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0시 55분… 종말… 무슨 일이든지 끝난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날씨는 따뜻했지만 그는 전신에 한기를 느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그는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해 댔다.

 

‘나는 두렵지 않아.’ 하고…

 

목사의 말 같은 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단지 제대로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으랴? 자연은 그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본능을 오랫동안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정수리를 정사각형으로 깎은 머리가 침대 끝에서 마루 쪽으로 드리워졌다. 목사는 그 옆에 앉아 그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려는 듯 한 손으로 어깨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어깨가 흔들릴 때마다 거기에 올려진 손도 공감하는 듯이 따라서 흔들렸다. 하지만 목사는 앞으로도 적어도 몇십 년은 더 살겠지. 그래도 어깨는 일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목사는 낮은 목소리로 시편 23편을 중얼거리듯이 읊어나갔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그의 기분을 더욱 상하게 할 뿐이었다. 그는 내세 같은 건 믿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먹은 치킨 프라이와 워플, 그리고 복숭아 쇼트케이크가 가슴 깊숙이 얹힌 채 소화가 전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소화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한 시간이 없을 테니까. 또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울 시간이 있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은 저녁식사와 함께 담배 두 갑을 갖다주었다. 그러고 난 지 아직 두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 갑은 벌써 연기로 사라져 버렸고, 두 갑째도 반이나 비어 있었다. 그런 것에 마음 쓴다는 것이 바보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한 개비를 끝까지 피우건, 한 번 빨고 버리건 이제 와서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런 식의 검소한 행동을 신조로 갖고 간단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사의 낮은 노래를 가로막고 그런 점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목사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한 개비 더 피우시오.” 하고 말하며 성냥불을 그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더욱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떨구었다. 창백해진 입술 사이로 뭉게뭉게 담배 연기가 흘러나왔다. 목사의 손이 다시 공포를 진정시키려는 듯 그의 어깨를 감쌌다.

 

바깥의 돌로 된 복도를 조용히,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천천히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죽 늘어서 있는 사형수 감방들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스코트 헨더슨은 머리를 들기는커녕 더욱 손은 그를 침대에 고정시키려는 것처럼 더욱 힘이 들어갔다. 발소리가 멈춰졌다. 헨더슨에게는 그들이 감방 앞에 서서 이쪽을 엿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달리 머리가 들려져 저절로 입구 쪽으로 향해졌다.

 

“마지막입니까?” 하고 그는 물었다.

 

감방의 철문을 천천히 열고 형무소장이 말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소, 스코트.”

 

스코트 헨더슨의 프로그램… 불쌍한 스코트 헨더슨의 프로그램이 물 위에 던져진 빵처럼 보였다. 그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손에서 낚아챈 핸드백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여자는 어깨를 움켜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었다.

 

그는 먼저 그 프로그램을 조심스럽게 안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여자를 두 손으로 꽉 붙들고 보도 위를 질질 끌어서 그의 차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자, 어서 타! 인간의 탈을 쓴 이 냉혈동물 같으니! 함께 갈 데가 있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금 당신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한 거야!”

 

여자는 한참 동안 반항했지만, 결국 그에게 밀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무릎으로 기어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부탁이에요. 내려주세요.”

 

그녀의 울음 섞인 호소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이런 짓은 용서할 수 없어요! 폭력배를 혼내줄 경찰이 한 명도 없나!”

 

“경찰? 경찰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지금부터 싫증을 낼 만큼 만나게 해주겠어. 나중에는 경찰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메슥거릴 정도로…”

 

여자가 반대쪽 문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재빨리 태우고서, 그녀가 자기에게 덤비려는 순간 그는 자기 쪽의 문을 간신히 닫을 수 있었다. 그는 여자를 조용히 하게 하려고 뺨을 두 번 후려쳤다. 처음 것은 위협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두 번째는 정말로 침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운전대로 몸을 굽혔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에게 이렇게 거칠게 행동한 적이 없었어.” 하고 그는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여자가 아니라 쓰레기야.”

 

자동차는 방향을 돌려 쏜살같이 달려갔다.

 

“당신은 이제부터 진절머리나도록 신나는 드라이브를 즐기게 될 거야.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있는 게 좋아. 내가 운전하는 도중에 큰소리를 내거나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그때마다 아까와 같은 선물을 줄 테니까. 모든 것이 당신의 태도에 달려 있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그녀는 무모한 시도를 단념하고,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멍하니 자리에 파묻혀서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 차는 몇 번이나 길 모퉁이를 돌아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다른 차를 계속 앞질러 나아갔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췄을 때, 그녀는 아예 도망칠 생각은 포기한 채 물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몰라서 묻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날카로웠다.

 

“그렇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음… 그 사람이 있는 곳?”

 

완전히 체념해 버린 말투였다.

 

“그래. 그 사람이 있는 곳… 이제야 좀 사람 같아졌군!”

 

그가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자 두 사람의 머리가 동시에 흔들렸다.

 

“당신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도 마땅한 여자야. 아무 죄도 없는 남자를 그냥 죽음으로 몰아넣다니. 당신이 나서서 한마디 말만 해주었으면 그는 살게 되었을 건데.”

 

“나도 그것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힘없이 말하고 자기 손으로 시선을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언제라고 했죠? 오늘밤이던가?”

 

“그래, 오늘밤이지.”

 

계기반에 여자의 눈이 빛나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토록 절박한 상황에 빠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몰랐어요, 그렇게 급한 줄은…”

 

그는 꿀꺽 침을 삼키고 나서, “그렇지만, 이젠 끝났어.” 하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내 손으로 잡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또 신호등에 걸렸다. 그는 커다란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또 두 사람의 몸이 뒤로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고정되어 있는 유리창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백미러에 비치는 그녀의 얼굴이 그에게도 보였다. 그녀는 지금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자기의 과거가 아닐까… 자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압축해서 반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그녀를 도피시켜 줄 위스키도 없다. 하긴, 차가 달리고 있는 동안 그녀는 조용히 앉아서 앞만 바라보는 길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을 테지만.

 

“당신은 톱밥으로 만든 인형이야. 속이 텅 비어 있어…”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아세요?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겠죠? 지금까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느냐구요. 남자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왜 나 혼자만 짊어져야만 하는 거죠? 그 남자가 나에게 무슨 존재인데? 아무 상관도 없는 남남이잖아요? 그 사람이 오늘밤 죽는다고요? 하지만 나는 그 일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죽어 있는 몸이에요. 정말 그래요. 나는 죽은 인간이에요.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여자는 죽은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폐부를 찌르는 슬픈 호소였지, 결코 신경질적으로 애원하는 여자의 울음 섞인 소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남자 목소리인지 여자 목소리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침통한 호소였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곤 하지요. 그녀는 행복한 남편, 그리고 돈과 아름다운 가구,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죠. 그래요, 무엇보다도 불안이 없는 안정된 생활, 그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도록 약속받은 거였어요. 영원히 깨지지 않도록 말이에요. 내게는 그 여자가 나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요. 그런데 위스키를 마시면 그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죠. 당신도 알겠지만 꿈이란 것은…”

 

그는 말없이 앞에서 흘러들어오는 암흑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헤드라이트의 은색빛을 받아서 한가운데에서 둘로 갈라졌다가는 다시 그들의 뒤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은 신비롭게 요동치는 커다란 파도처럼 회색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듯이, 그녀의 고민 같은 것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갑자기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아시겠어요? 문자 그대로 한밤중에 나는 내동댕이쳐진 적이 있어요. 잠옷 차림으로 말이에요. 현관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잠겨 있고, 내 밑에 있던 하녀들에게는 나를 집안에 들여놓으면 즉시 내쫓긴다는 명령이 내려졌죠. 첫날밤 나는 공원의 벤치에서 뜬눈으로 새웠지요. 그리고 다음날 그 집 하녀에게서 5달러를 빌려 겨우 방을 얻어서 밤이슬만은 피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압력은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만일, 내가 헛소리라도 한다면 나를 알코올 중독자들 수용소에 가둬버리겠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은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쯤은 쉽게 해낼 수가 있지요. 그렇게 되면 나는 두 번 다시 햇빛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이트 재킷(미친 사람이나 광폭한 죄수에게 입히는 삼베로 만든 재킷)을 입고 냉수요법에 시달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은 변명이 되질 않아. 우리들이 당신을 얼마나 찾았는지 당신도 알고 있을 거야. 그것을 지금까지 모른 체했다는 것은 당신 양심상의 문제야.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란 말이야. 그것이 당신의 참모습이지. 당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착한 일을 해본 적이 없고, 또 앞으로 죽을 처지가 아니더라도 지금만큼은 그럴 수가 없어. 당신이 스코트 헨더슨을 위해서 증언해 준다면 그를 구해 줄 수 있단 말이야.”

 

그녀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한참 뒤에 천천히 머리를 들고는, “좋아요.” 하고 겨우 말했다.

 

“그렇게 하죠. 사실 나도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졌어요. 요 몇 달 동안 나는 장님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사람 일을 별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가 하는 내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 있었지요.”

 

여자는 다시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젠 단 한 번만이라도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당신은 그렇게 하게 될 거야.” 하고 그는 딱딱하게 말했다.

 

“그날 밤 당신이 술집에서 그와 만난 것은 몇 시였지?”

 

“6시 10분… 앞에 있는 시계를 보았거든요.”

 

“당신은 그것을 증언할 수 있겠지? 그리고 맹세할 수도?”

 

“그렇게 하죠.”

 

그녀는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꺼이 증언하겠어요.”

 

그 말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나님, 이 여자가 그에게 진 모든 죄를 용서해 주소서!”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그녀의 마음속에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짐작하고 있었던 대로… 그녀의 외부를 둘러싼 채 차츰 그녀를 질식시켜 마침내는 죽음으로 이끌고 갈 그 단단한 껍질이 점차 벗겨지는 것일까? 그녀는 두 손을 갑자기 위로 치켜올려서 깊게 숙이고 있던 얼굴을 감싼 채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몸의 내부가 하나하나 분해되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미러를 통해서 보기는 했지만, 직접 그녀 쪽으로 돌아보지는 않았다. 잠시 뒤에 그는 그녀의 태도가 바뀐 것을 알았다. 그녀는 두 손을 아래로 떨구고 그에게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내뱉었다.

 

“맑아졌어요. 지금껏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을 이제서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자동차는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계기반의 불빛만이 두 사람의 모습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차들의 행렬이 점점 뜸해져 갔다. 그것도 이쪽을 향해서 달리는 차들뿐이지,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시의 경계선을 넘어 매끄러운 도로를 일직선으로 북쪽으로 달려나갔다.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차들은 모두 흐르는 물 같은 헤드라이트의 빛을 남기면서 뒤쪽으로 사라져 갔다. 그들이 탄 차는 그렇게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먼 곳으로 가죠?” 하고 그녀가 약간 불안한 듯 말했다.

 

“지금 곧바로 주 형무소로 달려가는 길이야.” 하고 그는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니까. 관청의 번거로운 수속절차를 생략해도 될 테고.”

 

“확실히 오늘밤이라고 했죠?”

 

“앞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남았지. 아마 간신히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잠시 뒤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에 이르렀다. 허리께를 희게 칠한 나무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도로의 경계선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인가의 전등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때때로 시내로 들어가는 차가 흰빛 속에 희미하게 나타나 교차하는 순간 잠시 모자를 기울이는 것처럼 하고는 사라져 갈 뿐이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사고가 생겨서 시간에 댈 수가 없으면 어떻게 하죠? 전화라도 걸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모두 준비하고 있어. 이제 와서 갑자기 걱정이 되는 모양이군.”

 

“예, 그래요.” 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지금까지 장님이었어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어요.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를…”

 

“굉장한 발견이군.” 하고 그가 비웃듯이 말했다.

 

“다섯 달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당신은 그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 그러던 것이 단 15분도 될까 말까 하는 짧은 시간에 이젠 마치 정열처럼 솟구치나 보지?”

 

“그래요, 정말 그래요.” 하고 그녀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남편 일도, 요양소에 집어넣겠다는 협박도, 이제는 모두 우습게 보여요. 당신 덕분에 모든 것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녀는 피곤한지 눈언저리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내뱉는 투로 말했다.

 

“한 번만이라도 꼭 용기 있는 일을 하고 싶군요. 이대로 일생을 비겁하게 보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잖아요.”

 

그들은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달려나갔다. 얼마 뒤에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 증언만으로 그 사람을 구해 낼 수가 있겠어요?”

 

“최소한 연기할 수는 있지. 오늘밤의 처형을 연기할 수만 있으면, 변호사의 손을 빌려서 확실한 처치를 강구할 수가 있단 말이야.”

 

무심코 그녀는 갈림길에서 차가 왼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차는 황량한 비포장도로의 뒷골목 같은 곳으로 달렸다. 그녀가 그것을 안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차가 점점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이쪽으로 향하는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길 위에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이런 길로 들어왔죠? 주 형무소로 가는 길은 이미 지나온 남북 하이웨이 같은데. 혹시 그 사람이 그곳에 없는 것 아녜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시간을 절약해야 돼.”

 

바람소리가 조금 높아져서 구슬픈 신음처럼 들려오는 음산한 곳을 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그는 턱을 핸들 가까이에 댄 채 아무 표정도 없는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았다.

 

“이제부터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달리지.”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그들 둘만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침묵 속에 어느 사이엔가 제3의 인물이 끼어들어 지금 둘 사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얼음 같은 차디찬 공포였다. 그 보이지 않는 팔이 그녀를 차갑게 감싸고, 그 손가락이 그녀의 목젖을 어루만지고 탄 차의 헤드라이트밖에는 어떠한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길 양쪽으로 나무들이 희미한 기복을 보이며 지나갔다. 바람은 경고를 발하듯이 불어댔지만, 그 경고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뒤였다. 앞 유리창에 비친 두 사람의 얼굴은 마치 유령 같았다. 그는 속력을 줄여서 후진한 뒤, 다시 샛길로 차를 몰았다. 그 길은 포장은커녕 온통 진흙투성이에다 나무 사이로 난 샛길 같았다. 차는 굴곡이 심한 길에서 크게 흔들렸다. 배기관에서 뿜어나오는 가스로 마른 나뭇잎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바삭바삭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헤드라이트는 동굴 속 같은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비추면서 앞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는 눈부신 광선을 받아 석순처럼 반짝였으며, 먼 곳의 것들은 검은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기분나쁜 마법에 걸려든 숲속의 빈터 같았다.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이상한 숲이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쥐어짜듯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공포는 더욱더 강하게 그녀를 엄습해서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당신의 행동이 어쩐지 이상해요.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죠?”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이제는 끝장이다. 그녀는 차가 멈춘 뒤에야 비로소 브레이크 소리를 들었다. 그가 엔진을 끄자 주위는 온통 정적에 감싸이고 말았다. 자동차도, 남자도, 여자도. 그리고 그녀의 공포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움직이고 있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아직 핸들에 놓여 있는 그의 손가락 세 개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차례대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돌아보고는 막연한 불안에서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 거예요.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뭐라고 설명 좀 해줘요. 그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왜 이런 곳에다 차를 멈춘 거예요?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려.”

 

그는 턱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싫어요. 안 내리겠어요.”

 

그녀는 점차 고조되어 가는 공포심에 몸을 떨면서 그를 흘겨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 쪽의 문을 열었다.

 

“내리라고 했잖아!”

 

“싫어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당신 얼굴에 쓰여 있는데…”

 

그는 힘차게 내뻗은 팔로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잠시 뒤, 두 사람은 황갈색의 가랑잎 속에 구두를 파묻은 채 자동차 옆에 서 있었다. 그가 손을 뒤로 돌려서 차 문을 닫았다. 나무 숲에는 습기가 차 있었고, 주위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단지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곳만이 신비스러운 굴처럼 뽀얗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은 채 그 헤드라이트 불빛 속을 걷기 시작했다.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정적 속에서 바삭바삭하는 가랑잎 소리만 울려퍼졌다.

 

두 사람은 차를 벗어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어색하게 몸을 비틀면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숨소리가 나무들 꼭대기 아래에서 메아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아주 조용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어갔다. 이 무언의 행진은 헤드라이트의 빛이 차차 희미해져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곳까지 계속되었다. 이 빛과 그림자의 경계선에 이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서 손을 떼었다. 그녀는 그 순간 부축하여 바로 세우고는 다시 손을 떼었다.

 

그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그녀에게 권했다. 그녀가 사양하자, “자, 괜찮으니까 피워.” 하고 거칠게 말하며 그녀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리고는 성냥을 그어 두 손으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의 이런 친절한 행동에는 묘한 의식 같은 것이 들어 있어서 그녀를 안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공포만 더해 주는 것이었다. 한 모금 빤 뒤에 담배는 그녀의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입술에서 힘없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그것을 물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낙엽에 불이 옮겨붙기 전에 발로 비벼서 그것을 껐다.

 

“좋아, 그러면 이제 차로 돌아가. 무서워하지 말고 가기만 하면 돼. 분명히 말해 두는데, 절대로 뒤돌아보아서는 안 돼. 곧바로 걸어가기만 하는 거야.”

 

그녀는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두려워서 그녀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일까? 그는 그녀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걸어가라고 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낙엽 위를 걷기 시작했다.

 

“자, 내가 말한 것처럼 헤드라이트 빛을 따라 곧바로 차로 돌아가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뒤돌아보면 안 돼.”

 

그녀는 역시 여자였다. 더군다나, 공포에 떨고 있는 여자였다. 그의 경고는 도리어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홱 뒤돌아보고 말았다. 그의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절반 가량 올려져 있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을 때 품속에서 조용히 꺼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비명은 죽어가는 새소리 바로 그것이었다.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방향감각도 없이 날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한번 퍼득거리면서 힘없이 숨을 거두는 가련한 새. 그녀는 다시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에게 가까이 가면 안전이 보장되고, 멀어질수록 오히려 위험을 느끼는 것처럼…

 

“가만히 서 있어!” 하고 그는 냉혹하게 내뱉었다.

 

“나는 당신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 뿐이야.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제발 그만두세요. 왜 이러는 거예요?”

 

“무엇이든지 증언하겠다고 말했잖아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잖아요!”

 

“아냐.” 하고 그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어조로 거절했다.

 

“당신은 증언하지 않을 거야. 지금부터 내가 절대로 증언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지. 그 대신, 지금부터 한 시간 반 뒤에 저승에서 그가 당신을 뒤따라오거든 그때 증언이나 해주시지.”

 

헤드라이트의 희미한 광선을 등에 업고 그녀의 그림자가 뚜렷하게 떠올랐다. 덫에 걸린 것처럼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이. 두 줄기 헤드라이트 광선 밖의 암흑세계로 달아나고 싶어도 광선의 폭이 넓어서 그곳까지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전과 마찬가지로 그와 마주보고 서게 되었다.

 

더욱더 시간이 없었다. 그때 숲속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으나 그래도 그는 맞추지 못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로서는 그 이유를 찾아낼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멍하게 서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곳에 못박힌 채 선풍기에 묶인 리본처럼 흔들흔들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오히려 비틀거린 것은 남자 쪽이었다. 그는 가까운 나무에 기대어 지금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는 듯이 한 손으로 자기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떨어뜨린 권총은 낙엽 위에서 말없이 빛나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의 빛을 받은 그 물체는 석탄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녀의 뒤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 미끄러지듯이 재빨리 헤드라이트 빛을 따라 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중심을 잃고 나무에 기대어 있는 사람에게 권총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가 잠깐 몸을 구부리자 낙엽 속에서 요동하던 것이 사라져 버렸다. 사나이가 다가서더니, 두 사람의 손목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반짝거린 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롬버드가 휘청거리며 새로운 남자에게 중심을 잃고 기대었다. 잠시 뒤, 그는 자세를 바로 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마셀라 헨더슨을 살해한 죄로 당신을 체포하겠소!”

 

그가 입에 무엇인가를 갖다대자 요란한 호각 소리가 길게 꼬리를 물며 메아리쳤다. 그리고는 또다시 침묵의 장막이 세 사람을 감쌌다.

 

버지스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낙엽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세웠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알고 있소.” 하고 그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러나 이젠 끝났소. 모두 끝났어요. 당신이 해낸 거요. 당신이 그를 구한 겁니다. 내게 울어요.”

 

그녀는 그런 말을 듣자 울음을 뚝 그쳤다.

 

“이젠 울고 싶지 않아요, 괜찮아요. 나는 이런 시간에 누가 이곳까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당신들 두 사람을 미행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닐 거요, 그 친구들 운전 솜씨 가지고는…”

 

조금 전에 샛길 건너편 어디에선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났었다.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는 나 역시 자신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당신들의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온 거요. 뒤의 트렁크에 숨어서 말이오… 그안에서 이야기를 모두 들었소. 나는 당신이 그 가게에 들어갈 때부터 그 속에 들어가 있었지.”

 

그는 큰소리로 뒤에 대고 외쳤다. 그들이 차에서 내렸는지 번쩍번쩍 빛나는 손전등 빛이 나무 사이로 보였다.

 

“그레고리 일행인가?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네. 바로 길 모퉁이로 되돌아가서 근처의 공중전화로 지방검사 사무실에 전화해 주게. 앞으로 2~3분밖에 시간이 없어. 나도 이쪽 차로 곧 뒤따라가겠네. 검사에게는 존 롬버드를 체포했다고 말하게. 그가 헨더슨 부인을 죽였다고 자백했으니 형무소장에게 연락해 달라고…”

 

“당신은 아무런 증거도 잡지 못했어.”

 

롬버드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말했다.

 

“바로 몇 분 전에 당신이 보여준 행동… 그것이 충분한 증거야. 당신이 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지? 그녀의 증언이 헨더슨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말이야. 그래서 당신은 그녀가 증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겠지. 그녀가 증언하게 된다면 사건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재판해야 되기 때문이야. 곧, 당신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진다는 말이지. 내가 당신을 진범이라고 믿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야.”

 

주 경찰의 경관들이 발소리를 내면서 몰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이 여자를 차까지 데려가게. 상당히 피곤할 테니까 잘 모시게. 이 남자는 내가 책임지겠네…”

 

건장한 몸집의 경관이 양팔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이 여자는 누굽니까?” 하고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는 융단 같은 길을 따라 차 있는 곳으로 가면서 어깨너머로 물었다.

 

“매우 중요한 사람이네.”

 

범인을 끌고 가면서 버지스가 뒤에서 대답했다.

 

“그러니까 정중하게 모셔야 해. 좀더 천천히 걷게. 자네가 부축하고 있는 여자는 그 헨더슨이라는 사람의 젊은 애인인 캐롤 리치먼 양이야.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 자네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