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
스페이드는 새터 호텔로 가서 알렉산드리아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개트맨은 없었다. 개트맨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벨비디오 호텔에도 전화를 걸었다. 카이로도 없었다. 하루 종일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스페이드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특별히 눈을 끄는 옷차림을 한 가무잡잡한 피부의 기름진 사나이가 바깥방에서 스페이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피 필라인이 그 사나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만나 뵙고 싶답니다. 스페이드 씨.”
스페이드는 싱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여보이고 안쪽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시지요.”
그는 손님을 먼저 들어가게 하고 에피 필라인에게 물었다.
“무슨 소식이 없었소?”
“없었어요.”
가무잡잡한 사나이는 마케트 거리의 영화관주인이었다. 회계 한 사람과 도어맨이 짜고 돈을 속이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스페이드는 용건을 빨리 말하도록 했다. 조사해 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50달러를 청구하여 치르게 한 다음 30분도 못 되어 손님을 보내버렸다.
영화관주인이 나가고 복도문이 닫히자 에피 필라인이 안쪽 방으로 들어왔다. 볕에 그을린 얼굴이 불안과 의혹으로 흐려져 있었다.
“그 여자를 아직도 못 찾으셨어요?”
스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의 상처 둘레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상처는 어떠세요?”
“괜찮아. 그런데 머리가 아프군.”
에피는 스페이드의 뒤로 돌아가 그의 손을 끌어내리고 가냘픈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쓰다듬어주었다. 스페이드는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고마워, 예쁜이!”
그녀는 머리를 숙여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샘, 빨리 그 여자를 찾아내야해요. 벌써 하루가 지났잖아요. 만일…”
스페이드는 몸을 움직여 초조한 듯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에게 그럴 의무는 없소. 하지만 이대로 1, 2분만 머리를 쉬게 해주면 다시 찾으러 나가겠소.”
“가엾은 머리!”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쓰다듬고 있다가 물었다.
“그녀의 거처를 알고 계세요? 짐작이 가느냐고요?”
이때 전화 벨이 울렸다. 스페이드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아아, 시드인가? 무사히 끝났네. 고마우이… 아니… 그렇지. 그는 초조해 하더군. 하기야 나도 그랬지만… 도박꾼의 싸움이니 뭐니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었네… 그렇지. 그래서 돌아올 때도 키스는커녕 큰 소리치고 나와버렸다네… 그에 대한 일은 자네가 걱정해 줘야겠어. …그렇지, 그럼, 또 보세!”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의자등받이에 기대었다.
에피 필라인이 등 뒤에 서 있다가 그의 옆으로 나오며 따져묻듯이 말했다.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가세요, 샘?”
“간 곳은 알지.”
스페이드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디에요?”
그녀는 흥분하며 말했다.
“당신이 본 불이 난 배야.”
에피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갈색 눈동자 둘레에 흰자위가 보였다.
“당신은 그곳에 가보았군요.”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아니.”
“샘, 어쩌면 그녀는…”
에피는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제발로 걸어나간 거요.”
스페이드는 불쾌한 듯 말했다.
“유괴당한 게 아니란 말이오. 배가 입항한 것을 알고 그녀는 당신 집으로 가지 않은 거요. 그러니 그게 어쨌다는 거지? 내가 손님 엉덩이를 쫓아다니며 용건을 말해 달라고 사정해야 한단 말이오?”
“하지만 샘, 내가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배에 타고 있었겠지요!”
“그것은 정오였지. 나는 폴하우스와 약속이 있었고 브라이언과도 만나야 했었소.”
에피는 눈두덩이에 힘을 주어 스페이드를 노려보았다.
“어머나, 기가 막혀! 당신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아주 비열한 인간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사람이군요! 아무리 그녀가 멋대로 한 일이라 할지라도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여기 앉아 모른 체하다니… 어쩌면 지금쯤 그녀는…”
스페이드의 얼굴이 빨게졌다. 그는 완강히 주장했다.
“그녀는 자기 몸을 지킬 줄 알고 있소. 만일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도움을 구하는 편이 좋을 때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소.”
“화풀이를 하는군요!”
에피는 소리쳤다.
“그래요, 화풀이를 하는 거예요! 그녀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여 당신은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생각했던 것처럼 당신이 솔직하지도 않고 진지하게 응해주지도 않아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만해두오, 에피.”
스페이드의 말을 듣고 그녀의 열띤 눈에 순간 불안한 빛이 감돌았다. 그러나 머리를 번쩍 들자 그 빛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야무지게 입을 오므렸다.
“당신이 지금 곧 부둣가로 가보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어요. 경찰을 데리고 가겠어요.”
그 목소리는 떨리고 흐트러졌으며 가냘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부탁이에요, 샘, 가주세요!”
스페이드는 못마땅해 하며 일어섰다.
“제기랄, 여기서 골치아픈 잔소리를 듣고 있느니보다 나가는 게 훨씬 편하겠군.”
그는 시계를 보았다.
“문을 잠그고 돌아가도록 하오.”
“아니에요, 돌아가지 않겠어요. 당신이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 있겠어요.”
“마음대로.”
스페이드는 모자를 썼으나 곧 펄쩍 뛰어오를 듯이 놀라며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나갔다.
한 시간 반 뒤 5시 20분에 스페이드는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들어오자마자 그는 소리쳤다.
“아니, 우리 예쁜이가 왜 이렇게 까다로운 표정을 짓고 있지?”
“나 말이에요?”
“그럼.”
스페이드는 에피 필라인의 코 끝을 둘째 손가락으로 꼭 눌렀다. 그리고 두 손을 그녀의 팔꿈치 밑으로 넣어 얼른 끌어안고 턱 밑에 키스를 했다. 그는 그녀의 몸을 아래로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동안 무슨 일 없었소?”
“루크라던가… 벨비디어 호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카이로 씨가 돌아왔다고 알려줬어요. 지금부터 30분쯤 전에.”
스페이드는 갑자기 일을 다물더니 방향을 돌려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여자 찾으셨나요?”
에피가 물었다.
“돌아와서 이야기하겠소.”
그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대답하며 후닥닥 튀어나갔다.
사무실을 나간 지 10분도 안 되어 스페이드는 택시로 벨비디어 호텔 앞에 닿았다. 그는 로비에서 호텔 탐정 루크를 찾아냈다. 호텔 전속탐정은 머리를 내저으며 쓴 웃음을 짓고 스페이드를 맞았다.
“15분 늦었군. 자네가 찾는 새는 날아가버렸네.”
스페이드는 자신의 불운을 저주했다.
“계산을 끝내고 떠났지. 짐을 챙겨들고.”
루크는 조끼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더니 엄지손가락에 침을 발라 넘겨 한 페이지를 스페이드에게 내밀었다.
“그 사람이 타고 간 택시 번호일세. 이건 적어두었지.”
“고맙군.”
스페이드는 봉투 뒤에 그 번호를 베껴쓰며 말했다.
“우편물은 어디로 보내달라던가?”
“그런 말은 없었네. 큰 슈트케이스를 들고 들어오더니 위로 올라가 짐을 챙겨가지고 내려왔지. 계산을 마치자 택시를 불러 타고 가버린 걸세. 행선지는 운전기사에게만 들리도록 말해서 못 들었네.”
“트렁크는 어떻게 되었지?”
루크의 아랫입술이 축 늘어졌다.
“아참,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군! 가보세.”
두 사람은 카이로의 방으로 올라갔다. 트렁크는 방에 있었다. 뚜껑이 닫혀 있긴 했지만 잠기지는 않았다. 뚜껑을 열어 보았다.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루크가 말했다. 스페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에피가 묻고 싶은 듯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놓쳤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스페이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에피가 따라들어왔다. 스페이드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에피는 그의 눈앞에 있는 책상에 앉아 스페이드의 의자 끝에 그녀의 구두 끝을 올려놓았다.
“오쇼네시 양은 어떻게 되었지요?”
“그녀도 놓쳤소. 그러나 그곳에 있었던 건 확실해.”
“팔로마 호에요?”
“팔로마가 아니라 라 팔로마에. 정확히 말하도록 하오, 에피.”
“그러지 말고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샘.”
스페이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은 다음 그녀의 정강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라 팔로마 호에 있었다니까. 그녀는 어제 정오가 넘어 그곳으로 갔소.”
그는 치켜올렸던 눈썹을 내렸다.
“페리 빌딩에서 택시를 내려 곧장 배가 있는 곳으로 갔소. 한두어 곳 앞에 있는 잔교니까. 선장은 배 안에 없었소. 재코비라는 사람이 선장인데, 그녀는 지령을 받고 그를 찾아간 거요. 선장은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가고 없었소. 따라서 선장은 그녀가 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지. 적어도 그 시간에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소. 그녀는 선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소. 4시쯤 선장이 돌아온 뒤 두 사람은 저녁식사시간까지 줄곧 선장실에 있었으며 식사도 함께 했소.”
스페이드는 연기를 크게 빨아들였다 내뱉더니 옆을 보고 입술에 묻은 노란 담뱃가루를 불어날렸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식사가 끝난 뒤 재코비 선장을 찾아온 손님이 세 사람 있었소. 한 사람은 개트맨, 또 한 사람은 카이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어제 개트맨의 심부름으로 이곳에 왔던 그 젊은이요. 이 세 사람은 브리짓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다섯이 함께 선장실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했소. 선원들의 말은 종잡을 수 없지만 아무튼 그들 사이에 입씨름이 시작된 모양이오. 밤 11시쯤 선장실에서 한 방의 총소리가 났소. 당직선원이 달려가보니 선장이 밖으로 나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더라는군. 선장실 벽 한구석에 새로운 총알자국이 나 있었지만, 꽤 높은 장소라 아마 사람이 맞지는 않았을 거요. 내가 알아낸 바로는 총알은 한 발이 발사된 것 같소. 내가 알아낸 바래야 별것 아니지만.”
스페이드는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런데 밤 12시쯤 모두 - 선장과 네 사람의 손님 - 돌아갔소. 다섯이 모두 걸어서 돌아간 모양이오. 이것은 당직선원에게서 들은 이야기요. 그때 배에 와서 일한 세관직원이 있다기에 만나보고 싶었지만 아직 못 만났소. 알아낸 사실은 이것뿐이오. 선장은 그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오늘 낮에 만나기로 되어 있던 해운업자들과의 약속도 어기고, 불이 났다는 소식을 알려주려 해도 행방을 알 수가 없다는 거요.”
“그런데 화재는 어떻게 된 거예요?”
스페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불이 난 것은 뒤쪽 창고로 오늘 아침 늦게야 발견된 모양이오. 그러나 불붙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어제인 듯하오. 아무튼 무사히 끄기는 했지만, 피해가 아주 큰 것 같소. 선장이 없어 아무도 자세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 아무튼…”
이때 갑자기 복도문이 열렸다. 스페이드는 입을 다물었다. 에피가 당황하여 책상에서 뛰어나와 옆방과 칸막이된 문 쪽으로 향했으나 그보다 먼저 한 사나이가 그 문을 와락 열었다.
“스페이드 씨 어디 있소?”
사나이는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스페이드는 재빨리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나이의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액체 소리에 방해되어 이 말도 겨우 하는 듯 심한 고통과 긴장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에피 필라인은 깜짝 놀라 옆으로 몸을 비켰다.
사나이는 문 앞에 서 있었는데, 소프트 모자가 문 위 가로대 사이에서 찌그러질 듯이 보였다. 적어도 2미터는 넘어보이는 큰 키였다. 자루처럼 길쭉하게 맞춰입은 검은 코트를 목에서 무릎까지 단추를 채워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여위어보였다. 어깨는 높이 치켜 올라갔다. 비바람에 시달려 세월의 주름이 잡힌 여윈 얼굴은 물에 젖은 모랫빛이었으며 볼과 턱은 땀투성이였다. 어두운 눈에는 핏발이 섰으며 광기어린 빛이 뿜어나왔다. 축 늘어진 눈 밑에서 연붉은 점막이 드러나보였다.
그는 검은 소매에 감싸인 한쪽 팔과 소맷부리에서 나온 노란 손으로 왼쪽 옆구리에 가는 끈으로 묶은 갈색 조이 꾸러미 - 미식축구 공보다 조금 더 커보이는 타원형 꾸러미 - 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키큰 사나이는 문 앞에 서서도 스페이드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어…”
그는 입을 열었으나 목구멍에서 치솟는 액체 소리가 다음 말을 삼켜버렸다. 사나이는 한쪽 손을 꾸러미를 든 손 위로 갖다댔다. 그러더니 그대로 선 채 몸이 굳어져 마치 나무토막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지도 않고 털썩 쓰러졌다.
스페이드는 표정도 달라지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나 쓰러지는 사나이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사나이의 입이 벌어지며 피가 조금 뿜어나왔다. 갈색 종이꾸러미가 손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 책상다리에 부딪쳐 멎었다. 동시에 사나이의 무릎이 힘없이 꺾이고 이어서 허리가 구부러지며 자루 같은 코트 속에서 여윈 몸이 축 늘어져 스페이드의 팔에 매달렸다. 스페이드는 그 몸을 견뎌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사나이의 몸을 살짝 아래로 내려놓고 왼쪽을 밑으로 하여 바닥에 눕혔다. 사나이의 눈은 여전히 어둡고 핏발이 서 있었지만, 광기어린 빛은 이미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 눈을 크게 뜨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입은 피를 토해냈을 때 그대로 벌어져 있었지만 피는 이제 나오지 않았다. 길다란 몸도 누워 있는 바닥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문을 잠그시오, 에피.”
스페이드가 말했다.
에피 필라인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떨리는 손으로 복도문을 잠그는 동안 스페이드는 여윈 사나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똑바로 돌려 코트 안주머니에 한쪽 손을 디밀었다. 이윽고 빼낸 그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손을 보고도 스페이드의 얼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만지지 않은 듯이 그 손을 높이 들어올린 채 다른 쪽 손으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그 불꽃을 여윈 사나이의 오른쪽 눈에 가까이 대보고 다시 왼쪽 눈으로 옮겨갔다. 눈은 - 눈꺼풀도 눈알도 눈조리개도 동공도 -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라이터를 끈 다음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무릎을 코트 단추를 끄르고 앞자락을 벌렸다. 코트 속은 피로 흥건히 젖어 그 밑에 입은 푸른빛 더블 재킷이 피범벅이었다. 가슴 앞에서 겹쳐진 윗옷 양쪽 깃과 그 바로 밑 윗옷 양쪽에는 보풀이 일고 피에 젖은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스페이드는 일어나서 바깥방에 있는 세면대로 갔다.
에피 필라인은 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떨며 한쪽 손으로 복도문 손잡이를 잡고 등을 문유리에 기댄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 이미…?”
“가슴을 맞았소. 대여섯 발쯤.”
스페이드는 손을 씻었다.
“그럼, 곧…”
그녀가 입을 열자 스페이드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의사를 불러봐야 이미 늦었소. 우선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요.”
그는 손을 다 씻고 나서 세면대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발 맞았으니 오래 걸을 수도 없지. 혹시… 제기랄, 좀더 힘을 내어 한 마디만 할 것이지, 이렇게 그냥…”
그는 에피에게 미간을 찌푸려 보이더니 다시 한 번 손을 헹구고 타월을 집어들었다.
“에피, 힘을 내구려. 이런 때 그처럼 멍해 있으면 어쩌지!”
스페이드는 타월을 집어던지고 머리 속에 손가락을 넣어 북북 긁었다.
“아무튼 저 꾸러미를 펴볼까.”
그는 다시 안쪽 방으로 들어가 시체의 다리를 타넘어 갈색 종이꾸러미를 집어들었다. 그 무게를 손에 느끼는 순간 눈이 빛났다. 그는 매듭이 위로 가도록 꾸러미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매듭은 단단하게 매어져 있었다. 그는 주머니칼을 꺼내어 끈을 잘랐다.
그때는 에피도 외면하며 문에서 시체를 멀리 돌아 스페이드 옆에 와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짚고 스페이드가 끈을 풀어 갈색 종이를 벗겨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때까지 메스꺼움을 누르고 있던 에피의 얼굴에 흥분의 빛이 떠올랐다.
“그건가요?”
그녀는 속삭이듯 물었다.
“곧 알게 되겠지.”
스페이드는 굵은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 갈색 종이 밑에 나타난 세 겹의 거친 회색 종이를 벗겨냈다. 얼굴표정은 굳고 무표정했으나, 눈이 반짝였다. 회색 종이를 벗겨내자 대팻밥으로 단단히 뭉친 달걀 모양의 덩어리가 나왔다. 그는 손가락으로 대팻밥을 헤쳤다. 그러자 높이가 30센티미터쯤 되는 새의 조각이 나타났다. 그것은 석탄처럼 새까맸다. 그리고 대팻밥이나 먼지가 묻지 않은 곳은 반짝반짝 윤택이 났다.
스페이드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는 한쪽 손을 새 위에 올려놓았다. 벌어진 손가락이 그 새를 꽉 움켜쥐었다. 그는 다른 쪽 팔로 에피를 끌어당겨 힘주어 끌어안았다.
“멋진 게 들어왔소. 베이비!”
“아야! 아파요!”
그녀는 소리쳤다. 그는 에피에게서 손을 떼고 두 손으로 그 검은 새를 들어올려 대팻밥을 털어냈다. 그는 그것을 눈 앞에 받들어쥔 채 뒤로 물러나 먼지를 털고 의기양양하게 바라보았다.
에피 필라인이 스페이드의 발 밑을 가리키며 겁 먹은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발 밑을 보니 뒤로 물러날 때 마지막으로 디딘 왼쪽 발구두 뒤축이 시체의 손에 닿아 손바닥 옆의 살을 5, 6밀리미터쯤 짓밟고 있었다. 그는 당황하여 발을 떼었다.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그는 에피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녀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누구시라고요? …네, 물론이에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네…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에피는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고 공포에 떨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녀는 수화기의 훅을 연거푸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녀는 홱 돌아서더니 옆으로 다가온 스페이드에게 울상을 지었다.
“오쇼네시 양이에요!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 알렉산드리아에 있대요 - 위험한 모양이에요. 그 목소리! 무서워요, 샘! 이야기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샘, 가주세요!”
스페이드는 매를 책상에 올려놓으며 우울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보다도 우선 이 사나이를 처리해야지.”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윈 시체를 엄지손가락을 가리켰다. 에피는 두 주먹으로 스페이드의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 돼요. 안 돼! 지금 가야 해요. 모르시겠어요, 샘? 이 사람은 오쇼네시 양의 것을 가지고 이리로 왔을 거예요. 모르겠어요? 그 여자를 도와주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살해된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 그 여자 차례예요. 제발 부탁이에요, 가주세요!”
“좋소!”
스페이드는 그녀를 밀어내고 책상 위에 엎드리더니 검은 새를 다시 대팻밥 속에 묻고 종이를 쌌다. 급히 서둘렀으므로 아까보다 더 크고 보기흉한 꾸러미가 되었다.
“내가 나가거든 곧 경찰에 전화를 하오. 이 사정을 이야기하는 거요. 단 사람의 이름은 입 밖에 내면 안 되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해두오. 나는 전화를 받고 나갔는데, 어디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하구려.”
끈이 엉키자 그는 화를 내며 힘껏 잡아당기더니 꾸러미를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물건에 대해서도 말하지 마오. 다른 건 모두 사실대로 말해도 좋은데, 이 사람이 이 꾸러미를 가지고 왔다는 말만은 하면 안 되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기야 못 견디게 다그쳐 물으면 할 수 없지만. 경찰에서 알고 있다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만일 그들이 알고 있거든 내가 이 꾸러미를 풀어보지도 않고 그냥 들고 나간 것으로 해 주오.”
끈을 다 묶자 그는 왼쪽 옆구리에 꾸러미를 끼우고 몸을 일으켰다.
“잘 기억해 두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것, 단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이 꾸러미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 것. 부정해서는 안 되오.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리고 전화를 받은 것은 나요, 에피가 아니라. 또 이 사나이에게 관계있음직한 사람은 전혀 모른다고 말하구려. 이 사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해야 하오. 그리고 내 일의 내용에 대해선 나와 만나기 전에는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거요. 알았소?”
“알았어요, 샘. 하지만 이 사람… 누구인지 아세요?”
스페이드는 이리처럼 어금니를 드러내보이며 히죽이 웃었다.
“아니, 그러나 짐작하건대 라 팔로마 호의 재코비 선장이 아닐까?”
그는 모자를 집어 머리 위에 얹었다.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이 시체를 들여다보더니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빨리요, 샘!”
에피가 다그쳤다.
“응.”
건성으로 내뱉는 대답이었다.
“빨리 서두르오, 에피. 경찰이 오기 전에 바닥에 흩어진 대팻밥을 치워두는 게 좋겠군. 그리고 시드에게도 연락해 두는 게 좋겠지. 아니, 잠깐.”
스페이드는 턱을 문질렀다.
“당분간 시드는 내버려두기로 할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문을 잠가두어야 하오.”
그는 턱에서 손을 떼고 그 손으로 에피의 볼을 쓰다듬었다.
“에피는 참 착한 아기야.”
그리고 그는 나가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