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
개트맨이 문을 열었다. 반가운 듯한 미소가 퉁퉁한 얼굴에 떠올랐다. 그는 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스페이드는 악수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는 따라들어왔다. 뚱뚱한 사나이가 문을 닫았다. 스페이드는 젊은이의 권총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 개트맨에게 내밀었다.
“이런 걸 가지고 다니게 하면 어떻게 하오. 다치라고…”
뚱뚱한 사나이는 껄껄 웃으며 권총을 받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나이의 눈은 스페이드에게서 젊은이에게로 옮겨갔다.
“절름발이 신문팔이가 이 젊은 친구에게서 낚아채가기에 찾아준 것 뿐이오.”
스페이드가 말했다. 젊은이는 얼굴이 새파래지며 개트맨의 손에서 권총을 받자 주머니에 넣었다.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개트맨은 또 껄껄 웃었다.
“정말 가까이 사귄 보람이 있군요. 당신은 놀라운 인물입니다. 자, 이리 와서 앉으십시오. 모자는 이쪽에.”
젊은이는 입구 오른쪽의 문으로 나갔다. 뚱뚱한 사나이는 테이블 옆 녹색 벨벳 의자를 스페이드에게 권하더니 억지로 잎담배를 쥐어준 다음 불을 붙여주었다. 그리고는 위스키에 소다수를 섞어 스페이드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는 자기 잔을 집어들고 스페이드와 마주앉았다.
“우선 사과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아니, 됐습니다! 그보다 검은 새의 이야기를 합시다.”
스페이드가 말했다. 개트맨은 고개를 왼쪽으로 갸우뚱하고 감격한 듯이 스페이드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이야기합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든 소다수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당신도 처음 듣는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당신 같은 직업을 가진 당신만한 사람이라면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놀라운 일을 겪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스페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나중에 로도스 기사라고 불린 예루살렘의 세인트 요하네호스피탈 기사단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개트맨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스페이드는 잎담배를 가로로 흔들어 보였다.
“잘 모르겠는데요,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배운 정도밖에는… 십자군인가 어디서…”
“좋습니다. 그럼, 터키의 슐레만 대제(오스만 제국 전성기의 술탄)가 1523년 그 기사들을 로도스 섬(에개 해에 있는 섬. 터키 남서바다)에서 쫓아낸 일도 모릅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렇습니까? 아무튼 그때 기사들은 크레타 섬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7년 동안 머물렀는데, 1530년 그들은 칼 5세(독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스페인왕 카를로스 1세를 겸했음)에게 간청하여…”
개트맨은 퉁퉁한 손가락을 세 개 세워보였다.
“말타 섬과 고조 섬(말타 제도의 하나)과 트리폴리… 이 세 곳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래서요?”
“그러나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었답니다. 즉 해마다 황제에게 공물(貢物)을 바쳐야 한다는 겁니다.”
개트맨은 다시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그 공물이란 한 마리의 매로서 말타가 여전히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그 섬을 떠날 경우에는 곧 스페인에 반환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황제는 기사단에게 그 섬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을 사용하도록 허락했을 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거나 파는 일은 금했다는 뜻이지요.”
“그랬군요…”
개트맨은 고개를 돌려 닫혀 있는 세 개의 문을 둘러본 다음 스페이드 쪽으로 의자를 당기더니 소리를 낮추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시겠습니까? 그 무렵 이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부(富)에 대해 당신은 아십니까?”
“상당한 것이었다는 말은 들었소…”
개트맨은 커다랗게 소리내어 웃었다.
“상당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의 속삭임은 점점 더 낮아지고 가라앉아갔다.
“그들은 보물산에 묻혀 있었습니다. 당신은… 아니,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은 사라센인을 공격하여 숱하게 약탈을 했습니다. 보석, 귀금속, 비단, 상아… 동방의 대표적인 귀중품들을 최대한으로 약탈했지요. 그것이 바로 역사였습니다. 성전(聖戰)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 성당기사단의 경우처럼 - 약탈에 있었으니까요. 이것은 이제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했듯이 칼 황제는 그들에게 말타 섬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황제가 요구한 연공(年貢)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새 한 마리였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물을 가졌던 기사들이 뭔가 좀더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낼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사실 그들은 그 일은 실천했습니다. 머리를 짜서 생각해 낸 좋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첫해의 공물로는 하찮은 산 새 대신 눈부신 황금의 매를 한 마리 만들어 그 매의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 끝까지 기사들의 보석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박는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통 보석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서 골라낸 가장 좋은 보석입니다.”
개트맨은 이야기를 마쳤다. 윤기있는 검은 눈이 스페이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스페이드는 태연했다.
“대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이야기를?”
“나는 잘 모르겠군요.”
뚱뚱한 사나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혼자 기뻐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교과서에도 없고 H.G. 웰즈(영국의 사상가, 작가.)의 세계사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입니다.”
그는 윗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12세기 이후 이 기사단에 관한 기록이 지금도 말타 섬에 남아 있습니다. 완전한 기록은 아니지만 그 속에는 적어도 세 군데…”
그는 손가락을 세 개 쳐들어보였다.
“틀림없이 이 보석으로 꾸며진 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습니다. J. 도라뷔 르루의 《생 장 기사단 기록》에도 이와 관계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극히 간접적인 기록이지만 역시 참고문헌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아직 발간되지 못한 상태지만 - 저자가 원고를 완성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 파오리의 《성(聖) 기사단의 기원과 제도》의 보유원고에도 지금 이야기한 사실이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아무튼 기사단의 단장 뷔리에 드 릴라단이 높이 30센티미터의 보석 새를 세인트 안젤로 성에서 터키인 노예에게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시 스페인에 있던 칼 황제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코르미에인지 코르베르인지 하는 프랑스인 기사가 갈리 선(船)을 지휘하여 이 새의 수송을 맡게 되었지요.”
뚱뚱한 사나이의 목소리는 다시 낮아져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배는 스페인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미소지었다.
“당신은 바르바로스, 즉 ‘붉은 수염’ 하이레딘(16세기에 활약한 오스만 제국의 대제독)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모르신다고요? 당시 알제리를 근거지로 하며 스페인 령 연안을 휩쓸었던 유명한 해적두목인데, 그가 갈리 선을 습격하여 배와 함께 문제의 새를 빼앗았습니다. 새는 알제리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피에르 댕이 알제리에서 보낸 편지에 씌어 있었습니다. 그 새는 1백 년 이상 땅 위에 있었으나 프랑시스 바니 경이라는 사람이 어디론가 가져갔다고요. 바니는 한동안 알제리 해적단에 들어가 있었던 영국의 모험가랍니다. 사실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피에르는 그렇게 믿고 있고, 나로서도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프랑시스 바니 경 부인이 쓴 《17세기에 있어서의 바니 집안 회상록》이라는 저서가 있는데, 그 책에는 이 새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씌어 있지 않습니다. 나도 조사해 보았습니다. 또 프랑시스 바니 경이 1615년에 메시나(시실리 섬 북동부의 옛도시)의 병원에서 숨졌을 때 그 새가 그의 손에 없었던 것도 거의 확실한 일입니다. 아무튼 그는 무일푼으로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새가 시실리로 건너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시실리에게서 빅토르 아마데우스 2세(사보이 공, 사르디니아 왕)가 1713년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그것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자리를 물러난 뒤 상베리(동 프랑스 사보와의 옛도시)에서 결혼할 때 신부에게 주는 선물 속에 이 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카르티는 그의 저서 《빅토르 아마데우스 2세의 치세(治世)이야기》속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데우스 2세가 다시 왕위에 오르려고 했을 때, 아마 이 부부는 - 즉 왕과 왕비는 이 새를 토리노(이탈리아 북서부의 옛도시. 사르디니아 왕국의 수도)로 가져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 뒤 이 새는 어느 스페인 사람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나이는 1734년 나폴리 정복군의 한 사람으로, 카를로스 3세(스페인 왕. 양(兩)시실리를 정복)의 재상을 지낸 플로리다브랑카 백작 돈 호세 이 레돈드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뒤 적어도 카를로스 집안의 내분이 끝나는 1840년까지는 그 새가 그 집을 떠났다는 증거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뒤 이 새는 파리에 나타났습니다. 마침 파리가 스페인에게서 쫓겨난 카를로스 파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 때입니다. 그들 망명자 중 누군가가 그것을 가지고 들어온 모양입니다. 누가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그 자신은 이 새의 진짜 값어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새는 카를로스 집안에 내분 속에서 페인트인지 에나멜로 전체를 새까맣게 칠해버려 겉으로는 좀 색다른 검은 조각으로 보일 뿐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모습이 달라진 새는 그 뒤 70년 동안 파리의 부자들과 골동품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셈인데, 어리석게도 새의 검은 피부밑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말을 끊고 싱긋 미소지으며 유감스러운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윽고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리하여 70년 동안 이 훌륭한 보물은 파리의 뒷골목을 축구공처럼 굴러다닌 셈입니다. 마침내 1911년 칼리라오스 콘스탄티니데스라는 그리스 상인의 변두리 고물상에서 그 새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정체를 꿰뚫어 보고 그 자리에서 사들였습니다. 두껍게 칠해진 에나멜도 그 사나이의 눈과 코를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사실은 그 사나이야말로 이 새의 내력을 남몰래 조사하여 그 정체를 알고서 찾아다니던 사람이었지요. 그런 눈치를 알고 나는 곧 그 사나이를 가까이 하여 이러한 내력을 듣게 된 겁니다. 물론 나중에 내가 자세한 점을 몇 가지 보충하기도 했습니다만.
칼리라오스는 자기가 찾아낸 것을 곧 돈으로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머리가 좋았지요. 물론 그 물건의 값어치만도 엄청나겠지만, 일단 그 조각이 진짜라는 사실이 입증되면 그보다 훨씬 값비싼, 그야말로 놀라운 값어치의 물건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 그는 옛기사단의 후계자, 이를 테면 영국의 세인트 존 기사단, 또는 프러시아의 요하네 기사단, 아니면 이탈리아나 독일에 남아 있는 말타 기사단 등 하나같이 유복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상대로 거래하려는 속셈이었겠지요.”
개트맨은 잔을 들어올렸으나 속이 비었음을 알자 싱긋 웃으며 자기와 스페이드의 잔에 다시 술을 따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습니까, 내 이야기를 조금은 믿게 되었습니까?”
그는 사이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믿지 않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소.”
개트맨은 껄껄 웃었다.
“그야 그렇지요. 그러나 당신 얼굴에 그렇게 씌어 있으므로…”
그는 자리에 앉아 술을 죽 들이마시고 흰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칼리라오스는 새의 역사를 조사하는 동안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에나멜을 덧칠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손에 넣은 지 꼭 1년째 되던 날 - 내가 그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게 한 지 약 석 달 뒤였지요 - 나는 런던에서 우연히 타임즈를 읽다가 그의 집에 강도가 들어 그가 살해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파리로 달려갔습니다.”
개트맨은 우울한 듯이 머리를 내저었다.
“새는 이미 없어졌더군요.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달리 그 새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그가 이야기했으리라고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꽤 많은 물건을 도난당한 것으로 보아 새의 정체를 아는 도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물건과 함께 가져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도둑이 그 값어치를 알고 있었다면, 일부로 애써 다른 물건을 가져가는 어리석은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사용되는 보석이 그곳에 있었다면 또 모르지만.”
뚱뚱한 사나이는 눈을 감았다. 무슨 생각에 잠겨 기분이 좋은 듯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눈을 뜨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지금 한 이야기는 17년 전 일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새의 행방을 찾아 나선 지 17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알아냈습니다. 나는 그게 탐났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무엇이 탐난다고 생각하면 쉽게 단념하지 못하는 성격이지요.”
미소가 그의 얼굴 전체에 퍼졌다.
“나는 그게 탐났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입니다. 지금도 탐이 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손에 넣고 말 겁니다.”
그는 잔을 비우자 다시 입을 닦고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새의 행방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그것이 콘스탄티노플 교외에 사는 케미도프라는 러시아 장군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장군의 새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에나멜을 칠한 까만 조각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 러시아 장군들이란 하나같이 그런 성격이지만 - 내가 넘겨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팔지 않는 겁니다. 내가 지나치게 열의를 보여 교섭방법이 좀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그 물건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 얼빠진 군인이 공연히 호기심이 생겨 에나멜을 조금 벗기고 조사해 볼 생각이라도 들면 큰일날 것 같아 나는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몇 사람, 다시 말해서 나의 대리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새를 손에 넣긴 했으나 내 손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빈 잔을 테이블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내 손에 넣고 말 겁니다. 자아, 잔을 비우시지요!”
“그러니까 그 새는 당신의 동료들 것도 아니라는 말이 되겠군요?”
스페이드가 물었다.
“소유주는 케미도프 장군이 아니오?”
“소유주요?”
뚱뚱한 사나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소유주는 스페인 국왕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 정당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점은 아무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점유권이라면 또 모르지만…”
그는 껄껄 웃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이처럼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든가 가진 사람의 소유물입니다.”
“그럼, 지금은 오쇼네시 양의 것인가요?”
“아니지요. 그녀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대리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요?”
스페이드는 비꼬는 투로 이죽거렸다.
개트맨은 손에 든 위스키 병 마개를 생각에 잠겨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어디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오.”
뚱뚱한 사나이는 병을 테이블에 거칠게 놓았다.
“당신은 알고 있다고 했잖습니까!”
스페이드는 매정하게 한쪽 손을 내저었다.
“나는 다만 때가 되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장소를 안다고 말했을 뿐이오.”
개트맨의 얼굴에 달린 핑크 빛 알뿌리들이 흔들리며 얼마쯤 기쁨을 되찾았다.
“정말이지요?”
“물론.”
“어딥니까?”
스페이드는 히죽 웃었다.
“그것은 나에게 맡겨두시오. 내가 할 일이니까.”
“언제까지요?”
“준비가 갖추어질 때까지.”
뚱뚱한 사나이는 입술을 오므리고 조금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스페이드 씨, 오쇼네시 양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안전한 곳에 숨겨두었소.”
개트맨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그 점은 믿지요. 그럼, 값을 의논하기 전에 한 가지 대답해 주셔야겠습니다. 대개 언제쯤 될까요, 매를 넘겨주실 날이? 넘겨줄 생각이 있다고 보고 하는 말이지만…”
“2, 3일 안이오.”
뚱뚱한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곧… 아니, 영양섭취를 잊고 있었군요.”
개트맨은 테이블 쪽으로 갔다. 그는 위스키를 따라 소다수를 섞은 다음 잔 하나를 스페이드의 팔꿈치 옆에 놓고 자기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럼, 공평한 거래, 성대한 이익을 같이 빌며 건배합시다!”
두 사람은 잔을 기울였다. 개트맨은 자리에 앉았다. 스페이드가 물었다.
“공평한 거래란 뭐요?”
개트맨은 잔을 불빛에 비춰 소중한 듯 바라본 다음 다시 한 번 죽 들이켰다.
“당신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둘 다 공평한 제안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첫째는 당신이 나에게 매를 넘겨줄 때 우선 2만 달러를 드리고, 내가 뉴욕에 도착한 뒤 곧 2만 5천 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 둘째는 그 매를 내 손으로 처분했을 때 수령액의 4분의 1, 즉 25퍼센트를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거의 일시불로 5만 달러를 받느냐, 아니면 두세 달 뒤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받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됩니다.”
스페이드는 전에 든 술을 마신 뒤 물었다.
“막대한 금액이라니, 얼마쯤이오?”
“막대한 금액입니다.”
뚱뚱한 사나이는 되뇌었다.
“얼마쯤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글쎄요, 10만? 25만? 아무튼 최저로 생각되는 액수를 말씀드리면 믿어주실까요?”
“못 믿을 것도 없지요.”
뚱뚱한 사나이는 입술에 힘을 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50만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스페이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당신은 그걸 2백만으로 보는 거요?”
개트맨은 거침없이 웃어젖혔다.
“당신 말을 빌면 그렇지요. 그렇게 못 볼 것도 없잖습니까?”
스페이드는 잔을 비우고 테이블에 놓았다. 잎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나 다시 담배를 손에 들고 찬찬히 살펴본 다음 다시 물었다. 노르스름한 회색 눈이 조금 흐려졌다.
“굉장한 돈이군요.”
개트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굉장한 돈입니다.”
그는 윗몸을 앞으로 내밀어 스페이드의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건 아주 최소한으로 잡은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칼리라오스 콘소탄티니데스를 큰 바보로 볼 수밖에 없겠지만, 그 사나이는 그런 바보가 아닙니다.”
스페이드는 다시 입에서 잎담배를 떼어내더니 입맛에 맞지 않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재떨이에 놓았다. 그는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이 점점 흐려졌다.
“그게 최소한으로 잡은 액수라고요? 그럼, 최고액은?”
아무래도 그는 혀의 움직임이 무뎌진 것 같았다.
“최고액 말입니까?”
개트맨은 한쪽 손을 뒤집어 손바닥이 위를 보게 했다.
“그만둡시다.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까 두렵습니다. 나도 잘 모릅니다. 얼마만큼이나 비싼값이 매겨질지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만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드는 축 늘어진 아랫입술을 다물려고 했다. 초조한 듯 머리를 내둘렀다. 갑자기 무서운 공포의 빛이 언뜻 그의 눈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뿐, 차츰 흐려져 가는 눈빛에 흡수되고 말았다. 그는 두 손을 의자팔걸이에 걸친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머리를 내두르고 비틀거리듯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는 쉰 목소리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개트맨은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를 뒤로 밀었다. 뒤룩뒤룩한 살더어리가 부르르 떨렸다. 기름진 핑크 빛 얼굴에서 두 개의 눈이 어두운 구멍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으나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비틀비틀 다시 한 발자국 내디뎠다.
뚱뚱한 사나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윌머!”
문이 열리고 그 젊은이가 들어왔다.
스페이드는 앞으로 세 발자국째 내디뎠다. 얼굴은 이미 잿빛이었다. 턱의 근육이 귀 밑에 난 종기처럼 튀어나왔다. 네 발자국을 내디딘 뒤로는 발을 똑바로 뻗을 수가 없었다. 눈꺼풀이 흐려진 눈을 거의 덮어버렸다. 그는 다섯 발자국째를 내디뎠다.
젊은이가 다가왔다. 그는 스페이드와 문을 잇는 직선에서 조금 벗어난 스페이드의 앞쪽으로 비스듬하게 버티고 섰다. 젊은이의 오른손은 윗옷 속으로 들어가 심장 있는 곳에서 멎었다. 입꼬리가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여섯 발자국째 내디디려고 했다. 그러자 젊은이의 한쪽 발이 스페이드의 발 앞으로 재빠르게 나왔다. 스페이드는 그 발에 걸려 바닥에 얼굴을 깔고 쓰러졌다. 잚은이는 오른손을 웃옷 속에 넣은 채 스페이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일어나려고 했다. 젊은이는 오른쪽 발을 크게 뒤로 빼더니 스페이드의 관자놀이를 세게 걷어찼다. 스페이드는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다시 한 번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헛일이었다. 그는 그대로 잠에 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