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
하늘에는, 곧 소나기라도 쏟아져 내릴 듯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먹구름은 저편 하늘 끝 쪽에서부터, 마치 미처 마르지 않은 회색의 도화지 위에서 검정색의 수채화 물감이 번져가듯 무서운 기세로 그 경계선을 무너뜨려가며 도시를 침략해 가고 있었다.
강남의 삼성동.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 몇 년 전 40층의 빌딩이 들어섰다. 육중할 뿐만이 아니라 하늘로 날아오를 듯 날렵하며 세련되고 아름답기까지 한 녹색의 빌딩이었다.
완공된 그 해에 한국건축대상을 받은 바 있는 그 빌딩은 독특한 디자인과 녹색의 색채로 사람들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 모스> 빌딩이었다. <모스>란 세계적 글로벌 기업의 명칭인 동시에 창업자인 R.M. 모스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일찍이 1940년대부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모스그룹은 지금에 와서는 석유, 철강, 전자, 군수, 제약, 금융, 자동차, 조선 등 거의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의 광대한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또한 각국의 모스지사들은 이익금의 대부분을 그 나라의 사회기간 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그 나라 국민들에게 유익하고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져 있었고, 당연히 모스그룹은 세계각국으로부터 환영받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모스그룹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들은 이제라도 모스그룹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그 본부를 두고 있는 모스그룹은 철저한 글로벌식 기업경영 방법의 일환으로, 각국에 파견된 지사장은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 나라 출신의 인물들을 임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말이 지사장이지 회사의 규모로 보아서는 웬만한 그룹의 총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회장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대니얼 킴. 한국 모스의 회장인 그는 빌딩의 맨 위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궂은 날씨의 서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흔여섯 살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주름살 하나없이 팽팽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신비의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처음 한국에 부임했을 당시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였던 그가 각 매스컴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출생지는 어디인지, 한국명은 무엇인지, 출신학교는 어디인지, 어떻게 그런 거대기업의 엘리트코스를 밟게 되었는지 등등 세인들의 궁금함은 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자신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고,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마저 허락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조차 하지 않는 그의 행동에는 결벽증 환자의 그것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한때 그의 그런 신비감에 도전하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었다. 기자들은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그와 인터뷰를 시도해 보거나 최소한 사진만이라도 찍어보려 했으나 그의 신비감은 난공불락이었다. 그들이 얻은 것은 겨우 몇 장의 먼발치에서 찍은 희미한 모습의 사진들뿐이었다.
세인들은 그러한 그의 행동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시간의 흐름은 자연스레 대니얼 킴을 망각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다만, 하워드 휴즈라는 억만장자도 그런 기행을 일삼았으니 대니얼 킴이 휴즈를 모방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한국 모스 빌딩>의 맨 위층인 40층이 전부 그의 전용이었다. 회장 전용의 호화스러운 수영장, 사우나실, 헬스장, 침실 등이 두루 갖추어진 40층은 비서실장 등 정해진 몇 사람 외에는 누구도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것마저도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무장한 경비원들의 건물의 옥상과 회장전용의 40층을 3교대로 24시간 지키고 있었다.
회장 대니얼 킴의 사무실은 무척이나 넓었다. 컴퓨터 한 대와 몇 대의 전화기들만이 놓여져 있는 회장의 보랏빛 책상은 팔레트 모양으로 사무용 집기라기보다는 예술품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으며, 사무실의 곳곳마다에는 세계 각국의 진귀한 물건들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몸통만 있는 그리스 시대의 토르소 조각상, 로마의 것으로 보이는 투구, 검은 칠로 윤이 반짝반짝 나는 아프리카의 목각인형, 잉카의 둥근 황금칼, 수메르인들의 점토판 문서, 중국 청조 시대의 울긋불긋 화려한 자기(瓷器)들…
그런 반면, 한 쪽 벽면은 런던, 뉴욕, 모스크바 따위의 세계주요도시의 시간을 알려주는 원형의 시계들이 죽 붙어 있고, 그 밑으로 커다란 세계지도가 벽면 가득히 부조되어 세계의 주요도시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 반대쪽 벽면은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스크린이었고, 언제든지 미국의 본사나 그 밖의 주요도시와 연결되어 화상통신을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회장은 창밖으로 도로의 선을 따라 움직이는 차량의 물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왼편 가운뎃손가락에 끼어진 굵은 황금빛 반지가 햇빛에 번쩍하고 빛났다. 반지에는 두 개의 커다란 뿔을 가진 숫염소와 머리가 정교한 솜씨로 조각되어 있었으며, 염소의 두 눈은 붉은 보석이 박혀 있어 움직일 때마다 두 줄기의 붉은 빛무리를 그려내고 있었다.
혈관을 따라 도는 혈액처럼 유연하게 흐르던 차량의 흐름이 어느 한곳에서, 접촉사고라도 일어났는지 막혀 있었다.
회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막힌다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었다. 세상은 항상 흘러가야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그렇게 막히는 것이 있다면 그는 언제나 그것을 뚫어버렸다. 그렇게 하는 일이 옳은 것이었다. 지나간 세월 동안 자신은 수없이 많은 막힌 것들을 뚫어왔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고, 그것은 모두 미국에서 얻어진 것들이었다.
회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막힌, 고통으로 얼룩진 아픔의 세월들이었다. 그때의 자신은 그것을 뚫어버릴 힘이 없었다. 세상의 흐름을 조절할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그의 귓가에 먼 옛날의 고통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초의 소리는 비행기에서 갈겨대는 무자비한 기총소사의 굉음이었다.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손에 팔뚝을 잡혀 뛰었다. 엄마의 땀으로 번들거리는 손은, 다섯 살바기 까까머리 아이의 팔뚝을 살이 움푹 패이도록 꽉 잡고 있었다.
아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들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다. 다만 엄마의 손에 잡힌 팔뚝이 아팠을 뿐이었다.
보따리를 팽개친 채 허둥지둥 도망가던 어른들이 하나씩 둘씩 픽픽 쓰러져갔다.
아이의 눈에는 어른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이, 언젠가 밤에 엄마와 함께 시장에서 본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가을걷이를 마친 빈 논의 허수아비가 단 한 번의 겨울바람에 힘없이 넘어지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비행기가 멀리 사라지자 엄마는 한숨을 쉬고 나서 다시 아이와 걸었다.
부―우웅―
가버린 줄 알았던 비행기는 어느새 다시 선회하여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비행기의 양날개에서는 또다시 그 무서운 총알이 발사되고 있었다. 몸에 직접 맞지 않고 살짝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공기의 파동으로 인하여 멍이 들게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위력을 가진 12mm의 기총탄이 비오듯 지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이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이의 신발이 벗겨져나갔다. 아이는 뒤를 돌아다보려 했지만 엄마의 뜀박질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의 팔뚝을 잡고 뛰다가 그만 놓쳐버렸다. 땀으로 인해 너무 미끄러웠던 까닭이었다.
아이는 기회를 잡은 듯 몸을 돌려 벗겨진 신발을 향해 뛰어갔다. 당황한 엄마는 아이를 향해 뒤돌아 섰다.
그 순간!
“아악!”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오르더니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했다.
아이는 신발을 주워들고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아이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으나 엎어져 누워 있는 엄마는 잠이 깊게 들어 있는지 도통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그냥 어쩔 줄 몰라 울었다.
“엄마! 일어나. 아앙앙…”
쉬파리 떼가 새까맣게 엄마에게 달려들어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지나가던 웬 할아버지가 엄마를 바로 눕히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쯧쯧쯔…”
아이는 엄마를 바라다보았다. 고통스럽게 찡그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왼쪽 가슴에…
엄마의 왼쪽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한동안 서 있던 할아버지는 훌쩍거리며 우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릭… 띠리리릭… 띠리리리릭…
회장은 창밖을 쳐다보던 시선을 돌려 팔레트 모양의 보랏빛 책상을 바라다보았다. 빨간색 전화기의 노란 라이트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띠리리리릭… 띠리리릭…
그 전화는 비밀회선이었다. 그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회장은 천천히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누구야?”
“루앞입니다.”
삑… 삑… 삑…
회장은 책상 밑의 작은 계기판에서 울리는 퓨어 톤의 작은 경보음을 들음과 동시에 적색 라이트가 켜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계기는 도청감지 장치였다.
회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멈춰!”
회장이 손으로 계기판의 파란 스위치를 올려 온(ON)의 상태로 바꿨다.
적색의 불이 꺼지고 녹색의 불이 들어왔다. 경보음도 멈추었다. 그것은 이제 도청이 불가능한 상태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회장은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인 루앞 또한 그렇게 할 것이었다.
“도청당하고 있었다. 그걸 몰랐나?”
회장의 쇳소리 섞인 갈라진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분노가 스며 있었다.
“네?”
회장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너의 전화가 지금 도청당하고 있었단 말이다. 도대체 어떤 놈이 도청을 하고 있었는지 당장 알아내!”
상대방은 공포에 질렸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도청을 한 목적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조사해!”
“넷!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갑자기 회장의 목소리가 아주 낮아졌다.
“지난번의 실수도 아직 잊지 않았는데 계속 이렇게 실수를 하다니… 루앞, 자네는 설마 페소의 일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장의 말소리가 낮아진 것을 느낀 루앞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해야 할 정도로 화가 나있다는 것임을 루앞은 잘 알고 있었다.
“절대 아닙니다, 회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 실수는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무리짓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회장님…”
수화기 너머의 루앞의 목소리는 매우 떨리고 있었다.
“……”
회장의 대답이 없자 루앞은 매우 불안해졌다.
“회장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더욱 충성을 다하여 우리의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이 말했다. 좀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좋아, 루앞. 이번 일은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이번뿐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도록! 두 번 다시 용서란 없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더욱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하는 충성이 아니니까 그런 말을 내게 할 필요는 없다. 루앞 너에게 능력을 주신 이를 항상 기억해라.”
“네, 회장님… 잘 알고 있습니다.”
“내게 전화를 한 용건이 뭐였지?”
그제야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네, 명령하신 대로 박 의원과의 일정을 잡았습니다.”
회장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알았다.”
“다른 명령은 없으십니까?”
“없다. 나머지는 루앞이 다 알아서 처리하도록…”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회장님.”
딸칵!
회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린 그의 왼쪽 귀는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기어이 굵은 철사줄 같은 빗줄기가 대지를 꿰뚫고 있었다.
이기수는 전화를 내려놓고 양미간을 우그려뜨렸다.
도청이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수기획>이 다른 여느 회사들처럼 첨단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연예 매니지먼트에 대해서 만큼은 특별한 기획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도청을 당해야 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이기수는 거친 손길로 수화기를 분해했다. 예상대로 10원짜리 동전만한 검은 금속이 수화기 안쪽에 고이 붙어 있었다.
이기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것을 지금 그대로 뜯어버린다면 상대방은 그 순간에 바로 들통이 났다는 것을 깨닫고 줄행랑을 칠 것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회장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었다.
위저 보드를 사용하면 일이 쉬워질 수 있겠지만 지금 채지연은 자리에 없었다. 채지연은 거의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위저 보드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신접(神接)능력은 자신보다 위였다. 다만 체력이 많이 달리는 것이 흠이었다.
그는 수화기의 뚜껑을 조용히 덮고 나서 인터폰으로 미스 최에게 커피를 시켰다.
잠시 후 뚱뚱한 미스 최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쟁반에 커피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이기수가 지나가는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미스 최, 최근에 누가 이 전화 만지기라도 했나? 갑자기 감도가 떨어져서 말이야…”
미스 최가 머뭇거리다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네, 저 한 일주일쯤 전에 어떤 사람이 와서 온 사무실의 전화기들을 손보고 갔는데요… 전화기 수리회사에서 나온 사람이라면서요…”
“그래? 어떻게 생겼는데?”
“네, 말을 좀 더듬거리는 사람인데요… 뭐랄까… 좀 모자라보이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착해보이던 걸요. 그 사람이 혹시 전화기의 뭘 잘못 건드리기라도 했나 본데요. 하긴 좀 모자라보였으니까…”
이기수는 문영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아니었다. 문 기자가 아무리 능구렁이 같은 놈이라고는 하지만 천연덕스럽게 이곳에 와서 도청기를 설치할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다. 도청기를 설치한 놈은 이 분야의 프로일 것이었다.
이기수의 찡그린 얼굴을 보자 미스 최가 발뺌을 했다.
“그거… 저… 제가 시킨 것은 아니구요… 김 부장님이 허락하셨어요. 아마도 그 사람이 불쌍해 보이셨던 모양이에요.”
이기수가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 미스 최… 내가 그걸 뭐라는 게 아냐… 다만…”
도청기를 설치한 그놈은 분명히 한 번 더 이곳에 올 것이었다. 아마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것을 회수하겠지? 설치할 때보다 더욱 간단하게…
미스 최는 사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다시 온다고 했나?”
“아마 다시 올 거예요. 이번에는 돈도 받지 않고 그냥 공짜로 해준 것이거든요. 돈은 다음달부터 받기로 하고요…”
물론 그랬겠지…
이기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만 나가봐.”
미스 최가 방을 나가자 이기수는 전화를 집어들고 몇 군데 쓸데없는 전화를 했다.
지금쯤 놈이 이걸 듣고 있겠지?
통화를 끝내고 자신이 지난 일주일 동안 이 전화로 통화한 내용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별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는 도청기를 설치한 당사자가 과연 누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지금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문영환이 채지연과 박 의원 사이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도청기를 설치한 놈이 프로라고 하더라도 그는 단순한 하수인일 것이었다. 단지 돈을 위해 기술을 파는 장사꾼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결론은 문영환뿐이었다. 문영환은 채지연과 박 의원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이런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쩐지 문 기자 그놈이 연예계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잘도 캐낸다 했더니 그런 기술을 사용할 줄이야… 자신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한다면 이미 채지연도 안전할 리 없었다. 전화는 물론이고 그녀의 소지품까지도 철저하게 검사를 지시해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문 기자는 역시 대단한 놈임에는 틀림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과 같은 계열의 회원만 된다면 이 땅의 연예계를 쥐어터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만 같았다. 연예계와 언론이 힘을 합치게 된다면 그의 임무이자 목표인 것이 쉽게 달성되어 갈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문영환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에게 돌아올 것은 죽음뿐일 것이다.
이기수는 싸늘한 미소를 흘렸다.
어차피 문영환의 목숨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이제 문제는 문영환이 가지고 있을 그 마음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