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인
그의 피부에는 적도 가까운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햇볕에 탄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요즈음의 여행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도 역시 빠른 길을 택해 날아왔다. 비행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눈깜짝할 사이에 미국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날아오기도 하고, 리오를 떠나 멀리 뉴욕의 라 가디아 공항에 도착해도 사흘 전에 난 여드름이 채 없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는 스코트 헨더슨과 같은 연배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5~6개월 전의 헨더슨을 말하는 것이지, 감방 안을 서성거리며 1년을 한 시간으로 계산하고 지금의 헨더슨은 아니다.
그는 남미에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파나마 모자, 색깔도 옷감도 미국의 가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회색 면양복, 이런 모습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베네수엘라의 작열하는 태양이 필요하리라.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행동거지는 다소 부드러웠다.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그를 보면 1년 내내 전차 뒤나 쫓아다니는 남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언뜻 보기엔 이미 한 구획이나 앞을 달리고 있는 전차를 달려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빠릿빠릿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단정치 못한 편이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이미 깎을 때가 지나 있었고, 넥타이도 증기다리미가 한 번 지나가야 했다. 그것은 뒤틀린 채 나선형의 엿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귀부인을 상대로 해서 파티장의 마루를 미끄러지고 있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고, 그보다는 선박의 갑판 감독이라든가 제도판과 씨름하고 있는 토목기사 쪽이 훨씬 어울렸다. 외모는 대충 이런 정도로 별로 시원찮았지만, 그의 몸에는 일종의 중후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굳이 고루한 표현을 빌자면 남자 중의 남자라고 할까.
“그 친구는 지금 어떤 상태로 지내고 있나요?”
간수의 뒤를 쫓아 계단을 내려오며 그가 물었다.
“뭐 다 그렇고 그렇게 지내는 거 아닙니까.” 하고 간수가 대답했다. 그 이상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미적지근한 말투였다.
“그렇고 그렇게라…”
그는 고개를 흔들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불쌍한 녀석.”
간수는 벌써 그 방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있었다. 사내는 잠시 숨을 죽이고 뒤로 물러서서 목 안을 쓸어내리려는 듯이 크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나서 감방의 창문 모양의 가장자리를 살펴보려고 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띠고서 한 손을 죽 내뻗으며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사보이 플라자 호텔의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대방 쪽으로 사내는 김빠진 어조로 내뱉듯이 말했다.
“여어, 오랫만이군, 헨디. 그런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를 몹시 사모했었다고?”
헨더슨의 반응에는 형사가 찾아왔을 때와 같은 불쾌한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 남자는 오랜 친구가 아니었던가.
그는 갑자기 얼굴이 밝아지며 상대방과 똑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지. 어때, 이곳의 느낌이?”
두 사람은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마주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간수가 열쇠를 채우고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손을 늦추지 않았다.
마주잡은 손에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입밖으로는 내지 않아도 분명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도 진정한 친구는 있었던 거야.’
또한, 롬버드의 손도 열정이 넘치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자네편이야. 내가 붙어 있는 이상, 어느 누구도 자네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걸세.’
그 뒤 잠시 동안은 서로가 당면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두 사람은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실만을 제외한 모든 것을 화제로 삼았다. 그것은 눈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너무나도 심각해서 피가 엉길 정도로 끔찍한 경우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쑥스러움이랄까, 아니면 일종의 회피와 같은 것이었다.
“야아, 질렸어, 이곳의 기차 말이야. 덕분에 이렇게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었잖나.” 하고 롬버드가 요란하게 떠들었다.
“건강해 보이는데, 잭. 그쪽 생활은 자네에게 잘 맞는 것 같군 그래.” 하고 헨더슨도 대꾸했다.
“농담 말게! 더럽고 지독히도 외로운 곳이었어! 게다가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모기는 또 얼마나 극성맞은지. 5년 계약에 서명을 하다니, 내가 한 일이지만 나 같은 등신도 없을 걸세.”
“그렇지만 돈은 신나게 벌 수 있잖아?”
“그거야 물론이지. 하지만 그런 곳에서 돈을 벌어봤자 무얼 하겠나? 쓸 데가 없어. 맥주에서는 석유 냄새만 나고…”
“그렇다고 해도 너무 미안해. 자네에게 커다란 짐을 던져주어서…” 하고 헨더슨은 우물우물 대답했다.
“아닐세, 나는 오히려 고마운걸.” 하고 답했다.
“그 계약은 유효해. 잠깐 휴가를 얻어서 온 것뿐이니까.”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문제를 건드리고 말았다. 하긴, 그 문제는 계속해서 두 사람의 마음속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그는 친구의 얼굴에 보내고 있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 일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헨디?”
헨더슨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말하자면 오늘부터 2주일 반이 지나면 우리 동창생 중 하나가 어떤 전기 실험에 참가하게 된 거야. 동창회보에서 내 일을 뭐라고 떠벌여 놓았더라? ‘결국 그의 이름은 신문지상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였던가? 꽤나 대단한 예언이야.”
롬버드는 날카로운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나는 그런 일에는 참지 못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게. 우리들 사이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잖나. 남 대하듯 하지 말고 탁 터놓고 얘기해 봐.”
“아…” 하고 헨더슨은 괴로운 어조로 대답했다.
“정말 인생이란 것은 짧은 거야.”
이렇게 말해 버리고 나서 그 감회가 지금의 자신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깨닫고는 겸연쩍은 듯이 고소(苦笑)를 지었다.
롬버드는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세면대 위에 걸터앉아서 흔들거리는 한쪽 발목을 양쪽 손으로 붙잡아 들어올려서 다리를 꼰 채로,
“자네 부인과는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었지.” 하고 회상하듯이 말했다.
“왜 길거리에서 우리 부부하고 한번 마주친 적이 있잖아, 잊어버렸나?”
“아, 그래, 그래. 자네 부인이 뒤쪽에서 자네의 팔이 끊어질 정도로 죽어라 끌어당겼었지.”
“옷을 사러가던 참이었지. 그런 때의 여자의 마음은 자네도 알지, 응?”
그리고는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여인을 위해 이리저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미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네를 저녁식사에 한번 초대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군. 자네라면 그런 정도는 이해해 주겠지, 응?”
“그럼, 그럼.” 하고 롬버드는 죽이 맞아서 대꾸했다.
“뭐 마누라들이야 죄다 그런 것 아니겠어?”
그는 남미산의 독한 담배를 꺼내어 헨더슨에게 건넸다.
“혀가 부어오르고 입술에 물집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뭐 한 대 피워 보게. 그곳 제품인데, 화약과 살충제를 섞어서 만들었는지 아주 형편없어. 글쎄, 이곳 담배를 살 틈도 없었다니까.”
롬버드는 자기 담배를 깊숙히 들이마시고 나서,
“슬슬 자네 입으로 자세한 얘기나 들어보세.” 하고 말했다.
헨더슨은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멈추고는,
“좋아, 시작하지. 벌써 몇 번이나 떠들어댄 스토리라서 잠꼬대라도 할 정도야.” 하고 대답했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칠판 같으니까 가능한 한 건너뛰지 말고 말해보게.”
“나와 마셀라의 결혼은 정말이지 소꿉놀이 같은 유치한 것이어서 가정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 같은 건 조금도 없었어. 이런 얘기는 친구 사이라도 입에 담기가 거북스럽지만, 사형수 감방에 들어와 있는 처지에 고상한 체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으니 몽땅 털어놓겠네. 그러니까 1년쯤 전에 어쩌다가 진짜 남녀관계라고 하는 놈이 나를 찾아왔어. 발을 빼려고 했을 땐 이미 늦어버렸지. 그 여자는 자네가 만난 적도 없으니까 이름을 꺼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법정에서도 그 점은 관대하게 처리해 주더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저 ‘젊은 여성’으로만 통해 왔지.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부르겠네.”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의 ‘젊은 여성’, 정말이지… 그녀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진짜 나의 사랑이었어. 내가 결혼하기 전에 만났다면… 모든 게 순조로웠을 거야. 아, 물론 내 마누라가 그런 여자였다면 더 바랄 나위도 없지. 생각지도 않은 행운을 잡게 되는 거 아니겠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비록 결혼은 했더라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면 진짜 사랑이란 것이 어떤 건 줄도 모르고 끝나게 되니까 역시 아무런 불만이 없는 거겠지. 하지만 결혼 뒤에 그런 일이 일어나서 후회했을 때는 이미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제일세.”
“그거 꽤나 골치아픈 일이겠군.” 하고 롬버드는 안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 일은 흔히 있게 마련이야. 나는 그 ‘젊은 여성’과 두 번째 만났을 때 마셀라에 관해서 이야기했어. 그리고 나서는 만나지 않을 작정이었지. 열두 번째 만나고 나서도 역시 우리 둘은 그 사실을 꺼내어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했었네. 서로가 상대를 피하려고 노력했던 거야. 쇠붙이를 자석에서 떼어낼 정도로 힘든 일이긴 했지만. 마셀라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녀와의 관계를 알게 되었어. 내가 먼저 그녀에 관해서 몽땅 털어놓았다네. 그래서 그런지 흔히 세상에 나도는 듯한 그렇게 큰 웃으면서 그저 잠자코만 있었어. 마치 어항 속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두 마리의 거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마셀라에게 이혼하자고 해보았지. 그때가 아마 우리 관계가 꽤나 깊어져 있을 때였을 거야.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느긋하고도 동요가 전혀 없는 미소가 떠오르더군. 내가 말하고 있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챌 수 있었지. 자신이 앉아 있는 곳 앞쪽 열의 좌석에 구두가 한 켤레 놓여져 있는 것을 바라보는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더군. ‘생각해 보죠.’ 하고 마셀라는 말하더군. 그리고 나서 생각하기 시작했어. 몇 주일, 아니 몇 달이 흘러갔지. 그렇게 해서 천천히 시간을 벌고 나를 이러지도 거야. 그 동안 나는 그녀의 그 느긋한 조소만 받고 있어야 했었어. 우리 세 사람 중에서 마셀라만이 그렇게 즐기고 있었던 거라네.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지. 한 남자로서 나는 그 ‘젊은 여성’을 어떻게 해서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네. 하지만 난 미적지근한 것은 영 싫었어. 바람둥이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야. 나에게는 단지 아내가 필요했던 거야. 그렇지만 집에 있는 여자는 아내라고 부를 만한 여자가 아니었어.”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손가락 틈새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를 하는 데도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말했네.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우리들은 완전히 당신 부인의 손 안에 잡혀 있고, 부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그냥 잠자코 있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에요. 이렇게 계속되면 부인도 똑같이 그 끔찍한 얼굴로 당신을 대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친구를 대하듯 부드럽게 상대해 보는 게 어떻겠어요? 언제 둘이서 함께 외출해서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이야기해 보세요. 당신 부부도 옛날에는 서로를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공통의 추억거리가 아직 남아 있을 거예요. 부인이 당신에 대해 애틋하게 느끼고 있는 감정 같은 것들이 조금은 남아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러한 것이 우리들을 위해서뿐만 일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일세.
그래서 나는 쇼 입장권을 사고, 또 결혼 전에 둘이서 잘 가던 레스토랑에다 자리를 예약해 놓았지.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와 이렇게 얘기를 꺼냈다네. ‘오늘밤 함께 외출하지. 옛날처럼 말이야.’ 그러자 아내는 그 느긋한 미소를 또다시 얼굴에 띠고는, ‘예, 좋아요.’ 하고 대답하더군. 내가 샤워를 하고 있는 동안 마셀라는 경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었어. 나는 목욕탕에서 휘파람을 불며 샤워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그녀가 좋아지는 거야. 그리고는 우리의 결혼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문득 깨닫게 되었지. ‘젊은 여성’을 좋아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담배를 내던지고는 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마셀라가 처음부터 거절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왜 샤워를 하며 신나게 휘파람을 불고 있는 나를 그대로 보고만 있었을까?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기고 있는 나를 거울 속으로 잠자코 바라보고만 있었던 이유가 뭐지? 내 윗도리 호주머니에서 살짝 삐져나온 손수건을 만족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또 어째서였을까? 요 반 년 동안에 그렇게도 신나 보이던 얼굴은 처음이던데, 그 이유가 뭐였지? 처음부터 마음에도 없었으면서 나갈 채비를 한 것은 또 어째서였을까? 바로 그거야… 그것이 그녀의 수법이란 말일세. 마셀라는 그런 여자였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놔두는 것이 그녀에게는 꽤나 재미있었던 거야. 이혼이라고 하는 큰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밖으로 외식하러 가는 작은 문제에 있어서도 그것은 별 차이가 없었어. 그때는 나도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지. 거울에 비친 그녀의 그 미소. 외출준비를 하는 체하면서도 실제로는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있는 그 능글맞은 수법. 나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모든 동작을 완전히 멈추고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더군.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그냥 앉아만 있었단 말일세. 그리고는 바로 그 미소만이 얼굴에 남아 있더군. 괴로운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에게 보내는 그 조소. 다른 여자와 도려내 줄 수 있을 만큼 안달이 난 남자.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누어지네. 경찰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로 말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경찰이나 나나 조금도 꾸민 것이 없어. 머리카락 정도의 차이도 없어. 경찰에서는 내가 아내를 죽였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때까지의 내 행동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친구들은 죄다 인정하고, 또 그렇게 알고 있더군. 그들은 철저하게 구석구석까지 조사를 한 모양이야.
내가 넥타이를 손에 든 채 그녀의 등뒤에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점부터는 6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처럼 스토리는 완전히 이야기는 이쪽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완전히 저쪽 방향으로 갈라지는 거야. 우선 내 이야기부터 말하겠네. 이것이 진짜 이야기이니까.
마셀라는 내가 말을 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게 잠자코 가만히 앉아 있었던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거야. 그 미소, 시치미 떼고 있으면서 화장대 끝에 양손을 포개어놓고 있던 그 모습도 다 그 때문이었어. 나는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지.
‘갈 마음이 없는 거야?’
그녀는 웃기 시작했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한 거야. 기가 막히게 통쾌하고도 긴, 허파 저 밑바닥부터 터져나오는 그런 웃음이 그렇게 큰 무기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군. 그리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네.
‘하지만 극장표를 내버릴 필요는 없어요. 돈을 시궁창에 버리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녀를 내 대신 데리고 가면 어때요? 쇼 정도는 보여줘도 괜찮아요. 식사도 함께 하세요. 그녀가 당신을 좋아하도록 말이에요. 하지만 그녀가 맘대로 당신을 차지하려는 것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요.’
마셀라의 대답은 기껏 이렇더군.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대답은 변함이 없었을 걸세. 나는 그때 알아차린 거야.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 상태로 지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부드득 이를 갈고 한쪽 손을 치켜들었어. 마셀라의 뺨에 닿을 듯한 거리였지. 손에 들고 있던 넥타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어. 아마 마룻바닥에 떨어졌겠지. 다만, 그것을 그녀의 목에 감아 죄지 않았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네.
나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어. 댈 수 없었지. 나는 그런 남자는 아닐세. 마셀라는 내가 그렇게 하도록 유도했지만 말이야. 그 이유야 알 수 없지. 내가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 걱정은 아예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내 모습은 거울 속에 가득차 있었으니까 물론 돌아다볼 필요도 없었어. 그녀는 냉소를 섞어서 이렇게 말하더군.
‘자, 때려 보세요. 케이시 선수(프로 야구의 전설적인 강타자.), 그런 장난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요. 당신이 나에게 다정한 체하든지 화를 내든지, 뭐 신사적으로 나오건 난폭하게 나오건 별로 사정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서 우리는 모든 인간사가 다 그렇듯이 입에 담아서는 안될 일들을 갖고서 서로 떠들어댔지. 핏대가 오를 대로 오르긴 했지만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는 않았어.
‘당신은 나 같은 건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고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나를 붙잡아두려는 거지?’
‘강도라도 들어왔을 때 써먹으려고요.’
‘좋다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런 식으로는 끌려가지 않을 거야.’
‘오, 좋아, 이제야 생각나는군. 당신에게 줄 게 있어.’
나는 지갑에서 1달러짜리 지폐를 두 장 꺼내어 마셀라의 등 뒤쪽으로 집어던지며 소리쳤다네.
‘이것은 당신과 결혼해서 당신을 끌어안았던 값이야!’
분명히 야비하고 유치한 방법이었지. 나는 그대로 모자와 윗도리를 집어들고 방을 뛰쳐나와 버렸네. 나오면서 보니 그녀는 여전히 거울 앞에 앉은 채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더군. 웃고 있었어, 잭, 죽어 있지 않고 말이야! 나는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 그녀의 웃음소리는 문을 닫은 뒤에도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고. 그 소리를 떨쳐버리려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내려갔지. 덕분에 내 머리가 좀 이상해져 버렸어. 그 아래층까지 내려갔는데도 계속해서 쫓아오는 거야. 아파트를 빠져나가니 겨우 들리지 않더구먼.”
그는 말을 끊고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자기가 불을 붙인 일막의 광경이 점차 식어가서 사라져버린 것을 알고는 비로소 다음 이야기를 계속할 마음이 생겨나는 듯했다. 잔뜩 찌푸린 이마의 주름에서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난 뒤에 집에 돌아와 보니…” 하고 그는 조용히 계속해 나갔다.
“마셀라는 죽어 있었어. 경찰에서는 내가 죽였다고 하더군. 그 친구들 말에 따르면 범행시각은 6시 8분 15초경이었다는 거야. 그녀의 손목시계가 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나. 내가 문을 나서고 나서 벌어진 것이지.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네. 어느 놈인지는 모르지만 범인은 이미 아파트 안의 어딘가에 숨어 들어와 있었던 거야.”
“하지만 자네는 계단으로 내려왔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게다가 우리 부부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엿듣고 있었는지도 몰라. 내가 나오는 것도 죄다 보고 있었을 거야. 나는 문을 굉장히 세게 닫았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퉁겨서 꽉 닫히진 않았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범인이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고는 마셀라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커서 아무도 들어오는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문득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은 뒤였겠고…”
“그렇다면 빈집털이나 좀도둑의 짓인가?”
“그렇겠지.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경찰수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어. 그것으로 보아 도둑의 소행은 아닐 거야. 아무것도 훔쳐가지 않았거든. 마셀라가 앉아 있었던 화장대 서랍에는 16달러가 들어 있었는데, 그게 고스란히 들어 있었어. 또, 추행할 목적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녀는 의자에 앉은 자세로 살해당하고 나서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거든.”
그러자 롬버드가 되받듯이 물었다.
“처음에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들어갔다가 놀라서 도망친 것은 아닐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든가, 자신이 막 저지른 범행이 갑자기 두려워졌다든가, 뭐 그러한 경우가 셀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응?”
“설사 그렇더라도…”
헨더슨은 맥빠진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보란 듯이 화장대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거든. 범인은 그것을 그냥 놔두고 나가버렸어. 아무리 당황했다고 해도 그 정도야 집어갈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면서 계속해 나갔다.
“넥타이가 치명타였어. 그것은 넥타이걸이의 아래쪽에 걸려 있었던 거였어. 넥타이걸이는 옷장 꽤 깊숙한 곳에 있지. 사실 그 당시 내가 입고 있었던 양복과 그 밖의 모든 것에 제대로 어울리는 것은 그 넥타이 뿐이었네. 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손으로 마셀라의 목에다 그것을 휘감지는 않았네. 한바탕 소리치고 있을 때 문득 쳐다보니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군. 아마 바닥에 떨어졌는데 미처 내가 깨닫지 못했었나 봐. 나는 아무 생각없이 집에 돌아올 때에 매고 있었던 넥타이를 끄집어내어 와이셔츠 위에다 대강 걸쳐매고서 그냥 뛰쳐나온 거야. 그 뒤 범인이 몰래 들어가서 살금살금 다가가다가 그것이 눈에 띄어서 그걸 주워서는… 그런데 도대체 어떤 작자일까? 어째서 마셀라를 죽였을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르지.” 하고 롬버드가 말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는, 그런 정신병자 같은 놈이 그놈이 자네의 부부 싸움을 훔쳐보다가 자극을 받아서 말이야. 특히, 문이 꽉 닫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나서는, 살인을 저질러도 잡힐 염려가 없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 점은 자네에게도 책임이 있어. 그런 예는 왕왕 있는 일이잖은가?”
“그렇다면야 쉽게 잡히진 않겠지. 그런 종류의 살인자는 꼬리를 잡기가 매우 어려워. 우연한 계기로 잡히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전혀 다른 사건 때문에 잡힌 뒤에 실토하다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자네의 전보에 적혀 있는 중요한 증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건가?”
이번 사건 전체를 통해서 그것만이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야. 가령 경찰에서 진범을 잡을 수 없다고 해도 내 자신의 손으로 혐의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는 것이지. 이 사건에서는 두 가지 사실이 부각되어 있긴 하지만, 그 두 개가 반드시 일치될 필요는 없어. 전혀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라도 좋아. 어느 하나라도 그 나름대로 결정적인 것이 되니까.”
그는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한쪽 손을 주먹 쥐어 그것으로 다른 손을 몇 번이고 두들겨댔다.
“여기에 한 여인이 있어. 내가 이렇게 감방 안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여인이 나와 함께 있었다는 시간만 증언해 준다면 나는 풀려나는 것이지. 그 시간은 틀림없는 6시 10분이었으니까. 현재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떤 이름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야. 경찰은 내 행적을 재현해 보고서, 만일 내가 집에서 살인을 했다고 하면 그 시간에 그 술집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했네. 잭, 만일 자네가 나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이렇게 꼼짝없이 몰려 있는 나를 구해 줄 마음이 있다면 제발이지 그녀를 좀 찾아주게. 그녀만이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일세.”
그러자 롬버드는 한참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 여자를 찾는 데 지금까지 얼마나 손을 써봤나?” 하고 물었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 하는 자포자기한 듯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죄다 말이야.”
롬버드는 침대로 다가가서 친구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휴우…” 하고 마주잡은 양손 사이로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이나 자네의 변호사가 사건 직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조사했는데도 실패했다는 말이군. 그것을 몇 달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도 며칠 남지도 않은 겨우 18일 동안에 내가 도전한다고 해서 무슨 승산이 있다는 건가!”
이미 간수가 와 있었다. 롬버드는 일어서서 풀이 죽어 있는 헨더슨의 어깨에 손을 갖다대고 나서 감방을 나서려 했다.
헨더슨은 손을 내밀고 우물거리듯이 말했다.
“이별의 악수라도 해주지 않겠나?”
“무슨 소리야? 내일 다시 올 건데.”
“그럼, 나를 도와주겠다는 건가?”
롬버드는 뒤돌아서서 뚫어져라 상대를 쳐다보면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은 도리어 성가시다는 듯이,
“도와주지 않겠다고 누가 그러기라도 했나?” 하고 화난 듯이 소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