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드는 낮이면 벽에 붙인 침대를 접어 올려 거실로 쓸 수 있게 한 침실로 브리짓 오쇼네시를 안내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모자와 코트를 받아들고 쿠션이 있는 흔들의자에 앉게 한 다음 벨비디어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카이로는 아직 극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돌아오면 곧 전화를 걸도록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스페이드는 테이블 옆 팔걸이 의자에 앉더니 갑자기 머리말도 없이 몇 년 전 북서부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의 경과를 자세히 전달하는 게 중요한 일인 듯 가끔 똑같은 말을 조금 바꿔서 되풀이하기는 했지만, 도중에 힘을 준다든지 또박또박 끊어 말하는 일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투로 침착하게 말했다.

 

처음에 브리짓 오쇼네시는 그다지 관심있게 듣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보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꺼낸 데 대해 놀라는 듯했다. 따라서 이야기 내용보다도 그런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의도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녀도 차츰 그 이야기에 끌려 들어가 이윽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타코마(워싱턴 주 서쪽에 있는 도시)시에서 부동산매매사업을 하던 프리트클래프트라는 사나이가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에서 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가기 30분쯤 전에 자기 입으로 그날 오후 4시에 골프를 치러 가자고 약속해 놓고서 그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부인도 아이들도 그 뒤 두 번 다시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부부사이는 아주 원만했으며, 그들 사이에는 5살, 3살 된 두 아들이 있었다. 타코마 시 교외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형 자동차 파커며 그밖에 성공한 미국인 생활에 있어야 할 것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었다.

 

프리트클래프트는 아버지에게서 7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받은데다 부동산 매매사업도 잘 되어 행방을 감췄을 무렵 그의 재산은 무려 2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일은 빈틈없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떠날 준비를 미리 해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해결되지 않은 용건도 몇 가지 있었다. 이를 테면 꽤 큰돈이 들어오게 될 거래가 그가 사라진 다음날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사무실을 나갈 때 몸에 지닌 돈은 기껏해야 5, 60달러밖에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지난 몇 달 동안의 일상생활은 일일이 눈 앞에 보듯 뚜렷했으므로 뭔가 어두운 비밀이 있다든가 부인 말고 숨겨둔 여자가 있지 않을까 - 이런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 하는 점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사라져버린 거요.”

 

스페이드가 말했다.

 

“손을 펴면 주먹이 모습을 감추듯이 그는 사라져버린 거요.”

 

스페이드가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여보세요… 카이로 씨요? 스페이드요. 내 아파트까지 와 주겠소? 포스트 거리 지금 곧… 그렇소만…”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입술을 조금 오므렸으나 곧 재빠른 말투로 덧붙였다.

 

“오쇼네시 양이 와 있는데, 당신을 만나고 싶다 하오.”

 

브리짓 오쇼네시는 미간을 찌푸리고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움직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수화기를 놓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곧 오겠다고 하오. 그런데 아까 그 이야기는 1922년에 있었던 일이요. 1927년에 나는 시애틀의 큰 사립탐정사에 있었소. 프리트클래프트 부인이 그곳으로 찾아와 스포캔에서 남편과 비슷한 사람을 본 이가 있다고 이야기했소. 그래서 내가 조사하러 갔지요. 그 사나이가 바로 프리트클래프트였소. 약 2년 전부터 스포캔에서 찰스 피어스 - 그건 그의 크리스찬 이름이었지요 - 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소. 자동차 가게를 하여 1년에 2만 달러 내지 5천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부인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들이 있었소. 스포캔 교외에 집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시즌에는 4시 이후에 골프를 치러 가는 습관이 있었지요.”

 

스페이드는 프리트클래프트를 찾거든 어떻게 하라는 뚜렷한 명령을 받지 않았었다. 두 사람은 더븐포트 호텔 스페이드의 방에서 이야기했다. 프리트클래프트에게는 전혀 죄의식 같은 게 없었다. 가족들이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두고 떠났으므로 자기 행동은 전혀 도리에 어긋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다만 그러한 자기의 생각을 스페이드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그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스페이드와의 대화에서 그것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스페이드는 그녀에게 계속 설명했다.

 

“나는 이해할 수 있었소. 그러나 프리트클래프트 부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요. 당치도 않은 억지라고 말이오. 하기야 그럴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것으로 사건은 끝났소. 부인은 더 이상 스캔들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고 했소. 남편이 그렇게까지 하여 자신을 속인 이상 - 그녀로서는 그렇게 생각되었던 거요 - 아무 미련이 없다는 것이었소. 그래서 그들은 원만히 이혼하여 모든 일이 무사히 수습되었지요.

그런데 그에게 생긴 사정이란 이런 것이었소. 그날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 새로 짓는 빌딩 - 겨우 철골만 세운 - 옆을 지나갔소. 그가 아래를 지날 때 8층에서인지 10층에서 들보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려와 바로 앞 보도에 무서운 기세로 부딪쳤다는 거요. 아주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요. 몸에 맞지는 않았지만 보도에 깔린 포석조각이 튀어 올라 볼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고 하오. 내가 만났을 때도 그 상처자국이 남아 있었소.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그는 그 상처자국을 가엾이 여기는 듯 손으로 쓰다듬었소. 물론 그는 순간 몸을 움츠렸으나, 공포보다도 오히려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고 하오. 누군가가 인생의 뚜껑을 열어주어 그 계략을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거요.

 

프리트클래프트는 선량한 시민이자 선량한 남편이며 아버지였소. 그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지요. 다만 본디부터 주위와 잘 어울리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오. 그는 그렇게 자라온 거요. 그가 아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사람뿐이었소. 그가 알고 있는 인생은 질서 있고 깨끗하며 건전하고 책임감 있는 것이었소. 그런데 그때 떨어져 내린 쇠들보가 인생이란 결코 근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그에게 일깨워준 거요. 선량한 시민이며 남편이며 아버지인 자기도 이처럼 사무실에서 레스토랑으로 가는 잠깐 동안에 떨어지는 쇠들보에 맞는 우발적 사고로 간단히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 - 인간은 그런 식으로 우연히 죽어버리는 존재로서, 맹목적인 운명이 눈감아주는 동안만 살아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거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그런 공정치 못한 운명이 아니었소. 최초의 충격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점은 단념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자기 생활을 분별 있게 정리해 가던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 결코 인생과 서로 보조가 맞지 않는다는 발견이 그의 마음을 휘저었소. 그 떨어진 쇠들보에서 5미터도 가기 전에 그는 이 새로운 인생의 모습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않는 한 다시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리하여 점심식사를 거의 마쳤을 무렵에는 이 적응수단을 발견했다고 하오. 자신의 인생은 쇠들보나 하나 떨어짐으로써 간단히 끝났을지도 모르니 이 기회에 깨끗이 다른 곳으로 떠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꿔버리자고 마음먹었던 거요. 자기도 누구 못지 않게 가족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없어도 결코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일은 해놓았고, 자기의 애정 역시 자신이 없어졌다고 해서 아내나 자식에게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줄 정도로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고 그는 말했소.

 

그날 오후 그는 시애틀로 떠났소. 거기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갔지요. 2년쯤 서부를 헤매다 다시 북서부로 돌아가 스포캔에 자리잡고 결혼을 했소. 두 번째 부인은 첫 번째 부인과 생김새는 닮지 않았지만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았다고 하오.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이지요. 골프와 브리지를 잘하고, 새로운 샐러드 만들기에 흥미를 갖는 그런 여자 말이오. 그는 자기가 한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소. 절대로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소. 어느 틈에 자신이 전에 버리고 온 타코마의 생활과 똑같은 생활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소. 그런데 내 마음에 든 게 바로 그 점이었소. 그는 우선 쇠들보가 떨어진 데다 자신을 적응시켰으나, 그 뒤 다시 그런 게 떨어지는 일이 없자 이번에는 떨어지지 않는 데에 자기를 적응시켰던 거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로군요.”

 

브리짓 오쇼네시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스페이드 바로 앞에 섰다. 커다랗게 뜬 그녀의 눈에 심각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지만, 카이로가 이곳에 오면 당신 태도에 따라 나는 완전히 불리한 입장에 놓을 수도 있어요.”

 

스페이드는 입술을 다문 채 조금 미소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그 말대로요.”

 

“당신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면 스스로 나 자신을 이런 입장에 놓이게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도 이해하시겠지요?”

 

오쇼네시는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스페이드의 푸른 윗옷에 달린 검은 단추를 비틀며 말했다.

 

“또 그 말이로군!”

 

스페이드는 일부러 진저리나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점은 이해하시겠지요?”

 

그녀는 끈질기게 물었다.

 

“아니, 모르오. 왜 당신을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당신에게서 물은 결과 우리는 이곳으로 오게 된 거요. 이야기를 뒤섞으면 곤란하오. 당신은 나를 설득하여 자기를 믿게 할 수 있는 한 구태여 애써 나를 믿을 필요는 없소.”

 

그녀는 스페이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콧구멍이 바르르 떨렸다. 스페이드는 미소지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여자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마오. 머지않아 그가 나타날 거요. 이 자리에서 그 사람과의 거래를 끝내시오. 그런 다음 우리 일을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럼, 나에게 맡겨주시는 거지요?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요?”

 

“물론이오.”

 

그녀는 스페이드에게 잡혀 있는 자기 손을 뒤집어 그의 손을 꼭 쥐며 나직이 말했다.

 

“당신은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이에요.”

 

“과장된 말은 하지 마시오.”

 

그녀는 미소를 띠고 나무라는 듯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자기 흔들의자로 돌아갔다.

 

 

조엘 카이로는 흥분해 있었다. 스페이드가 문을 미처 반쯤 열기도 전에 검은 눈을 무섭게 번뜩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스페이드 씨, 그 꼬마녀석이 밖에서 이 집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까 극장 앞에서 나에게 가르쳐주신 - 아니, 그 반대로 나를 그에게 보여준 건지도 모르지만 - 그 젊은이입니다. 대체 이 사실을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나는 속임수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않고 솔직한 마음으로 왔는데…”

 

스페이드는 잠깐 생각에 잠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쪽에서도 솔직한 마음으로 와달라고 부탁한 거요. 그러나 그 젊은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였을 거요.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그가 보았소?”

 

“물론이지요. 그냥 지나쳐갈까 생각했었지만, 당신 덕분에 둘이 함께 있는 현장까지도 보여줬으니만큼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아서…”

 

브리짓 오쇼네시가 문 앞으로 나와 스페이드 뒤에 서서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요?”

 

카이로는 검은 모자를 벗고 무뚝뚝하게 인사한 다음 시치미뗀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거든 스페이드 씨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이분에게서 들은 말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스페이드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어깨 너머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오늘 밤 나를 계속 미행한 젊은이요. …자, 들어오시오. 이런데 서서 이웃사람들에게 선전해봐야 이로울 게 없을 테니까.”

 

브리짓 오쇼네시가 스페이드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그 사람은 나 있는 아파트에도 미행해 왔나요?”

 

“아니, 그전에 내가 따돌렸소. 아마 나를 다시 잡으려고 이곳에 나타났을 거요.”

 

카이로는 검은 모자를 두 손으로 배 위에서 잡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스페이드가 그의 뒤에 있는 문을 닫자 모두들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안으로 들어서자 카이로는 다시 한 번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쇼네시 양.”

 

“그렇게 말하실 줄 알았어요, 조.”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카이로는 그 손을 잡더니 엄숙하게 절을 하고 얼른 다시 놓았다. 오쇼네시는 아까 그 흔들의자로 가서 앉았다. 카이로는 테이블 옆 팔걸이의자에 앉았다. 스페이드는 카이로의 모자와 코트를 칸막이장 속에 건 다음 창문 앞 긴의자 한쪽에 걸터 앉아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카이로에게 말했다.

 

“이분에게 들었는데, 당신은 그 매에 값을 붙였다지요? 그 돈은 언제 준비되나요?”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카이로는 잠시 미소를 띤 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더니 이윽고 스페이드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스페이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 얼굴은 침착해 보였다. 오쇼네시가 물었다.

 

“현금으로요?”

 

“물론이지요.”

 

카이로가 대답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 사이로 혀를 조금 내밀었으나 곧 디밀고 다시 물었다.

 

“만일 우리가 매를 넘겨주면 지금이라도 5천 달러를 주시는 거지요?”

 

카이로는 한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거 실례했군요. 전달이 잘못된 모양입니다. 지금 그 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은행문이 열려 있는 시간이면 언제고 곧 준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스페이드 쪽을 쳐다보았다. 스페이드는 자기 가슴에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사실일 거요. 어제 오후에 그의 소지품을 조사했을 때 주머니 속에는 몇백 달러밖에 없었으니까.”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스페이드는 싱긋 웃었다. 레반트 인은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목소리와 눈에 열의를 뚜렷이 엿볼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돈은 내일 아침, 10시 좀 지나면 틀림없이 내드릴 수 있습니다. 자아, 어떻습니까?”

 

“하지만 아직 매를 손에 넣지 못했어요.”

 

브리짓 오쇼네시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카이로의 얼굴에 순간 어두운 곤혹의 그림자가 스쳤다. 그는 보기 흉한 두 손으로 의자팔걸이를 꽉 움켜잡고 자그마한 몸집을 꼿꼿이 세우며 긴장했다. 검은 눈이 분노로 불탔다. 입이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오쇼네시는 위로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길게 잡아 1주일만 지나면 손에 넣을 수 있어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카이로는 의심을 나타내면서도 태도가 정중했다.

 

“플로이드가 감춘 곳에 있어요.”

 

“플로이드? 새스비 말입니까?”

 

오쇼네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그곳을 압니까?”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왜 1주일이나 기다려야 합니까?”

 

“아마 1주일은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걸 사려는 거지요, 조?”

 

카이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럼, 역시 그 사나이에게로 지금 돌아가 있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오쇼네시는 목구멍 속으로 낮게 웃었다.

 

“그때의 얼굴을 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카이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논리적인 결과지요.”

 

그는 한쪽 손바닥으로 다른 쪽 손등을 쓰다듬었다. 눈꺼풀이 늘어져 눈을 덮었다.

 

“그럼, 나에게도 묻게 해주십시오. 당신은 어째서 그걸 나에게 팔 생각이 들었지요?”

 

“난 무서워요. 플로이드가 그런 꼴을 당했으니만큼…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만지는 것조차 무서워서 누구에게든 곧 넘겨주고 싶어요.”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스페이드는 소파 위에 한쪽 팔꿈치를 짚고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번갈아보며 듣고 있었다.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한 자세, 여유있고 침착한 얼굴 표정 등 어디로 보든 그의 태도에서 호기심이나 초조함은 느낄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플로이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카이로가 나직이 물었다. 브리짓 오쇼네시는 오른손 둘째손가락으로 허공에 재빨리 G자를 그렸다.

 

“그래요…”

 

카이로는 웃음지었으나 그 미소에는 어딘지 의아해 하는 빛이 떠돌고 있었다.

 

“이 도시에 와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그런거야 대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녀는 초조한 듯이 대답했다. 카이로의 미소에 나타나는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아니, 큰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움직였는데, 일부러인지 우연인지 그 때 굵은 둘째 손가락 끝이 스페이드 쪽을 가리켰다. 오쇼네시는 그 손가락 끝을 흘끗 보더니 초조하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에게나 또 당신에게나…”

 

“그렇소. 그리고 밖에 있는 젊은이도 가담시켜야겠지요?”

 

“그래요.”

 

오쇼네시는 카이로의 말에 동의하며 미소지었다.

 

“당신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귀여워해주던 사나이가 아니라면.”

 

갑자기 카이로의 얼굴에 핏기가 치솟아 얼룩얼룩해졌다. 그는 화난 듯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이 소유물로 만들지 못한 남자가 아니오?”

 

브리짓 오쇼네시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긴장하여 파래진 얼굴에 큰 눈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재빨리 카이로 쪽으로 두 발자국 내디뎠다. 카이로는 당황하여 일어서려고 했다. 그 순간 그녀의 오른손이 날아가 그의 볼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뚜렷이 손자국을 남겼다.

 

카이로도 신음 소리를 내며 그녀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녀는 낮고 짧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비틀거렸다. 그때는 이미 가면처럼 무표정한 얼굴의 스페이드가 긴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느닷없이 카이로의 멱살을 움켜쥐고 카이로는 괴로운 듯 목을 그르렁거리며 한 손을 윗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스페이드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윗옷에서 빼내어 강제로 옆으로 벌리게 한 다음 힘껏 비틀었다. 부은 듯 보기흉한 손가락이 벌어지며 검은 권총이 바닥 카페트에 툭 떨어졌다.

 

브리짓 오쇼네시가 얼른 권총을 집어들었다. 멱살을 잡힌 카이로는 숨찬 목소리로 악을 썼다.

 

“또 폭력을 썼어. 이것으로 두 번째야!”

 

그는 목이 죄어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험상궂게 노려보았다. 스페이드 역시 소리쳤다.

 

“그렇군. 그러니까 두들겨 맞아도 잠자코 고맙게 받으란 말이오!”

 

그는 카이로의 손목을 넣더니 두툼한 손바닥으로 무섭게 그의 따귀를 세 번이나 연거푸 후려갈겼다. 카이로는 스페이드의 얼굴에 침을 뱉으려 했으나 입속이 말라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을 뿐이었다. 스페이드가 다시 그 입을 후려치자 아랫입술이 터졌다.

 

이때 현관 벨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듣자 카이로의 눈이 흘끗 옆으로 움직여 현관으로 통하는 복도 쪽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이미 분노의 눈이 아니라 경계하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브리짓 오쇼네시도 깜짝 놀라 숨을 죽이고 복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도 겁에 질려 있었다. 스페이드는 잠깐 카이로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피를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더니 곧 레반트 인의 목에서 손을 떼어내며 뒤로 물러섰다.

 

“누구일까요?”

 

오쇼네시가 스페이드 옆으로 다가오며 속삭였다. 카이로의 눈도 제자리로 돌아와 같은 질문을 했다. 스페이드는 초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낸들 어떻게 알겠소?”

 

벨이 다시 아까보다 더 요란스럽게 울렸다.

 

“좋아. 당신들은 조용히 있으시오.”

 

스페이드는 거실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스페이드는 복도의 불을 켜고 현관문을 열었다. 댄디 경감과 톰 폴하우스가 그곳에 서 있었다.

 

“여어, 샘.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을 것 같아서 왔네.”

 

톰이 말했다. 댄디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상냥하게 말했다.

 

“이서 오십시오, 경감님. 그런데 하필이면 늘 이런 시간에 올 게 뭐요. 이번에는 무슨 일이오?”

 

경감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그래요?”

 

스페이드는 문 앞을 막아선 채 말했다.

 

“그럼, 이야기해 보시지요.”

 

톰 폴하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이런 데 서서 이야기하겠나?”

 

스페이드는 문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사과하는 말투였다.

 

“오늘 밤에는 좀 곤란하네, 톰.”

 

스페이드의 얼굴과 같은 높이에 있는 톰의 얼굴이 친근한 경멸의 표정을 띠었으나 작은 눈은 빈틈없이 번쩍 빛났다.

 

“아니, 왜 이러나, 샘?”

 

그는 장난삼아 커다란 손을 스페이드의 가슴에 대었다. 스페이드는 그 손을 톰의 가슴으로 되밀어내고 이를 드러내 보이며 싱긋 웃었다.

 

“완력으로 하자는 건가, 톰?”

 

“잘 봐주게.”

 

톰은 투덜거리며 손을 떼었다. 댄디 경감이 이를 딱 소리나게 악물며 말했다.

 

“아무튼 들어갑시다!”

 

스페이드의 입술이 송곳니 위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요. 대체 어쩔 생각이오? 강제로 밀고 들어 오겠소? 여기서 이야기하겠소? 아니면 썩 돌아가겠소?”

 

톰이 신음 소리를 냈다. 경감은 여전히 이를 악문 체 말했다.

 

“여보시오, 스페이드 씨. 우리에게 조금 협조할 수 없겠소? 지금까지 당신은 우리를 아주 얕보고 속여왔지만, 우리도 이처럼 언제까지나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요.”

 

“좋소, 할 수 있다면 해보시오.”

 

스페이드는 거만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때가 되면 할 거요!”

 

경감은 두 손을 뒤로 돌리고 험악한 얼굴을 사립탐정 쪽으로 내밀었다.

 

“당신은 아처 부인과 한패가 되어 아처 씨를 속여왔다는 소문이 있소.”

 

스페이드는 웃었다.

 

“아무래도 당신이 만들어낸 소문 같은데요.”

 

“그럼,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그녀는 당신과 어울리고 싶어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가 절대로 들어주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소. 이 말은 어떻소?”

 

“당치도 않은 헛소문이오.”

 

“아처 씨가 살해된 건 그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소.”

 

경감은 힘주어 지껄였다. 스페이드는 얼마쯤 흥미를 나타냈다.

 

“억지부리지 마시오. 나를 한꺼번에 두 사람의 살인범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당신이 처음 생각한 것처럼 새스비가 마일즈를 죽였기 때문에 내가 새스비를 죽였다면, 내가 또 어떻게 마일즈를 죽일 수 있었겠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은 그만두시오.”

 

“당신이 누구를 죽였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소. 그 말을 꺼내 이러니저러니하는 건 당신이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해도 좋소. 당신이 두 사람을 죽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니까. 그런 생각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오.”

 

“흐음, 그러니까 내가 마일즈의 아내가 탐나서 마일즈를 죽였고, 그 죄를 새스비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새스비를 죽였다는 거요? 그거 참, 훌륭한 추측이군요. 이왕이면 누군가 또 한 사람 죽여 새스비 살해범으로 만들면 더 멋지겠는데요. 이런 수법을 어디까지 계속해 가야 속이 시원하겠소? 앞으로 일어나는 샌프란시스코의 살인사건은 모두 나에게 뒤집어씌울 작정이시오?”

 

“농담하지 말게, 샘.”

 

톰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자네도 알잖나. 직업상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네.”

 

“날마다 한밤중이 지나 여기까지 찾아와 쓸데없는 질문을 퍼붓는 것보다 좀 더 나은 일이 있을 걸세.”

 

“그리고 거짓답변을 듣는 것보다 말이오.”

 

댄디 경감이 신중하게 덧붙여 말했다.

 

“계속 지껄이겠소?”

 

스페이드가 경고했다. 경감은 스페이드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그 눈을 한곳에 고정시키며 말했다.

 

“만일 당신이 아처 부인과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면, 당신은 무서운 거짓말쟁이요. 나는 그 점을 분명히 말해 두겠소.”

 

톰의 작은 눈에 놀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스페이드는 혀 끝으로 입술을 적시며 대답했다.

 

“그것이 당신들이 잡은 최신 정보요? 그래서 이렇게 한밤중에 몰려온 거요?”

 

“그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요.”

 

“그럼, 또 무슨 이유가 있소?”

 

경감은 양쪽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아무튼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는 스페이드가 버티고 서 있는 문을 향해 뜻이 담긴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스페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경감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만족에 찬 위협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그는 톰을 보며 말했다.

 

“뭔가 까닭이 있는 모양이군.”

 

톰은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발의 위치를 조금 옮기며 중얼거렸다.

 

“하느님만이 아신다는 말인가?”

 

“무슨 말인가, 톰? 지금 퀴즈를 하고 있는 건가?”

 

스페이드가 물었다.

 

“아무튼 좋소. 스페이드 씨, 이만 돌아가겠소.”

 

경감은 코트 단추를 끼웠다.

 

“가끔 찾아오겠소. 우리에게 대드는 것도 좋지만, 좀더 잘 생각해 두시오.”

 

스페이드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좋소. 언제든지 오십시오, 경감님. 바쁘지 않을 때는 안으로 모실 테니까.”

 

그때 스페이드의 방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줘! 경감님! 살려주시오!”

 

그 째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은 조엘 카이로의 목소리였다. 경감은 문 앞에서 돌리려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스페이드 앞에 서며 잘라말했다.

 

“역시 들어가야겠소.”

 

잠깐 동안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 때리는 소리, 억눌린 듯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스페이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쓴웃음이 떠올랐다.

 

“역시 들여보내야 하나…”

 

그는 몸을 움직여 길을 비켜주었다.  두 경관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현관문을 닫고 그들 뒤를 따라 거실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