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처럼 차가운 겨울바람이 깊은 골자기를 돌아 나목(裸木)들의 가슴을 할퀴고는 눈이 시리도록 하얀 별빛을 향해 깊은 신음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숲은 이따금씩 그러한 공허하고 음산한 바람소리를 뱉어낼 뿐이었다. 까만 하늘 저쪽에서 유성이 긴 꼬리를 흩날리며 사라져 갔다.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속이었다.

 

별장(別莊)!

 

별장은 깊은 어둠의 숲속에서 거대한 공룡처럼 대지 위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2층으로 지어진 별장 건물은 무척이나 오래되어 음침해 보였다. 돌로 쌓아올린 벽에는 마른 이끼가 두껍게 기어 있었고, 군데군데 깨진 창 틈으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파고들고 있었다.

 

바람소리 이외에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하고 차가운 정적만이 어둠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별장의 지하실에서는 바깥의 차가운 정적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깥으로 전혀 소리가 새지 않는 이중의 두꺼운 방음문 안쪽은 음산하고도 으스스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지하실 한 쪽 벽에 설치된 유럽풍의 벽난로에서는 소나무 장작이 무서운 기세로 시뻘겋게 타올랐다. 너울거리는 불꽃이 어슴푸레 지하실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불꽃에 어른거렸다. 모두 검은색의 두꺼운 망토와 두건을 걸친, 흡사 중세의 수도승 같은 모습으로 그들은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둘러서 있었다.

 

그들 일곱 명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가녀린 소녀였다.

 

소녀는 팔과 다리가 모두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로 커다란 탁자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15, 6세쯤이나 되었을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갸름한 얼굴은 창백해 보였고 눈물조차 말라버린 커다란 눈망울은 공포로 인해 동공이 점차로 확대되었다. 덜덜 떨리는 이빨들이 부딪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까부터 검은 망토의 사람들은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들어보지 못한 괴이한 음률이었다. 단 3도를 넘나들며 단조롭게 반복되는 그 노래는 정상적인 의식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그들 중 머리가 긴 장발의 사나이가 명령했다.

 

“시작하라!”

 

쇳소리가 섞인 갈라진 목소리였다.

 

다른 사나이가 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탁자를 들고 왔다.

 

탁자에는 골동품처럼 보이는 유럽풍의 은촛대와 포도주 한 병, 은으로 만든 커다란 잔, 그리고 칼날의 길이가 30cm 정도 되는 칼이 한 자루 올려져 있었다. 칼자루에는 쐐기문자인 듯한 이상한 문자가 양각되어 있었고, 그 끝에는 두 개의 커다란 뿔이 솟아 있는 숫염소의 머리와 뱀의 형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숫염소의 길게 찢어진 입 밖으로 드러나 날카로운 이빨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숫염소와 뱀… 그 짐승들의 두 눈은 붉은 루비로 장식되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검은 망토를 입은 한 여자가 촛대에 불을 밝히자 장발의 사나이가 탁자에서 칼을 집어 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불빛에 반사되어 그의 하얀 눈자위를 비추었다. 불빛에 드러난 그의 왼쪽 귀는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사나이는 칼을 두 손으로 모아 잡았다. 칼은 허공으로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사나이의 눈이 칼끝을 향했다.

 

“우리의 영원한 지배자여!”

 

정적을 깨고 사나이의 음산한 목소리가 벽을 돌아 메아리쳤다.

 

“죽음의 권세, 어둠의 힘이여! 이제 그대에게 순전(純全)한 제물을 바치오니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권능의 힘을 내려주소서…”

 

일곱의 검은 그림자들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지하실 벽에 울려 퍼졌다. 흥분한 그들의 음산한 광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순간 소녀는 보았다. 어디선지 갑자기 나타난 한 줄기 음산한 붉은 빛무리가 섬광을 발하며 장발 사나이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장발 사나이의 눈빛이, 사람이 아닌 짐승의 그것으로, 그리고 점차 붉은 핏빛으로 변하면서 광채가 폭사(爆射)되는 것을…

그것은 바로 악마의 모습이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소녀는 너무나 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소녀는 자신이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 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망막에 비친 모든 사물들이 하얗게 변해갔다.

 

이미 소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 어느것도 소녀를 구할 수는 없었다.

 

소녀는 정신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나 점점 아득해가는 의식의 끝자락을 잡고 싶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뿐이었으므로…

 

소녀의 의식은 끝이 없는 아득한 심연으로 끝없이 떨어져 갔다.

 

어느새 노랫소리가 멈추어지고 무서운 정적이 흘렀다. 어두운 공기 입자들이 무겁게 가라앉는 듯 모든 소리가 사라진 무서운 그 침묵의 광경 속에는 무엇인가가 팽팽하게 공간을 압축하고 있었다. 광기가 흐르는 이 어둠의 공간 속에서 시간은 공간과 함께 자꾸만 수축되어 갔다.

 

아주 짧은 정적의 그 순간은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 흥분과 시간을 정지하게 했다.

 

검은 그림자들은 이제 소리없이 움직였다. 모종의 규약이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동작들이었다.

 

누군가가 검은 양초를 몇 개 가져다 유럽풍의 촛대에 꽂고 불을 옮겨 붙였다. 그리고 또 다른 그림자가 은제의 향로를 탁자 위에 놓았다.

은빛의 향로에 담겨진 액체 향에 불이 지펴졌다. 동물의 기름이 타는 듯한 이상스런 냄새가 노란 연기와 함께 공간에 퍼져갔다.

의식(儀式)의 시작이었다.

 

한 사내가 소녀의 하얀 드레스를 거칠게 잡아 찢었다. 소녀의 조그만 가슴을 가린 하얀 브래지어가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봉곳한 젖무덤이 촛불에 그대로 드러나 구릉의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장발 사나이는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서툰 솜씨로 오각형 모양의 별이 바닥에 붉은 페인트로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장발 사나이가 탁자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무거운 긴장감을 토해내듯 어두운 공간을 갈랐다. 장발 사나이는 소녀의 분홍빛 가녀린 가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나이는 조금도 흥분하거나 서두르는 기색 없이 모든 일련의 행동을 개시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뱀과 염소머리의 문양이 조각된 날카로운 칼이 서서히 소녀에게로 향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떤 기대감에 차 있는 것 같았다.

 

“아…악!”

 

소녀의 외마디 비명이 처절하게 공기를 가르며 흩어졌다. 참을 수 없는 엄청난 충격으로 인하여 소녀의 의식은 원하지 않게도 돌아와서, 이 세상의 마지막 기억은 무서운 고통만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그 순간, 장발의 사나이의 얼굴에 검붉은 액체가 뿌려졌다. 사나이의 얼굴에 무서운 미소가 흘렀다.

 

그 악마적인 미소를 신호로 검은 그림자들의 노랫소리가 다시 계속되었다. 공간과 시간을 더욱 압축시키는 듯한 그 낮은 음률의 그 소리는 어둠 속에서 증폭되어 갔다. 먼 고대로부터 비밀리에 전승되어져 불려 내려온 그 노랫소리는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말려 올라가듯 상승하고 있었다.

 

장발 사나이가 작업을 마치자 다른 그림자가 작은 탁자에 놓여 있던 술병을 열고 포도주를 커다란 은잔에 따랐다. 장발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잔 속에 부었다. 하얀 가루가 잔 속으로 스르르 빨려 들어갔다.

 

잔에서 붉은 거품이 솟아올랐다. 장발 사나이를 시작으로 그들은 그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일순, 고통스런 표정을 짓던 그들의 눈빛이 점차 붉은빛으로 바뀌면서 환희의 표정으로 변해갔다.

 

커져가는 노랫소리와 함께 장작들이 더욱 높이 쌓여지고 불길이 더욱 거세어졌다. 약물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과 광란의 열기로 그곳은 후덥지근했다.

 

그들은 하나, 둘 망토를 벗어 던졌다. 누군가 장작더미에 기름을 쏟아 부었다. 불꽃이 솟아올라 주위의 어둠을 거두었다. 그 불빛에 망토를 벗은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읜 눈은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장발은 한 여자를 가리키고는 손짓으로 무언가 지시했다.

 

여자는 천천히 옷을 벗어 던졌다. 완전한 나신(裸身)이 되자 그녀는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원초적인 본능의 춤이었다.

 

어떤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한 열기에 휩싸인 본능적이고 색정적인 춤이었다. 몸 속에 내재된 감추어진 욕구가 폭발하는 것일까? 여자는 길다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그 표정은 쾌락과 욕망의 끝을 갈구하는 묘한 것이었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애무하면서 아래로 천천히 미끌어져 내려갔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음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자의 동작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충혈된 눈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고통스런 욕정의 신음을 토해냈다. 장발의 사나이가 여자를 뒤로부터 껴안아 휘감았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옷을 벗어 던졌다.

 

그들은 이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짐승처럼 뒹굴었다. 조금전의 그 무서운 살육은 잊어버렸다.

 

장발의 사나이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쾌락 속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고 있는 자신의 여섯 제자들을 보고 아주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약물의 가공할 위력은 그들을 조금도 피곤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그들에게 이 세상 것이 아닌 쾌락의 극치를 맛보게 하여 주었다.

 

그의 입가에서 만족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이제부터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