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무소가 있는 역에서 열차를 내리자마자 곧 그는 마지막 한 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몇 잔을 기울인다고 해도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흉보를 길보로 바꿀 수도, 죽을 운명에 놓인 친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도 없었다.

 

앞쪽에 우뚝 솟아 있는 음침한 건물들로 이르는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그는 계속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한 인간을 눈앞에 두고, ‘너는 죽게 돼.’ 하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희망의 밧줄이 끊어졌다고, 마지막 빛이 그만 꺼져버렸다고 어떻게 말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만나지 말고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얼굴을 맞대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테니까 혼자서 편안히 나머지 시간이나 보내게 해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하지만 그는 그 꺼림칙한 순간을 맛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을 되새겨 보았다. 그거야 이미 정해진 일이 아닌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오싹한 기분이 피부를 파고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 고통스러운 사흘.

헨더슨을 어중간한 상태로 둔다는 것은 더더욱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젠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형집행 정지를, 금요일 밤의 마지막 순간까지 허무한 희망을 줄 수는 없었다.

 

간수의 뒤를 따라 2층의 독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그는 천천히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오늘밤 여기에서 나가면 정신이 나갈 정도로 취해 버려야지!’

 

그는 고통스런 생각을 되씹었다.

 

‘이 끔찍한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는 술에 흠뻑 취해서 병원 침대에 누워버릴까?’

 

간수가 옆으로 물러섰다. 드디어 그는 장송곡에 직면하기 위해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사형집행이었다. 진짜 처형에 앞서서 피를 흘리지 않는 사형이었다.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간수의 발자국 소리가 낯선 여운을 남기며 멀어져 갔다. 그 뒤에 무서운 침묵이 찾아왔다. 두 사람 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역시 그렇게 됐군.”

 

헨더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제는 극적인 긴장만은 풀린 것이다.

 

롬버드는 창가에서 되돌아와서 상대방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보게…” 하고 말을 꺼냈다.

 

“괜찮아.” 하고 헨더슨이 대답했다.

 

“알고 있어. 자네의 얼굴에 다 쓰여 있는걸. 자, 이제 그 얘기는 그만두세.”

 

“그 여자를 또 놓쳐버렸어. 살짝 도망치더니… 이젠 영원히 붙잡을 수 없게 되었네.”

 

“그런 얘기는 그만두자고 하지 않았나!” 하고 헨더슨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자네 마음이 어떤지 나는… 나는 잘 알아. 제발…”

 

오히려 그가 롬버드를 위로했다. 롬버드는 무너지듯이 침대 끝에 주저앉았다. 이 방의 주인인 헨더슨은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일어서서 건너편의 벽에 등을 기대었다.

 

잠시 동안 방안에는 헨더슨이 접고 있는 셀로판지의 바삭바삭하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는 속이 텅빈 담뱃갑의 셀로판지를 둥그렇게 말았다가는 다시 그것을 정성껏 펴서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무슨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따분해서 견딜 수 없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만. 드디어 롬버드가 입을 열었다.

 

“그만두게.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헨더슨은 놀라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는 멋적은 듯이 말했다.

 

“이것은 오래 된 버릇이야. 그만두자 하면서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군. 자네도 기억하고 있겠지? 기차를 타면 언제나 열차시간표가 이런 꼴이 되어버려.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는 그곳의 잡지를 한장 한장 이렇게 접고 있지. 극장에 가면 프로그램을 갖고 이렇게 하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꿈꾸는 듯한 눈길로 롬버드 머리 근처의 벽을 바라보다았다.

 

“그날 밤 그 여자와 함께 쇼를 보면서도 나는 이렇게 하고 있었어.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어. 일찍 그런 생각해 내었다면 혹시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아니, 왜 그러나? 왜 그런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거지? 이제는 더 이상 접지 않잖나?”

 

그는 구겨진 셀로판지를 옆으로 버렸다.

 

“자네, 물론 그 프로그램을 던져버렸겠지? 그 여자와 함께 있었던 날 밤에 말이야. 극장의 의자나 바닥에 버리고 왔겠지?”

 

“아니, 그 여자가 두 장 다 갖고 갔네.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 이상하게도 그것은 기억이 나는군. 가만 있자, 그 여자가 내 것도 달라고 했어. 그날 밤의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했던가, 뭐 그러면서 말이야.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 하지만 그녀가 두 장을 갖고 간 것만은 틀림없어. 내가 보았거든.”

 

롬버드는 이미 일어서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단서일지도 몰라. 하지만 잘만 하면 뭔가가 나올 것도 같아.”

 

“그게 무슨 말인가?”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여자가 그것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 갖고 있을지는 모르지.”

 

“처음에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면 지금까지 갖고 있을 거야. 극장의 프로그램 같은 것은 처음부터 버리든지, 아니면 오랫동안 보관해 두든지 하거든. 곧 그 자리에서 버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몇 년씩이나 보관해 두는 게 보통이라네. 잘하면 그것에서 무언가를 낚아올릴지도 연결하는 유일한 공통분모였던 걸세. 그 프로그램은 표지부터 맨 뒤까지 위쪽 오른편 귀퉁이가 접혀져 있을 테니까 말야. 어떻게 해서든지 그 프로그램을 그녀가 갖고 오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모습을 나타내게 될 거야.”

 

“광고라도 내겠다는 말인가?”

 

“흠, 그럴 생각이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네. 우표, 조개껍질, 성냥갑 등등.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모으는 것에 대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쓰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라고밖에 보이지 않는것이라도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수 없는 보물이 되니까. 한번 수집욕에 빠지게 되면 값에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가격부터 치루고 보니까.”

 

“그래서?”

 

“만일, 내가 극장 프로그램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해보세. 게다가 돈을 여기저기 물 쓰듯이 뿌리는 정신병자 같은 백만장자라고 말일세. 그리고 그것은 내게 취미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의 집념이 되어 있네. 나는 이 도시의 모든 극장에서 상연하는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손에 넣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못하겠지. 더욱이 지금뿐만이 아니라 훨씬 옛날의 것까지도 말이야. 나는 불쑥 나타나서 조그만 교환소를 차리고 광고를 내는 거야. 소문이 갑자기 퍼지겠지. 나는 미치광이이니까 쓰레기 같은 것에라도 돈을 준단 말야. 교환소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네. 신문에서는 사진을 싣고 기사를 미치광이의 하나로서 말이야.”

 

“자네 교환소는 쓰레기로 가득차겠군. 그러나 아무리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쓴다고 해도 그 여자가 관심을 가질까? 돈이 궁색하지 않을지도 모르잖나?”

 

“아니, 틀림없이 궁색할 걸세.”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거기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보장할 수도 없잖나.”

 

“그 프로그램은 우리에게는 군침을 흘릴 만한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야. 도대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나? 프로그램의 모서리가 조금씩 접혀져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라. 만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말해 자신도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해 내지 못했잖나. 그녀도 그럴 거야. 그녀는 천리안이 아니네. 지금 나와 자네가 이렇게 이 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알 리가

있겠나, 응?”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군.”

 

“물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 하고 롬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은 천분의 일이야.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꼭 해보고 말 걸세. 구걸하는 입장에서 싫다 좋다 떠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헨디, 나는 꼭 해낼 거야. 사실, 나는 묘한 예감이 들어. 다른 시도는 모두 실패했지만 이것만은 성공할 것 같단 예감 말일세.”

 

그는 등을 돌리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자, 그럼, 잘 가게.” 하고 헨더슨이 말하자 “그럼, 또 보세.” 하고 롬버드도 어깨너머로 대답했다.

 

간수를 따라서 그의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들으면서 헨더슨은 생각했다.

 

‘저 친구에게는 확신이 없어.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문 광고. 전국 조간, 석간에 게재’

 

오래 된 극장 프로그램을 삽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부유한 수집가가 자기 수집을 완성시키기 위해 미수집품을 특별한 가격에 사들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일생을 건 취미입니다. 새것과 오래 된 것을 가리지 않고 사들이니 많이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필요한 것은 이곳에서 여러 시즌 동안 상연된 뮤지컬과 쇼의 공연물 프로그램, ‘앨험브러’, ‘벨베데르’, ‘카지노’, ‘콜리시엄’ 극장의 프로그램입니다. 주로 해외여행 때문에 수집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대량취급자 및 전문업자의 것은 사양합니다. 접수기한은 금요일 오후 10시까지. 그 뒤는 이곳을 떠날 예정임. 프랭클린 스퀘어 15번지 J.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