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
브리짓 오쇼네시는 테이블 옆 팔걸이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두 팔을 들어 볼을 가리고 무릎을 바싹 당겨 얼굴 아랫부분을 가린 자세였다. 눈은 흰자위가 많이 드러날 정도로 크게 뜨여졌으며,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조엘 카이로가 그 위에 덮치듯 서 있었다. 한쪽 손에는 아까 스페이드에게 빼앗겼던 권총이 들려져 있고 한쪽 손은 이마를 누르고 있었다. 그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새어나와 눈 위까지 뚝뚝 흘러내렸다. 터진 입술에서도 피가 흘러 세 가닥의 가는 줄이 되어 턱 근처를 흘러내렸다.
카이로는 경관이 들어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앞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노려보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나 뜻을 알 수 있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거실로 들어간 경감이 재빨리 카이로 옆으로 다가가 한쪽 손을 코트 밑 자기 엉덩이께로 돌리며 다른 손으로 레반트 인의 손목을 잡고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카이로는 피투성이 손을 머리에서 떼더니 경감의 코끝에서 휘둘렀다. 손을 떼자 이마에 난 7, 8센티미터쯤 되는 찢어진 상처가 보였다.
“이 여자가 한 짓입니다. 보십시오!”
오쇼네시는 발을 바닥으로 내려놓고 경계하는 눈길로 카이로의 손목을 잡고 있는 댄디 경감에게서 그 바로 뒤에 있는 톰 폴하우스에게로 그리고 문틀에 기대선 스페이드에게로 차례차례 눈길을 옮겼다. 스페이드의 얼굴은 침착했다. 그녀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의 노란빛도는 회색 눈에 순간 재미있어하는 듯한 짓궂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잠시 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당신이 했소?”
경감은 카이로의 상처를 턱으로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다시 스페이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호소하는 눈길에도 스페이드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문틀에 기대선 채 관심 없는 구경꾼처럼 조심스럽고 태연한 태도로 방 안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쇼네시는 얼굴을 들고 댄디를 마주 쳐다보았다. 그 눈은 크고 검고 진지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이 방에 단 둘이 남게 되자 이 사람이 갑자기 덤벼들었어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밀어내려고 했어요. 나는 권총을 쓸 줄 몰라서…”
“뭐라고, 이 거짓말쟁이!”
카이로가 큰 소리로 외치며 경감에게 잡힌 권총 든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헛일이었다.
“이 거짓말쟁이, 개 같은 계집!”
그는 몸을 들어 경감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 나야말로 아무 악의 없이 찾아왔는데, 느닷없이 두 사람이 덤벼들었습니다. 당신들이 오자 저 사람이 나가면서 권총을 이 여자에게 맡겼지요. 그런데 이 여자 말이 당신들이 돌아간 뒤 둘이서 나를 죽일 생각이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난 두 분이 돌아가시기에 도움을 구한 것인데, 그때 이 여자가 권총으로 후려쳤습니다.”
“아무튼 그건 이리 주시오.”
댄디 경감이 카이로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해둘 일이 있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소?”
“저 사람이 불러서 왔습니다. 저 사람이 전화로 오라고 하기에…”
카이로는 머리를 돌려 스페이드를 도전적으로 노려보았다. 스페이드는 레반트 인에게 졸린 듯 눈을 깜박여 보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신에게 무슨 볼일이 있었소?”
경감이 심문을 계속했다. 카이로는 곧 대답하지 않고 보랏빛 줄무늬 비단손수건으로 이마와 턱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 사이에 분노가 얼마쯤 가라앉았는지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저 사람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아니, 저 여자와 둘이서 만나고 싶다고 해서 왔습니다만 나는 무슨 일인지 전혀…”
톰 폴하우스는 고개를 숙이고 카이로가 얼굴을 닦는 손수건에서 풍겨 나오는 시프레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는 문득 스페이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스페이드는 그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계속 담배를 말고 있었다.
“그래, 그 뒤 무슨 일이 있었지요?”
경감이 물었다.
“두 사람이 덤벼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여자가 덤벼들었습니다. 그러자 저 사람이 내 목을 죄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빼앗았습니다. 만일 그 때 두 분이 오지 않았다면 무슨 꼴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아마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벨 소리가 울리자 저 사람이 권총을 여자에게 맡기며 나를 감시하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습니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팔걸이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왜 당신들은 이 사람에게 사실을 말하게 하지 않지요?”
그와 동시에 그녀는 카이로의 따귀를 후려쳤다. 경감은 레반트 인의 팔을 잡지 않은 손으로 그녀를 의자 쪽으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그만두시오!”
스페이드는 담뱃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내뿜으며 싱긋 웃었다. 그는 톰에게 말했다.
“그녀는 굉장히 충동적이어서…”
“그런 것 같군.”
톰이 맞장구쳤다. 경감이 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실은 어떻게 되었다는 거요?”
“이 사람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에요. 엉터리예요!”
그리고 스페이드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지요?”
스페이드가 대답했다.
“나는 모르겠소. 내가 부엌에서 오믈렛을 한참 만들고 있을 때 시작된 일이어서. 안 그렇소?”
오쇼네시는 이마에 주름을 모으며 당황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톰이 지겨운 듯 신음 소리를 냈다. 댄디 경감은 오쇼네시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더니 스페이드의 말을 무시한 채 질문을 계속했다.
“당신 말대로 만일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당신이 아니라 이 사람이 살려달라고 소리친 것은 어떻게 된 일이오?”
“그는 내가 후려칠 때 무서워서 소리친 거예요.”
오쇼네시는 경멸하는 눈으로 레반트 인을 노려보았다. 카이로의 얼굴이 피묻지 않은 곳까지 새빨개졌다.
“나쁜 년! 또 거짓말을 하는군!”
그 말을 듣자 오쇼네시는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파란 하이힐 뒷굽이 카이로의 정강이를 때렸다. 경감이 여자에게서 카이로를 떼어내고 있는 동안 몸집 그 톰이 그녀 바로 옆으로 다가가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왜 이러시오. 꼴사납게!”
오쇼네시는 도전적으로 말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사실을 말하게 해주세요.”
그러자 톰이 나섰다.
“좋소, 내가 그렇게 하겠소. 그러니까 이렇게 난폭한 짓은 하지 마시오.”
댄디가 만족한 듯 차갑게 빛나는 녹색 눈으로 스페이드를 바라보며 톰에게 말했다.
“어떤가, 톰? 이들을 모두 끌고 가도 잘못은 없을 것 같은데.”
톰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페이드는 문에서 발길을 옮겨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던져넣고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 미소며 태도가 아주 상냥하고 침착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시오.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줄 테니.”
“정확하게!”
경감이 차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스페이드는 여자를 향해 머리를 숙여보였다.
“오쇼네시 양,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댄디 경감님, 그리고 폴하우스 경사님.”
그런 다음 그는 댄디 경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오쇼네시 양, 나의 조수입니다.”
조엘 카이로가 격분해서 소리쳤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여자는…”
스페이드는 큰 소리로, 그러나 여전히 상냥한 말투로 그 말을 가로막았다.
“아주 최근에 - 어제부터 나와 일하기로 되었지요. 그리고 이 쪽은 조엘 카이로 씨. 새스비의 친구, 아니 친구라기보다 잘 아는 사이지요. 어제 오후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새스비가 살해되었을 때 가졌던 것으로 추측되는 어떤 물건을 찾아달라고 했소. 여러 가지 설명을 들어보았으나 이야기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거절했지요. 그러자 이 사람이 갑자기 권총을 들이대더군요. 그러나 그건 상관없는 일이요. 고소사건으로 번지게 되지 않는 한. 아무튼 이 일에 대해 나는 오쇼네시 양과 의논해 보았소. 어쩌면 이 사람으로부터 마일즈 살해범과 새스비 살해범에 대해 어떤 단서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리로 와달라고 부탁한 거요. 아마도 우리가 좀 거친 방법으로 질문했던 모양이오. 하지만 크게 상처를 낸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살려달라고 소리칠 만한 일도 없었소. 다만 질문을 하기 전에 이 사람의 권총을 빼앗아둘 필요가 있었던 것인데…”
스페이드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카이로의 붉은 얼굴에 불안한 빛이 떠올랐다. 침착성을 잃은 눈이 쉴새없이 스페이드의 조용한 얼굴과 바닥 사이를 불안하게 오갔다. 댄디 경감이 카이로 쪽을 보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어떻소. 지금 이야기에 대해 할 말이 없소?”
카이로는 경감의 가슴을 쳐다보며 거의 1분쯤 잠자코 있었다. 이윽고 얼굴을 들었을 때 그 눈은 머뭇거리는 듯 경계의 빛을 띠었다. 그는 입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그의 곤혹은 진심인 것 같았다.
“글쎄, 뭐라고 해야 좋을지…”
“사실을 그대로 말하면 되는 거요.”
경감이 재촉했다.
“사실을 말입니까?”
카이로의 눈이 흔들렸으나 눈길은 경감의 눈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을 말해서 믿어준다는 보증이 어디 있습니까?”
“변명은 그만두시오. 당신은 다만 이 두 사람이 폭력을 휘둘렀다는 신고서에 선서하기만 하면 되는 거요. 그러면 영장 담당계에서 그것을 믿고 체포영장을 발급할 테고, 우리가 이 두 사람을 유치장에 잡아넣게 될 거요.”
스페이드가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시오, 카이로 씨. 경찰은 아주 기뻐할 거요. 걱정 말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시오. 그러면 이쪽에서도 당신을 상대로 고소장을 낼 것이고, 경감님은 우리를 모두 잡아다 가둘 수 있을 거요.”
카이로는 헛기침을 하고 모두들의 눈길을 피하며 신경질적으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경감이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자아, 모두들 모자를 쓰시오!“
불안과 의혹이 담긴 카이로의 눈이 비웃는 듯한 스페이드의 눈길과 부딪쳤다. 스페이드는 카이로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며 흔들의자팔걸이에 걸터앉았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스페이드는 레반트 인과 여자에게 싱긋 미소지어 보였다. 그 목소리와 웃음소리에는 기쁨이 넘쳐 있었다.
“멋지게 해냈지요?”
경감의 엄격한 네모진 얼굴이 조금 흐려진 것 같았다. 그는 위압적으로 되풀이했다.
“자아, 모자를 쓰시오, 어서!”
스페이드는 의자팔걸이에서 몸을 움직여 고쳐 않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농담을 해도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단 말이오?”
톰 폴하우스의 얼굴이 빨갛게 빛났다. 경감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으며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입술만 어색하게 움직거리고 있었다.
“좋소, 그러나 그런 말은 경찰서에 가서 하시오.”
스페이드가 일어나서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경감을 더욱 잘 내려다볼 수 있도록 몸을 꼿꼿이 폈다. 미소는 비웃음이 되고, 그 태도에는 자신이 넘쳐 있었다.
“끌고 갈 수 있거든 끌고 가 보시오, 경감.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신문들이 당신을 웃음거리로 삼을 거요. 우리가 서로 고소를 하다니, 설마 제정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잠을 깨시오! 속았소, 당신들은! 실은 벨이 울렷을 때 나는 오쇼네시 양과 카이로 씨에게 이렇게 말했소. ‘또 당신들이 찾아왔군. 점점 골치 아파지는데. 어떻소, 우리 한번 놀아줍시다. 돌아갈 듯한 눈치가 보이거든 둘 가운데 누가 비명을 지르시오. 저자들이 걸려들어 얼마나 허둥거리는지 한번 봅시다’ 하고 말이오. 그랬더니 생각했던 대로…”
브리짓 오쇼네시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카이로는 깜짝 놀라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생기없는 미소였지만, 그 표정을 그대로 지속했다. 톰이 시무룩한 얼굴로 신음하듯 말했다.
“여보게, 샘, 왜 이러나?”
스페이드는 입을 다문 채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이 그런 걸 어쩌나! 우리는…”
“그렇다면 이 사람의 머리와 입에 난 상처는? 이 상처는 어떻게 해서 생긴 거요?”
경감이 깔보듯이 말했다. 그러자 스페이드가 대답했다.
“본인에게 물어보시오. 아마 면도할 때 벤 거겠지요.”
질문도 받기 전에 카이로가 빠른 말투로 말했다.
“나동그라졌습니다. 두 분이 들어오실 때 권총을 빼앗는 장면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그만 넘어져서… 한참 옥신각신하다가 카페트 끝에 걸려 넘어진 겁니다.”
이야기하며 카이로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있었으므로 얼굴 근육이 떨렸다.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소!”
경감이 소리쳤다.
“좋습니다, 경감님. 믿든 안 믿든 그건 당신 자유지요. 그러나 이것은 거짓없는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그대로 밀고 나갈 뿐이오. 신문도 믿든 안 믿든 재미있는 기사가 될 것 같으니 기꺼이 써대겠지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어떻게 처리하겠소? 경감을 속였다는 죄를 씌우겠소? 우리는 아무도 당신에게 꼬리를 잡힐 만한 일은 하지 않았소.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한 것은 모두 농담이니까. 그래,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작정이오?”
경감은 스페이드에게로 등을 돌리고 카이로의 두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아무리 그래봐야 당신은 빠져나갈 수 없소! 큰 소리로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니까 우리가 살려주는 데 군말은 없겠지?”
그는 두 손으로 레반트 인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
“천만에요! 그건 모두 농담입니다. 이 사람이 당신들은 자기 친구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하기에…”
카이로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스페이드가 웃었다.
경감은 카이로의 손목과 멱살을 잡고 마구 끌어당겼다.
“아무튼 당신을 총기불법휴대로 연행하겠소.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도 따라오시오. 누가 웃게 될지 두고 봅시다.”
카이로의 겁먹은 눈이 옆으로 움직여 스페이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스페이드는 다시 웃었다.
“왜 이러시오, 경감님, 권총도 연극을 위한 소도구요. 그것도 실은 내 것이오. 공교롭게도 32구경이어서 미안하오. 그렇지 않았다면 새스비와 마일즈를 쏜 권총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경감은 카이로를 놓더니 발뒤꿈치로 홱 돌아서며 오른쪽 주먹으로 스페이드의 아래턱을 힘껏 올려쳤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스페이드의 미소는 맞는 순간 사라져버렸으나 곧 다시 꿈꾸는 듯한 미소로 바뀌어 떠올랐다. 그는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래로 처진 듬직한 어깨가 윗옷 속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그 주먹이 올라가기 전에 톰 폴하우스가 두 사람 사이에 파고들어 불룩한 배와 두 팔로 스페이드의 말을 막았다. 톰은 부탁하듯 말했다.
“그만둬, 샘!”
움직임이 모두 멎어버린 긴 한순간이 지나자 스페이드의 근육에서 힘이 빠졌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그럼, 어서 꺼져주게.”
미소가 다시 사라지고 음울해 보이는 얼굴이 조금 파리해졌다. 톰은 스페이드 옆으로 다가서며 두 팔로 스페이드의 팔을 누르고 머리를 뒤로 돌려 댄디 경감을 쳐다보았다. 톰의 작은 눈에는 비난하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댄디 경감은 불끈 쥔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두 다리를 조금 벌려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얼굴의 무서운 표정은 누그러져 녹색 눈동자와 눈꺼풀 사이에 가느다란 선의 흰자위가 보였다. 그는 톰에게 명령했다.
“이들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두게.”
톰은 카이로의 얼굴을 보자 그는 묻기도 전에 대답했다.
“조엘 카이로, 벨비디어 호텔레 있습니다.”
톰이 여자에게 채 묻기도 전에 스페이드가 얼른 대답했다.
“오쇼네시 양은 이리로 연락하면 되네.”
톰이 댄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경감은 굵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소를 알아두게!”
“주소는 우리 사무실로 해두면 되네.”
스페이드가 다시 말했다. 경감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여자 앞에 버티고 섰다.
“어디 살고 있소?”
스페이드가 톰에게 말했다.
“여보게, 톰, 저 치 빨리 데리고 나가게.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군.”
톰은 스페이드의 눈을 바라보았다. 험악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화내지 말게, 샘.”
톰은 입속말을 하며 코트 단추를 끼웠다. 그리고 그는 경감에게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투로 말했다.
“이제 됐지요?”
말을 마치자 그는 부지런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부루퉁한 댄디의 얼굴에 망설이는 빛이 역력히 나타났다. 갑자기 카이로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도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스페이드 씨. 모자와 코트를 주십시오.”
“왜 그렇게 서두르시오?”
스페이드가 물었다. 경감이 화가 난 듯했다.
“농담이라고 하면서도 역시 이 두 사람과 남는 게 무서운 모양이군.”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레반트 인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불안해하며 대답했다.
“밤이 꽤 깊었으므로 그만 가보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경감은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녹색 눈이 번들거렸다.
스페이드가 복도의 칸막이장에서 카이로의 모자와 코트를 가지고 왔다.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는 레반트 인에게 코트를 건네주고 뒤로 물러서서 톰에게 이야기했는데 목소리 역시 무표정했다.
“권총을 두고 가라고 하게.”
경감이 코트 주머니에서 카이로의 권총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경감이 먼저 나가고 이어서 카이로가 나갔다. 톰은 스페이드 앞에서 발을 멈췄다.
“괜한 짓은 하지 말게, 샘.”
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스페이드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스페이드는 그들을 보내느라고 복도 모퉁이까지 나가 톰이 현관문을 닫을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