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_lady.jpg월리엄 아이리쉬(본명 : 코넬 조지 호플리 울리치)는 1968년 9월 25일 뉴욕의 워커셤 병원에서 64살로 그 생애를 끝냈다.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 미스터리 문학 팬들을 그의 독특한 분위기와 애절하고도 감미로운 문체로 매료시켰던 미국 미스터리 소설계의 한 거성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처럼 화려한 그의 창작기법도, 10여 년 전의 《호텔방》을 마지막으로 그의 발표 작품은 손가락으로 셀 만큼 줄어들었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가 떠났다. 그의 죽음은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미국의 유력지에 한 줄의 기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독한 작가의 최후였다.

 

아주 개성이 뚜렷했던 그의 미스터리 소설은 추종자도 모방자도 없을 만큼 독특한 것이었다. 그의 작품처럼 짜임새 있고 문학적 향기가 짙은 문체는 다시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리엄 아이리쉬와 같이 자기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는 아직도 보기 드물다.

 

월리엄 아이리쉬는 1903년 12월 4일 뉴욕 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연도에 대해서는 <20세기 작가사전>에 적혀있는 1906년이 일반적이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한두 사람의 연구자에 의해 그 모순이 발견되었으며 사실은 1903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같이 출생연도마저 애매하므로 그의 부모며 그밖의 사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소년시절을 1910년부터 1912년까지 혁명 당시의 멕시코, 쿠바, 바하마 섬에서 보냈다. 그 혁명도 끝나고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학교 교육을 받았다.

 

P S 10 (제 10 preliminary school)에서 다윗 클링턴 하이스쿨로 진학하고 이어서 동부의 명문인 컬럼비아 대학을 1925년에 졸업했다. 그해 앓아눕게 된 그는 회복기의 여가를 이용하여 집에 있는 책을 모두 샅샅이 읽고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충동을 느껴) 소설 한 편을 써보았다. 즉 이것이 이듬해 1926년에 출판된 그의 처녀작 <Cover Charge>이다. 이리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소설의 인세 수표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그때까지 막연히 탭댄서라도 되어보려고 생각했던 그에게 작가로서 나아갈 결심을 굳혀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22살 때의 일이었다.

 

이어서 5년 동안 그는 1년에 평균 한 권씩 이런 종류의 소설을 출판했다.(앤소니 버우처의 평에 따르면, 스콧피츠제럴드 풍의 bright-young-man-about-Manhattan novels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책들을 구할 수 없지만 도회지 풍의 로만스라고 여기면 될 것이다. 그리고 1927년에 출판한 《Children of the Ritz》가 칼리지 유머 잡지의 상을 획득했다. 그 상금 1만 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그는 얼마 동안 파리에 놀러 가서 흥청망청 써 버렸다고 한다.

 

1920년 대에는 칼리지 유머, 매클레스, 스마트 셋 등의 참신한 잡지에 단편과 중편을 기고했던 듯하다. 그 뒤 1930년 대에는 블랙 마스크 및 그 밖의 미스터리 소설 관계의 여러 잡지에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트릭이 교묘하게 짜여진 많은 단편과 중편을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1940년에 발표한 미스터리 장편 《흑의의 신부》는 애인이 피살된 처녀가 범인을 차례차례 죽이는 복수담을 옴니버스 스타일로 묘사한 것으로, 그의 실력을 발휘한 이정표적인 걸작이다. 그러나 그의 진가를 세상에 알려준 것은 그로부터 두 해 뒤 1942년에 아이리쉬라는 익명으로 발표한 《환상의 여인》이다.

 

《환상의 여인》은 아내를 죽인 혐의를 받고 사형선고를 받은 남자가 연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수수께끼의 여자를 찾는 이야기인데, 거의 찾았다고 생각하면 그 실마리가 차례차례 없어지고 만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사형집행일이 각 장의 제목으로 되어 있으며 이 작가가 지닌 특이한 서스펜스를 조성하여 마지막에 이르러 전혀 뜻밖의 해결을 보게 되는 기상천외한 작법을 쓰고 있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에 없어서는 안될 여러 가지 조건을 1백 퍼센트 갖추고, 조금도 빈틈 없는 구성과 신선한 문체로 그의 대표작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 베스트 10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걸작이다.

 

그 뒤 1940 그는 코넬 울리치라는 본명으로 표제에 《Black》이 드는 작품을 1년에 한 작품씩 계속 발표하여 <Black 울리치>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때까지의 가작 단편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단편을 한대 묶어서 단편집을 여러 권 출판했다.

 

아이리쉬의 걸작 순위는 《환상의 여인》《새벽의 데드라인》《흑의의 신부》의 차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남자가 살해된 애인의 복수를 하는 《상복의 랑데부》도 아주 뛰어난 걸작이다.

 

아이리쉬의 사생활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으며, 한 번 결혼한 듯하나 곧 깨어져 오로지 사랑하는 어머니와 뉴욕의 호텔에서 살았다고 한다. 1957년 그의 어머니가 8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이듬해 그는 오랜만에 전작장편 《성 앤세룸 923호실》을 발표했다. 이것은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라고 이름 붙은 이색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뉴욕의 호텔 방 하나를 무대로 개업한 해부터 폐업한 해에 이르는 일곱 가지 삽화를 연결한 단편집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오히려 호텔 방이 이 소설의 주인공격이며, 거기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마련했던 온갖 종류의 사람에 의해 인생의 영고성쇠가 그려져 있다.

 

그 뒤에는 염가본을 두 권 출판했을 뿐 이따금 잡지에 발표된 단편들도 지난날의 빛이 가시고, 1965년에 그 즈음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 《Dark side of Love》를 마지막으로 내놓고 그는 독자들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