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판타지
X2 (http://www.imdb.com/title/tt029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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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
SF, 액션, 모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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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
200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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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
미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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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
브라이언 싱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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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 |
마이클 듀허티, 다니엘 P. 해리스, 데이빗 헤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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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
존 오트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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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
패트릭 스튜어트, 휴 잭맨, 이안 맥켈런, 할리 베리, 안나 파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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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케 얀센, 제임스 마스던, 레베카 로메인-스테이모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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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콕스, 알란 커밍, 브루스 데이비슨, 켈리 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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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떼거지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영웅전기 <엑스맨>의 속편은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는 영화적 플롯에 액션을 조금 더 가미하여 블럭버스터의 대열에 가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탓에 흥행에서는 재미를 못봤는데 미국에서만큼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전편이 돌연변이의 선악대결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결을 그렸다. 하지만 대결이라고 해봐야 몇몇놈들이 서로 치고 박다가 끝난다. 제작비로 1억달러를 투입했다는 속편은 늘 그렇듯이 전작을 압도하는 스케일에 호화캐스팅이 돋보이는데 변함없는 울버린의 휴 잭맨, 착한 편의 보스 패트릭 스튜어트, 나쁜놈 댓빵 이안 맥켈런, 염력의 섹시한 그녀 팜케 얀센, 오스카 수상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할리 베리 등이다. 감독도 브라이언 싱어가 그대로 연출했고 새로운 인물로 <스콜피온 킹>의 켈리 후가 울버린과 맞짱 뜨는 손톱녀(?)로 가세한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만 8,556만 달러라는 흥행 수익을 올렸는데 원래 미국애들은 만화원작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두터운 매니아 층을 가졌다. 영화계에서 헐리우드의 맨 시리즈가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예를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인 <엑스맨>은 같은 소속사의 파트너들인 <블레이드><스파이더 맨><데어데블>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흥행카드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각 캐릭터마다 장기 하나씩은 모두 선보이면서 스크린을 불태우는 <엑스맨>은 기존의 포장만 화려한 블럭버스터의 껍데기를 벗고 소외된 계층의 반란을 복잡한 인간관계 등으로 재해석하며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다. 이제 마블 코믹스의 마지막 히든 카드인 <헐크>가 과연 이러한 여세를 몰아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우리가 흔히 초능력이라 부르는 것은 이미 <슈퍼맨>의 날으는 사나이와 <스파이더 맨>의 거미인간 등으로 충분히 맛보았듯이 매력적인 고차원 능력이다. 남보다 앞서고 싶은 자기 과시의 일종이며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가 현실에서 벗어난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발전되어 관객을 만족시키고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스크린 속의 영웅을 동경하지만 결국 그 영웅은 자신의 분신이다. 현실의 물리적 법칙에 의해 비록 하늘을 날으는 능력은 가지지 못했지만 슈퍼맨을 통해 우리는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이런 막연하지만 늘 상상속에서 펼쳐졌던 일들이 이제는 영화산업이 발전하면서 가상체험 무대가 되어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엑스맨>도 그러한 주류를 따라가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기존의 슈퍼히어로와 차별되는 점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복합적인 초능력의 단순 맛보기에서 벗어나 시대의 불운을 타고난 사람들의 억눌리고 비틀어진 인간심리가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엑스맨>이 탄생한 시기는 소수민족과 소수의 핍박받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좀더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자 거세게 들고 일어났던 때이다. 억압받았던 이들이 평등을 외치면서 거센 이슈를 몰고 왔던 혼란한 정세에 <엑스맨>은 태어났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 맨」 등의 영웅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갈채와 존경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화 <엑스맨> 속의 영웅들이 보통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적대심으로 상처받으며 때로는 평범한 이들보다 더욱 외롭고 나약하게 그려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원작이 가진 특징을 영화속에서 여러 가지 철학적인 연출로 그려놓고 있다. 밝은 면이 강조되고 늘 약자의 편에서 악을 응징하던 영웅이 <엑스맨>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범한 이들을 보호하는 임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투쟁에 정신이 팔려 있다. <엑스맨> 속의 돌연변이들은 텔레파시나 염력 따위로 인간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소외된 우리의 이웃처럼 그려진다. 비록 금속의 갈고리와 공간이동 등의 화려한 장치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갇혀있는 자유의지를 행사하기 위한 도구이지 「정의」를 지키는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슈퍼맨」이 완벽한 영웅상이라면 <엑스맨>의 초인들은 인간을 초월하되 저마다 기억상실 등의 약점을 한가지씩은 지니면서 결코 우월하지는 않은 존재로 묘사되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신은 아니듯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벽은 더더욱 아니다. 이를테면 슈퍼맨이 다재다능한 영웅이지만 크립톤 나이트로 좀더 인간적인 캐릭터가 되었듯이 말이다.
돌연변이와 평범한 인간의 공존을 묻고 있는 이 작품은 백인과 흑인, 힘을 가진 다수와 핍박받는 소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곳에는 선악과 같은 이분법은 사라지고 60년대의 사회이슈였던 흑백갈등, 정치의 혼란, 전쟁 등의 인간사회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엑스맨 2>는 사회현상의 철학적인 질문을 가졌지만 결국 여름철의 블럭버스터이다. 아이들 놀이로 치부된 슈퍼 히어로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워낙에 다분화된 곳이기에 <엑스맨>이 가진 골치아픈 일들의 소화력에 무리가 없지만 단일민족인 우리로서는 다양한 인종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익숙하지 못하다. 더구나 대중적인 영웅인 <슈퍼맨><배트맨><스파이더 맨>도 그다지 각광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조금은 매니아틱한 <엑스맨>의 히트를 기대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거기에 영화의 구성과 오락적 재미가 전작과 비교해서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는 점은 분명 큰 메리트를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편이 「엑스맨」의 세계관과 각 캐릭터의 능력을 선보이는 예습이었다면 속편은 분명 본래의 구도로 들어가 전면적인 전쟁 비주얼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오프닝의 백악관 침투 뿐이다. 현란한 서커스의 귀족(울버린의 말에 따르면 「천한 것들」)이 대통령 경호원들과 벌이는 격투가 끝나면 <엑스맨 2>는 다시 지루한 전편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역시 한번씩 초능력을 보여주는 역할로 끝나고 있으며 지지부진한 엔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스카상을 탔다는 이유로 포스터 전면에 새겨진 할리 베리는 마치 여주인공 마냥 포장되었으나 영화 전체를 통틀어 팔 몇 번 휘두르고 대사 몇 줄 외우고는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엑스맨 2>는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다. 시리즈를 의식한 탓에 매번 보여지는 엑스맨들의 화려함은 한번씩은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물론 원작이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손쉽게, 또는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인쇄만화에 비교한다면 영화는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산업에 비유되므로 <엑스맨> 시리즈의 한계는 더더욱 크게 다가온다.
나름대로 가벼운 B급 오락물의 한계를 벗은 수작이지만 너무 많은 「맨」들의 등장은 영화의 목적의식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스파이더 맨>이나 날으는 강철의 사나이 <슈퍼맨> 등이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한 명의 슈퍼스타가 다수의 악당을 쳐부수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주인공에 대한 포커스가 살아숨쉬기 때문인데 <엑스맨>은 그런 점에서 따지자면 관객이 시선을 집중할 대상이 너무 많으며 또한 산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