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여보! 맥주 한 병 더 부탁해!”

 

문영환은 거실 소파에 앉아 부엌 쪽을 향하여 소리치고는 다시 TV를 쳐다보았다. 그는 마시고 있던 맥주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완전한 벌거숭이 차림이었다. 지금처럼 집에 있을 때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서는 이렇게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것이 좋았고, 그것이 이젠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보기 흉측하다고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벌거벗고 있을 때, 그는 완벽한 자유를 느꼈다. 옷이란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옷차림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었다.

 

군복을 입는 그 순간 남자는 군인이라는 틀 안으로 스스로를 구속하여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지어 버리며, 치마를 입는 순간부터 여자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게 마련이었다.

 

즉, 옷은 좋건 싫건 관계없이 어떤 모양으로든 행동에 제약을 가해오기 마련이었고, 그것은 또한 사고의 제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벌거벗음은 그에게 있어 신체의 자유와 함께 사고의 자유를 가져다주었고, 뿐만 아니라 그는 나체가 누릴 수 있는 또하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기쁨이란 또 다른 호흡기관인 피부를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시켜서 공기가 살갗에 와닿는 그 신선한 감촉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 김주옥이 맥주를 들고 와서 빈 잔에 따랐다. 그는 맥주잔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네글리제 차림의 아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녀는 조금 앙탈을 부리더니 이내 그의 요구에 순순히 따랐다. 아직 신혼이라고 불릴 만한 결혼생활이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하였다.

 

 

TV에서는 HBS의 <연예가 소식>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일어났던 연예계 일들을 르포형식으로 내보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자인 남자 아나운서의 얼굴이 허연 분칠로 더께가 져 있었다.

 

<연예가 소식>은 연예부 기자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별로 새로운 사실은 없었지만 가끔씩은 취재소스에 대한 사전 정보나 힌트를 얻을 때가 있었다.

 

TV 속 아나운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불행한 소식을 한 가지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지난 주에 탤런트 오유미 씨가 88도로상에서 끔찍한 윤화(輪禍)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심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오유미 씨가 퇴원한다 하더라도 다시 예전 같은 연기생활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저 오유미… 정말 안됐어요… 한창때인데…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되었다죠?”

 

“으응… 그래.”

 

그가 건성으로 대답하고 TV를 계속 쳐다보면서 손의 방향을 바꾸어 젖가슴에서 아래쪽으로 움직여갔다. 그 때문에 아내의 몸이 조금 뒤틀렸다.

 

“오유미 씨가 하루라도 빨리 쾌유하여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해 봅니다. 그럼 여기서, 당분간은 볼 수 없는 오유미 씨의 모습을,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들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은 오유미의 전성기 때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목도리를 두른 코트 차림의 오유미가 상대 남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겨울에 찍은 필름인 모양이었다. 입에서 하얀 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래요. 우리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우리 서로가 처음부터 그것을 잘 알고 있었잖아요?”

 

남자가 어정쩡하게 말했다.

 

“아니, 우리 사이를 이렇게 허무하게 그냥 끝낼 순 없어.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기회를…”

 

“아니에요. 당신은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이지 나는…”

 

남자가 비굴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비볐다.

 

“아니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오유미가 고개를 홱 돌려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약속하시는 거죠?”

 

약속하시는 거죠?…

 

문영환은 그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걸려온 전화 속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한 가지 약속을 해주셔야겠어요… 신문지상에 발표하신다는 약속을요… 약속하시는 거죠?…

 

그렇다!

 

오유미의 목소리는, 지금 자신이 쫓고 있는 채지연의 스캔들을 제보하여 준 바로 그 목소리였다.

 

문영환은 머리에 뭔가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오유미였다. 문제의 제보자는…

 

그리고 그녀는 지금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다만 운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TV는 계속 그녀가 출연했던 다른 장면들을 연이어서 보여주고 있었지만 문영환의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TV상자 속 온전한 모습의 오유미는 쉴새없이 옷을 갈아입고, 공허하게 대사를 지껄이고 있었다.

 

문영환은 아내의 팬티 속에 들어가 있던 손을 빼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허전하고 아쉬운 표정이 아내의 얼굴에 얼핏 스쳐 지나갔다. 아내가 의외라는 듯 문영환을 돌아보았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무거운 분위기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아내는 얼른 그의 무릎에서 빠져나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별일 아니야… 나 좀 혼자 있게 해주겠어?”

 

아내가 조금 뾰로통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버렸다.

 

그는 아내의 표정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TV를 계속 지켜보았다. 오유미의 얼굴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예쁜 얼굴이었다.

 

문영환은 목이 타는 것 같은 갈증을 느끼고 따라놓은 맥주를 목에 털어넣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었다. 오유미를 만나보아야 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었다.

 

<2014>

 

눈앞에 고풍스러운 금빛깔의 숫자가 은은한 미소로 자신을 향해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그가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 괜한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까? 처음 보는 나에게 그렇게 진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냥 해본 소리를 가지고 자신이 들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그가 나를 너무 값싼 여자로 보지나 않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어지럽게 이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다른 사람의 방이라면?

 

그녀는, 이럴 줄 알았으면 프론트에서 확인을 하고 올라오는 건데… 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몸이 뜨거워져 있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리고 머리칼을 매만졌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녀의 귀에는 너무도 큰소리였다.

 

“누구요?”

 

사내의 굵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문이 왈칵 열리며 그가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는 검은색의 잠옷을 걸치고 있었다. 불빛을 등지고 서 있기 때문인지 그의 몸집이 훨신 크게 느껴졌다.

 

그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은 에어컨의 냉기로 더위를 느낄 수 없었고 커다란 더블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는 술병과 안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는 이미 한잔 걸친 모양인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그가 반말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술 한잔하지?”

 

기다렸다는 그의 말에 그녀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가 술을 따라 그녀에게 주었다. 브랜디 X.O의 은은한 향기가 기분 좋게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가 물었다.

 

“이름이 뭐지?”

 

“이름요? 이, 이순복이에요.”

 

“결혼은?”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5년 전에 이혼했어요, 성격차이로…”

 

성격차이가 아니라 네가 너무 밝혔으니까 그랬겠지…

 

천래성이 웃음을 얼굴 가득히 띠며 말했다.

 

“아이들은?”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이는 없어요. 당신은요?”

 

“난 언제나 혼자였어. 지금도 그렇고… 샤워나 하지? 난 이미 했거든…”

 

그녀가 그 말을 듣고 목욕탕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잠깐만!”

 

그녀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다시 명령하듯 말했다.

 

“여기서 옷을 벗어, 모두. 너의 몸을 보고 싶으니까 말이야.”

 

여자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매가 자랑스러웠다. 어느 남자라도 자신의 훌륭한 몸을 보면 감탄하기 마련이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이런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남자들에 대한 그녀의 열망이 빚어낸 끊임없는 노력 덕택이었다.

 

여자가 노란 블라우스를 시작으로 하나씩 벗어갔다. 마지막 하나를 남겨두고 그녀가 주저하자 그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것도!”

 

여자의 완전한 나신이 불빛에 드러났다.

 

그녀의 몸은 예상보다도 훨씬 괜찮았다. 가는 허리에 가슴과 엉덩이가 잘 발달하여 있어 그녀가 평소에 얼마나 몸가꾸기에 신경을 써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유두가 너무 새까만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사내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으음… 훌륭하군!”

 

그의 말에 여자는 스스로를 칭찬하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남자들은 나의 몸매에 반하곤 했지… 하긴 어떤 때는 나 자신도 반할 지경이니까…

 

그녀는 벌써 흥분해 가고 있었다. 샤워꼭지에서는 알맞게 따뜻한 물이 세차게 뿜어나왔다. 마치 마네킹에서 뿜어나온 새빨간 핏물처럼…

 

그녀는 온몸에 칠한 비누를 천천히 그리고 정성을 들여가며 닦아내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애무하는 것처럼…

 

그녀의 머리 속은 잠시 후에 있을 쾌락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것을 상상하자 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르르 떨려왔다. 이토록 흥분해 있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때, 문이 화들짝 열리며 그가 성큼 목욕탕으로 들어왔다. 그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었다. 가슴에 그려놓은 살아 있는 듯한 뱀의 문신이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흑!”

 

놀람과 기대감이 섞인 신음이 그녀의 입에서 토해졌다. 애초부터 어쩌면 그것은 여자가 바라고 있던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일부러 문을 잠궈놓고 있지 않았었던 것이었다.

 

“내가 닦아주지…”

 

사내의 억센 손이 그녀의 손에서 샤워꼭지를 낚아챘다. 물줄기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샤워꼭지가 그녀의 커다란 가슴으로 향해지고, 따뜻한 물이 기분 좋게 떨어졌다. 그의 손이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여자가 훅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거대한 남성을 보았다. 그녀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것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흥분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샤워꼭지를 바닥에 동댕이치고 그녀를 안아 올렸다. 생각보다는 무거운 편이었다.

 

샤워꼭지가 살아 있는 뱀처럼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그 입에서 사방으로 물줄기를 토해냈다.

 

그는 샤워꼭지를 무시하고 그녀를 안은 채 목욕탕을 나섰다.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로 그의 목에 팔을 걸고 그가 행해 줄 어떤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자를 침대로 집어던졌다. 그 충격에 침대가 크게 한 번 출렁였다. 침대 위에서, 그녀는 물에서 갓 건져올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비늘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었다.

 

그가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뱀이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아대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그의 몸은 훨씬 단단했다. 터질 듯한 흥분에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날 좀 제발 어떻게 해줘요…”

 

그의 거대한 남성이 그녀의 몸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 아…”

 

그녀는 자신의 예상보다 그가 훨씬 더 강한, 너무도 강한 남성임을 깨닫고 희열의 신음을 마구 토해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1시간쯤 지난 후,

 

여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는 쓰레기더미처럼 쌓여 있던 욕망을 배설하고 난 뒤의 행복한 포만감이 가득했다.

 

그는 일어나 앉아서 독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역한 냄새와 함께 파르스름한 연기가 방안에 흩어졌다. 담뱃불을 끈 그는 옆에 엎드려 있는 여자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그녀가 움찔했다. 잠시 움츠렸던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선천적인 음탕함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의 손길은 적절한 압력으로 계속 그녀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가 혀를 이용하여 그녀의 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등의 모든 세포가 흥분으로 곤두섰다. 그의 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불꽃이 너울거렸다.

 

그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여기 온다고 누구한테 말했나?”

 

그녀가 엎드린 채 베개에 머리를 묻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걸 누구한테 말할 수 있겠어요? 공연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차 한 잔 마신 뒤 집에 들어간다고 하고는 곧장 이리로 온 걸요.”

 

그의 눈이 차갑게 웃었다. 그의 양손이 여자의 허리 속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몸을 비틀었다. 어떤 기대로 새로운 흥분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가 양손으로 그녀의 배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아까 공연 어땠어?”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지만 좋았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 아니겠어요? 특히 그 여자 마네킹! 너무 멋진 기획이었어요.”

 

그의 손이 배에서 가슴으로 올라왔다. 젖무덤의 살덩이가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것을 느끼며 그가 다시 말했다.

 

“마네킹? 그게 그렇게 좋았나?”

 

“그럼요. 당신이 그 마네킹을 애무할 때 질투를 느꼈을 정도였어요. 물론 나중에는 진짜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의 체중이 자기 등 위에 실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숨결이 귀에 다가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지 않아?”

 

“저 같은 게 그런 걸 알아 뭐하게요… 하지만 가르쳐 주신다면 기꺼이 듣기로 하겠어요.”

 

“거기에는… 의미가 있지… 깊은 의미가…”

 

그의 몸이 등 위에서 출렁거렸다. 그녀의 숨이 서서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돌연 그가 모든 동작을 중지하고 웃으며 물었다.

 

“이봐! 그 마네킹이 되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가 동작을 멈춘 것이 싫었다. 그가 어서 이야기를 끝내고 하던 일을 마저 해주었으면 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 천래성의 공연 장면이 얼핏 스쳐갔다. 그것은 마네킹을 핥아대던 그가 마네킹을 눕혀 놓고 엉덩이로 사납게 공격하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마네킹이 되고 싶어요.”

 

“정말?”

 

“네! 어서 저를 그 마네킹으로 생각해 주세요.”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우리 분위기를 바꾸어보자구… 좀더 그럴듯한 데로 가서 화끈하게 다시 한판 벌이자구… 그러는 편이 색다르고 멋도 있을 거야.”

 

“여기서가 아니구요?”

 

그녀는 남은 욕망의 찌꺼기를 빨리 배설하고 싶었다.

 

“우리 장소를 바꾸어보자구… 이런 고리타분한 호텔말구, 다른 곳 말이야… 내가 멋진 곳을 알고 있어…”

 

여자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도 어쩌면 괜찮은 생각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버렸다.

 

천래성 같은 예술가에게는 그런 파격이 천성일지도 몰랐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길은 그 같은 파격쯤은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한 번 끓어오른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건 이 욕망의 앙금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었다.

 

옷을 주워 입으며 그가 말했다.

 

“참,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녀는 아까 자신이 말한 이름을 잊어버렸다.

 

“이 이복순…”

 

 

수미는 잠이 오지 않아서 계속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다. 스탠드의 밝은 전등에 눈이 조금 부셨다.

 

그 나무책상은 그녀가 중학생 때부터 사용해 오던 것으로 지금은 아주 낡고 구식이 되어버렸지만, 오래도록 사용해 오는 동안 구석구석마다 자신의 정과 손때가 묻어 있어서 이젠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수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책상 한 귀퉁이에는 중학교때 은근히 짝사랑하던 친구 오빠의 이니셜이 지워질 듯 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얼마 전에 백화점에서 본 그 오빠가 떠올랐다. 그 오빠는 아내인 듯 보이는 살찐 여자의 뒤를, 불쌍하게도 한 손으로는 3살쯤 돼보이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허둥지둥 쫓아가고 있었다.

 

수미는 안경을 걸치고 펼쳐진 노트를 쳐다보았다. 아까 공연을 보면서 틈틈이 자신이 끼적여놓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기사작성을 위해 공연에서 등장한 모든 것을 나중에 잊지 않으려고 적어놓은 것이었다.

 

원초로부터의 투쟁

천래성… 무대… 남자… 검은 옷… 북소리… 번개와 천둥… 흰빛… 붉고 푸른 조명… 뱀 문신… 칼… 여자 마네킹… 섹스 행위… 마네킹 살인… 피!… 조명등의 깨짐… 암흑…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녀는 그것들과 한참을 씨름했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다른 해프닝식의 전위공연은 순간순간 즉흥적 요소로서 채워지는 바가 많았지만, 이번 천래성의 공연에서는 즉흥적 요소가 아닌 치밀하게 구성된 그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그녀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카세트 테잎을 골랐다. 음악을 들으면 혹시 생각이 떠오를까 해서였다.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기타의 우수에 잠긴 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이 좋아하는 기타 협주곡 <아랑훼즈> 2악장 아다지오였다. 작곡자인 호아킨 로드리고는 3살 때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다던가?

 

기타 협연자는, 녹음 당시의 나이가 17살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기량을 지닌 앙헬 로메로였다. 그러나 지훈은 앙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세속적인 테크닉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불현듯 지훈과의 키스가 생각났다. 그에게 그런 불 같은 정열이 숨어 있는 줄 몰랐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생의 의미가 담긴 그런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그녀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어쨌거나 내일 오전까지는 기사를 작성해야만 했다. 문화부 기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노트를 쳐다보았다. 머리가 마구 혼란스러웠다.

 

수미는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좀더 멋진 기사를 쓰려면 이 괴상한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했다. 공연의 제목인 <원초로부터의 투쟁>이 힌트일 것이었다.

 

원초로부터의 투쟁…

 

천래성이 인류의 최초의 모습을 상징한다고는 보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가 그 강렬한 흰빛에 도전, 또는 흰빛과 투쟁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처음에는 계속 흰빛에 당하고만 있었던 그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인간의 자연에 대한 투쟁으로 쉽게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 나타난 마네킹의 존재는 그녀의 그런 소박한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는 마네킹을 애무했고 이어서 처참하게 죽여버렸다. 그러고는 그때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흰빛을 부수어버렸다.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은 드라마였다. 노트에 써 있는 글자들이 갑자기 암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천래성이 어떤 인물을 상징한다 치자. 그렇다고 한다면 그가 누구를 나타내고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만 밝혀낼 수 있다면 나머지 문제는 쉽게 풀려나가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에 대한 열쇠는 흰빛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었다.

 

천래성과 남자는 동일인물이므로 그는 ‘천래성’ 을 빨간색의 사인펜으로 두 줄을 그어 삭제시키고 ‘남자’ 글자 옆에는 ‘?’ 를 써놓았다.

다음 낱말은 ‘무대’ 였다.

 

‘무대’ 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일단 ‘어떤 한시성의 무대’ 라기보다는 ‘이 인간들의 세상’ 또는 ‘역사적인 어떤 연속성을 지닌 세상’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무대’ 의 낱말 옆에 ‘=’ 을 써넣고 ‘세상’ 이라고 적어보았다.

 

‘검은 옷’ 이란 남자의 성격 또는 성질을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검다’ 의 의미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요즈음에는 검은색이 귀족적인 취향을 나타낸다고 해서 각종 가구나 전자제품에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검은 손이니, 검은 마음이니 하면 그것은 욕심, 음험, 흉계, 음모, 어두움 따위를 연상하게 마련이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는 시조를 보아도 그것은 옛부터 내려온 검은색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희다’ 의 의미가 전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백치, 백안시, 백수건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예가 종종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그것은 ‘검다’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었다.

 

수미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어떤 단서를 잡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까마귀와 백로?’

 

어쨌든 그 둘은 대립적인 성질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물학적인 의미로서 까마귀한테는 무슨 죄가 있겠나마는 일반적으로 까마귀는 악(惡)을 백로는 선(善)을 상징하고 있었다.

 

‘흑과 백’, 이 둘의 사이는 어떤 물리적인 힘으로도 결코 융화될 수 없는 ‘선천적인 대립관계’ 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래성이 나타내는 검은 옷의 남자와 흰빛은 애초부터 대립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흰빛이 자연을 상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애초부터 대립관계일 리는 없었다. 나약했던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모든 것을 얻어왔고, 자연에 관한 한 종속관계 내지는 최소한 공생관계였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검은 옷’ 낱말 옆에 일단 ‘흰빛과 대립관계’ 라고만 써넣었다.

 

이번에는 ‘북소리’ 였다.

 

그녀는 북소리가 가진 상징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소리는 단지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빨간 두 줄을 그어 삭제시키려다가 멈칫했다.

 

카세트에서 포르테시모의 폭발적인 뚜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랑훼즈 2악장 아다지오의 장엄하기까지 한 클라이막스였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음악에 몸을 내어맡겼다.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감동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오케스트라의 찬란한 음향은 시간을 단위단위로 가늘게 쪼개고 그 위에 각종의 악기소리를 공간에 화려하게 펼쳐놓고 있었다.

 

음의 하나하나 영롱한 입자들이 시간 속으로 흩어져 그 아름다운 빛을 뿌려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시간예술이었다. 북소리!

 

그것은 극적인 연출효과를 냄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북소리’ 를 삭제시키는 대신 ‘시간의 흐름을 상징’ 이라고 써넣었다.

 

‘번개와 천둥’ 은 의심할 바 없이 흰빛이 나타내는 분노의 표시였다. 그걸 보아서 흰빛은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분노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은 흰빛이 인간처럼 희노애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다. 분노를 표시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녀는 ‘번개와 천둥’ 옆에 ‘분노를 나타냄’ 이라고 적고 나니 이제 무언가 윤곽이 서서히 잡혀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흰빛’ 은 아직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다만 ‘선, 남자의 대립적 존재, 막강한 힘을 소유’ 라고 써놓았다.

 

어지럽게 돌아가던 그 ‘붉고 푸른 조명’ 은?

 

그것도 단지 연출을 위한 하나의 소도구일 뿐이었을까? 당시의 느낌은 어쩐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붉은 것과 푸른 것 역시 대립적인 관계였고 그것들은 마치 싸우듯 서로 뒤엉켜서 돌아다니며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대를 현란하게 해주었었다.

 

그때 천래성은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켰었다. 그것을 보던 자신은 그가 자연에 굴복하지 않는 굳센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는 줄만 알고 마음속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느린 그 북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는 춤을 추면서 검은 삼베옷을 벗어버렸었다.

 

북소리가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대’ 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동양철학에서 붉은 것과 푸른 것과 음과 양을 의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태극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이 정돈되지 않고 서로 싸워가며 무대를 마구 휘저었다면…

 

그것은 혼란 또는 혼돈일 것이었다. 무대는 세상을 의미하고 있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대… 혼돈의 시대… 그렇다면 그건 또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왜 또 검은 옷을 벗어버렸을까? 검은 옷은 그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옷을 벗은 것은 그가 이제껏 지닌 상징을 버렸다는 것하고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또 그 뱀 문신은? 그의 취향이었을까? 아니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비를 맞은 까닭인지도 몰랐다.

 

‘뱀 문신’ 다음부터는 아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여지껏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던 이야기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너무 무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리하게도 자신은 픽션 드라마를 만들고 있었다. 별일도 아닌 것에 자신이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껏 공연 당사자인 천래성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관객에게 흥미와 충격을 주기 위해 해프닝을 벌인 것뿐이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너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수미는 한숨을 휴우하고 내쉬었다. 내일 오전까지 제출해야 할 천래성의 공연기사는 어쩔 수 없이 일반론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것 같았다.

 

 

여자는 공포감이 들었다.

 

여기까지 따라오긴 했어도 이런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흡혈귀 드라큘라의 관이 있는 지하실도 이런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뭔지 몰라도 이상한 냄새까지 풍기는 것 같았다. 여름철의 습한 지하실이라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축축한 공기에 피부가 끈적였다.

 

남자가 촛불을 밝혀 들었다. 주위가 희끄무레하게 밝아왔다.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드라큘라의 관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런 으스스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금 공포감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여자가 물었다.

 

“저… 여기는 어디죠?”

 

그녀의 목소리는 공명에 의해 잔향이 길게 이어졌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기쁨의 열락(悅樂)으로 통하는 입구지.”

 

여자는 남자가 말하는 ‘기쁨의 열락’ 이라는 말에 다시 오금이 저려왔다. 그 말에는 어떤 행위의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서 빨리 그가 자신을 안아주었으면 했다. 그녀의 내부에서 욕망의 불꽃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실의 내부는 이렇다 할 장식이 별로 없는 그냥 텅 빈 공간이었다. 벽에는 불 꺼진 벽난로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어 그녀에게, 그것이 흡사 지옥으로 통하는 입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것을 보자 그녀에게 다시 공포감이 일렁였다.

 

그녀가 다시 남자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꼭 여기서 해야만 하나요? 난 여길 나가고 싶은데…”

 

남자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기쁨의 열락으로 들어갈 텐데, 뭘 그래? 이런데서 관계를 가져보는 것도 호텔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을 거야. 기분도 새로울 거고…”

 

여자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침대가 없잖아요?”

 

“왜 없겠어? 여기 이렇게 있잖아.”

 

남자가 촛불을 밝혀 든 곳에는 커다란 나무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상하게도 탁자의 귀퉁이마다에 쇠사슬이 달려 있었다.

 

여자가 거부표시를 했다.

 

“아이, 여기서 어떻게…”

 

남자가 탁자에다 촛물을 녹여 촛불을 붙여놓으며 말했다. 그 바람에 그의 그림자가 길게 벽에 늘어졌다.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어. 내 분명히 약속하지… 자… 그럼 옷을 벗고 올라가지…”

 

여자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가 먼저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남자의 훌륭한 몸매를 보자 여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이것이 어쩌면 더 재미있을지 몰라…

 

여자가 옷을 벗고 탁자 위로 올라가서 누웠다. 탁자에 무언가 시꺼먼 자국들이 묻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몹쓸 욕망은 그런 것들을 무시해 버렸다.

 

여자가 탁자에 반듯이 눕자 남자는 탁자의 귀퉁이에 있던 쇠사슬을 그녀의 손에 묶으며 말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이런 것 해본 적 있어?”

 

여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자는 그제야 남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비디오에서 몇 번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새삼 흥분이 솟아올랐다. 왜 이 남자가 이렇게 먼 곳까지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묶어놓고 하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지만 비디오에서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그것만으로도 흥분이 절정에 다다르곤 했었다.

 

여자의 팔과 다리가 탁자의 네 귀퉁이에 모두 묶여졌다. 남자가, 묶여진 여자의 벗은 나신을 보고 만족한 듯 씨익 웃었다.

 

여자는 따라서 웃었다. 다가올 기쁨의 열락을 생각하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여자의 두 다리는 쇠사슬로 인해 벌려져 있었다. 남자는 곧 탁자 위로 올라와 그녀의 몸에 들어갔다. 정말이지 남자의 약속대로 그녀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기쁨의 열락에서 마음껏 신음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아 아…”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지하실 벽을 퉁겨나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남자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좋았다. 그것도 더욱 세게 질러댈수록… 더욱 처참하게 질러댈수록…

 

남자는 더욱 거세게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속에서는 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뜨거운 샘이 치솟았다. 여자가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쇠사슬이 탁자에 부딪쳐 쩔그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돌연 남자가 동작을 중지했다. 여자는 타는 갈증을 느끼며 갈구했다.

 

“제발… 계 계속해 주세요…”

 

남자는 여자의 간절한 애원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말했다.

 

“이봐… 마네킹이 되고 싶지 않아?”

 

여자가 그 의미도 모르면서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되 되고 싶어요… 빨리요… 마네킹이 되고 싶어요…”

 

남자의 눈이 차갑게 빛났지만 거센 욕망의 불길에 싸인 여자의 눈에는 그것이 보일 리 없었다.

 

남자가 동작을 다시 계속했다. 아까보다도 더욱 격렬한 힘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등을 껴안고 싶었지만 묶인 팔은 그 자리에서 떨려올 뿐이었다. 여자는 최고의 절정으로 치솟아올랐다. 이런 정도의 강력하고 황홀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잊어버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도…

 

순간!

 

왼쪽 늑골 사이에 서늘한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뜨끔했다.

 

그녀는 눈을 떴다. 따뜻한 액체가 자신의 얼굴에 뿌려지고 있었다. 남자의 웃는 얼굴은 시뻘건 물감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공연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연은 이미 끝났다!…

 

가슴의 통증이 한 번 더 격렬하게 와닿았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이제껏 내던 소리와는 사뭇 다른 신음을 토해냈다.

 

“아-악!”

 

남자가 원하던 소리였다. 여자가 내는 그 소리에 그의 흥분은 비로소 최고조로 치솟았다.

 

그녀의 얼굴이 공포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정말로 그는 여자를 마네킹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무탁자에 왜 시커먼 자국들이 있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