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드와 폴하우스 경사는 빅 존의 가게 스테츠 호프 블라우의 한 테이블에 마주앉아 초에 담근 돼지다리 요리를 먹고 있었다. 폴하우스는 포크에 앉은 파란 젤리를 도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시에서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여보게, 샘, 전날 밤 일은 잊어버리게. 분명 그가 나빴지만, 자네가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니 화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스페이드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형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 건 그 말을 하기 위해서였나?”

 

“그렇다네.”

 

폴하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포크의 젤리를 입 속에 넣고 꿀꺽 삼켰다.

 

“경감이 자네를 보낸 건가?”

 

폴하우스는 지친 듯 입을 일그러뜨렸다.

 

“그 사람이 그럴 것 같나? 그 역시 자네 못지 않은 고집불통이라네.”

 

스페이드는 웃으면서 머리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네, 톰. 그는 자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일세.”

 

폴하우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돼지다리고기를 칼로 잘랐다.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네도 좀 어른스러워지게, 샘. 대체 뭐가 그리 못마땅한가? 별로 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이긴 건 자네쪽일세. 불평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러다간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네.”

 

스페이드는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런히 접시 위에 놓더니 테이블에 두 손을 얹었다. 빙그레 미소띤 얼굴에는 온화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시내의 모든 경관들이 앞 다투어 나를 불행으로 끌어넣으려 하는 형편이니 불행이 좀더 늘었다고 해서 큰일날 건 없겠지. 나는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도 않는다네.”

 

폴하우스의 붉은 얼굴이 점점 더 빨개졌다.

 

“나한테 꽤 큰소리를 치는군.”

 

스페이드는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들더니 먹기 시작했다. 폴하우스도 먹었다. 잠시 뒤 스페이드가 물었다.

 

“항구에서 배에 불이 난 것을 보았나?”

 

“연기만 봤네. 그러나 그보다 분별심을 가져주게, 샘. 댄디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이제 그 문제는 그만 덮어두는 게 어떤가?”

 

“그럼, 내 발로 찾아가서 내 턱으로 인해 당신 주먹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란 말인가?”

 

폴하우스가 거칠게 돼지다리고기를 잘랐다. 스페이드가 다시 말했다.

 

“필 아처가 뭐 새로운 자료라도 물고 왔던가?”

 

“그만해두라니까! 댄디는 처음부터 자네가 마일즈를 쏘았다고 생각지 않았네. 그러나 실마리를 더듬어갈 수밖에 방법이 없지 않나? 자네로서도 입장이 그렇게 되면 마찬가지 일을 했을 걸세.”

 

스페이드의 눈에 악의가 번쩍 빛났다.

 

“그래? 그럼,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알았지? 아니면 자네는 아직도 나라도 생각하고 있나?”

 

폴 하우스의 붉은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새스비일세, 마일즈를 쏜 것은.”

 

“그건 자네 생각이지.”

 

“그렇네. 하지만 웨블리는 새스비의 것이고, 마일즈의 시체에서 나온 총알도 그 권총의 것이었네.”

 

“틀림없나?”

 

스페이드가 다그쳐 물었다.

 

“절대로 틀림없네. 증인을 잡았네 - 새스비가 있던 호텔의 벨보이인데 - 바로 그날 아침 그의 방에서 웨블리를 보았다더군. 그런 형의 권총은 처음 보는 것이라 특별히 눈에 띄었다는 걸세. 나도 처음 보았네. 자네도 그런 형은 이제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그렇다면 그런 형의 권총이 흔히 굴러다니지도 않을 테고 - 아무튼 - 만일 그 권총이 새스비의 것이 아니라면, 그의 권총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더욱이 마일즈의 몸에서 나온 총알은 그 권총으로 쏜 것일세.”

 

경사는 빵을 뜯어 입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손을 내렸다.

 

“자네는 그런 권총을 전에 본 일이 있다고 했지. 어디서 보았나?”

 

말을 마치고 톰은 빵을 입 속에 던져넣었다.

 

“영국에서… 전쟁 전에.”

 

“그것 보게. 역시 그렇잖나!”

 

“그럼, 내가 쏜 건 새스비 하나라는 말이군?”

 

스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폴하우스는 의자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번쩍였다. 그는 열심히 설득했다.

 

“제발 부탁이니 이제 그만 잊어버리게, 샘. 이미 끝난 일일세. 자네도 잘 알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나 물고늘어지다니 탐정답지 못하군. 하기야 자네는 우리가 자네에게 쓴 것 같은 계략을 남에게 쓰지 않겠지만.”

 

“계략을 쓴 것도 아니지. 자네들이 나에게 계략을 쓰려고 했을 뿐일세.”

 

폴하우스는 입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남은 고기를 잘랐다. 스페이드가 말했다.

 

“알았네, 톰. 내 문제는 끝난 걸로 하세. 그러나 댄디는 어떤가?”

 

“끝난 일로 알고 있네.”

 

“아니, 어떻게 눈을 떴지?”

 

“샘, 댄디는 진심으로 자네가 했다고 생각한 게…”

 

스페이드가 웃는 것을 보자 그는 말을 멈췄다.

 

“그보다도 마침내 새스비의 경력을 알아냈네.”

 

“그래? 어떤 사람인가?”

 

폴하우스의 날카롭고 작은 갈색 눈이 스페이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페이드는 참다못해 소리쳤다.

 

“여보게 톰,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자네들 머리좋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도 모르고 있네.”

 

“우리도 마찬가지일세.”

 

폴하우스는 항의하듯 말했다.

 

“새스비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세인트루이스 갱단의 일원이었네. 이 일 저 일로 자주 붙잡혔지만, 아무튼 이건의 부하였기 때문에 심하게 당한 적은 없었네. 어떻게 그 갱단을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뒤 또 한 번 뉴욕에서 도박장을 덮쳤다 붙잡혔네. 자기 정부가 밀고한 거였지. 그때 1년 동안 복역하다 패론 덕분에 속세로 나올 수 있었네. 그리고 2년쯤 지나 이번에는 졸리에트(일리노이주 도시)에서 다른 여자와 싸우다 권총으로 때렸기 때문에 한동안 옥살이를 했지. 그러나 그 뒤 딕시 모너핸 밑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붙잡히거나 고생한 적은 별로 없네. 아무튼 그 무렵에는 딕시의 전성기로, 시카고 도박꾼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의 닉과 어깨를 겨루는 유력자였으니까. 새스비는 바로 그 딕시의 보디가드였네. 그래서 딕시가 빚돈으로 동료들과 시비가 벌어졌을 때 그 녀석도 보스와 함께 모습을 감추어버렸지. 지금으로부터 한 2년 전쯤의 이야기일세. 그 뉴포트비치(캘리포니아주 남부 유원지)의 보트 클럽에 폐쇄명령을 내렸을 무렵 말이네. 그 사건에 딕시가 관련되어 있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 뒤 딕시나 새스비가 얼굴을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일세.”

 

“딕시도 얼굴을 보였나?”

 

스페이드가 물었다. 폴하우스는 머리를 내저었다. 그의 작은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눈치를 살폈다.

 

“아니. 자네가 보았거나 본 사람들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스페이드.”

 

스페이드는 의자등받이에 기대어 담배를 말기 시작하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보지 못했네. 지금 한 이야기는 모두 처음 듣는 걸세.”

 

“그럴 테지.”

 

폴하우스는 코를 킁킁거렸다. 스페이드는 히죽이 웃으며 물었다.

 

“지금 이야기한 새스비에 관한 정보는 대체 어디서 손에 넣었나?”

 

“기록에도 조금 실려 있고, 나머지는… 뭐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걸세.”

 

“이를테면 카이로한테서?”

 

이번에는 스페이드의 눈이 눈치를 살피듯 번쩍 빛났다. 폴하우스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녀석한테서는 전혀… 자네가 부린 잔꾀 때문에 전혀 쓸모가 없었네.”

 

스페이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군. 자네나 댄디 같은 민완형사님들 둘이서 그 피라미 하나를 밤새도록 다그치고도 결국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단 말인가?”

 

“무슨 말인가, 밤새도록이라니?”

 

폴하우스가 항의했다.

 

“잘해야 두 시간이었네. 도저히 알 될 것 같아 곧 돌려보냈지.”

 

스페이드는 다시 큰 소리로 웃으며 시계를 보았다. 가게주인 존과 눈이 마주치자 계산을 해달라고 했다. 거스름돈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폴하우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지방검사와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네.”

 

“호출인가?”

 

“그렇다네.”

 

폴하우스는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일어섰다. 맥주통 같은 배를 가진 키 큰 사나이로, 튼튼한 몸집에 무게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했다는 말을 댄디에게 하면 안되네.”

 

 

귀가 튀어나온 호리호리한 젊은이가 스페이드를 지방검사의 방으로 안내했다. 스페이드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방으로 들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브라이언 씨!”

 

지방검사 브라이언은 일어나서 한 손을 책상 너머로 내밀었다. 45살쯤 된 보통 몸집에 보통 키의 사나이로 금발, 검은 리본이 달린 코안경, 그 속에서 빛나는 공격적인 파란 눈, 웅변가처럼 유난히 큰 입, 보조개가 들어가는 두툼한 턱, 이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어서 오시오, 스페이드 씨!”

 

힘차고 잘 울리는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지방검사는 책상 위에 나란히 달려 있는 네 개의 진주빛 단추 가운데 한 개를 눌렀다. 아까의 그 호리호리한 젊은이가 문을 열었다.

 

“토마스와 힐리를 불러주게.”

 

지방검사는 다시 의자에 편안히 기대앉아 스페이드를 향해 쾌활하게 말했다.

 

“당신과 경찰 사이는 아무래도 순조롭지 못한 모양이지요?”

 

스페이드는 오른쪽 손가락을 움직여 걱정할 것 없다는 시늉을 해보이며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댄디 경감이 공연히 흥분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문이 열리고 두 사나이가 들어왔다. 스페이드는 그 중 한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여어, 토마스!”

 

토마스는 키가 작고 햇볕에 그을린 30살쯤 된 사나이로, 옷차림이며 머리모양이 아주 수수했다. 그는 주근깨투성이인 손으로 스페이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재미가 어떤가?”

 

그리고 옆자리에 앉았다. 또 한 사람은 좀더 젊고 피부가 흰 사나이였다. 그는 그들에게서 좀더 떨어진 자리에 앉아 무릎에 속기용 노트를 펴놓고 녹색 연필을 들었다.

 

스페이드는 그 젊은이의 모습을 흘끗 쳐다보고 미소지으며 지방검사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나중에 불리한 증언으로 이용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겠지요?”

 

지방검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언제나 마찬가지지요.”

 

그는 안경을 벗고 들여다보더니 다시 콧등에 걸쳤다. 그리고 안경너머로 스페이드의 얼굴을 보며 묻기 시작했다.

 

“새스비를 죽인 게 누구요?”

 

“모릅니다.”

 

브라이언은 안경에 달린 검은 리본을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벼대며 빈틈없이 말했다.

 

“물론 모르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훌륭한 추리를 할 수 있을 텐데요?”

 

“하면 할 수 있겠지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방검사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스페이드는 태연하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내 추리가 훌륭한 것인지 하찮은 것인지 그건 잘 모릅니다. 나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지방검사와 검사보와 속기사 앞에서 우쭐하여 짐작하는 바를 술술 말하는 그런 바보로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숨길 게 없다면 이야기해도 상관없지 않겠소?”

 

“누구에게나 숨겨야 할 일은 있는 법입니다.”

 

스페이드는 조용히 받아넘겼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네. 예를 들어 나의 추리가 그 예입니다.”

 

지방검사는 책상 위로 눈길을 떨어뜨렸다가 다시 눈을 들어 스페이드를 보았다. 그는 안경을 코 위에 똑바로 고쳐쓰며 말했다.

 

“만일 속기사가 없는 편이 좋다면 내보낼 수도 있소. 속기사를 부른 건 편의상 문제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있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모조리 기록해 주기 바라며, 서명도 기꺼이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서명까지 받을 생각은 없소. 이것은 공식적인 심문이 아니니까 그처럼 거북하게 생각지 마시오. 그리고 경찰이 여러가지 가정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으니까 전적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지 말아주기 바라오.”

 

“믿고 있지 않다고요?”

 

“전혀.”

 

스페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꼬았다.

 

“반가운 말씀을 해주시는군요.”

 

그는 주머니를 더듬어 담배와 담배말이종이를 꺼냈다.

 

“그럼, 당신 생각은?”

 

브라이언은 의자에서 윗몸을 일으켰다. 눈이 안경 렌즈처럼 번들번들 빛났다.

 

“아처가 누구의 부탁으로 새스비를 뒤쫓았는지 말해 주면 누가 새스비를 죽였는지 알려주겠소.”

 

스페이드의 짤막한 웃음에는 경멸이 담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도 댄디 경감처럼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오해하면 안 되오, 스페이드 씨.”

 

브라이언은 손가락마디로 책상을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당신 의뢰인이 새스비를 죽였다든가, 죽이게 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지금 당신 의뢰인이 누구인지 아니면 누구였는지 알면 새스비 살해범을 곧 알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스페이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를 입술에서 떼고 길게 연기를 뿜어 내며 당혹한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그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이렇게 말할까요? 딕시 모너핸은 지금 어디 있소?”

 

스페이드의 당혹한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방검사는 안경을 벗어서 흔들어대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알고 있소. 새스비는 모너핸의 보디가드였소. 모너핸이 시카고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 함께 사라졌었지요. 모너핸은 그때 20만 달러에 가까운 판돈을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소. 그때의 채권자가 누구누구였는지는 아직도 모르오.”

 

지방검사는 안경을 쓰며 기분나쁜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도망친 도박꾼이나 그 보다가드가 일단 채권자의 눈에 띄면 어떤 운명을 더듬게 되는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오. 전에도 그런 예가 있었지요.”

 

스페이드는 입술을 축이더니 이를 드러내 보이며 불쾌한 듯이 히죽 웃었다. 팔자로 처진 눈썹 아래에서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붉어진 목덜미가 칼라 위로 넘치듯 불거져 있었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열심히 말했다.

 

“그래, 대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 겁니까? 채권자의 의뢰로 내가 죽였단 말입니까? 아니면 내가 그를 찾아주어 그들이 죽이게 했단 말입니까?”

 

“천만에요! 그건 오해요.”

 

지방검사는 힘있게 부정했다.

 

“오해이기를 바라겠습니다.”

 

“검사님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세.”

 

토마스가 말참견했다.

 

“그럼,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브라이언은 손을 내저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거요.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에 말려들어간 게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스페이드는 비웃듯 말했다.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즉 내가 악당은 아니지만 바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브라이언은 계속 밀고 나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을 찾아와 모너핸이 이 거리에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를 말하며 그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오. 그런 이야기쯤은 얼마든지 꾸며댈 수 있으니까. 아니면 또 자세한 이야기는 다 배놓고 빚돈을 떼어먹고 달아났다는 말만 했을지도 모르오. 그런 경우 어떻든 그 이면은 꿰뚫어볼 수 있겠소? 그것이 흔히 있는 탐정 일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소? 이런 상황에서라면 당신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오. 단…”

 

그는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듯 목소리를 낮추어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발음했다.

 

“당신이 범인의 정체와 체포의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겨 스스로 공범자가 된 경우는 다르지요.”

 

스페이드의 얼굴에서는 분노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난 또 뭐라고… 그게 하고 싶었던 말씀입니까?”

 

그의 목소리에도 이미 노여움이 가셔져 있었다.

 

“그렇소.”

 

“그렇다면 화낼 것도 없겠군요.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증명해 보시오.”

 

“지금은 증명할 수 없지만,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스페이드는 고개를 내둘렀다.

 

“설명해 보시오.”

 

“딕시 모너핸의 일은 누구한테서도 의뢰받은 일이 없습니다.”

 

브라이언은 토마스와 눈짓을 나누었다. 검사는 스페이드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당신도 인정하겠지만, 누군가 모너핸의 보디가드 새스비의 일로 당신을 찾아갔었소.”

 

“그렇습니다. 모너핸의 옛 보디가드 새스비의 일로…”

 

“옛 보디가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새스비가 지금 모너핸과 손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이오? 분명히 알고 있소?”

 

스페이드는 손을 뻗어 책상 위의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무관심하게 말했다.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은 이겁니다. 내 의뢰인은 모너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며 과거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 그러나 이런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새스비는 모너핸을 동양으로 데리고 가 거기서 그와 손을 끊었다고…”

 

이때 또 지방검사와 검사보가 눈짓을 나누었다.

 

토마스는 실제적인 말을 하는데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견해도 생각할 수 있겠군. 새스비가 모너핸과 손을 끊었다는 이유로 모너핸의 친구가 새스비를 죽였다고 생각할 수 없을까?”

 

“도망친 도박꾼에게 무슨 친구가 있겠나?”

 

스페이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선이 두 가지 나오는군.”

 

브라이언은 의자등받이에 기대어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웅변가다운 얼굴이 싱싱해 보였다.

 

“문제는 세 가지 가능성으로 좁힐 수 있소. 첫째, 새스비를 죽인 건 시카고에서 모너핸이 배신한 도박꾼 친구라는 것이오. 새스비가 모너핸을 배신한 사실도 모르고, 또는 그것을 믿지 않고 새스비가 모너핸과 한패라는 이유로 해치웠다고 보고 거요. 아니면 모너핸을 가까이 하는 데 새스비가 방해될 것 같아 처치했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새스비가 그들을 모너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죽였는지도 모르오. 몇 가지 경우가 있는 셈이오. 둘째는 새스비를 죽인 건 모너핸의 친구라는 선, 셋째는 새스비가 모너핸을 적에게 넘겨주었다가 나중에 화해하여 살해되었다는 선이오.”

 

스페이드는 즐거운 듯 미소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 번째 - 새스비의 사인(死因)은 노쇠현상이다. 여보십시오, 당신들 대체 지금 제정신입니까?”

 

두 사람은 스페이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미소띤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일부러 가엾다는 듯 머리를 내저었다.

 

“당신들의 머릿속에는 아놀드 로스스틴(미국의 대도박사. 1928년에 살해되었으나 범인은 확실치 않음) 사건이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나 보지요?”

 

브라이언은 왼쪽 손등으로 오른쪽 손바닥을 탁 쳤다.

 

“이상 세 가지 선 중 어느 하나에 해결이 있소.”

 

지방검사는 힘찬 목소리를 억누르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오른손을 꽉 쥐고 둘째손가락만 펴서 그 손을 높이 들었다가 천천히 내리더니 스페이드의 가슴 앞에서 딱 멈췄다.

 

“그리고 당신의 정보에 따라 우리는 이 세 가지 선 가운데 어느 선을 따를 것인가 결정할 거요.”

 

“그래요?”

 

스페이드는 내키지 않는 듯이 대꾸했다. 우울한 얼굴이었다.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만지더니 그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목덜미를 긁었다. 초조한 듯한 주름이 여러 개 이마에 나타났다.

 

이윽고 그는 코로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불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의 정보는 아마 검사님 마음에 안 들 겁니다. 첫째, 도움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처럼의 도박꾼 복수극과 줄거리가 맞지 않을 테니까요.”

 

브라이언은 고쳐앉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엄격했다.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오. 잘못된 일이든 올바른 일이든 지방검사는 나요.”

 

스페이드는 입술을 치켜올리며 송곳니를 드러내보였다.

 

“오늘은 비공식회담인 줄 알았는데요.”

 

“나는 하루 24시간 사법관으로 공직에 있소. 따라서 나에 대해서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범죄 증거의 제출을 거절할 수 없소. 물론 예외는 있지요.”

 

그는 뜻있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법이 보장하는 특정한 근거가 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스페이드의 목소리는 조용하니 재미있어하는 듯했으나 얼굴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좋은 근거, 아니 편리한 근거가 있습니다. 나의 의뢰인에게는 그 비밀의 상당량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대배심(大陪審) - 물론 검시배심(檢屍陪審)도 마찬가지지만 - 앞에 나가면 말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 데도 불려간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때가 되기 전에는 의뢰인의 개인적인 일을 함부로 떠들어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당신이나 경찰은 내가 그날 밤의 살인사건에 관계있는 것처럼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들에게 시달려온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당신들이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이 사건의 범인을 한데 묶어 내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내가 당신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이 사건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으니까요.”

 

스페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 너머로 속기사를 돌아보았다.

 

“지금 한 이야기를 다 받아썼소? 너무 빨리 말한 건 아니오?”

 

속기사는 놀란 듯한 눈으로 스페이드를 바라보았다.

 

“네, 다 썼습니다.”

 

“용하군.”

 

그는 다시 브라이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위원회에 가서 법무집행 방해죄로 내 면허장을 취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당신은 전에도 그런 일을 하여 좋은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잖습니까?”

 

“아니, 잠깐만…”

 

브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이런 비공식회담은 딱 질색입니다. 나는 당신에게도 경찰에게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머리가 이상해진 이곳 관리들을 상대하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만일 이 다음에 나를 만나고 싶거든 체포장이나 소환장을 발부하십시오. 그러면 언제라도 변호사와 함께 올 테니까요.”

 

스페이드는 모자를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검시법정에서 만납시다.”

 

그는 성큼성큼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