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은 원무과 접수계원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각진 도수 높은 안경이 그러잖아도 답답한 지훈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그녀는 오늘 들어온 그 환자 때문에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마지못해 지훈에게 퉁명스레 담당의사의 이름과 중환자실이 있는 3층을 가르쳐주었다.

 

병원은 언제나처럼 불친절했다.

 

 

오유미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져 있었다. 지훈은 먼저 담당의사인 이 병원 외과과장 장철민 박사를 찾았다. 한 10분쯤 기다린 끝에 그의 방에서 지훈은 장 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장 박사는 50대 중반으로 퉁퉁한 몸집에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하루 종일 밀려드는 기자들의 공세에 조금 지쳐 있었다. 지친 표정처럼 그의 하얀 가운은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고 주름마저 후줄근하게 잡혀 있어, 과연 이 사람이 유명한 병원의 외과과장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훈이 명함을 내밀며 새한 스포츠 신문에서 왔다고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한 시 반쯤 오유미 씨가 입원한 이후부터 HBS TV기자의 취재를 시작으로 벌써 열 명인가의 기자들이 다녀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기자님들이 몰려드니 오유미 씨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군요. 하지만 저희로서는 병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니 빨리 끝내는 것이 좋겠군요.”

 

지훈이 그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빨리 끝내도록 하지요. 지금 오유미 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처음 이 병원에 실려왔을 때는 가망이 없어보였습니다만… 얼굴에 상처가 너무 심해서 말이죠… 지금은 고비를 넘기고 회복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지훈이 수첩에 그의 말을 받아적으며 말했다.

 

“오유미 씨가 운이 좋군요…”

 

장 박사가 웃었다.

 

“우리 병원으로서도 운이 좋은 셈이지요.”

 

오유미처럼 유명한 사람이 들어와 이 병원이나 자신이 매스컴의 각광을 받아 좋다는 말인지 아니면 오유미를 살려내어 운이 좋다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지훈이 다시 물었다.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회복된 이후에 연기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장 박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스런 얼굴이 되었다.

 

“글쎄요… 회복된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아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경추가 골절되어 있는 데다가 얼굴의 상처가 워낙 심해서… 좀더 두고봐야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군요… 이럴 때 아주 의사로서 한계를 느낍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지금 그 말씀은 오유미 씨가 다시는 연기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 같군요.”

 

장 박사가 단정짓듯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유미 씨에게는 정말 안된 일이지만…”

 

지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심합니까?”

 

“네… 경추골절이야 그렇다치고… 우선 한 쪽 눈이 완전히 실명됐고, 코뼈가 으스러져서 흔적도 없어졌으며… 얼굴조직이나 입술마저도 원상으로 복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성형 수술이야 받겠지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보장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지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유미 씨를 볼 수 있을까요?”

 

장 박사는 뜻밖에도 선선히 승낙했다.

 

중환자실 바로 앞 복도에는 각 환자의 가족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들 있었다. 그들 중 한 50대의 여자가 손수건으로 소리 없이 눈물을 찍어내며 서 있었는데 생김새가 오유미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어머니인 것 같았다.

 

지훈이 장 박사의 안내로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에는 각종 기계들이 꽉 들어차 있고 오유미말고도 네 사람의 환자가 더 있었다.

 

두 명의 간호사가 사방에 놓여 있는 각종 계기판을 주시하고 있다가 장 박사가 들어서자 공손히 인사를 했다. 장 박사가 죽 일렬로 세워져 있는 침대 중에서 하나를 가리켰다.

 

침대 위에는 얼굴이 - 감겨져 있는 한 쪽 눈을 제외하고 - 온통 붕대로 칭칭 감겨 있어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의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 물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을 것 같았다.

 

지훈은 철제침대에 달려 있는 카르테를 보았다.

 

<환자번호 : B-11254. 성명: 오유미. 나이: 26세. 성별: 여자. 병명: 경추골절 및 안면창상. 담당: Dr. 장철민.>

 

오유미인 것이 확실했다.

 

그녀의 목에는 가느다란 주황색 고무 튜브가 꽂혀 있었다. 튜브는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렸다.

 

장 박사가 말했다.

 

“환자는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소 마스크를 코와 입에 씌울 수 없었기 때문에 기관지를 절개하고 튜브를 꽂아 강제로 호흡하게 하는 수밖에요…”

 

지훈이 주황색 튜브의 끝을 따라가보니 그 끝에는 세 개의 실린더가 상하 운동을 하며 규칙적으로 압축공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짙은 녹색의 9인치짜리 작은 모니터에서는 규칙적인 사인곡선을 그리며 삑삑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배음이 전혀 없는 인공의 차가운 순음이 지훈을 더욱 숨막히게 해주고 있었다.

 

장 박사가 모니터들을 살펴보고 말했다.

 

“이제 환자의 상태가 상당히 안정되어 가고 있군요.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은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지훈의 귓가에 불독의 오유미 사진을 찍어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대신 장 박사의 얼굴을 찍어갈 생각이었다.

 

 

방배동에 있는 고급 룸살롱 <은성>에서 문영환은 한 사나이와 마주앉아 있었다.

 

실내는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지만 푹신한 소파와 부드러운 간접조명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자, 이건 착수금이오.”

 

문영환은 돈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두꺼운 안경 너머로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사나이는 30대 초반으로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미색의 양복을 입고 빨간색의 넥타이를 맨 그는 좁은 미간에다 뱀눈을 가지고 있어서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기름으로 반들거리는 머리에 헤어 스프레이까지 뿌려 멋을 낸 뱀눈 사나이가 술잔을 내려놓고 봉투를 집어들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봉투에는 빳빳한 만 원권 한 다발이 은행 여직원의 도장이 찍힌 누런 종이끈에 묶인 채로 들어 있었다.

 

뱀눈이 말했다.

 

“좋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시작하기로 하지요. 하지만 이번 경우는 보통 때와는 달리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문영환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배 형한테 이 일을 맡기는 것 아니오.”

 

뱀눈의 이름은 배중근이었다.

 

배중근이 얼굴을 찡그리자 미간은 더욱 좁아졌다.

 

“내가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거요. 그러나 이번 건은 위험 부담도 있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라서…”

 

문영환이 그제야 배중근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금전적인 문제라 이 말씀이죠? 그것이라면 충분히 만족하실 수야 없겠지만 이제껏 지불한 비용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겠소.”

 

배중근이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좋은 조건이시라면?”

 

“전에보다 오십 프로 인상해서 드리겠소.”

 

배중근이 한 발 더 밀고 나왔다.

 

“거기다 아이들에게 수고비도 더 얹어주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이 더운 여름에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으니까요. 못해도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일 아니겠습니까?”

 

“아니, 거기에다가 보너스를 더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보너스라고 생각하셔도 좋고 특근수당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요즘 한창 피서철인데 미끈한 계집들이 쫘악 깔려 있는 바닷가에도 한 번 못 가보고 일을 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하신다면 그리 무리한 요구는 아닐 겁니다.”

 

문영환이 머뭇거리자 그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이런 여름 휴가철에는 어디서나 그렇게 해줍니다.”

 

배중근은 문영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문영환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다면… 아주 확실하고 결정적인 내용일 때, 즉 정보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면 그렇게 하지요. 물론 그 판단은 내가 내리겠지만…”

 

배중근이 문영환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보너스 포함해서 80프로 인상하는 걸로 아주 결정합시다. 나중에 또 이런 금전적인 문제로 해서 서로 얼굴을 붉히기는 싫으니까… 물론 문 선생의 말씀대로 정보로서의 가치가 충분할 때 말입니다.”

 

‘도둑놈 같으니…’

 

문영환은 속으로부터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하긴 그렇게 해버린다면 당장 속이야 편할지 몰라도 결국 그들의 오랜 비지니스 관계는 깨질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문영환의 특종 뒤에는 이 친구의 도움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문영환이 결정을 내렸다.

 

“좋소. 그렇게 하기로 하지요.”

 

그제야 배중근의 찌푸렸던 얼굴을 펴며 말했다.

 

“그럼, 준비해 오신 물건들을 어디 좀 볼까요?”

 

문영환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갈피 속에서 아주 작은 투명 비닐봉투 한 개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일전에 문영환이 청계천 전자상가에 전화로 부탁한 물건이었다. 비닐봉투 속에는 무언가 작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문영환이 비닐봉투를 열어제치고 속의 내용물을 조심스럽게 보가 씌워진 탁자에 가만히 쏟아놓았다.

 

그것들은 모두 세 개였다.

 

비닐봉투에서 쏟아져 나온 그것들은 무광택의 검은 코발트색을 띠고 있었다. 그 중 한 개는 십 원짜리 동전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이었고 다른 두 개는 네모난 모양으로 그 크기는 불과 새끼손톱의 절반만 했다.

 

문영환이 스스로가 무척 대견스러운 듯 황홀한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들은… 아주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 마치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란 말이오.”

 

배중근이 탁자 위의 물건들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문영환의 말에 동의했다.

 

“호오… 정말 대단한 물건들을 구하셨군요. 이건 PSR-70 모델이고, 그리고… 으음… 이건 극소형 TZ-4 모델들이군요.”

 

문영환이 고개를 쳐들고 놀랍다는 눈으로 배중근을 바라다보았다.

 

“이것을 아시는군요?”

 

배중근이 웃었다. 그의 눈은 ‘문영환! 넌 아직도 아마추어라는 걸 깨달아야 해!’ 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문영환은 그의 중요한 고객이었으므로…

 

“초소형 제품이라면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이쪽 계통의 초소형 제품은 일제가 제일이지요. 거기다 다루기도 편하고…”

 

문영환이 다시 한 번 놀랍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사용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배중근이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물론!”

 

“아니, 언제 어디서?”

 

문영환의 말에 배중근은 침묵하며 양미간을 좁히고 기분 나쁜 표정의 눈으로 그를 바라다보았다.

 

문영환은 아차 싶었다. 그런 종류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이 세계에서의 불문율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온 경솔한 언행을 후회했다.

 

그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문영환이 재빨리 말했다.

 

“아, 그러면 사용방법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군요.”

 

배중근이 그의 실수를 용납한다는 표정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우리 쪽의 장비는 다 마련이 되어 있고 게다가 우리 애들은 이런 것을 다루는 데에는 능숙하니까요.”

 

문영환이 계면쩍게 웃었다.

 

“아무렴. 배 형이 어련하실라구요.”

 

배중근이 탁자에 놓인 물건들을 다시 비닐봉투에 집어넣고 양복 윗주머니에 곱게 찔러넣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마셔볼까요?”

 

그가 인터폰으로 여자들을 불러들였다.

 

 

여자 둘이 호들갑스런 몸짓으로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그녀들의 엷은 옷차림은 팽팽한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충분하였다.

 

그녀들에게 있어 손님이란 인간적 감정의 대상이 아닌, 돈 만드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녀들의 웃음과 몸짓은 인간이 아닌 돈에 대한 반응일 뿐이었고, 남자들은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하여 충분히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스물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들이었다. 어여쁜 얼굴들이었지만 짙은 화장 속에 가려진 그녀들의 참모습은 페인트를 칠해놓은 모조 과일이었다.

 

배중근이 한 여자의 허리를 우악스럽게 휘어잡으며 끌어안았다. 여자는 간드러진 소리를 내며 저항 없이 그의 품에 들어갔다. 머리 속으로는 오늘 얼마나 팁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를 계산하면서…

 

그가 뱀눈을 반짝이며 예고도 없이 여자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문 선생, 음주운전 걱정일랑 잊어버려요. 여기서는 항상 대리운전하는 애들이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뱀눈의 손이 여자의 가슴 속에서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