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 자그마한 몸은 숨쉬고 있는 것만 빼놓으면 시체와 똑같았다. 그 옆에 조엘 카이로가 앉아 젊은이의 얼굴과 손목을 쓰다듬고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려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움직임이 없는 창백한 얼굴로 걱정스러운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브리짓 오쇼네시는 벽 쪽 테이블 뒤에 서 있었다. 한쪽 손바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른 한쪽 손바닥은 가슴에 댄 자세였다. 아랫 입술을 깨물고 스페이드가 그녀 쪽을 보지 않을 때는 슬쩍 그를 훔쳐보고, 스페이드가 보고 있을 때는 카이로와 젊은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개트맨의 얼굴에서는 이미 곤혹스러운 빛이 사라지고 다시 장밋빛이 되살아났다.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르고 스페이드 앞에 마주서서 뚫어지게 지켜보았으나 상대방을 살피는 눈초리는 아니었다.

 

스페이드는 한쪽 손에 쥔 세 자루의 권총을 공연히 덜컥거리면서 웅크리고 있는 카이로 쪽으로 턱을 치켜보이며 개트맨에게 물었다.

 

“저자는 괜찮겠소?”

 

뚱뚱한 사나이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모두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스페이드가 미소짓자 V자형 아래턱이 더욱 눈에 띄게 내밀어졌다.

 

“카이로 씨.”

 

레반트 인은 불안한 듯 검은 얼굴을 돌려 어깨 너머로 돌아보았다. 스페이드가 말했다.

 

“잠깐 쉬게 해주시오. 경찰에 넘길 테니까 정신차리기 전에 자질구레한 일을 타합해 둬야 하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카이로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소.”

 

카이로는 소파를 떠나 뚱뚱한 사나이 옆으로 다가갔다.

 

“개트맨 씨, 그것만은 그만두시지요. 잘 생각해 보면…”

 

스페이드가 말을 가로막았다.

 

“이미 결정난 일이오. 남은 문제는 당신이 어떤 태도로 나오느냐 하는 거요. 손을 잡겠소, 아니면 손을 떼겠소?”

 

개트맨은 얼마쯤 우울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레반트 인에게 말했다.

 

“나도 이런 일은 싫소.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소.”

 

“어떻게 하겠소, 카이로 씨? 손을 잡겠소, 손을 떼겠소?”

 

스페이드가 물었다. 카이로는 입술을 축이며 천천히 스페이드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그는 말을 꺼내놓고 침을 삼켰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지요?”

 

“물론이오.”

 

스페이드는 진지한 얼굴로 보증했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겠는데, 당신 대답이 ‘떼겠다’ 라면, 당신도 꼬마와 함께 경찰서행이 될 거요.”

 

“잠깐만요, 스페이드 씨! 그건 이야기가…”

 

개트맨이 항의했다. 그러자 스페이드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소? 우리 사이에 끼든지 경찰로 보내든지 둘 중 하나여야지 어중간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소.”

 

스페이드는 개트맨을 노려보더니 화를 내며 고함쳤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오! 당신들은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게 이번이 처음이오? 어쩌면 이렇게 호인들만 모였지! 다음은 어떻게 할 거요? 무릎꿇고 기도라도 드릴 참이오?”

 

그는 찌푸린 얼굴을 다시 카이로에게로 돌렸다.

 

“어떻소? 어느 쪽을 택하겠소?”

 

“그렇다면 선택하고 말고도 없잖습니까!”

 

카이로는 절망한 듯 좁은 어깨를 움츠렸다.

 

“함께 끼겠습니다.”

 

스페이드는 개트맨과 오쇼네시 쪽을 보았다.

 

“좋소. 모두들 앉읍시다.”

 

오쇼네시는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젊은이의 발치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개트맨은 쿠션이 놓인 흔들의자로, 카이로는 팔걸이의자로 되돌아갔다. 스페이드는 들고 있던 세 자루의 권총을 테이블에 놓고, 그 바로 옆 테이블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다음 입을 열었다.

 

“2시요. 날이 샐 때까지는… 아니, 아마 8시까지는 매를 가져올 수 있을 거요. 그러니까 시간은 충분하오. 그동안 잘 타합해 둡시다.”

 

개트맨이 헛기침을 했다.

 

“매는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거야 어디 있든 상관없습니다만, 지금 문득 거래가 끝날 때까지 우리들 관계자가 모두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소파를 보고 다시 긴장하며 스페이드를 바라보았다.

 

“그 봉투는 가지고 있지요?”

 

스페이드는 고개를 내젓더니 소파를 보고 다시 브리짓 오쇼네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으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쇼네시 양이 가지고 있소.”

 

“네, 여기 있어요. 아까 주워서…”

 

오쇼네시는 윗옷 안쪽에 손을 넣었다.

 

“됐소. 잘 가지고 있구려.”

 

스페이드는 개트맨을 향해 말했다.

 

“아무도 이 자리를 뜰 필요는 없소. 매는 이리로 가져오면 되니까.”

 

그러자 개트맨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잘됐군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당신에게 1만 달러와 윌머를 넘겨주고 당신은 그대신 우리에게 매와 한두 시간의 여유를 주면 됩니다. 당신이 윌머를 당국에 넘겨 주기 전에 이 거리를 떠나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소. 절대로 안전하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역시 윌머가 지방검사에게 심문받을 때는 이 거리에서 사라지고 없는 편이 더 안전할 겁니다.”

 

“좋을 대로 하시오. 바란다면 젊은이를 하루 종일 여기에 잡아둬도 좋소.”

 

스페이드는 담배를 말며 말했다.

 

“그럼, 자세한 점을 분명히 해둡시다. 우선 저자가 왜 새스비를 쏘았나? 그리고 왜 어디서 어떻게 재코비 선장을 쏘았나?”

 

개트맨은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내젓더니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기까지는 무리한 일입니다. 돈과 윌머를 넘겨주면 우리가 할 일은 끝나는 겁니다.”

 

“뭐가 무리한 일이오!”

 

스페이드는 담배에 라이터를 가까이 갖다대며 말했다.

 

“내가 요구한 건 미끼로 쓸 수 있는 사람이오. 저자가 범인임을 분명히 해주지 않으면 미끼가 될 수 없소.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사건의 진상을 알아둘 필요가 있소. 대체 당신은 무얼 걱정하고 있소? 저자에게 도망칠 길을 남겨두면 당신들도 마음놓고 있을 수 없단 말이오.”

 

스페이드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개트맨은 윗몸을 내밀더니 스페이드의 무릎 옆에 놓인 테이블 위의 권총을 향해 굵은 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유죄의 증거라면 얼마든지 있잖습니까. 둘 다 그 권총으로 맞았습니다. 경찰의 전문가라면 시체의 총알이 그 권총으로 쏜 것이라는 사실쯤 문제없이 증명해 보일 겁니다. 그것은 당신도 아시겠지요? 아까 당신 자신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나는 그것만으로도 증거가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스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사정은 좀더 복잡하오. 앞뒤가 맞지 않는 곳을 확실히 맞추려면 아무래도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둬야 하오.”

 

카이로의 눈이 갑자기 열기를 띠며 동그래졌다.

 

“당신은 아까 그런 일은 간단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잊어버렸습니까?”

 

그는 흥분한 거무스름한 얼굴을 개트맨 쪽으로 돌렸다.

 

“그거 보시오! 이래서 그만두자고 한 거요. 내 생각으로는…”

 

스페이드는 쌀쌀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문제가 안 되오. 이미 너무 늦었소, 여기까지 빠져든 이상. 자아, 이 녀석은 왜 새스비를 죽였소?”

 

개트맨은 배 언저리에서 손가락을 깍지끼고 의자를 흔들었다. 목소리도 미소도 지금은 완전히 슬퍼보였다.

 

“정말이지 당신을 상대로 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군요. 처음부터 당신과 관계를 맺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사실 그렇습니다.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스페이드는 무관심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뭐, 그렇게 굉장한 실패라고 할 수는 없지요. 감옥도 면하게 되었고, 매도 손에 넣게 되었는데 더 이상 뭘 바라는 거요?”

 

스페이드는 담배를 입꼬리 쪽에 물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당신이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지는 잘 알겠지요? 저 젊은이는 왜 새스비를 죽였소?”

 

개트맨은 흔들던 의자를 멈췄다.

 

“새스비는 유명한 살인청부업자로, 오쇼네시 양의 짝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를 없애버리면 오쇼네시 양이 마음을 달리 먹고 결국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최선의 길임을 깨달으리라고 여겼던 겁니다. 그리고 오쇼네시 양도 그런 건달과 계속 살지 않아도 될 테고요. 어떻습니까, 꽤 솔직하지요?”

 

“좋소, 그런 식으로 말해 주시오. 그래, 새스비가 매를 가지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소?”

 

개트맨이 고개를 내젓자 불룩한 볼이 덜렁덜렁 흔들렸다. 그는 싱긋 미소지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쇼네시 양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무렵 오쇼네시 양이 홍콩에서 재코비 선장에게 매를 주고 라 팔로마 호로 실어다 달라고 부탁한 뒤 자기들은 한발 먼저 다른 배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그래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매가 있는 곳을 안다면 그것은 절대로 새스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페이드는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새스비를 처치하기 전에 교섭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소?”

 

“교섭했었지요. 그날 밤 나는 직접 그와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그 이틀 전에 윌머가 거처를 알아냈기 때문에 그 뒤 줄곧 그를 미행하여 오쇼네시 양과 만나는 장소를 알아내려고 했지요. 그러나 새스비는 워낙 빈틈없는 녀석이라 뒤쫓고 있다는 건 몰랐어도 그리 쉽게 꼬리잡힐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윌머가 그의 호텔로 찾아갔지요. 그런데 외출 중이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스비는 당신 동료를 쏘아 죽인 뒤 바로 호텔로 돌아왔던 모양입니다. 그건 어찌되었든 윌머는 내게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쇼네시 양에 대해 끝까지 충실하더군요. 그래서 윌머가 다시 호텔로 따라가서 처치해 버린 겁니다.”

 

스페이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대로 앞뒤가 맞는 이야기 같군. 그럼, 이번에는 재코비 선장의 이야기인데…”

 

개트맨은 심각한 눈길로 스페이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재코비 선장을 죽인 것은 순전히 오쇼네시 양 때문입니다.”

 

오쇼네시는 숨을 삼키고 외마디 소리를 내더니 입을 막았다. 스페이드는 무게 있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필요는 없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이야기하면 되오.”

 

개트맨은 흘끗 날카로운 눈으로 스페이드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카이로가 나를 찾아왔던 그날 밤 - 밤이랄까 새벽이랄까 - 그는 경찰에서 풀려나오자마자 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불렀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협동전선을 펴는 게 유리하다고 인정했던 겁니다.”

 

그는 카이로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카이로는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라 팔로마 호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그날 아침 신문에서 입항안내를 보자 홍콩에 있을 때 재코비 선장과 오쇼네시 양이 만났다는 소문을 들은 생각이 났던 겁니다. 그것은 카이로가 오쇼네시 양을 찾아다니던 때의 일로 그 소문을 듣고 처음에는 오쇼네시 양이 라 팔로마에 탔으려니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요. 그런 형편이었으므로 카이로는 신문에서 입항 소식을 알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렸던 겁니다. 오쇼네시 양이 새를 재코비 선장에게 맡기고 여기까지 실어다 다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물론 선장은 그 물건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오쇼네시 양은 꽤 조심스러운 사람이니까요.”

 

개트맨은 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지어 보이며 흔들의자를 두 번 흔들었다.

 

“카이로와 윌머와 나는 재코비 선장을 찾아갔습니다. 다행히도 오쇼네시 양이 있을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점에서 그때의 회담은 전혀 풀리지 않았지만, 거의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가까스로 오쇼네시 양을 설득하여 합의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다음 배에서 나와 내가 묵는 호텔로 모두 갔습니다. 나는 호텔에서 오쇼네시 양에게 돈을 지불하고 새를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이드 씨, 우리처럼 단순한 사나이들이 그녀와 승부를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습니다. 도중에 오쇼네시 양과 재코비 선장과 매가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 손에서 소리없이 빠져나가 버렸던 겁니다. 정말이지, 크게 한 대 얻어 맞았지요!”

 

개트맨은 유쾌한 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스페이드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호소하듯이 올려다보는 오쇼네시의 크고 푸른 눈이 스페이드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개트맨에게 물었다.

 

“배에서 내려오기 전에 당신들이 배에 불을 질렀소?”

 

“아닙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뚱뚱한 사나이가 대답했다.

 

“그 불은 우리들이라기보다 윌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윌머는 매를 찾으려고 여기 저기 뒤지고 다녔으니까요. 틀림없이 성냥을 잘못 켜 불이 붙었을 겁니다.”

 

“다행이구먼. 혹시 무언가 잘되어 저자를 재코비 살해 재판에 넘길 필요가 생길 경우 방화죄도 덮어씌울 수 있게 되었으니 잘됐소. 그런데 선장을 죽인 까닭은?”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찾으려 하루 종일 시내를 휩쓸고 다니다 오늘 오후 늦게야 겨우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들이 거기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다만 오쇼네시 양의 아파트를 찾아냈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에 귀를 대고 들으니 안에서 사람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으므로 두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고 벨을 눌렀습니다. 오쇼네시 양이 안에서 누구냐고 묻기에 이쪽 이름을 대자 창문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곧 그 뜻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복도로 꼬부라지는 순간 매를 안고 도망쳐 오는 재코비 선장과 딱 마주쳤습니다. 아주 난처한 처지였지만 윌머로서는 최선을 다한 셈이었습니다. 그는 재코비를 여러 번 쏘았으나, 선장도 아주 단단한 사나이라 총을 맏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았고 매를 떨어뜨리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부딪쳤으므로 윌머는 상대방을 막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재코비 선장은 윌머를 때려눕히고 도망쳤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대낮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윌머가 일어나 보니 바로 앞쪽에서 경찰관이 달려오는 게 보였답니다. 그러니 단념할 수밖에요. 마침 콜로네트 아파트 옆 빌딩 뒷문이 열려 있었으므로 그리고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또다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재코비 선장이 도망친 뒤 오쇼네시 양이 문을 열어주어 카이로와 나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우리는 그녀를 설득하여 - 어디까지나 설득입니다 - 재코비 선장을 시켜 매를 당신에게로 가져가게 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경찰관의 눈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죽지 않고 그처럼 먼 곳까지 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유일한 기회였으므로 다시 오쇼네시 양을 설득하여 우리 일을 좀 거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설득했던 겁니다. 재코비 선장이 도착하기 전에 당신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였지요. 한편 윌머를 곧 당신 사무실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결정하고 오쇼네시 양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공교롭게도…”

 

그때 소파 위의 젊은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눈을 몇 번 떴다감았다 했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테이블과 벽 사이로 도망쳤다. 개트맨은 결론을 서둘렀다.

 

“그렇게… 매는 우리 손에 들어오기 전에 당신의 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젊은이는 한쪽 발을 내려 바닥을 짚었다. 한쪽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킨 다음 눈을 크게 떴다. 나머지 한쪽 발도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는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눈의 초점이 스페이드와 마주치자 당혹한 빛이 말끔이 가셨다.

 

카이로가 팔걸이의자에서 일어나 젊은이 쪽으로 다가갔다. 젊은이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젊은이는 그 팔을 뿌리치더니 재빨리 일어섰다. 다시 한 번 방 안을 둘러보고 스페이드의 얼굴에 눈길을 못박았다. 얼굴이 굳어지고 몸이 긴장한 나머지 전체가 오그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스페이드는 책상 끝에 걸터앉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여보게, 꼬마, 잘 들어두게. 이제 와서 섣불리 굴면 내 발이 자네 얼굴로 날아갈 거야. 까불지 말고 얌전히 앉아 있어! 그러면 목숨도 그만큼 연장될 테니까.”

 

젊은이는 개트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개트맨은 조용히 웃었다.

 

“여보게, 윌머, 자네를 내주는 것은 나로서도 슬픈 일이네. 내 친자식도 그렇게 귀여워하지는 않았을 걸세.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자식은 잃어도 또 낳을 수 있겠지만 말타의 매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네.”

 

스페이드는 웃었다. 카이로가 다가가서 젊은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젊은이는 차가운 다갈색 눈을 개트맨의 얼굴로 돌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카이로도 그 옆에 앉았다.

 

개트맨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조용히 미소짓고 있었다. 그는 스페이드에게 말했다.

 

“젊었을 때는 인생이라는 걸 잘 모르는 법입니다.”

 

카이로는 다시 젊은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뭐라고 속삭였다. 스페이드는 개트맨을 향해 히죽 웃어보이고 나서 브리짓 오쇼네시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지만 부엌에 가서 마실 것을 좀 갖다주겠소? 가는 김에 커피도 가득 따라다 주었으면 좋겠는게, 들어주겠소? 손님을 놓아두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네, 갖다드리겠어요.”

 

이렇게 대답하고 오쇼네시는 문 쪽으로 가려고 했다. 개트맨이 흔들던 의자를 멈췄다. 그는 두툼한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만! 아까 그 봉투를 여기 두고 가는 게 어떻겠소? 더럽히면 안 될 테니까.”

 

오쇼네시의 눈이 스페이드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그 돈은 아직 저들의 것이오.”

 

그녀는 위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봉투를 꺼내더니 스페이드에게 내밀었다. 스페이드는 그것을 개트맨의 무릎으로 휙 던져주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되거든 깔고 앉아 있으시오.”

 

개트맨은 정중하게 말했다.

 

“그건 오해입니다. 걱정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거래에는 거래의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는 봉투를 열어 속에서 1천 달러 지폐를 꺼내 세어보더니 배를 흔들며 껄껄 웃었다.

 

“자아, 보십시오, 이 속에는 9장밖에 없습니다.”

 

그는 살찐 무릎 위에 지폐를 죽 늘어놓았다.

 

“당신에게 주었을 때는 분명 10장 있었습니다. 그건 당신도 잘 아시겠지요?”

 

그의 온 얼굴에 보란 듯이 즐거운 미소가 퍼졌다.

 

“어떻게 된 거요?”

 

스페이드는 브리짓 오쇼네시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이 조금 달싹거렸다.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개트맨에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개트맨이 지폐를 얹어 놓았다. 스페이드는 돈을 세어 1천 달러 지폐가 9장임을 확인하자 개트맨의 손에 되돌려 주었다. 스페이드는 바닥으로 내려섰다. 무표정하고 조용한 얼굴이었다. 테이블에서 세 자루의 권총을 집어들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진상을 알고 싶소. 우리는…”

 

그는 오쇼네시를 향해 턱을 치켜들었으나 얼굴은 돌리지 않았다.

 

“욕실로 가겠소. 문을 열어놓고 복도를 보고 있겠소. 당신들은 이 3층 창문으로 뛰어 내리지 않는 한 욕실문 앞을 지나지 않고는 여기서 나갈 수 없소.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아니, 스페이드 씨!”

 

개트맨이 항의했다.

 

“우리를 협박하실 건 없습니다. 그건 예의에도 좀 벗어난 일이 아닐까요? 이곳을 나갈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잘 아실 텐데요…”

 

스페이드는 화를 내지는 않았으나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이 일이 끝나면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될 거요. 나는 이 진상을 알아내고 말겠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그는 여자의 팔꿈치를 쿡 찔렀다.

 

“자아, 이리 오시오.”

 

욕실로 들어가자 브리짓 오쇼네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두 손을 스페이드의 가슴에 대고 얼굴을 바싹 붙인 다음 속삭였다.

 

“나는 돈을 빼내지 않았어요, 샘!”

 

“당신이 빼냈다고 생각지는 않소. 그러나 사실을 알고 싶소. 옷을 벗어보오.”

 

“나를 믿어주시지 않는군요.”

 

“자아, 옷을 벗어요!”

 

“싫어요!”

 

“좋아. 그럼, 저 방으로 되돌아가서 벗겨주지.”

 

그녀는 한 손을 입에 대고 뒤로 물러났다. 동그랗게 뜬 눈에 겁이 잔뜩 어려 있었다.

 

“설마…”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할 거요.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는 알아야겠소. 상대가 여자라고 봐줄 수는 없소.”

 

“어머나, 그런 말이 아니예요!”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에게로 다가서 다시 한 번 두 손을 그의 가슴에 갖다댔다.

 

“당신 앞에서 벗는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에요. 그러나 - 모르시겠어요? - 이런 일로 옷을 벗다니, 나는 싫어요. 강제로 이런 일을 시키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모르세요?”

 

스페이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오, 나는 다만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것을 알고 싶을 뿐이오. 그러니 어서 벗어보오.”

 

그녀는 스페이드의 움직이지 않는 회갈색 눈을 쳐다보았다. 차츰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이윽고 새파래졌다. 그녀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스페이드는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여자와 열려 있는 문을 번갈아 지켜보았다. 거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재빨리 요령있게 옷을 벗어 차례차례 발밑으로 떨어뜨렸다. 옷을 다 벗자 옷더미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태도는 반항적인 데도 없고 기가 죽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스페이드는 변기 뚜껑에 권총을 올려놓고 문쪽으로 향한 채 벗어놓은 옷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옷가지를 하나씩 집어들고 눈과 손가락으로 살폈다. 1천 달러 지폐는 나오지 않았다. 일이 끝나자 옷을 안고 들어가 그녀에게 내밀었다.

 

“고맙소, 이제 확실해졌소.”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에게서 옷을 받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권총을 집어들고 욕실문을 닫고는 거실로 돌아갔다.

 

개트맨은 흔들의자에서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찾았습니까?”

 

카이로는 젊은이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역시 묻고 싶은 듯한 검은 눈으로 스페이드를 바라보았다. 젊은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몸을 앞으로 굽히고 팔꿈치를 무릎 위에 세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고 발 밑의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개트맨에게 말했다.

 

“없었소. 당신이 감춘 거요.”

 

개트맨은 껄껄 웃었다.

 

“내가 감췄다고요?”

 

스페이드가 손에 든 권총을 잘그락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소. 그것을 인정하겠소, 아니면 신체검사를 받겠소? 어느 쪽을 택하겠소?”

 

“신체검사?”

 

“감춘 것을 인정하겠소, 아니면 나한테 신체검사를 받겠소? 제3의 길은 없소.”

 

개트맨은 스페이드의 험악한 표정을 올려보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당신한테는 못 당하겠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단한 인물이십니다. 이렇게 했다고 해서 언짢게 생각지 마십시오.”

 

“당신이 감췄소?”

 

“그렇습니다, 내가 감췄습니다.”

 

개트맨은 조끼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를 한 장 꺼내어 넓은 무릎에 펴 놓더니 윗옷 주머니에서 9장의 지폐가 든 봉투를 꺼내 그 속에 섞어 넣었다.

 

“나는 가끔 이런 장난을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훌륭한 성적으로 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사실 당신이 이처럼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진상을 밝히실 줄은 몰랐습니다.”

 

스페이드는 차가운 미소를 띠었으나 신랄함은 없었다.

 

“그런 장난은 저 꼬마만한 나이 또래나 하는 짓이오.”

 

개트맨은 껄껄 웃었다.

 

브리짓 오쇼네시는 코트와 모자만 빼고 모든 옷을 다시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거실 쪽으로 한 발 내디디다가 다시 부엌으로 가서 전등을 켰다.

 

카이로는 소파에서 젊은이 쪽으로 무릎을 내밀며 다시 뭐라고 소곤거렸다. 젊은이는 초조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스페이드는 손에 든 권총을 바라보고 있더니 흘끗 개트맨에게 눈길을 던지고 복도로 나와 칸막이장 앞으로 갔다. 장문을 열고 권총을 트렁크 위에 올려놓은 다음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장문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부엌문 앞으로 갔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알루미늄 커피포트에 더운 물을 따르고 있었다.

 

“다 찾았소?”

 

스페이드가 물었다. 오쇼네시는 얼굴로 들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녀는 커피포트를 옆에 놓고 문 앞으로 걸어왔다. 얼굴이 발그레했으며, 크게 뜨인 눈이 촉촉이 젖어 나무라는 듯한 빛을 달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해요. 나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사실을 알 필요가 있었던 거요, 아가씨.”

 

스페이드는 몸을 굽혀 그녀의 입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는 거실로 돌아갔다.

 

개트맨은 스페이드를 보자 웃는 얼굴로 흰 봉투를 내밀었다.

 

“머지 않아 당신 것이 될 테니 지금 받아두십시오.”

 

스페이드는 받지 않았다. 그는 팔걸이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소. 그리고 돈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나지 않았소. 나는 1만 이상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1만 달러면 큰 돈입니다.”

 

“나와 같은 말을 하고 있군요. 그러나 세상에는 이 돈만 있는 게 아니오.”

 

“물론이지요. 그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겨우 2, 3일 일하고 아주 안전하고 쉽게 손에 넣은 점을 생각하면 큰돈입니다.”

 

“내 일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시오?”

 

스페이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건 나 개인의 문제요.”

 

“옳은 말씀입니다.”

 

개트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부엌 쪽으로 머리를 흔들어 보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 아이하고 반씩 나눌 겁니까?”

 

“그것도 내 문제요.”

 

“그렇겠지요.”

 

뚱뚱한 사나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으나 잠시 망설이는 빛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한 마디 충고해 드리고 싶은데요…”

 

“말해 보시오.”

 

“반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신은 아마 저 여자에게 약간의 돈을 주겠지요. 그러나… 만일 말입니다. 저 여자의 기대보다 적은 액수를 줄 경우를 위해 한 마디 충고해 두겠는데…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스페이드의 눈에 비웃는 빛이 번뜩였다. 그는 물었다.

 

“그녀가 무섭소?”

 

“그렇습니다.”

 

스페이드는 히죽 웃으며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카이로는 아직도 젊은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다시 팔을 젊은이의 어깨로 돌렸다. 이때 갑자기  젊은이가 그 팔을 뿌리치고 소파에 앉은 채 레반트 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얼굴에 혐오와 분노가 넘치고 있었다. 그는 작은 손을 불끈 쥐어 카이로의 입가를 한 대 후려쳤다. 카이로는 여자 같은 비명을 지르며 소파 한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비단손수건을 꺼내 입에 대었다. 손수건을 떼자 피가 번져나와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손수건을 입에 대며 나무라는 듯한 눈길로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떨어져 있어!”

 

젊은이는 고함치더니 다시 머리를 감싸안았다. 카이로의 손수건에서 풍겨 나온 시프레 냄새가 방 안 가득히 번졌다.

 

카이로의 비명 소리를 듣고 브리짓 오쇼네시가 문 앞으로 달려왔다. 스페이드는 싱긋 미소짓고 엄지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랑에 따르기 마련인 치정싸움이오. 그런데 먹을 것은 어떻게 되었소?”

 

“다 되어가요.”

 

오쇼네시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스페이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개트맨에게 말했다.

 

“돈 이야기인데…”

 

“좋습니다.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그러나 미리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씀 드립니다만, 1만 달러란 나에게 있어 최선을 다한 액수입니다.”

 

스페이드는 연기를 내뿜었다.

 

“2만을 내놓으시오.”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내 손에 있기만 하면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나에게는 1만 달러가 전재산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시다시피 첫 번째 지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또…”

 

스페이드는 미소지었다.

 

“그야 나중에는 몇백만 달러라도 주겠지요. 그러나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 우선 1만 5천 달러면 어떻겠소?”

 

개트맨은 미소지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내둘렀다.

 

“스페이드 씨, 나는 솔직히 신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이 금액이 최대한의 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그럼, 절대로 안 됩니다.”

 

개트맨은 웃었다. 스페이드는 우울한 듯이 중얼거렸다.

 

“못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이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 받아두겠소.”

 

개트맨은 봉투를 내주었다. 스페이드가 돈을 세어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브리짓 오쇼네시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젊은이는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카이로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오쇼네시와 개트맨과 스페이드는 그녀가 준비한 달걀프라이와 베이컨과 토스트와 마멀레이드를 먹고 저마다 커피를 두 잔씩 마셨다. 그런 다음 천천히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개트맨은 잎담배를 피우며, 《미국 유명범죄사건집》이라는 책을 읽었다. 가끔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느낀 바를 말하기도 했다. 카이로는 입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며 소파 한 옆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젊은이는 4시가 지날 때까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은 채 앉아 있더니 이윽고 카이로 쪽으로 두 다리를 뻗고 얼굴을 창문 쪽으로 돌린 채 잠들어버렸다. 브리짓 오쇼네시는 팔걸이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개트맨이 말하는 감상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스페이드와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스페이드는 담배를 말아서 피우고 또 말아서 피우며 조금도 초조한 빛 없이 방안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가끔 브리짓이 앉은 의자의 팔걸이며 테이블 모서리며 그 발치며 수직으로 된 의자등받이 같은 곳에 걸터앉기도 했다. 그는 조금도 졸린 빛을 보이지 않았으며 기분이 좋은 데다 원기왕성했다.

 

5시 30분이 되자 스페이드는 부엌으로 가서 다시 커피를 끓여왔다. 그리고 나서 30분쯤 지나자 젊은이가 몸을 움직여 잠에서 깨어나 하품을 하며 윗몸을 일으켰다. 개트맨은 시계를 보고 스페이드에게 물었다.

 

“아직도 가지고 올 수 없습니까?”

 

“한 시간만 더 기다려 주시오.”

 

개트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7시가 되자 스페이드는 전화기 앞으로 가서 에피 필라인의 번호를 돌렸다.

 

“여보세요. 필라인 부인이십니까? …나는 스페이드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에피 양을 불러주시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휘파람으로 ‘맨 큐바’ 의 곡을 두 소절쯤 낮게 분뒤 다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아, 예쁜이요? 깨워서 미안하군. …물론 원기왕성해. 다름이 아니라 우체국 유치홀랜드 사서함에 내가 겉봉을 쓴 봉투가 있을 거요. 그 속에 픽윅 버스의 수하물표가 들어 있소. …그 꾸러미를 맡긴 표요. 그것으로 꾸러미를 찾아 나에게 갖다주오. 아주 급히… 그렇지, 내 아파트로… 착하지, 우리 예쁜이… 서두러 주오. …안녕!’

 

8시 10분 전에 건물 바깥 현관 벨이울렸다. 스페이드는 송화구 앞으로 가서 자동으로 열리는 버튼을 눌렀다. 개트맨은 책을 내려놓고 미소지으며 일어섰다.

 

“문 앞까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좋소.”

 

스페이드가 대답했다.

 

개트맨은 뒤를 따라 현관문 앞까지 갔다. 스페이드가 문을 열었다.

 

에피 필라인이 갈색 종이꾸러미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녀의 남자아이 같은 얼굴이 즐거운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다리듯이 재빨리 오고 있었다. 개트맨에게는 흘긋 눈길을 던졌을 뿐이었으나 스페이드에게는 생글생글 미소짓는 얼굴을 보이며 종이꾸러미를 내주었다.

 

“아아, 수고했소, 에피! 미안하오, 모처럼의 휴일에 쉬지도 못하게 하고. 하지만 이것은…”

 

“괜찮아요.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으나 스페이드가 들어오라고 할 것 같지 않자 물었다.

 

“또 시킬 일은 없으세요?”

 

스페이드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제 됐소. 고맙소, 에피.”

 

“안녕…”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돌아갔다.

 

스페이드는 문을 닫고 종이꾸러미를 거실로 가져갔다. 개트맨의 얼굴이 불그레해지고 볼이 떨렸다. 스페이드가 꾸러미를 테이블에 놓자 카이로와 브리짓 오쇼네시가 다가왔다. 모두들 흥분했다. 젊은이도 파리하니 긴장된 얼굴로 일어섰으나 소파 앞을 떠나지 않고 바짝 치켜 올라간 속눈썹 밑으로 모두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자아, 기다리던 물건이오!”

 

스페이드는 테이블에서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개트맨의 굵은 손가락이 신나게 끈과 포장지와 대팻밥을 처리했다. 그는 검은 새를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아아, 17년, 17년만의 만남이구나!”

 

그는 쉰 목소리로 외쳤다. 두 눈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카이로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도 카이로도 개트맨도 스페이드도 젊은이도 -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방 안 공기는 썰렁하니 탁하고 담배연기로 흐려져 있었다.

 

개트맨은 다시 새를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주머니를 더듬었다.

 

“분명히 이것이오. 그러나 만일을 위해 확인해 봐야지.”

 

그의 둥근 볼에서 땀이 반짝였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금빛 주머니칼을 꺼내 폈다.

 

카이로와 여자는 그 양쪽에 바싹 붙어 서 있었다. 스페이드는 조금 물러나 젊은이와 테이블 앞의 세 사람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는 곳에 섰다.

 

개트맨은 새를 거꾸로 들더니 대좌(臺座)의 가장자리를 칼로 깎았다. 검은 에나멜이 조금씩 벗겨지고 그 밑에서 검은 쇠붙이가 나타났다. 개트맨의 칼날이 그 쇠붙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구부러진 얇은 조각을 하나 깎아냈다. 그 떨어져나온 조각의 안쪽도 깎아낸 뒤에 남은 좁은 면도 흐릿한 회색의 납이었다.

 

개트맨의 숨소리가 꽉 다문 잇새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얼굴은 피가 치솟아 부풀어올랐다. 새의 조각을 홱 돌리더니 이번에는 머리를 잘랐다. 그곳도 칼날에 깎여나온 것은 납조각이었다. 그는 칼과 새를 테이블 위에 집어던지고 스페이드 쪽을 돌아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가짜요!”

 

스페이드는 얼굴을 잔뜩 지푸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나 동시에 재빨리 한쪽 팔을 내뻗어 브리짓 오쇼네시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를 홱 끌어당기자 다른 한쪽 손을 그녀의 턱을 잡고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스페이드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알았소! 이건 당신의 장난이지? 자아, 모든 것을 자백하는 게 좋을걸!”

 

그녀는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요, 샘.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케미도프에게서 가지고 온 건 이거에요. 맹세코 말하지만…”

 

조엘 카이로가 스페이드와 개트맨 사이에 끼어들어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알았소! 알았소! 그 로스케 녀석의 짓이오! 큰일났군. 그 녀석을 속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쪽에서 속다니!”

 

눈물이 레반트 인의 볼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 했다. 그는 개트맨을 향해 악을 썼다.

 

“당신이 서투른 짓을 했소. 그걸 놈들에게서 사려는 것부터가 바보짓이었소. 이 얼빠진 뚱뚱보! 당신이 그 값어치를 일러준 거나 마찬가지요. 그는 값비싼 것임을 알자 진짜와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어 우리를 속인 거요!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쉽게 훔쳐내올 수 없었겠지! 그러니까 내가 새를 찾아 온 세계를 돌아다닐 거라고하자 그가 기뻐하며 보내준 거요! 이 바보 같은 사람! 돼지 같은 미련이!”

 

그는 두 손을 얼굴에 대고 소리내어 울었다.

 

개트맨은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눈이 멍청하게 깜박였다. 이윽고 부르르 몸을 떨더니, 흔들리던 얼굴의 알뿌리가 멎을 무렵 본디의 명랑한 뚱뚱보로 되돌아갔다. 그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와서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일일세. 누구든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지. 이건 내게도 큰 타격일세. 그것만은 알아줘야 하네. 이건 그 러시아인의 속임수였네, 틀림없이. 그래,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여기서 이렇게 울고불고 욕만 퍼부을 생각인가? 아니면…”

 

그가 말을 끊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떠올렸다.

 

“모두들 다시 콘스탄티노플로 갈 텐가?”

 

카이로는 얼굴에서 두 손을 떼었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뭐, 뭐라고…?”

 

상대방의 의도를 알자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혀버린 듯했다.

 

개트맨은 퉁퉁한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눈이 번쩍거렸다. 그의 쉰 목소리는 참으로 즐겁게 울렸다.

 

“17년 동안 나는 이 작은 물건이 탐나 갖은 고생을 다해왔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1년쯤 더 고생해야 한다 해도… 그렇지… 시간적으로는 그리 긴 게 아닐세.”

 

그는 말을 끊고 입술을 움직여 계산해 보았다.

 

“즉 5와 17분의 15퍼센트만큼만 더 소비하면 되니까.”

 

“나도 함께 갑시다!”

 

레반트 인은 소리내어 웃으며 소리쳤다.

 

갑자기 스페이드가 여자의 손목을 놓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젊은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복도로 나가보았다. 홀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스페이드는 기분나쁜 듯 입을 삐죽이 내밀며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는 문턱에 기대서서 개트맨과 카이로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찡그린 얼굴로 개트맨을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상대방의 걸걸한 목소리를 흉내내어 말했다.

 

“정말이지 당신들은 굉장한 도둑들이시군!”

 

개트맨은 껄껄 웃었다.

 

“그다지 자랑할 만한 건 못됩니다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고, 이 정도의 실패에 세상이 끝장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등으로 돌리고 잇던 왼손을 앞으로 빼내 핑크 빛 살덩이가 불룩 솟은 매끄러운 손바닥을 위로 하여 스페이드 쪽으로 내밀었다. 스페이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굴표정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다했소. 당신은 물건을 손에 넣었고, 그것이 목적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당신이 운이 나빴던거지 내 탓은 아니오.”

 

개트맨이 설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보시오, 스페이드 씨. 이것은 우리 모두의 실패입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에게만 책임지우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는 등 뒤로 돌렸던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에서 소형권총이 번쩍이고 있었다. 금과 은과 진주로 코끼리 눈 장식을 만들어 단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돈 1만 달러를 돌려주십시오.”

 

스페이드는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머니 속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개트맨에게 내밀던 손을 잠깐 멈추었다. 봉투를 벌리고 1천 달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다음 나머지 지폐가 든 봉투를 접어 개트맨에게 내밀었다.

 

“내 보수로 실비(實費)를 받은 거요.”

 

개트맨은 잠깐 망설이더니 스페이드처럼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봉투를 받았다.

 

“그럼, 이로써 당신과도 헤어져야겠군요. 그러나…”

 

그의 눈 가장자리 군살에 주름이 잡혔다.

 

“우리와 함께 콘스탄티노플 원정에 참가하실 생각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만…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꼭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아무튼 당신은 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치있고 판단력이 뛰어난 분이니까요. 당신의 판단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도 안심하고 헤어질 수 있습니다. 왜나하면 당신이라면 우리의 이 자그마한 사업에 대해 반드시 비밀을 굳게 지켜주시리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요 며칠 동안 일어난 사건에 관련되어 우리 몸에 갖가지 법률상의 문제가 덮쳐왔지만, 지금으로서는 모두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 그런 문제에 대해 잘 아시리라 안심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소.”

 

스페이드가 대답했다.

 

“그러시겠지요. 그건 그렇고 - 이렇게 되어 선택할 여지도 없어진 지금 경찰에 새삼 미끼라는 것을 던져주지 않아독 당신 손으로 잘 처리해 주시겠지요?”

 

“잘해보겠소.”

 

“고맙습니다. 그럼, 작별인사는 짧을수록 좋겠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스페이드 씨.”

 

개트맨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오쇼네시 양, 당신도 안녕히 계십시오. 보잘것없는 물건이지만 기념으로 당신에게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그 테이블에 있는 새를 그냥 두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