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
스페이드는 두 팔로 브리짓 오쇼네시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 너머로 싱긋 미소지어 보였다.
“좋겠지, 이야기해 봅시다.”
개트맨이 문에서 비틀비틀 세 발자국 물러나자 그 얼굴의 알뿌리들이 뒤룩뒤룩 움직였다. 스페이드는 오쇼네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젊은이와 카이로가 들어왔다. 카이로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젊은이는 권총 한 자루를 집어넣고 스페이드 뒤를 바싹 따라갔다.
스페이드는 고개를 홱 돌려 어깨 너머로 젊은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비켜서지 못해! 자네한테 신체검사를 당할 것 같나?”
“움직이지 마. 시끄러워!”
젊은이도 소리쳤다. 숨쉬는 대로 스페이드의 콧방울이 벌름거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침착했다.
“꺼져!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려봐. 그 권총으로 네 배때기를 쏘게 될 테니까.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나를 쏘아도 되는지 보스한테 물어봐!”
“윌머, 치워!”
개트맨은 스페이드를 향해 거만하게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 당신은 보기드물게 강심장이오. 아무튼 앉읍시다.”
“저 조무래기는 마음에 안 든다고 했잖소!”
스페이드는 브리짓 오쇼네시를 창가 소파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머리를 스페이드의 왼쪽 어깨에 기대고 스페이드는 왼팔로 그녀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그녀는 이제 떨지도 않고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다. 개트맨과 그의 동료가 나타남으로써 동물적인 동작과 감정이 자유를 잃어 지금은 마치 식물처럼 목숨과 감각은 있지만 마비된 상태였다.
개트맨은 쿠션이 놓이 흔들의자에 앉았다. 카이로는 테이블 옆에 있는 팔걸이의자를 택했다. 윌머는 앉지 않았다. 지금까지 카이로가 서 있던 문 앞에 서서 주머니에 넣지 않은 손에 든 권총을 옆으로 늘어뜨리고 긴 속눈썹 밑으로 물끄러미 스페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이로는 권총을 자기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스페이드는 모자를 벗어 소파 한 옆으로 집어던졌다. 그는 개트맨을 보고 히죽 웃었다. 늘어진 아랫입술과 축 처진 눈꺼풀이 얼굴의 V자와 한데 어울려 그 미소를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반은 인간, 반은 짐승인 신)의 미소처럼 음란한 느낌을 들게 했다.
“당신 딸은 배가 예쁘던데요. 그런데 핀으로 긁어서야 되겠소?”
개트맨은 - 겉으로는 그랬지만 -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젊은이가 권총을 허리께까지 들어올리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브리짓 오쇼네시와 조엘 카이로는 저마다 다른 눈초리로 젊은이를 보았으나 이상하게도 비난하고 있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젊은이는 얼굴을 붉히고 내디뎠던 발을 다시 끌어들이며 두 다리를 쭉 폈다. 이윽고 그는 권총을 내리고 본디 자세로 돌아가더니 긴 속눈썹 밑으로 스페이드의 가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굴을 붉힌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여느 때의 차갑고 침착한 얼굴로 미루어보아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개트맨은 윤기 있는 눈에 넘칠 듯이 미소를 띠며 스페이드를 쳐다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상냥하게 말했다.
“정말 부끄럽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목적을 훌륭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정하시겠지요?”
스페이드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아니, 헛수고였습니다. 나는 매가 손에 들어오는 대로 곧 당신을 만날 예정이었으니까요. 당신은 현금을 지불할 손님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내가 밸링겜에 간 것도 이런 모임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소. 설마 당신이 30분이나 지나 나를 따돌리려고 잔꾀를 부릴 줄은 몰랐소. 벌써 그전에 재코비 선장이 나한테 온 것도 모르고…”
개트맨은 깔깔 웃었다. 자못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그건 어찌되었든 지금 이렇게 모이면 당신 소원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당신은 언제 계약금을 치르고 나한테서 매를 가져갈 작정이오?”
오쇼네시가 몸을 꼿꼿이 세우고 깜짝 놀란 듯한 파란 눈으로 스페이드를 쳐다보았다. 스페이드는 무관심하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을 뿐 눈은 개트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개트맨의 눈이 불룩하게 솟은 살덩이 밑에서 번쩍번쩍 즐거운 듯이 빛났다.
“글쎄요, 거기에 대해서는…”
개트맨은 윗옷 가슴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카이로는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윗몸을 내밀었다. 멍하니 벌린 입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검은 눈이 라커칠을 한 듯 반짝였다. 그 눈이 경계하듯 스페이드의 얼굴에서 개트맨의 얼굴로 그리고 다시 스페이드의 얼굴로 초점을 옮겨갔다.
개트맨은 다시 한 번 되뇌며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글쎄요, 거기에 대해서는…”
열 개의 눈이 - 젊은이의 눈은 거의 속눈썹에 가려져 있었지만 - 그 봉투로 쏠렸다. 개트맨은 퉁퉁한 손으로 봉투를 뒤집어 아무 것도 씌어 있지 않은 표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뒤집었다. 봉투는 봉하지 않고 안쪽으로 접어넣었을 뿐이었다. 그는 머리를 들고 싱긋 미소지으며 봉투를 스페이드의 무릎 위로 휙 던졌다.
봉투는 그다지 두둑하지 않았으나 던지면 겨냥한 곳으로 떨어질 만큼의 무게는 있었다. 봉투는 스페이드의 가슴 밑에 맞고 무릎 위로 떨어졌다. 스페이드는 천천히 봉투를 집더니 오쇼네시의 어깨에서 왼 팔을 내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펴보았다. 그 속에는 1천 달러 짜리 지폐가 몇 장 들어 있었다. 손이 베어질 듯한 새 지폐였다. 스페이드는 그 돈을 꺼내 세었다. 10장이었다. 스페이드는 히죽 웃으며 얼굴을 들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저번 이야기로는 더 많은 금액이었던 것 같은데요…”
개트맨이 동의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때는 말로만 한 것이었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어느 나라에 가든지 쓸 수 있는 진짜 돈입니다. 말로 하는 10달러보다 여기 있는 1달러가 훨씬 가치 있지요.”
소리없이 웃는 미소 때문에 온 얼굴의 알뿌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 진동이 멎자 개트맨은 더욱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와서 보니 관계된 사람의 수가 많아져서요.”
개트맨은 번쩍거리는 눈과 우둥퉁한 얼굴을 움직여 카이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말하자면… 사정도 달라졌지요.”
개트맨이 지껄이고 있는 동안 스페이드는 10장의 지폐를 가지런히 하여 봉투에 집어넣은 다음 위쪽을 속으로 꺾어넣었다. 그리고 몸을 굽혀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봉투 끝을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 두 다리 사이에 늘어뜨렸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긴, 그렇군. 당신네들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양이지만, 매를 가지고 있는 건 나요.”
조엘 카이로가 말참견했다. 보기흉한 손으로 의자팔걸이를 잡고 몸을 내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스페이드 씨. 분명히 당신은 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은 우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스페이드는 히죽 웃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소.”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봉투를 한 옆 소파 위에 올려놓으며 개트맨을 보았다.
“돈에 대한 건 나중에 결정합시다.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소. 미끼가 될 사람이 하나 필요하오.”
그 뜻을 미처 못 알아들은 듯 뚱뚱한 사나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스페이드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희생양을 구하고 있소. 그 세 사람을 죽인 살인사건의 죄를 뒤집어 쓸 사람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카이로가 허둥거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 두 사람 뿐이오, 살인은. 당신의 동료를 죽인 것은 틀림없이 새스비입니다.”
“좋소. 그럼, 둘이라고 해도 좋소.”
스페이드는 외치듯 말했다.
“그렇다고 뭐가 다르오? 문제는 경찰 앞에 바칠 희생양이…”
이번에는 개트맨이 나섰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스페이드 씨,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당신에 대해 보고 들은 것으로 미루어 그 문제로 우리가 골치를 앓을 필요는 없는 것 같소. 경찰을 다루는 일이야 당신에게 맡기면 문제 없을 테니까요. 우리 같은 문외한이 참견할 일은 아니겠지요.”
“그게 당신의 생각이오? 그렇다면 당신들은 나를 잘 모르고 있소.”
스페이드가 말했다.
“스페이드 씨, 지금 이 단계에 와서 당신이 경찰이 무섭다느니 조종할 수 없다느니 한다고 해서 그런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스페이드는 콧소리를 냈다.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두 팔을 무릎에 올려놓더니 화가 난 듯 개트맨에게 덤벼들었다.
“내가 경찰을 무서워할 것 같소? 그들을 조종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소.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오. 알겠소? 그들을 조종하려면 미끼를 던져주어야 하오. 기꺼이 덤벼들 만한 사람을 하나…”
“물론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그러나라니! 방법은 그것밖에 없소.”
스페이드의 뻘게진 이마 밑에서 두 눈이 열기를 띠었다. 관자놀이의 상처가 검붉어졌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말이 아니오. 지금까지도 그런 방법으로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갈 작정이오. 때로는 최고재판소에서 하급재판소까지 온갖 사람과 논쟁을 벌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소. 그래도 문제없이 뚫고 나왔소. 내가 뚫고나온 건 마지막 심판날이 온다는 것을 잊은 적이 없기 때문이오. 드디어 그 날이 오면 희생자를 한 사람 내세우고 경찰로 찾아가는 거요. ‘자아, 눈 뜬 장님들아, 이 사람이 범인이야!’ 하고 말이오. 그러면 육법전서의 어떤 법률을 들고 나와도 코웃음쳐 줄 수 있소. 단 이 일에서 실패하면 그로써 끝장이오. 곧 파멸하는 거요. 다행히도 그런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 일로 마지막 길을 밟고 싶지는 않소. 내가 할 말은 이제 다 했소.”
개트맨의 눈에 반짝 빛이 치닫더니 그 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풀어오른 핑크 빛 얼굴에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으며, 그 목소리에도 불안한 빛이 전혀 없었다.
“그거 참, 좋은 방법이로군요. 정말 단수가 높은 방법입니다! 따라서 이번 문제도 그 방법을 쓸 수만 있다면 내가 앞장서서 ‘꼭 그 방법을 써주십시오’ 하고 부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 방법을 쓸 수 없는 케이스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방법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예외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지요. 현명한 사람은 자진해서 그 예외를 인정할 겁니다. 이번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만, 만일 당신이 이 예외를 인정해 주신다면 그 대신 그만한 보수는 충분히 지불해 드릴 작정입니다. 물론 경찰에 미끼를 던져 주는 일에 비하면 당신의 수고가 얼마쯤 더 많아지겠지요. 그러나…”
개트맨은 웃으면서 두 손을 펴보였다.
“당신은 조금의 수고를 두려워할 분이 아닙니다. 일의 요령도 알고 계실 테고, 만일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마지막에는 무사히 뚫고 나갈 수 있는 분입니다.”
그는 입을 오므리고 한쪽 눈을 조금 감아보였다.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
스페이드의 눈에서 열기가 사라졌다. 얼굴도 생기가 없고 우울해 보였다.
“앞뒤 생각없이 지껄이는 게 아니오.”
그것은 의식적으로 감정을 누른 낮은 목소리였다.
“이곳은 내 고장이오. 내 관할구역이란 말이오. 물론 하려고만 들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요, 이번만은.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되겠소? 내가 좋은 방법을 쓰려고 해도 그들에게 선수를 빼앗겨 꼼짝없이 당할 거요. 그러면 나는 파멸이오. 당신들은 뉴욕이나 콘스탄티노플로 도망쳐버리겠지만, 나는 이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오.”
“하지만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스페이드는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안 되오. 나는 싫소. 딱 질색이오.”
그는 몸을 일으켜 다시 고쳐앉았다. 생기없는 우울한 표정이 사라지고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 설득하는 말투로 재빨리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들으시오, 개트맨 씨. 내가 하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방법이오. 만일 여기서 경찰에게 범인이나 미끼를 던져주지 않으면 그들은 십중팔구 매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될 거요. 그렇게 되면 어디에 있든 당신들은 매와 함께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되겠지요. 그러면 매를 팔아 큰 돈을 벌 수도 없소. 그러나 미끼만 건네주면 그들은 곧 이 문제에서 손을 뗄 거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개트맨은 동의했으나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그들이 거기서 손을 떼어줄까요? 그 반대로 미끼가 새로운 단서가 되어 매에 대해 눈치채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지금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으니 오히려 이대로 내버려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두 갈래로 갈라진 정맥이 스페이드의 이마에 부풀어 올랐다.
“바보 같은 소리 그만두시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
화를 꾹 참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들은 잠자고 있는 게 아니오.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오. 잊지 마시오. 내가 이 사건에 깊이 관련된 것도 알고 있소. 물론 급할 때 내가 쓸 방법이 있는 동안은 안심이오. 하나 대비할 강구책이 없다면 그렇게 할 수도 없소. 거기서 끝나는 거요.”
그의 목소리에는 다시 설득하는 듯한 말투가 되살아났다.
“잘 들으시오, 개트맨 씨. 미끼를 던져주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오. 그밖에 길이 없소. 어떻소, 저 젊은이를 미끼로 넘겨주면?”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젊은이를 향해 재미있다는 듯 턱을 치켜올려 보였다.
“사실 저 자가 두 사람을 죽였잖소. 새스비와 재코비 선장을. 안 그렇소? 아무래도 이 역할은 저 자에게 꼭 맞을 것 같소. 필요한 증거와 더불어 경찰에 넘겨버립시다.”
입구에 서 있는 젊은이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보기에 따라서는 살짝 미소짓는 것 같기도 했다. 스페이드의 제안도 그 이상의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았다. 조엘 카이로는 기가 막힌 듯 검은 얼굴에 입을 멍하니 벌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여자처럼 불룩한 가슴을 크게 움직여 입으로 숨을 쉬며 스페이드의 얼굴을 멍청히 쳐다보고 있었다. 브리짓 오쇼네시는 스페이드에게서 몸을 떼어내더니 소파에서 몸을 틀어 그를 쳐다보았다. 놀란 나머지 금방이라도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개트맨은 한동안 꼼짝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웃기로 결심했는지 뱃속에서 울려나오는 큰 소리로 오랫동안 웃었다. 그 윤기있는 눈에도 웃음이 번져 즐거운 빛을 보일 때까지 그는 계속 웃어댔다. 이윽고 웃음이 멎자 그는 말했다.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굉장한 분입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았다.
“정말 무슨 일을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하는 일마다 모두 깜짝 놀라게 만드니…”
“그렇다고 웃을 게 뭐 있소.”
스페이드는 뚱뚱한 사나이가 웃었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동요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고집이 세기는 하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친구를 타이르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오. 저 녀석을 경찰에 넘겨주면 그쪽에서…”
그러나 개트맨은 반대했다.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만일 내가 그럴 마음이 생겼다고 해도 말입니다 - 그것은 생각하는 것만도 어리석은 일이지요 - 아무튼 나에게 있어 윌머는 친자식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정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만일 내가 당신의 제안에 동의할 마음이 생겼다 하더라도 윌머가 매와 우리에 대한 일을 경찰에 숨김없이 다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체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스페이드의 입술이 굳어지며 히죽 웃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면 체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죽이는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소. 마음대로 지껄이게 내버려 두면 되는 거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게. 그건 내가 보장하겠소. 그만한 일을 하는 것쯤은 식은죽먹기니까.”
개트맨의 이마에 불거진 핑크 빛 살덩이가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험악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머리를 숙여 턱의 살덩이를 깃 속에 쑤셔박듯이 내리누르며 물었다.
“어떻게?”
그러더니 뚱뚱한 사나이는 갑자기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 바람에 온 얼굴의 알뿌리들이 서로 부딪쳐 부르르 떨렸다. 그는 느릿느릿 목을 돌려 젊은이를 쳐다보더니 터무니없이 크게 웃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윌머? 이상하지 않은가, 응?”
젊은이의 눈이 속눈썹 밑에서 차가운 연갈색으로 빛났다. 그는 나직하고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습지도 않습니다 - 개새끼!”
스페이드는 브리짓 오쇼네시에게 말을 걸었다.
“좀 어떻소, 아가씨? 이젠 괜찮소?”
“네,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오쇼네시는 1미터쯤 떨어져 있으면 거의 알아들을 수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무서워요.”
“무서워할 건 없소.”
스페이드는 아무렇게나 말하고 회색 양말을 신은 여자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대단한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어떻소, 한잔하겠소?”
“지금은 싫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조심하세요, 샘.”
스페이드는 싱긋 웃으며 개트맨을 쳐다보았다. 개트맨은 아까부터 스페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미소를 띤 채 한동안 아무말도 없었으나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말이오?”
스페이드는 그 뜻을 못 알아차린 듯했다.
“뭘 말이오?”
뚱뚱한 사나이는 다시 한 번 크게 웃을 필요성을 느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만일 당신이 정말 진지하게 그 이야기 - 즉 지금 말한 당신의 제안 말이오 - 를 꺼냈다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이 적어도 예의가 아닐까요? 그래서 말인데, 대체 당신은 어떻게 해서 윌머가…”
그는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손쓸 작정입니까?”
스페이드는 고개를 내둘렀다.
“나는 예의라는 게 세상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걸 이용할 생각은 조금도 없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오.”
뚱뚱한 사나이는 얼굴의 알뿌리를 모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당황하여 항의했다.
“잠깐! 그렇게 말하면 곤란합니다. 웃은 것은 잘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비록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 스페이드 씨, 내가 당신의 제안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해입니다. 아무튼 나는 당신의 그 빈틈없는 솜씨에 최대의 존경과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까요. 다만 나로서는 당신 제안이 아무래도 설명하기 힘든 일이 아닌가 생각되었을 뿐입니다. 내가 윌머를 친자식처럼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 가능하다면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 그리고 나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표시로서 이 기회에 나머지 이야기를 꼭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스페이드가 대답했다.
“알았소. 브라이언은 흔히 볼 수 있는 지방검사요. 자기 성적이 어떻게 기록에 남느냐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지요. 따라서 자신없는 사건이면 서투르게 재판하여 체면을 잃느니보다 깨끗이 체념해 버리는 편이오. 그런 사람이니만큼 자신이 무죄라고 믿는 사람을 일부러 죄인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유죄의 증거를 수집할 경우에는 결코 그 사람을 무죄라고 생각지 않소. 그리고 공범자가 여럿 있는 경우 그들의 죄상을 다 입증하려면 오히려 성가시니까 확실한 한 사람을 기소해 놓고 다른 공범자는 몇 사람이 되든 태연하게 눈감아주지요. 그러므로 그런 미끼를 던져주자는 거요. 보나마나 좋아라고 덤벼들 거요. 매에 대한 일은 알려고도 하지 않을 거요. 저 젊은이가 아무리 매에 대해 지껄여도 사건을 얼버무리려는 속임수로 믿어버릴 테지요. 그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 맡겨두시오. 내가 그에게 알아듣도록 설명할테니. 만일 그가 관계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면 사건은 혼동을 일으켜 배심원에게 혼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꼬마 하나를 상대하면 쉽게 유죄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고 가르쳐줄 거요.”
개트맨은 찬성할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미소지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글쎄요.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걸요. 아니, 그건 전혀 무리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지방검사도 아무 단서 없이 새스비와 재코비와 윌머를 결부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당신은 지방검사라는 이들을 잘 모르는군요. 새스비의 선은 간단하오. 그는 본디 갱단에 있었고, 당신 밑에 있는 저 애송이도 그렇지 않소? 브라이언은 이미 가능성을 내세우고 있소. 따라서 이야기는 술술 진행될 거요. 그런데 애송의의 목을 두 번 맬 수는 없는 일이오. 새스비 살해범으로 한 번 사형선고를 받은 자를 재코비 살해범으로 다시 재판에 넘길 수는 없소. 그들은 기록에 조금 덧붙여 써넣고는 끝내버릴 거요. 저 애송이가 양쪽에 같은 총을 썼다면 총알도 꼭 맞을거요. 모두들 그것으로 만족하겠지요.”
“하긴 그렇겠지만, 그러나…”
말을 하다 말고 개트맨은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윌머가 문 앞에서 걸어왔다. 굳어진 두 다리를 벌린 채 어색하게 걸어와 개트맨과 카이로 사이인 거의 방 한가운데까지 왔다. 그는 거기서 걸음을 멈추더니 허리 윗부분을 조금 구부려 두 어깨를 앞으로 내밀었다. 권총을 여전히 몸 옆에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총을 쥔 손가락의 관절이 하앴다. 또 한쪽 손은 반대쪽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함이 오히려 흰 얼굴에 나타난 이글거리는 증오와 차가운 악의에 사악하고 잔인한 느낌을 갖게 했다.
그는 스페이드를 향해 격한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 새끼야, 일어나! 권총을 가져와!”
스페이드는 싱긋 미소지었다. 큰 웃음은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즐기는 듯한 미소였다. 젊은이는 소리쳤다.
“이 새끼! 용기가 있으면 덤벼봐! 내버려두니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 더 이상 못 참겠어.”
스페이드의 미소띤 얼굴에 점점 재미있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개트맨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도 미소처럼 즐겁게 울렸다.
“생각지도 않은 서부극이군. 그러나 매를 손에 넣기 전에 나를 쏘면 장사를 망친다는 사실을 가르쳐줘야겠소.”
개트맨은 미소지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웃어지지 않고 찡그려졌을 뿐이었다. 그는 메마른 입술을 메마른 혀로 핥았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자식을 타이르는 듯한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윌머, 그만두게. 이런 일에 그처럼 신경쓰면 안 되네. 자네는…”
젊은이는 스페이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입 한끝으로 목을 죄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이 새끼가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언제까지나 허튼 소리를 늘어놓으면 배때기에 구멍을 내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누가 뭐래도 나는 전혀 남의 말을 듣지 않겠소!”
“윌머!” 하고 소리치며 개트맨은 스페이드 쪽으로 돌아앉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다시 침착을 되찾았다.
“처음에 말했듯이 당신 계획은 도저히 실행에 옮길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기로 합시다.”
스페이드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미소가 사라지고 얼굴이 무표정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오.”
“물론이지요. 누구시라고!”
개트맨이 재빨리 대답했다.
“내가 늘 감탄하고 있는 것도 그 점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문제는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실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야기해 봐야 헛일 일겁니다. 그건 당신도 아시겠지요.”
“아시지를 못하겠소. 알려주지도 않았고, 알려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스페이드는 개트맨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야기를 분명히 합시다. 당신과 지껄이는 것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 거요? 이 모임은 당신이 주최한 것이잖소? 내가 저 꼬마와 결판을 내야 한단 말이오? 그 방법이야 알고도 남겠지만.”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와 교섭하면 됩니다.”
“좋소,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제안이 있소. 처음 것만큼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들어볼 생각이 있소?”
“물론이지요.”
“카이로 씨를 넘겨주시오.”
이번에 당황한 것은 카이로였다. 급히 권총을 옆 테이블에서 집어들었다.
그는 권총을 무릎 위에서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총구가 소파한 옆으로 조금 치우쳐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얼굴이 다시 노래졌다. 검은 눈이 두리번두리번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로 옮겨졌다. 넋을 잃고 있어 눈이 납작하니 평면적으로 보였다.
개트맨이 도저히 자기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요?”
“카이로 씨를 경찰에 넘겨주는 거요.”
개트맨은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웃지는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크게 소리쳤다.
“아아!”
그러나 그는 애매하게 말 끝을 얼버무렸다.
“꼬마를 넘겨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아니오. 카이로 씨는 갱도 아닐 뿐더러 그의 권총은 새스비와 재코비를 쏜 것보다 작으니까요. 따라서 카이로 씨를 범인으로 만들려면 상당히 힘들지만, 그래도 경찰에 아무도 넘겨주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카이로가 격분하여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스페이드 씨, 그렇다면 당신이나 오쇼네시 양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꼭 누군가를 넘겨주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스페이드는 레반트 인에게 미소지어 보이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에게는 매가 필요하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은 나요. 경찰에게 던져줄 미끼는 내가 청구할 매값의 일부요. 그리고 오쇼네시 양은…”
그는 무표정한 눈으로 그녀의 곤혹스러워하는 파리한 얼굴을 흘끗 쳐다본 다음 눈길을 카이로에게로 돌렸다. 두 어깨가 조금 올라가는 듯하더니 도로 내려왔다.
“당신이 정말로 이 여자가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기꺼이 의논상대가 되어주겠소.”
오쇼네시는 두 손을 목에 대고 목이 죄었을 때 같은 소리를 짤막하게 지르더니 스페이드에게서 좀 떨어졌다.
카이로는 흥분한 나머지 얼굴과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고함쳤다.
“잊어버리고 있는 모양인데, 당신은 이러니저리니 주장할 만한 입장이 못 됩니다.”
스페이드는 크게 웃으며 비웃듯이 코웃음쳤다. 개트맨은 험악해진 공기를 애써 부드럽게 하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아, 여러분, 좀더 다정하게 이야기합시다. 그러나…”
그는 스페이드를 보았다.
“카이로 씨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그점을 생각해서…”
“생각이라니, 무슨 말이오?”
스페이드의 말투는 난폭하고 내팽개치는 듯하며 좀 기묘했다. 그리하여 가식적인 과장을 섞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게있게 들렸다.
“만일 나를 죽이면 어떻게 새를 손에 넣겠소? 새가 손에 들어가기 전에는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위협한다고 해서 내가 내놓겠소?”
개트맨은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말없이 이 문제를 생각했다. 가늘게 내려뜬 눈꺼풀 속에서 눈이 번쩍거렸다. 이윽고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죽이겠다고 위협하거나 죽이지 않고도 설득하는 방법이 있지요.”
“그렇소.”
스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도 죽음이라는 위협이 이면에 있어야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거요. 그것이 없는 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요. 알겠소, 무슨 말인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하면 나도 용서할 수 없단 말이오. 즉 깨끗이 새를 단념하든가 아니면 나를 죽이든가 둘 중 하나인데,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 아니오?”
개트맨은 껄껄 웃었다.
“잘 알았습니다. 아주 미묘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군요. 아무튼 당신도 아시다시피 사람이란 행동에 열중하다 보면 자기의 이해관계도 잊어버리고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스페이드 역시 얼굴에 조용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로서는 바로 그 점에서 실력을 보이고 싶소. 상대방에게 내 말을 듣게 하려면 줄기차게 밀고 나가야 할 테고, 그렇다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로 흥분케 하여 죽이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면 끝장이 날 테니…”
“정말 당신은 굉장한 사람입니다!”
개트맨은 그에게 반한 듯이 말했다.
조엘 카이로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위머의 뒤를 돌아 개트맨의 의자 뒤로 갔다. 그는 개트맨이 앉은 의자등받이 위로 몸을 내밀고 권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입과 개트맨의 귀를 가리며 소곤거렸다. 개트맨은 눈을 감고서 열심히 듣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브리짓 오쇼네시를 보고 미소지었다. 그녀도 마지못해 웃어보였으나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없었다. 스페이드는 젊은이를 돌아 보았다.
“여보게, 베이비. 이 두 사람은 자네를 팔아넘길 의논을 하고 있는 거야.”
젊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릎이 와들와들 떨려 바지까지 떨렸다. 스페이드가 개트맨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 조무래기가 휘두르는 권총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개트맨은 눈을 떴다. 카이로는 귀엣말을 멈추고 뚱뚱한 사나이의 의자 뒤에 똑바로 섰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서 권총을 빼앗는 일쯤은 식은죽먹기요. 그러니까 문제없소. 꼬마쪽은…”
젊은이는 격정에 못 이겨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좋아!” 하고 외치더니 재빠르게 권총든 손을 가슴 앞으로 올렸다.
그 순간 눈깜짝할 사이에 개트맨의 퉁퉁한 손이 번개같이 날아와 젊은이의 손목을 잡으며 뚱뚱한 몸이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손목과 총을 아래로 비틀어서 꺾었다. 조엘 카이로도 당황하여 젊은이 옆으로 달려가 다른 쪽 팔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젊은이와 엎치락뒤치락하며 그의 팔을 누르려고 했다. 젊은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저항했으나 힘이 미치지 못했다. 얽혀 싸우는 격투 속에서 세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좋아… 놓지 못해! …이 새끼! … 쏜다!” 하고 토막토막 끊어져 들려오는 젊은이의 목소리. “자아, 윌머!” 하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개트맨의 목소리.
“제발 부탁이니 이러지 말게. 이러지 말라니까, 윌머!” 하는 카이로의 목소리.
스페이드는 소파에서 일어나 탈을 쓴 듯 무표정한 얼굴의 꿈꾸는 듯한 눈초리로 세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버둥거리던 젊은이는 내리누르는 무게를 견디조 못해 잠잠해졌다.
카이로는 아직도 젊은이의 팔을 잡은 채 비스듬히 앞에 서서 타이르듯이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조용히 카이로를 밀어내고 왼쪽 주먹으로 젊은이의 턱을 후려쳤다. 두 팔을 잡아누르고 있었으므로 젊은이의 머리가 뒤로 홱 넘어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개트맨이 필사적으로 그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쳤으나 스페이드는 들은 척도 않고 이번에는 오른쪽 주먹으로 젊은이의 턱을 후려쳤다.
카이로가 팔을 떼자 젊은이의 몸은 술통같이 우람한 개트맨의 배위로 쓰러졌다. 카이로는 두 손의 손가락을 구부려 스페이드의 얼굴을 향해 덤벼들었다. 스페이드는 후유 숨을 내쉬며 레반트 인을 밀어냈다. 카이로가 다시 덤벼들었다. 그 눈에 눈물이 넘치고 분노로 떨리는 빨간 입술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움직였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소리내어 웃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멋진 일이군!”
그는 카이로의 따귀를 멋지게 갈겼다. 카이로는 테이블 위에 쓰러졌으나 다시 일어서 무서운 기세로 덤벼들었다. 스페이드는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길고 튼튼한 두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막았다. 팔이 짧은 카이로는 스페이드의 얼굴에 손이 미치지 못했으므로 그 팔을 마구 때렸다.
“그만두지 못해! 다친다니까!”
스페이드가 소리쳤다.
“개새끼! 비겁한 새끼!”
카이로는 악을 쓰며 뒤로 물러섰다.
스페이드는 몸을 굽혀 우선 카이로의 권총을, 그리고 나서 젊은이의 권총을 주워올렸다. 그는 몸을 펴자 두 자루의 권총을 왼손에 들고 둘째 손가락을 방아쇠 구멍에 넣어 거꾸로 늘어뜨렸다.
개트맨은 젊은이를 흔들의자에 앉히고 옆에 서서 찌푸린 얼굴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 카이로가 무릎끓고 앉아 축 늘어진 젊은이의 손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페이드는 젊은이의 턱을 만져보았다.
“괜찮소, 금이 가진 않았소. 소파에 눕힙시다.”
그는 오른손을 젊은이의 팔 밑에 넣어 등으로 돌린 다음 왼쪽 팔을 무릎 밑으로 넣어 힘 안 들이고 들어올리더니 소파로 안고 갔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소파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스페이드는 그 자리에 젊은이를 눕혔다. 오른손으로 젊은이의 옷을 가볍게 두드려 또 한 자루의 권총을 찾아내더니 다른 권총과 함께 왼손에 들고 돌아섰다. 카이로는 벌써 젊은이의 머리 옆에 와 앉아 있었다.
스페이드는 손에 든 권총 세 자루를 덜컥거리며 기분 좋은 듯 개트맨을 보고 웃었다.
“자아, 미끼가 생겼소.”
개트맨의 얼굴은 흙빛으로 바뀌고 눈이 흐려졌다. 그는 스페이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을 내려다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스페이드는 말했다.
“다시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시오. 당신은 카이로 씨의 귀엣말을 들었고, 내가 꼬마를 치는 동안에는 줄곧 그를 붙잡고 있었소. 이제 더 이상 웃을 수 없겠지. 그런 짓을 하다가는 당신 자신의 목을 죄는 결과가 될 테니까.”
개트맨은 카페트 위에서 발을 움직거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지금 곧 이 자리에서 ‘예스’ 라고 대답하든지, 그게 싫으면 내 손으로 매와 함께 모두 경찰에 넘겨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단 말이오.”
“그건 곤란합니다.”
개트맨은 머리를 들고 꽉 다문 잇새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곤란하겠지요. 그래, 어떻게 하겠소?”
뚱뚱한 사나이는 한숨을 쉬고 얼굴을 찡그리며 슬픈 듯이 말했다.
“윌머를 내주겠습니다.”
“그렇게 나와야지.”
스페이드는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