도 이러한 일이 다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하물며 명장군 측근의 현명한 지혜를 갖고 계책을 도모하는 사람이 어찌 이러한 것을 헤아려 보지 못하겠습니까?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그대의 총애만을 받으려 하며, 마음을 다해 훌륭한 계책을 바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상황이 곤궁하고 사태가 절박하게 된다면, 각자 살길을 찾으며, 일족을 구제하려고 할 뿐, 뒤집어 엎어 현재와 어긋나는 계획을 세워 명장군을 위해 몸을 던져 위험한 데로 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일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 법정은 비록 충성하지 않는다는 비방을 받았지만, 마음으로는 스스로 당신의 성스런 은덕을 저버린 적이 없다고 말하며, 명분과 정의를 생각하여 실제로 그대를 위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좌장군은 당신과의 관계가 뿌리로부터 들려진 이래로 과거의 마음을 잊지 않았고, 사실 당신을 박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게에 책략을 바꾸면 일가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건안 19년(214)에 유비는 진군하여 성도를 포위했다. 유장의 촉군태수 허정이 성을 나와 투항하려고 했지만, 일이 발각되어 실현시키지 못했다. 유장은 위급함이 가까이 닥쳤기 때문에 허정을 죽이지 않았다. 유장이 항복한 후, 유비는 이 일 때문에 허정을 경시하고 등용하지 않았다. 법정이 설득하여 말했다.
“천하에는 헛된 명예를 얻어 실질이 없는 자가 있는데, 허정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재 주군은 막 대업을 세웠으므로, 천하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허정의 허명은 전국에 퍼져 있습니다. 만일 그를 예우하지 않는다면, 천하 사람들은 주군이 현명한 사람을 천시한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응당 허정을 존경하고 중요시하여 세상 사람들의 눈을 미혹시켜야만 하니, 옛날 연왕이 곽외를 대우했던 것을 따르십시오.”
그래서 유비는 허정을 후하게 대우했다. 법정을 촉군태수 · 양무장군으로 임명하고, 밖으로는 경내를 통치하도록 하고, 안으로는 모사가 되도록 했다. 법정은 그에게 한끼의 밥을 먹도록 한 은덕을 베풀거나 작은 원망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갚거나 보복을 했으며, 자신을 헐뜯고 다치게 한 사람들을 여러 명이나 살해했다. 어떤 사람이 제갈량에게 말했다.
“법정은 촉군에서 지나치게 종횡무진하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주공께 말씀을 올려 형벌과 은상을 내리는 그의 권한을 줄이게 해주십시오.”
제갈량이 대답하여 말했다.
“주공이 공안에 있을 때, 북쪽으로는 조조의 강대함을 두려워했고, 동쪽으로는 손권의 압박을 걱정했으며, 가까이로는 손부인이 곁에서 변고가 생길까 두려워했습니다. 그 당시는 진퇴양난의 처지였습니다. 법효직은 주공을 보좌하여 하늘 높이 날도록 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압박을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법정이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겠습니까!”
당초, 손권은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냈는데, 그 여동생은 재기가 있고 강인하고 용감하여 여러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갖고 있었다. 시비 백여 명이 모두 스스로 칼을 갖고 시립하였으므로, 유비는 내실로 들어갈 때마다 항상 마음 깊숙이 두려워했다. 제갈량은 또 유비가 줄곧 법정을 사랑하고 신임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건안 22년(217), 법정이 유비에게 진언했다.
“조조는 한 번의 행동으로 장로를 항복시키고 한중을 평정하고, 이 세력에 의지하여 파 · 촉을 취하지 못한 채 하후연과 장합을 남겨 주둔하면서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북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혜가 충분하지 못하고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틀림없이 내부에 급박한 걱정거리가 있는 까닭입니다. 현재 하후연과 장합의 재능 · 책략을 생각해 보면, 우리 장수들을 이기지 못하니 병사들을 출동시켜 가서 토벌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한 그 날, 농업을 발전시키고 식량을 축적하여 틈을 살피십시오. 상(上)이면 강적을 소멸시켜 왕실을 존중할 수 있고, 중(中)이면 옹주와 양주를 잠식시켜 영토를 넓힐 수 있으며, 하(下)면 요충지를 고수하여 지구전을 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것이니, 기회를 잃을 수 없습니다.”
유비는 그의 건의가 훌륭하다고 보고 곧 장수들을 인솔하여 병사들을 한중으로 진격시켰으며, 법정 또한 따라갔다.
24년(219)에 유비는 양평에서 남쪽으로 면수를 건너 산을 따라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 정군 · 흥세에 진영을 만들었다. 하후연은 병사들을 이끌고 나와 그 땅을 두고 싸웠다. 법정이 말했다.
“공격할 수 있습니다.”
유비는 황충에게 명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 북을 울리며 공격하도록 하여 하후연의 병력을 크게 격파시키고 하후연 등의 머리를 베었다. 조조는 서쪽으로 정벌나갔다가 법정의 헌책을 듣고 말했다.
“나는 본래 현덕(유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유비는 한중왕이 되자 법정을 상서령 · 호군장군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45세로 법정은 세상을 떠났다. 유비는 며칠간 그를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시호를 익후(翼侯)라고 했다. 아들 법모는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받았으며, 관직은 봉거도위 · 한양태수에까지 이르렀다. 제갈량과 법정은 비록 좋아하는 것이 달랐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했다.
제갈량은 항상 법정의 지모와 책략이 뛰어나다고 보았다. 유비가 제(帝)로 칭해진 후, 동쪽의 손권을 정벌하여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 할 때, 신하들이 대부분 간언했지만, 유비는 하나도 따르지 않았다.
장무 2년(222)에 대군이 패배하여 백제성으로 돌아와 주둔했다.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만일 법효직이 있었다면, 주상을 제지시켜 동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고, 설령 동쪽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위험한 데로 기울지는 않았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