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
그 사고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HBS TV의 방송기자인 정명록이었다.
그의 친구가 우연히 사고현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사고를 목격하고서 TV기자인 친구 정명록에게 카폰으로 연락을 해준 것이었다. 그 친구는 물론 사고 당사자가 탤런트인 오유미인 줄은 몰랐지만, 사고차량이 외제 고급 승용차인지라 외교관이나 또는 그렇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든 것이었다.
전화를 끊은 즉시, 정명록은 카메라기자를 대동하고 빨간 HBS 마크가 선명한 밴형 방송차량에 몸을 실어 현장으로 달려갔다.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고 도로도 한산했지만 사고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차량의 흐름이 느려졌다. 아마도 지나가는 차들이 사고현장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는 모양이었다.
정명록은 마음이 급해져서 비상 깜박이와 클랙슨을 이용하며 요리조리 끼여들기를 하면서 달려갔다. 그렇게는 했어도 전화를 받은 지 20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사고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장에는 이미 패트롤 카와 앰블런스가 각기 파란 비상등을 깜박이며 서 있었고, 경찰관들이 나와서 요란스레 호각을 불어대며 수신호로 차량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었다.
경찰들의 얼굴이 유난히도 피곤해 보였다. 이 땡볕의 더운 여름날, 남들이 다 가는 피서도 못 가고 있는데 또 귀찮은 일이 생겨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표정들이었다.
정명록은 카메라 기자와 함께 지체없이 경찰들 사이를 뚫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정명록은 사고차량을 보았다. 앞부분이 산산이 찢겨나간 벤츠 850S가 후미의 비상 깜박이가 켜진 채 뜨거운 수증기를 뿜어내며 15톤 트럭 꽁무니에 처박혀 참담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명록의 예상과는 달리 자동차의 번호판은 외교관 넘버가 아닌 서울 번호판이었다. 그는 약간 실망했다.
노란 불빛의 비상 깜박이는 처참한 사고와 관계없다는 듯 <나는 건재하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여전히 정확한 간격으로 깜박거리고 있었다.
카메라 상단부에 부착되어 있는 적색의 탤리 라이트가 켜졌다. 카메라가 작동 중이라는 신호였다. 흰 가운을 입은 구급요원 둘이서 얼굴이 갈갈이 찢겨 신원을 알 수 없게 된 여자를 들것에 눕히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에게로 향해져 <달리 인(Dolly In=피사체에 점점 접근해 가며 찍는 카메라 기법)> 되어졌다.
구조원들은 여자를 들것에 눕힌 뒤 가죽띠로 그녀를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직 여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정명록의 시선은 우선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들것에 눕혀져 있는 여자는 너무도 참혹한 모습이었다. 피투성이 얼굴은 이전의 온전한 모습을 짐작조차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그녀의 옷차림을 살폈다.
그 들것에 누운 여자는 피가 군데군데 방울져 있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검붉은 핏자국과 하늘색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원피스 밖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다리가, 신발이 벗겨진 채로 애처롭게 나와 있었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얼굴에 비해 그녀의 다리는 별로 손상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구조원들이 이제 막 그녀의 다리에 가죽끈을 묶는 중이었다. 그 다리의 피부 상태로 보아서는 젊은 여자임이 확실했다. 젊은 여자가 이런 외제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은 아직 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신분이 의외일 수 있었다. 따라서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록이 구조원에게 물었다.
“살 수 있을까요?”
구조원들 중 나이가 좀더 들어보이는 사람이 감정이 배제된 마른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글쎄요… 지금은 살아 있지만 곧 죽겠죠.”
구조원들이 가죽띠로 들것에 여자의 몸과 머리를 완전히 고정시키고 나자 들것을 들어 앰블런스로 옮기기 위해 일어섰다. 여자의 가느다란 팔에서 덜렁거리는 원색의 둥근 팔찌들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들것이 앰블런스에 올려지고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곧 이어 앰블런스는 여의도 쪽을 향하여 장3도(도와 미의 폭을 가진 음정)의 음이 반복되는 사이렌을 울리며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정명록은 경찰의 허락을 얻어 처참한 몰골의 벤츠로 다가가서 차안을 들여다보았다. 박살난 앞 유리창의 조각난 파편들이 좌석 시트에 어지러이 깔려 있었다.
핸들 위에는 찢겨진 에어백이 피가 흥건한 채 널브러져 있었고, 운전석 아래쪽 매트에는 사고 당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 선글라스 한 개와 구두 한 켤레가 주인을 잃은 채 그대로 처량하게 남아 있었다. 오른쪽 조수석 앞의 콘솔 박스가 열려 있었다. 아마도 경찰이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기 위해 열어본 모양이었다.
정명록은 사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벤츠와 트럭의 바퀴에 붉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저, 혹시… 사고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경찰관이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다가 TV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자, 황급히 모자를 바로 고쳐 쓰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어디서나 어김없이 TV의 위력은 발휘되고 있었다.
“이리 오십시오. 잠깐만… 저기 있는 차에 사고차량의 등록증과 일지, 핸드백이 있으니까요.”
정명록과 카메라가 경찰관을 쫓아 패트롤 카로 향했다.
패트롤 카에서 일지와 등록증을 꺼내어 읽어본 경찰관이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사고차량의 소유주는 ‘오유미’ 로 되어 있는데요. 나이는 26살이고, 주소는 강남구 방배동 삼우 아파트 211동…”
젊은 여자가 이런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데는 어떤 곡절이 있을 것 같다는 말투였다.
정명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누구라고 하셨죠?”
“오유미요.”
정명록은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럼, 방금 앰블런스에 실려간 여자가 오유미란 말씀인가요?”
경찰관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럴 거요. 핸드백에서 나온 주민등록증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요.”
정명록의 가슴이 뛰었다.
경찰관은, 사고를 당한 여자가 비록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려 누구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오유미란 이름이 유명 탤런트의 것이라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록은, 경찰관이 처음 오유미라고 말했을 때부터 직감적으로 사고를 당한 그녀가 탤런트 오유미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오유미는 유명한 연예인들 중 드물게 예명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던 터였다.
정명록은 탤런트 오유미의 차를 본 적이 있었다. 방송국 주차장에서 그녀가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 거만한 몸짓으로 벤츠에 올라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왔던 것이다.
정명록은 흘낏 은회색의 쭈그러진 벤츠를 보았다. 바로 그녀의 차였다.
특종이다!
짜르르한 흥분이 온몸을 핥고 지나갔다. 그의 얼굴엔 이 끔찍한 사고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정명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들 외에는 어디에도 기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본 오유미의 처참한 모습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정명록이 자세를 가다듬고 경찰관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까 그 여자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낸들 어떻게 알겠소. 얼굴이 그 모양으로 형편없이 걸레처럼 찢겨나갔으니… 하지만 어느 재벌의 딸이거나 돈 많은 놈의 정부이거나 하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경찰관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정명록은 경찰관에게, 오유미 그녀가 유명한 탤런트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사고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명록이 마이크를 경찰관에게 들이댔다. 마이크와 카메라가 자기를 향하자 경찰관은 경직된 어조로 말했다.
“글쎄요… 아직은 더 조사를 진행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목격자들의 이야기와 이 타이어 자국들을 보아서는 브레이크 파열이거나 여자 쪽의 실수로 보입니다. 보통 브레이크를 밟게 되면 쭉 밀린 타이어 자국이 남게 마련인데 이 경우엔 그런 자국이 전혀 없거든요. 벤츠가 멈추는 기색 없이 그대로 들이받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과도 일치하고…”
말을 잠시 끊고 경찰관이 심각하게 정명록을 쳐다보았다.
“이거… 정말로 TV에 나오는 겁니까?”
정명록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했다.
“그럼요, 그런 걱정은 마시고 말씀이나 계속하시죠.”
경찰관이 옷매무새와 모자를 다시 한 번 점검한 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했다.
“어쩌면 여자가 졸았는지도 모르죠. 이건 뒤에서 받은 정면 추돌 사고거든요. 브레이크 파열이라면 보통으로는 차가 정면으로 받는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마지막 순간에 대부분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서 조수석으로 부딪치게 하여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거기에도 의문점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고 전에 이 벤츠는 비상깜박이를 계속 켜고 달렸다는 겁니다. 목격자들의 진술도 그렇고… 그렇다면 여자가 졸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요. 그런 걸 보면 운전미숙일 수도 있구요. 아무튼 제 생각에는 브레이크 파열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순간, 정명록의 머리에, 9시 뉴스에 나올 이 사고의 헤드 타이틀이 떠올랐다.
<겉만 번지르한 외제 차량, 정비불량은 누가 책임지나?>
정명록이 경찰관에게 요구했다.
“제 생각이라는 말은 빼고 그냥 ‘이 사고는 브레이크 파열 등 정비불량이 그 원인이다.’ 라고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경찰관이 기자가 말한 의도를 몰라 머뭇거렸다.
정명록은 멍해진 경찰관의 표정은 살피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카메라 기자에게 말했다.
“여기 지금 말하는 부분을 크게 클로즈업시켜!”
상황을 이해한 경찰관이 앵무새처럼 정명록의 말을 반복했다.
“지금 이 사고는 브레이크 파열 등 정비불량이 그 원인입니다.”
정명록이 연기자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감독처럼 다시 요구했다.
“아니 아니, 그렇게 맥빠진 소리로 하지 말고… 자신 있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이오.”
정명록이 가슴을 떡 펴고 자신에 찬 큰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지금 이 사고는 브레이크 파열등 정비불량이 그 원인입니다!”
경찰관은 한편으로는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요구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이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서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됐겠지요?”
정명록이 말했다.
“아, 이번 것은 됐구요…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한 번만 더 합시다. 이제부터 진짜로 녹화하는 겁니다. 오늘 저녁 방송에 나갈 거니까 이번에는 좀더 조리있게 말씀해 주시지요. 그럼 시작합니다.”
정명록이 마이크를 자기에게 갖다대고 여지껏 쓰던 말투를 바꾸어 낮고 지성적인 음성으로 물어왔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찰관이 진땀을 흘리며 처음부터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견인차가 위협적인 사이렌 소리가 함께 노란 등을 깜박거리며 오고 있었다.
오유미의 사고소식은 그러잖아도 무료했던 전 매스컴의 연예부 기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마치 굶주린 늑대가 좋은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양, 눈을 빛내며 한시라도 늦을세라 오유미의 사고현장이나 오유미나 실려갔다는 여의도 박병원으로 달려가기에 바빴다.
지훈이 그녀의 사고소식을 들은 것은 사고가 일어난 지 3시간도 더 지난 오후 4시쯤이었다. 그쯤이면 벌써 눈치 빠른 각 메스컴이 오유미의 사고소식을 장황하게 보도하고 있을 때였다.
지훈은 그때 책상에 앉아 기사의 초고를 작성하고 있었다. 예전에 문영환이 말한 육체파 여배우 이주영에 관한 것이었다. 문영환의 말대로 그녀의 전화통화를 조사해 보니 정말로 일본과의 통화가 꽤 있었다. 그것을 근거로 여러 경로를 통하여 그녀가 재일교포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의 진실을 확인해 갈 수 있었다. 지훈의 예상대로 문영환의 말은 사실이었고, 자신은 그것을 확인하고 있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셈이었다.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문영환의 업무 스타일을 닮아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오유미의 사고소식을 보도하기 전까지는 새한 신문사의 기자들 중 누구도 아직 그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어서 편집부장 공천국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의 늘어진 볼가죽이 흥분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그의 별명인 불독을 연상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불독이란 별명은 생김새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성격이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그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공 부장에게는 오유미의 개인적인 불행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다만 신문사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그에 대한 발로로 판매부수 신장이라는 단 하나의 신성한 명제가 있을 뿐이었다.
늦어도 지금쯤은 다른 경쟁 신문사들이 오유미의 사고소식을 큼직한 헤드라인으로 정하여 각 지하철에서 뿌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선수를 놓쳤을 때는 별수없이 다른 신문들이나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들을 종합해서 이리저리 짜집기하여 내보내야만 했다. 물론 기사의 옆에는 오유미의 평상시의 모습이 담긴 칼라사진이, 밑에는 사고 순간의 상황을 그려 넣은 그림이 곁들여질 것이었다.
편집부장 공천국이 데스크로 지훈을 불렀다.
지훈이 공연히 죄지은 사람의 심정으로 불독이라고 불리우는 편집부장 앞에 가서 섰다. 불독 앞에서만 서면 왠지 무거운 중압감이 드는 지훈이었다. 문영환은 그런 불독 앞에서도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 지훈에게 자괴감이 들게 만들었다.
불독은 넥타이를 반쯤 풀어놓은 상태로 와이셔츠의 양 소매를 걷어 올려 활동적이고 정력적인 느낌을 주었다. 걷어 올린 와이셔츠의 소매에는 때가 까맣게 묻어 있었다.
불독이 화를 억제하면서 볼펜으로 탁상을 두드리며 지훈에게 말했다.
“송 기자, 오유미 사건…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취재를 서두르면 오늘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쯤 아마 15판 정도부터는 제대로 만든 기사를 내보낼 수 있을 걸세… 그때까지는 사람들을 시켜 다른 기사들을 대충 짜깁기해서 내보낼 테니까 여섯 시 반까지 기사를 완성해서 보내야 해. 만약 돌아올 시간이 안 되면 팩스로 기사를 보내주고…”
지훈이 말했다.
“일단, 오유미에 관한 자료들을 전부 뽑아주십시오. 오늘은 적당히 사건의 개요만 내보내기로 하고 내일부터는 시리즈 형식으로 오유미의 인생과 삶에 대해 연속으로 내보내지요. 그런 편이 독자들의 구미에 맞을 겁니다.”
‘독자들의 구미’ 운운한 것은 불독의 판매부수 신장에 대한 열망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불독이 잠시 생각하더니 지훈에게 말했다.
“알겠네. 오유미에 관한 자료는 지금 당장 준비시키지. 그리고 오유미 인생 시리즈 말이야.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만 그것이 극적이려면 오유미가 죽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직 어디서건 오유미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거든…”
불독이 마치 오유미가 죽기라도 바라는 양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훈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아무리 판매부수 신장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한 인생의 불행을 팔아먹고 싶지는 않았다. 지훈은 다만 대중적 인기의 정상에 선 오유미의 개인적 불행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다루어보고 싶을 뿐이었다.
지훈은 불쾌한 표정을 억지로 숨기려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런 지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독이 넥타이를 풀어내며 다시 말했다.
“좋아, 어쨌든 말이야, 지금 곧바로 여의도 박병원에 가서 오유미의 상태를 확실하게 알아보고 오도록 하고, 나머진 그 이후에 생각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지금 곧 병원으로 가보도록 하지요.”
지훈이 꾸벅 절을 하고 돌아서자 불독이 뒤에서 소리쳤다.
“송 기자! 오유미 병원 사진 잊지 말고 찍어와야 해!”
지훈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편집부장 공천국 앞을 빠져나오자 답답한 가슴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오후 4시 반, 새한 스포츠 신문사 12층 휴게실 창문 밖에 비친 서울의 하늘은 그의 마음처럼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문영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슬쩍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늘 저녁, 방배동의 한 룸살롱에서 자신의 업무를 도와줄 사람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기자로서 명성을 쌓아올리게 한 숨은 공로자였다. 그것은 문영환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이었다.
전문가인 그에게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고, 따라서 그를 자주 이용할 수는 없었으나 아주 파헤치기 어려운 사건들을 언제나 깔끔하게 처리해 주곤 하였다.
그는 막 청계천의 전자상가에 다녀온 길이었다. 일전에 부탁한 물건들이 담긴 가슴을 툭툭 쳐보았다. 그것들을 자신의 양복 호주머니 안쪽 지갑에 들어 있었다.
아직 약속시간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동안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차 한 잔 사주시겠어요?”
문영환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곱슬거리는 퍼머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다방 레지가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문영환이 말 대신 고갯짓으로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여자는 카운터 쪽을 향해 언니, 커피 한 잔! 하고 소리친 뒤 문영환의 옆에 와서 다소곳이 앉았다.
그녀가 입은 검정색 스커트의 밑으로 녹색 스타킹을 신은 굵은 허벅다리가 보였다. 왼무릎 밑의 스타킹이 올이 뜯어져, 여자는 그것을 감추려고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로 포개었다. 그녀의 굵은 허벅지가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퍼져 두 배는 넓게 보였다.
문영환은 이 아가씨에게 흥미를 잃었다. 다른 레지 아가씨가 와서 커피를 놓고 갔다.
“혼자 오셨나보죠?”
여자가 교태 어린 웃음을 지으며 문영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으응, 그냥 심심해서…”
문영환이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그녀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들어 TV를 쳐다보았다. 마침 5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몇 명의 정치 인사들이 화면에서 인형처럼 움직이다가 사라졌다.
레지가 눈을 살짝 올려뜨며 말했다.
“뭐 하는 분이세요?”
눈을 TV에 고정시킨 채 문영환이 말했다.
“글쎄, 뭐 하는 사람일까? 한번 알아맞혀 보지?”
TV 화면은 미국 대통령이 누군가와 악수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레지가 그의 옷차림을 아래위로 가볍게 훑어보았다.
“뭐, 막일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장사하시는 분도 아니고… 알았다!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사장님! 맞죠, 내 말이?”
손뼉을 치며 그녀가 호들갑을 떨었다. 문영환이 조용한 목소리로 장난스레 말했다.
“아니야… 나는 사냥꾼이야, 도시의 사냥꾼… ‘시티 헌터’ 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그는 정말 자신이 사냥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총이나 활이 아닌 더욱 막강한 매스컴의 화력으로 인간들의 약점들을 사냥하는…
화면이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아나운서가 뭐라고 말을 했다. 자막에는, 눈이 좋지 않은 까닭에 멀리 있는 글씨라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외제 자동차…’ 라고 써 있는 것 같았다.
여자가 커피를 홀짝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어머… 도시의 사냥꾼! 멋있어라… 여자들만 사냥하는 그런 사냥꾼 말이죠?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순간 문영환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소리쳤다.
“잠깐! 조용히 좀 해봐!”
반으로 나뉜 화면 한 쪽에는 트럭 밑으로 들어간 은회색의 벤츠가 비춰지고, 그 옆에 오유미의 웃고 있는 얼굴이 함께 비춰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오유미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영환의 거친 말투에 여자의 눈이 놀라서 휘둥그래졌다.
“아니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문영환이 급한 명령조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아냐, 빨리 저 텔레비전 볼륨 좀 높여주겠어? 빨리!”
여자가 황급히 일어나서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화면이 바뀌어 사고 장면을 그래픽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문영환의 눈에는 그녀의 걸음이 둔한 돼지의 걸음걸이처럼 느껴졌다. 여자가 TV 소리를 크게 했다. TV 속의 기자가 사고차량들을 뒷배경 삼아 말했다.
“이상 보신 것처럼, 이번 탤런트 오유미 씨의 사고는 외제 차들의 고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비불량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담당 경찰관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카메라가 경찰관의 모습을 비추었고 기자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찰관이 조금 경직된 어투로 말했다.
“브레이크를 밟게 되면 쭉 밀린 타이어 자국이 남게 마련인데 이 경우엔 그런 자국이 전혀 없거든요. 벤츠가 멈추는 기색 없이 그대로 들이받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과도 일치하고… 사고 전에 이 벤츠는 비상 깜박이를 계속 켜고 달렸다는 겁니다.”
문영환은 그 화면이 조금씩 잘라내고 붙인 것임을 알아보았다. 어쨌거나 그런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기자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브레이크 파열이군요.”
화면이 경찰관의 모습을 클로즈업시키자, 경찰관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씩씩하게 말했다.
“지금 이 사고는 브레이크 파열 등 정비불량이 그 원인입니다!”
카메라는 다시 사고차량들을 배경으로 기자를 비추었고 마이크를 입으로 갖다댄 기자가 다시 말했다.
“이상 사고현장에서 정명록이 말씀드렸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아나운서가 날씨를 에보했다.
문영환은 자신이 오유미의 교통사고 건을 아직 알지 못한 데 대해서 화가 치밀었으나 이런 급작스런 사태에는 천하의 문영환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의무감에서 불독에게 전화하여 오유미 사고 건을 알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신문사에서도 그 정도면 벌써 충분히 알고 대처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유미가, 자신이 지금 추적하고 있는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정명록이 동료기자들에게 열에 들뜬 목소리로 식식대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누가 내 필름을 잘라냈어? 그 오유미가 들것에 실려가는 장면 말이야. 가까이서 찍은 것이 아니더라도 원거리에서 잡은 것 정도는 내보냈어야지.”
동료기자 하나가 그를 달랬다.
“이봐… 좀 기다려보자구. 아직 뉴스 시간은 많이 남았잖아? 그만해도 괜찮았어. 좋던데 뭐 그래? 그리고 <연예가 소식> 프로도 남아 있고 말이야…”
정명록이 그 말에 조금 기분이 누그러져서 말했다.
“하긴 그 경찰… 생각보다는 괜찮았어…”
경찰관은 기분이 좋았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TV에 나온 자신의 모습은 당당하고 멋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료 경찰관들이 옆에 와서 칭찬했다.
“여, 박 순경. 텔레비전에 나오니 멋지네. 말도 아주 잘하는데. 아무래도 오늘 술 한잔 사야 되겠어.”
박 순경은 술 한잔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7살짜리 아들녀석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서 자랑을 해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기자가 아까 그렇게 자신에게 몇 번씩 같은 말을 시킨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