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뉴욕에서 세 시간을 달린 뒤 열차에서 내렸다. 기차가 점점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대도시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변두리의 작은 마을이었다. 이러한 마을은 왠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시골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촌스러운 인상을 주곤 한다.

 

그가 그렇게 두리번거린 것은 주위의 낯선 모습이 뉴욕에 비해서 너무나도 달라서 다소 어리둥절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대도시 특유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시골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유명한 10센트 백화점, 낯익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멀리 왔다는 느낌이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봉투 뒤에 휘갈겨쓴 메모를 들여다보았다. 몇 개의 이름이 죽 쓰여 있고, 각각의 이름에는 주소가 덧붙여져 있었다. 모두 비슷비슷한 이름이었으며, 2개 국어로 되어 있는 점만이 달랐다.

 

마지막 두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메모는 다음과 같았다.

 

매지 페이튼, 여자 모자 (주소)
마지 페이튼, 여자 모자 (주소)
마거리트 페이튼, 모자 (주소)
마그다 부인, 모자 (주소)

 

그는 선로를 건너 휘발유 주유소로 가서 기름투성이의 남자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서 모자를 만들고 있는 마르거리트라는 여자를 혹시 모릅니까?”

 

“어, 그러고 보니 하스콤 부인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사람이 창가에 그런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을 본 것 같긴 한데… 그러나 별로 신경 써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자인지 옷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이 길의 이쪽편 끝 집인데, 이 길로 곧장 가면 돼요.”

 

그곳은 아주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 아래쪽 창가에 ‘마르거리트, 모자’라고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초라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어둠침침한 현관 위에 올라서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 케티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 그가 찾고 있는 바로 그 장본인이라고 여겨지는 여자가 나왔다.

 

특별히 눈에 드러나는 점도 없고 그저 다소곳하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여자. 린네르 블라우스에 감색 스커트를 입은 차림새. 손가락 끝에 작은 금속성 물건이 끼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골무였다. 그녀는 그가 이 집의 주인에게 일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하스콤 부인은 시장에 가셨는데요. 이제 곧 오실 텐데…”

 

“페이튼 양,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왔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라 문을 닫으려 했는데 그가 발로 그것을 막았다.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째서 도망치려고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놀란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증거가 될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좋소, 그럼, 내가 이야기하죠. 당신은 케티셔 상점에서 봉제공으로 일한 적이 있었죠?”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람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도망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당신에게 와서 여배우 멘도자가 주문한 모자와 똑같은 것을 만들어 달라고 했죠?”

 

그녀는 점점 더 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마치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고개를 흔드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는 겁을 집어먹고 날카롭게 몸을 뒤로 젖히며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두려움과 용기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 여자의 이름만 알면 그것으로 족해요.”

 

그녀는 말로 해서 알아들을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며, 양볼이 크게 실룩거리는 모습은 마치 심장이 목 근처까지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단순한 두려움은 분명 아닐 게다. 그 원인과 결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모자 때문이라면 그녀가 저렇게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또 다른, 자기가 추적하고 있는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일이 또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그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여자의 이름만 가르쳐 주시죠…”

 

하지만 공포에 가득찬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 그의 말은 조금도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의 잘못을 탓하려는 게 아니오. 당신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죠?”

 

그녀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서 목쉰 소리로 띄엄띄엄 더듬어 나갔다.

 

“갖고 있어요. 그러니 이것을 좀 놓아주세요.”

 

꼭 쥐고 있던 손목을 놓고 그는 문이 닫혀지지 않도록 꽉 붙잡았다. 그녀는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려 보았다. 그러다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녀가 그 자리에 남겨놓은 긴박감 같은 것에 따라 그는 쏜살같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음침한 복도를 지나 방금 그녀가 들어간 방을 열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가위가 번쩍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엉겁결에 몸을 날려 가위를 치워버렸다. 한쪽 팔을 크게 휘두르는 바람에 옷소매가 찢어지고 팔을 조금 긁혔다. 그는 가위를 구석으로 집어던졌다. 만일, 그녀가 정말로 가위를 내리찔렀다면 그녀의 심장을 꿰뚫고 말았으리라.

 

“도대체 무슨 짓이오?”

 

그는 엉거주춤한 태도로 손수건을 소매에 밀어넣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짓밟힌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늘어졌다. 지지리도 못난 모습으로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그 사람을 만난 지는 벌써 오래 되었어요. 이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 사람이 무서워요. 그 사람을 싫다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처음엔 그 사람이 2~3일이라고 했지만, 이젠 벌써 몇 개월이 지난걸요. 누군가에게 죄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그 사람이 나를 죽일 것처럼 말했거든요.”

 

그는 얼른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역시 그가 알고 싶은 것과는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와 관계없는 사건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 얘긴 더 이상 하지 마시오! 당신은 괜한 일을 갖고 겁에 질려 있는 모양인데, 나는 단지 그 여자의 이름만 알면 그만이오. 당신은 케티샤의 상점에서 만든 모자와 똑같은 것을 누군가에게 만들어 주었소. 그 여자… 여자의 이름만 가르쳐 주면 끝이오, 알겠소?”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그녀는 자기 신변에 위험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의 말이 너무 뜻밖이어서 선뜻 믿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니겠죠, 설마…”

 

목소리가 가냘퍼서 알아듣기가 어려웠지만, 그녀는 훌쩍거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울음소리는 커다랗지 않았지만, 그녀의 뺨이 또다시 흑빛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소?” 하고 그가 물었다.

 

“카톨릭이에요.”

 

그 딱딱한 목소리 속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담겨 있었다.

 

“그럼, 로자리오 (카톨릭에서 기도할 때 사용하는 십자가가 달려 있는 염주)를 갖고 있겠군요? 가져오시오.”

 

이론으로는 통하지 않을 테니 감정에 호소해서 설득시킬 생각이었다. 그녀는 로자리오를 그에게 내밀었다. 롬버드는 그것을 받지 않고 로자리오를 든 그녀의 한쪽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쥐었다.

 

“이 로자리오를 걸고 맹세하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녀의 이름뿐이오. 그밖에 다른 뜻은 아무것도 없소. 너저분한 문제로 당신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단 말이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오. 이젠 믿을 수 있겠소?”

 

로자리오를 만지고 있으니 마음이 다소 수그러졌는지 그녀는 차츰 침착해져 갔다.

 

“피에레트 더글러스,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6번지.” 하고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녀는 또다시 겁먹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벽 한쪽에 커튼으로 가려진 벽장이 있었다.

 

그녀는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뭔가를 집어들었다. 잠시 뒤 돌아온 그녀의 팔에는 하얀 옷을 입은 인형이 안겨져 있었다. 작고 분홍빛의 얼굴을 가진 인형이 신뢰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롬버드 쪽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공포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인형의 작은 분홍빛 얼굴을 내려다볼 때에는 인자한 빛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것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불안한 애정이었지만 무한한 것이었다. 고독한 애정은 하루하루 깊어져서 나중에는 불변의 애정으로 되는 법이다.

 

“피에레트 더글러스,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6번지, 맞소?”

 

그는 지폐를 꺼내어 세면서 말했다.

 

“그녀가 당신에게 얼마나 주었소?”

 

그녀는 잊어버렸다는 듯이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뒤집혀져 있는 모자를 만드는 틀 속에 50달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문 쪽으로 가서 말했다.

 

“당신은 자제심부터 길러야겠소. 당신은 그런 면에서는 저 밑바닥이오.”

 

그의 그런 말은 그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자기를 보며 이빨 없는 입으로 웃고 있는 작은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눈 아래에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그 작은 얼굴은 그녀의 얼굴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의 재산이며, 그녀의 고독을 떨쳐 버려 줄 유일한 대상물이었다.

 

여기에 오는 데에는 세 시간이나 걸렸지만, 돌아가는 데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의 발밑에서 열차 바퀴가 요란스럽게 그 특유의 리듬으로 그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았어!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았어!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았어!’

 

차장이 곁에 다가왔다.

 

“표를 좀 보겠습니다.”

 

그는 얼굴을 들고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았지.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았어.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은 거요. 이제야 드디어 그녀를 붙잡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