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
다음 날 아침 10시 스페이드가 사무실에 나가니 에피 필라인이 책상에 앉아 아침 우편물을 뜯고 있었다. 볕에 그을린 남자 아이 같은 얼굴이 파래졌다. 그녀는 손에 든 한 묶음의 봉투와 놋쇠 페이퍼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경계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그녀가 와 있어요.”
“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잖소.”
스페이드가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역시 나지막했다.
에피의 갈색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스페이드 못지 않게 초조했다.
“하지만 방법을 일러주시지 않았잖아요.”
잠깐 동안 에피는 눈을 감고 힘없이 어깨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피로한 듯 말했다.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나는 밤새도록 대꾸하느라고 시달렸어요.”
스페이드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머리 위에 살짝 손을 얹고 가르마를 따라 흩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미안하오, 우리 천사 아가씨,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바로 이때 갑자기 안쪽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아아, 아이버!”
스페이드는 문을 연 여자 쪽을 보며 말했다.
“샘!”
아이버는 30살을 조금 넘어보이는 금발의 미인이었으나 그 아름다움의 절정은 이미 5, 6년 전에 지나버린 듯했다. 여자치고는 아주 듬직해 보이는 몸집이지만 균형이 잘 잡힌 매력적인 몸매였다. 모자에서부터 구두에 이르기까지 온통 검은색 차림이었으나 상복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얼렁뚱땅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스페이드에게 살짝 인사하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스페이드는 에피 필라인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이버가 옆으로 다가가 슬픈 얼굴을 들고 키스를 요구했다. 키스가 끝나자 스페이드는 떨어지려고 몸을 움직였으나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트끼기 시작했다.
“정말 가엾은 일이오.”
스페이드는 그녀의 둥그스름한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의 눈은 자신의 책상 반대쪽에 놓인 죽은 동료의 책상을 화가 나는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꼭 깨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여자의 모자 끝을 피하기 위해 턱을 옆으로 돌렸다. 이윽고 그가 물었다.
“마일즈의 형님에게 알렸소?”
“네. 오늘 아침에 왔더군요.”
그러나 흐느끼는 데다 그의 윗옷에 입을 대고 말했으므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얼굴을 찡그리며 손목시계를 보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왼손은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손목은 그녀의 왼쪽 어깨에 있었다. 소매가 밀려 올라갔으므로 시계가 보였다. 10시 10분이었다.
그녀는 그의 품안에서 조금 움직이더니 다시 얼굴을 들었다. 촉촉이 젖은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흰자위가 눈알을 감쌌다. 입술도 젖어 있었다.
그녀는 신음하듯 말했다.
“샘, 당신이 내 남편을 죽였나요?”
스페이드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뼈가 불거진 턱이 툭 떨어졌다. 그는 손을 떼고 한 발자국 물러나 여자의 품에서 벗어나 그녀를 노려보며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그가 빠져나오자 그녀의 두 팔은 들린채 그대로 있었다. 고뇌에 찬 눈은 찌푸려진 눈썹아래에서 거의 감겨져 있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붉은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허허허!”
스페이드는 쉰 목소리로 날카롭게 웃었다.
그는 황갈색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로 갔다.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커튼 너머로 안뜰을 내려다 보았다. 이윽고 여자가 다가오는 기척을 알아차리자 홱 돌아서서 자기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팔꿈치를 세워 턱을 괴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늘게 뜬 눈두덩 사이에서 잿빛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쌀쌀하게 물었다.
“대체 누가 당신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넣어주었소?”
“그냥 문득…”
아이버는 말하다 말고 한쪽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또다시 눈물이 왈칵 솟아나왔다. 굽이 높은 조그만 검은 구두를 싣고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책상 옆에 와 서더니 그녀는 애원하듯 말했다.
“샘, 좀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그 말을 듣고 스페이드는 소리내어 웃었으나 눈은 아직도 번쩍거리고 있었다.
“농담도 정도가 있지! ‘샘 당신이 내 남편을 죽였나요?’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달라는 거요?”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말했다. 여자는 흰 손수건을 얼굴에 대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스페이드는 일어나서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끌어안고 귀와 옷깃 사이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자아, 아이버, 그만 울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페이드의 얼굴은 완전히 무표정했다. 여자가 울음을 그치자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오늘은 이곳에 오는 게 아닌데 잘못했소.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구려.”
여자는 사나이의 품에서 몸을 돌려 마주서며 물었다.
“오늘 밤에 와주시겠어요?”
스페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밤에는 갈 수 없소.”
“그럼, 가까운 시일 안에…?”
“가지.”
“언제쯤 오시겠어요?”
“되도록 빨리.”
여자에게 다시 한 번 키스하고 그는 문 앞까지 그녀를 데리고 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럼 잘가요, 아이버.”
그녀를 보내고 문을 닫자 스페이드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조끼주머니에서 담배말이 종이를 꺼냈으나 담배를 말지는 않았다. 한쪽 손에는 종이를 또 한쪽 손에는 담배를 든 채 우울한 눈길로 죽은 동료의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에피 필라인이 들어왔다. 그녀의 갈색 눈에는 어딘지 침착하지 못한 불안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되었지요?”
스페이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생각에 잠긴 눈길로 여전히 동료의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피는 눈살을 찌푸리며 책상을 돌아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이번에는 좀 더 큰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되었어요? 그 부인과 어떻게 타협되었지요?”
“그녀는 내가 마일즈를 죽인 줄 알고 있소.”
그는 입술만 움직이며 말했다.
“그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스페이드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에피는 그의 머리에서 모자를 벗겨 책상에 놓았다. 그리고 윗몸을 구부려 움직임을 잃은 그의 손가락에서 담배쌈지와 담배말이 종이를 빼앗았다.
“경찰은 내가 새스비를 쏜 줄 알고 있소.”
그는 말했다.
“새스비가 누군데요?”
에피는 종이다발에서 종이를 한 장 빼내어 그 위에 담배를 덜어놓으며 물었다.
“에피, 당신은 내가 누구를 쏘았으리라고 생각하오?”
그녀가 모르는 체하고 있자 스페이드는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새스비는 그 원덜리라는 여자의 부탁으로 마일즈가 뒤쫓던 사나이요.”
에피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담배를 다 말았다. 그녀는 종이 끝을 핥아서 붙이고 양쪽 끝을 비틀어 그것을 스페이드의 입술 사이에 물려 주었다.
“고맙소.”
스페이드는 한쪽 팔로 그녀의 가냘픈 몸을 끌어안았다. 그는 지친 듯 자기의 얼굴을 그녀의 허리에 기대고 두 눈을 감았다.
“아이버와 결혼할 생각이세요?”
에피는 그의 연갈색 머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바보 같은 말하지 말아요, 에피!”
스페이드가 중얼거렸다. 불붙이지 않은 담배가 그의 입술이 움직임에 따라 아래위로 흔들렸다.
“그러나 아이버는 그것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고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게끔 길들여놓았으니까요.”
스페이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여자는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도 있었잖아요.”
에피의 목소리에는 얼마쯤 짖궂은 울림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여자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밖에 모르오. 게다가 마일즈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그건 거짓말이에요, 샘. 당신도 알고 있듯이 나는 아이버를 무척 싫어해요. 하지만 나도 그녀와 같은 몸을 지니고 있다면 그렇게 될 거에요.”
스페이드는 초조한 듯이 그녀의 허리에 얼굴을 묻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피 필라인은 입술을 깨물고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그의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윗몸을 굽혀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그녀가 마일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스페이드는 다시 똑바로 앉아 에피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에피도 정말 재미있는 듯 웃었다. 스페이드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서 담배 끝으로 가져갔다.
“에피는 정말 천사야. 머리속이 텅 빈 귀여운 천사!”
그는 연기 속에서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에피는 잠깜 얼굴을 찡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나, 그럴까요? 하지만 오늘 새벽 3시에 내가 사건을 알리러 갔더니 당신의 아이버는 그때까지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웠다 막 돌아오는 참이었어요. 내가 진작 이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이야기했다면’ 이 아니라 이야기할 생각이었겠지?”
스페이드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뀌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니, 갈아입던 옷을 마저 다 입는 동안 나를 현관에서 기다리게 했어요. 의자 위에 벗어 던져놓은 옷을 보았는 걸요. 옷 밑에 있는 모자와 코트도 보았어요. 맨 위에 놓인 속옷은 아직 따뜻했지요. 자고 있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침대로 일부러 흩뜨려놓았지만 그 주름은 위에서 눌려 생긴 게 아니었어요.”
“에피도 어엿한 한 사람의 탐정이군. 그러나…”
스페이드는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두드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버가 죽인 게 아니오.”
에피 필라인은 잡힌 손을 홱 뿌리치며 밉살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녀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하고 있어요, 샘.”
스페이드는 한쪽 손과 머리를 흔들며 못 당하겠다는 시늉을 해보였다. 에피는 눈썹을 팔자로 찌푸리며 다그치듯 물었다.
“어젯밤 그녀를 만나셨지요?”
“아니.”
“정말이에요?”
“물론 정말이지. 댄디 경감처럼 굴지 마오. 당신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댄디 경감에게 쫓기고 있나요?”
“으음… 오늘 새벽 4시에 그와 톰 풀하우스가 한잔하러 들렀더군.”
“그들은 (이름이 뭐였지요?) 그 사나이를 정말 당신이 쏜 줄 아나 보지요?”
“새스비.”
스페이드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리고 다시 새것을 말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에피는 끈질기게 물었다. 스페이드의 눈은 말고 있는 담배에 집중되어 있었다.
“난 그런 것은 모르오.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오. 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어느 정도 납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샘, 나 좀 보세요.”
스페이드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짓자 순간 불안해 하던 그녀의 얼굴에 활짝 밝은 표정이 퍼졌다. 에피는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이에요. 당신은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는 줄 알지만 너무 지나친 데가 있어요. 머지않아 절실하게 느낄 때가 있을 거예요.”
스페이드는 한숨쉬는 시늉을 해보이며 그녀의 팔에 얼굴을 기댔다.
“댄디 경감도 그런 말을 하더군. 아무튼 당신은 나에게서 아이버를 멀리 있도록 해주오. 그러면 남은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일 테니까.”
그는 일어나서 모자를 썼다.
“그리고 저 문에 씌어진 ‘스페이드&아처’ 라는 글씨를 지우고 ‘새뮤엘 스페이드’ 라고 써넣도록 하시오. 한 시간쯤 뒤에 돌아오든가 아니면 전화를 걸겠소.”
스페이드는 세인트 마크 호텔의 긴 로비를 지나 카운터로 가서 모양을 낸 붉은 머리의 사나이에게 윈덜리 양이 있느냐고 물었다. 붉은 머리의 멋쟁이 사나이는 잠깐 옆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떠나셨습니다. 스페이드 씨.”
“고맙소.”
스페이드는 그곳을 떠나 로비 끝에 있는 작은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중년이지만 보기에는 아직 젊은 검은 옷의 뚱뚱한 사나이가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로비 쪽으로 향한 책상 끝에 금글씨로 ‘미스터 플리드’ 라고 씌어진 마호가니제 삼각형의 이름표가 놓여있었다.
뚱뚱한 사나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나오며 한 손을 내밀었다.
“여어, 스페이드 씨, 아처의 소식을 듣고 정말 안됐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오.”
조금도 주제넘어 보이지 않게 솔직히 동정심을 나타낼 수 있는 훈련을 많이 쌓은 사람의 말투였다.
“지금 막 신문에서 봤소. 알고 있겠지만 그는 어젯밤 이곳에 왔었거든요.”
“고맙소, 플리드 씨. 어젯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소?”
“아니오. 어제 저녁에 와보니 그가 로비에 앉아 있었소.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일하는 중인 것 같아서… 당신들은 바쁠 때면 내버려두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게 어젯밤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소?”
“아무 관계도 없으리라고 보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오. 그러나 아무튼 되도록 당신이 말려들지 않도록 하겠소.”
“고맙소.”
“안심하시오, 문제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젯밤까지 이곳에 머무른 손님에 대해 정보를 좀 제공해 주지 않겠소?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만의 일로 하고 곧 잊어버려 주었으면 고맙겠소.”
“좋습니다.”
“윈덜리 양이라는 젊은 여자손님이 오늘 아침 이곳을 떠났는데, 그녀에 대해 좀 자세히 알고 싶소.”
“나를 따라오시오. 어느 정도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사해 봅시다.”
스페이드는 우뚝 선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사양하겠소.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플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방을 나갔다. 그는 로비 중간쯤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스페이드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어젯밤 우리 탐정은 해리먼이 당번이었는데, 그도 틀림없이 아처를 보았을 거요. 미리 입막음을 해둘까요?”
스페이드는 곁눈으로 흘끗 플리드를 쳐다보았다.
“아니, 말하지 않는 게 좋겠소. 윈덜리라는 여자와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말이오. 해리머도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입이 가벼운 편이므로 숨길 게 있다는 눈치를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오.”
플리드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약 15분 뒤 그가 되돌아왔다.
“그 여자 손님은 지난 화요일에 도착했군요. 숙박 카드에는 뉴욕에서 왔다고 씌어 있으며, 트렁크 짐은 없고 작은 백이 몇 개 있었답니다. 방에서 전화를 걸 일도 걸려온 일도 없고 우편물도 없었다는군요. 꼭 한번 36, 7살쯤 되어 보이는 키가 크고 거무스름한 사나이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답니다. 오늘 아침 9시 30분쯤 외출했다가 한 시간쯤 뒤 돌아와서 계산을 치르고 짐을 자동차에 싣게 했다고 하오. 가방을 나른 급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내슈의 츠링 카였으며 아마도 전세낸 것인 듯했답니다. 연락처를 적어놓고 갔는데, 로스앤젤레스 앰배서더 호텔로 되어 있군요.”
“정말 고맙소.”
스페이드는 그에게 인사하고 세인트 마크 호텔을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가자 에피 필라인이 편지를 타이프치고 있던 손을 멈추며 말했다.
“친구되시는 댄디 경감이 왔다 갔어요. 당신의 권총을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이 계실 때 다시 와 달라고 했어요.”
“잘했군. 다시 또 오거든 보여주도록 하오.”
“그리고 윈덜리 양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었어요.”
“그럴 줄 알았소. 뭐라고 말했지?”
“꼭 뵙고 싶다면서 캘리포니아 거리 콜로네트 아파트 1001호의 르블랑 양을 찾아 와 달래요.”
에피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 쪽지를 집어들고 연필로 적은 메모를 읽었다.
“이리 주오.”
스페이드는 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에피에게서 메모지를 받아 들자 라이터를 꺼내 종이에 불을 붙였다. 잡고 있는 한쪽구석만 남기고 검은 재가 되어 오그라붙을 때까지 들고 있다가 리놀륨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구둣바닥으로 짓밟았다. 에피는 나무라는 듯한 눈초리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요. 알았소?”
스페이드는 싱긋 웃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