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세 번째 울렸을 때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리고 손가락이 나무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작고 단단한 물건이 카페트를 깐 바닥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스프링이 삐걱거리더니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으음, 난데… 뭐, 죽었어? …그래 … 곧 가지. 15분 뒤에. 그럼…”

 

딸깍 스위치 소리가 나고 천장 한가운데에 세 가닥의 금빛 사슬로 매달린 흰 사발 모양 조명이 방 안을 밝게 비췄다. 녹색과 흰색의 체크 무늬 잠옷을 입은 맨발의 스페이드가 침대가에 걸터앉아 있었다. 얼굴을 찌푸리고 테이블 위 전화기를 노려보며 손은 그 옆에 놓인 갈색 담배말이 종이와 블루 댈럼 담배쌈지를 집어들었다.

 

열어젖혀진 두 개의 창문으로 스며드는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1분에 여섯 번의 비율로 알카트라즈(샌프란시스코 만의 섬과 그곳에 있는 연방형무소)의 무딘 고동 소리를 실어다 주었다.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듀크의 《미국 유명 범죄사건집》 끝 부분에 위태롭게 얹힌 작은 괘종시계가 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페이드의 굵은 손가락이 정성껏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우선 둥글게 만 종이 안쪽에 황갈색의 썬 잎담배를 알맞게 덜어놓는다. 그리고 가운데를 가볍게 누르며 양쪽 끝에도 담배가 고루 가도록 편 다음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종이 안쪽 끝을 우겨넣고 둘째 손가락으로 종이 바깥쪽을 누르면서 말아간다. 그리고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으로 만 담배 양쪽 끝을 고르게 매만지며 이음매를 혀로 핥는다. 그리고 왼쪽 둘째손가락으로 담배 한쪽 끝을 잡고 오른쪽 둘째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축축한 이음매를 꼭꼭 누른다. 그런 다음 한쪽 끝을 살짝 비튼 뒤 다른 한쪽 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스페이드는 아까 마룻바닥에 떨어뜨린 니켈과 돼지가죽으로 만든 라이터를 주워 불을 켜서 입꼬리 쪽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옷을 벗어 던지자 팔, 다리, 몸통의 매끈한 살집과 둥글고 억센 어깨선이 마치 곰처럼 보였따. 그것도 털을 깎인 곰, 가슴털도 없는 곰처럼, 살결은 아이들처럼 부드러웠으며 옅은 분홍빛이었다.

 

그는 목덜미를 긁고 나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얇은 흰 바탕의 유니언슈트(셔츠와 바지가 하나로 된 콤비네이션)에 회색 양말, 검은 양말대님, 그리고 짙은 갈색 단화를 신었다. 구두끈을 매고 나자 수화기를 들고 그레이스턴 4500번을 돌려 택시를 불렀다. 녹색 줄무늬가 든 흰 와이셔츠에 흰 소프트 칼라, 녹색 넥타이, 낮에 입었던 회색 양복에 풍신한 트위드코트, 그리고 검은 회색 모자, 이리하여 몸치장이 끝났다. 담배와 열쇠와 돈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현관 벨소리가 났다.

 

부슈 거리가 차이나타운 쪽으로 내리막길을 이루기 직전, 스톡턴 거리를 가로지르는 지점에서 스페이드는 요금을 치르고 택시를 내렸다. 촉촉이 스며드는 듯한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엷은 밤안개가 거리를 뽀얗게 덮고 있었다. 스페이드가 차를 내린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에 몇몇 사나이가 모여서서 골목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 반대쪽에서도 두 여자와 한 사나이가 서서 그 골목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의 집들 창문에도 사람 얼굴이 보였다.

 

스페이드는 길을 가로질러 스톡턴 거리로 내려가는 초라한 돌층계 위에 입을 벌리고 있는 쇠난간의 통로 사이에 서서 축축한 난간 위에 손을 얹고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바로 아래 터널에서 자동차가 한 대 총알처럼 튀어나오더니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그 터널 입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 두 창고 건물 사이에 세워진 영화 프로그램과 가솔린 광고판 앞에 한 사나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광고판 밑을 들여다보듯 머리를 길바닥에 닿을 정도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한쪽 손은 땅바닥을 짚고 또 한쪽 손으로는 광고판 가장자리를 잡은 기묘한 자세였다. 그밖에도 두 사나이가 광고판 한쪽 끝에 엉거주춤 서서 건물 사이 좁은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쪽 끝엔 창문도 없는 건물의 회색 벽이 광고판 뒤 빈 터를 내려다보듯 서 있었다. 그 벽에 불빛이 반짝이고, 사람 그림자가 몇 개 불빛 속으로 어른거렸다.

 

스페이드는 난간을 떠나 부슈 거리를 걸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갔다. 짙은 감색 바탕에 흰색으로 ‘밸리트 거리’ 라고 쓴 에나멜 표지판 밑에서 껌을 씹고 있던 제복 차림의 경관이 한쪽 손을 들어 그를 가로막았다.

 

“무슨 볼일이오?”

 

“샘 스페이드요. 톰 폴하우스의 전화를 받고 왔소.”

 

경관은 손을 내렸다.

 

“아아, 당신이군요. 몰라봤습니다. 모두 저쪽에 있습니다.”

 

그는 어깨 너머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뜻밖의 일이어서…”

 

“그러게 말이오.”

 

스페이드는 맞장구치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어귀에서 얼마 안 들어간 곳에 검은색 구급차가 서 있었다. 구급차 뒤 길 왼쪽에는 허리께까지 울짱이 둘러쳐지고, 거칠게 깎은 판자가 가로대어져 있었다. 그 울짱 밖은 어둠 속에서 가파른 비탈을 이루어 아래쪽 스톡턴 거리 광고판까지 이르렀다.

 

울짱 위 3미터쯤 되는 곳의 가로대 한쪽 끝이 기둥에서 빠져나와 다른 한쪽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비탈을 4, 5미터쯤 내려간 곳에 평평한 돌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돌과 비탈면이 맞닿은 곳에 마일즈 아처가 벌렁 누워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두 사나이 중 한 사람이 손전등으로 시체를 비춰주었다. 그밖에도 손전등을 든 사나이가 몇 명 비탈면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나이가 큰 소리로 외치며 스페이드가 있는 골목으로 올라왔다.

 

“여어, 샘!”

 

그림자가 사나이보다 먼저 비탈을 뛰어올라왔다. 날카로운 눈초리, 두툼한 입술, 아무렇게나 면도한 거무스름한 턱, 맥주통처럼 불룩 나온 배를 가진 키큰 사나이였다. 구두도 무릎도 두 손도 턱도 온통 붉은 흙투성이였다. 사나이는 부서진 울짱을 넘어왔다.

 

“치우기 전에 자네가 시체를 보고 싶어할 것 같기에…”

 

“고맙네, 톰.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스페이드는 울짱기둥에 한쪽 팔꿈치를 얹고 아래에 있는 사나이들을 내려다보며 자기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톰 폴하우스는 진흙투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쿡 찔렀다.

 

“심장을 똑바로 맞았네, 이것으로.”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대형 연발권총을 꺼내 스페이드에게 건네주었다. 권총 표면의 움푹 파인 곳에 진흙이 박혀 있었다.

 

“웨블리일세. 영국제지?”

 

스페이드는 울짱기둥에서 팔꿈치를 떼고 흉기를 들여다보았으나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렇군. 웨블리 포스벨리 자동권총이야. 틀림없네. 38구경 8연발. 요즘은 만들지 않지. 몇 발 쏘았나?”

 

“꼭 한 발. 울짱을 꿰뚫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을 걸세.”

 

톰은 다시 자기 가슴을 쿡 찔렀다. 그는 진흙투성이인 권총을 들어올렸다.

 

“이거 전에 본 일 있나?”

 

스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웨블리 포스벨리라면 여러 번 본 일이 있지.”

 

그리고 흥미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맞은 모양이지? 지금 자네가 있는 그 근처에서 울짱을 등지고 있었겠군. 쏜 녀석은 이쯤 있었을 테고.”

 

그는 톰 앞으로 가서 둘째손가락을 수평으로 하여 가슴을 겨누었다.

 

“한 발 맞고 마일즈가 뒤로 쓰러지며 울짱을 뚫고 굴러 떨어지다가 돌이 있는 곳에서 멈추었겠지. 안 그런가?”

 

톰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맞네. 화약으로 윗옷이 눌었더군.”

 

“발견자는 누군가?”

 

“순찰 중이던 실링 순경일세. 부슈 거리를 걸어 모퉁이까지 왔을 때 방향을 바꾸는 자동차 불빛에 부서진 울짱이 보였다네. 그것을 살피러 왔다가 시체를 발견한 거지.”

 

“방향을 바꾼 자동차는?”

 

“전혀 모르네. 실링도 그때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해선 아무 주의도 하지 않았다더군. 파우엘 거리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이 골목에서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네. 있었다면 틀림없이 보았겠지. 그밖에 도망칠 길이라면 스톡턴 거리 광고판밖에 없네. 그런데 그리로 나간 자도 없다는 걸세. 안개로 땅이 젖어 있는데, 마일즈가 굴러떨어진 자국과 권총이 굴러내린 자국밖에 없네.”

 

“총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나?”

 

톰은 뒤로 돌아 울짱에 한쪽 발을 걸쳤다.

 

“무리한 말은 그만두게, 샘. 우리도 지금 막 온 참일세. 물론 조사하면 들었다는 사람이 나오겠지. 착수하기 전에 내려가보겠나?”

 

“그만두겠네.”

 

스페이드가 말했다. 톰은 울짱을 짚고 선 채 놀란 듯 작은 눈으로 스페이드를 쳐다보았다.

 

“자네들이 보았잖나. 내가 봐도 그 이상은 알 수 없을 걸세.”

 

톰은 여전히 스페이드를 쳐다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울짱에서 발을 떼었다.

 

“마일즈의 권총은 바지 뒷주머니에 그대로 있네. 한 발도 쏘지 않았더군. 코트 단추도 끼워진 채였지. 주머니 속에 1백 61달러가 들어 있었네. 일하는 중이었나 보구먼?”

 

스페이드는 한순간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었나?”

 

톰이 물었다.

 

“플로이드 새스비라는 사나이를 미행하고 있었을 걸세.”

 

스페이드는 윈덜리에게서 들은 새스비의 인상과 특징을 이야기했다.

 

“목적은?”

 

스페이드는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졸린 듯한 눈으로 톰쪽을 보며 깜박거렸다.

 

“목적은?”

 

톰은 애가 타는 듯 되물었다.

 

“그 사나이는 영국인인 것 같네. 그가 무엇을 꾀하고 있는지 자세한 것은 나도 몰라. 아무튼 우리는 그의 거처를 알려고 했던 걸세.”

 

스페이드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주머니에서 한쪽 손을 꺼내 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캐묻지 말게. 나는 이제부터 마일즈의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가야겠네.”

 

스페이드는 다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발길을 돌렸다. 톰은 얼굴을 찡그리며 무슨 말을 꺼내려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펴며 쉰 목소리로 상냥하게 말했다.

 

“참 안된 일일세. 이런 꼴을 당하다니… 마일즈도 우리처럼 여러 가지 결점이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좋은 점도 많았던 사람인데…”

 

“그렇지.”

 

스페이드는 건성으로 맞장구치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부슈 거리와 테일러 거리가 마주치는 곳에 있는 밤새 영업하는 약국에서 스페이드는 전화를 걸었다. 번호를 대고 한참 있다가 그는 말했다.

 

“여보세요, 아아, 우리 예쁜이인가?… 마일즈가 총을 맞았소… 응, 죽었소… 그렇게 흥분하지 마오… 응… 그래서 말인데, 에피, 당신이 아이버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겠어. …아니, 나는 안 돼. 꼭 당신이 해주오… 제발 부탁이오… 그리고 그녀가 사무실로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부탁하오… 내가 만나러 간다고 말하면 돼… 응… 가까운 시일 안에… 하지만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없도록… 그렇지, 그럼, 됐소. 당신은 정말 천사야. 그럼, 부탁하오, 안녕.”

 

스페이드가 다시 사발 모양 전등에 불을 켰을 때 그의 작은 괘종시계는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모자와 코트를 침대 위에 내던지고 부엌으로 가서 술잔과 길쭉한 바칼디 병을 들고 침실로 돌아왔다. 선 채로 한 잔 따라 마신 다음 병과 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그 앞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말았다. 술을 세 잔째 마시고 담배를 다섯 개비째 피워 물었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괘종시계 바늘이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문 옆에 있는 바깥으로 이어진 송화구 앞에 섰다. 그는 현관문을 여는 단추를 눌렀다. 입 속으로 참 골치 아픈 여자라고 중얼거리며 검은 송화구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볼이 불그레해졌다.

 

엘리베이터 문 여닫히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스페이드는 다시 한숨을 쉬고 복도문 쪽으로 다가갔다. 카페트가 깔린 바깥 복도를 걷는 부드러우나 묵직한 발소리로 미루어 아무래도 두 사나이인 것 같았다. 스페이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눈에서도 당혹한 빛이 사라졌다. 그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여어, 톰!”

 

스페이드의 눈에 아까 밸리트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눈 배가 불룩하고 키큰 형사가 보였다. 그는 톰과 나란히 서 있는 사나이에게 인사했다.

 

“경감님까지 오셨군요. 어서 들어오십시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스페이드는 문을 닫고 두 사람을 침실로 안내했다. 톰은 창가 긴의자에 앉고, 경감은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다.

 

경감은 몸집이 다부져보이는 작은 사나이로 짧게 자른 희끗희끗한 동그란 머리에 역시 희끗희끗한 짧은 콧수염을 길렀으며 네모진 얼굴이었다. 5달러짜리 금화를 넥타이핀 대신 꽂고 옷깃에는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비밀결사 배지를 달고 있었다.

 

스페이드는 부엌으로 가서 잔을 두 개 더 가져와 세 개의 잔에 술을 따른 다음 두 손님에게 한 잔씩 건네주고 나서 자기도 잔을 들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의 얼굴은 침착했으며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스페이드는 잔을 들고 “수사의 성공을 위해!” 하고 외치며 단숨에 들이켰다.

 

톰은 다 마시고 나서 잔을 발치에 놓고 진흙 묻은 둘째 손가락으로 입을 닦았다. 침대다리를 노려보고 서 있는 그 모습은 뭔가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경감은 손에 든 술잔을 10초쯤 바라보더니 홀짝 조금 마시고 잔을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는 험한 눈길로 흘끗흘끗 방 안을 샅샅이 들러본 다음 톰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톰은 긴의자 위에서 몸을 움직이며 얼굴을 들지 않고 말했다.

 

“샘, 이 사건을 마일즈 부인에게 알렸나?”

 

“물론.”

 

스페이드가 대답했다.

 

“어떻다던가?”

 

스페이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네.”

 

“그게 무슨 말인가?”

 

톰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경감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녹색이 감도는 눈이 이상하리만큼 엄격하게 스페이드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 눈은 마치 지렛대를 잡아당기거나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초점을 바꿀 수 없는 기계장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무슨 권총을 가지고 다니시오?”

 

“그런 건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사무실에는 몇 자루 있습니다만…”

 

“그 권총을 한 자루 보여줬으면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에는 없겠지요?”

 

“없습니다.”

 

“정말이오?”

 

스페이드는 미소지으며 손에 든 빈 잔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뭐하면 찾아보시지요. 방 안을 샅샅이 뒤져보십시오. 군말하지 않을 테니, 수색영장을 가지고 있다면요.”

 

“왜 그러나, 샘!”

 

톰이 항의하듯 말했다. 스페이드는 잔을 테이블에 놓고 일어서서 경감을 마주 보았다. 목소리도 눈도 험악하고 차가웠다.

 

“무슨 일로 왔소, 당신은?”

 

댄디 경감은 스페이드가 움직이는 대로 눈알을 옮겼다. 초점을 잃지 않고 눈알만 움직였다. 톰은 다시 긴의자에서 몸을 움직거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애원하듯 말했다.

 

“여기서 소동을 일으키려고 온 건 아닐세, 샘.”

 

스페이드는 톰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고 경감에게 말했다.

 

“용건이 뭐지요? 분명히 말해 보십시오. 대체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나를 끌어가려고 이곳에 오다니…”

 

“좋소! 어쨌든 앉아서 이야기 합시다.”

 

경감은 뱃속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든 서든 그건 내 마음이오.”

 

스페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톰이 다시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좀 침착하게, 샘. 여기서 이렇게 싸워봐야 무슨 소용 있겠나? 우리가 용건을 뚜렷이 밝히지 않는 까닭을 알고 싶다면 말하겠네. 그것은 아까 내가 새스비라는 사나이에 대해 물었을 때 자네가 전혀 관계 없는 일인 듯 대답했기 때문일세. 그런 식으로 우리를 취급해선 안 되네, 샘. 그건 자네가 잘못한 걸세. 그렇게 해서 자네에게 이득될 게 뭐 있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는 걸세.”

 

댄디 경감이 벌떡 일어나 스페이드 앞에 버티고 섰다. 네모난 얼굴을 뒤로 젖히며 키큰 스페이드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전에도 경고했소, 머지않아 발을 헛디디게 될 거라고.”

 

스페이드는 경멸하듯 입을 일그러뜨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조용히 비웃었다.

 

“누구든 발을 헛디디는 일쯤 있기 마련이오.”

 

“그러나 이번에는 당신 차례요.”

 

스페이드는 싱긋 웃으며 머리를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실수하지 않을 테니까.”

 

그의 얼굴에서 곧 미소가 사라졌다. 윗입술 위쪽이 쑥 올라가더니 송곳니가 드러났다. 가느다란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목소리도 경감의 목소리에 질세라 뱃속 깊숙이에서 울려나왔다.

 

“불쾌하군. 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얼씬대는 거요? 분명히 말해 보시오. 말할 수 없다면 빨리 돌아가시오. 잠을 자야겠소.”

 

“새스비란 어떤 사람이오?”

 

경감이 나무라듯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톰에게 다 이야기했소.”

 

“당신은 톰에게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왜 당신들은 그 사나이를 미행했지요?”

 

“나는 미행한 적 없소. 마일즈가 했지. 물론 이유가 있소. 그 사나이를 미행해 주면 합법적으로 통용되는 미합중국의 돈을 지불하겠다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 손님이 누구요?”

 

스페이드의 얼굴과 목소리가 다시 침착해졌다. 그는 나무라듯 말했다.

 

“그것은 의뢰인과 의논한 뒤가 아니면 말할 수 없소.”

 

“대답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법정에서 말하게 하겠소! 이건 살인 사건이요. 그 점을 잊지 마시오!”

 

경감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당신들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소. 말하고 안 하고는 내 마음대로라는 것 말이오. 경찰관이 노려본다고 울던 것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요.”

 

톰은 긴 의자를 떠나 침대가로 자리를 옮겼다. 수염을 아무렇게나 깎은 진흙투성이 얼굴이 피곤한 듯 주름져 있었다. 그는 설득하려는 듯이 말했다.

 

“샘, 고집부리지 말게. 우리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자네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으면 마일즈 살인범을 잡을 단서가 없단 말일세.”

 

“그 일이라면 경찰이 고소하지 않아도 되네. 우리집에서 죽은 사람은 내 손으로 장사지낼 테니까.”

 

경감이 자리에 앉아 다시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눈이 뜨겁게 단 녹색 원반 같았다. 경감은 기분 나쁜 우쭐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소. 우리가 당신을 만나러 온 이유도 사실은 그것이오. 안 그런가, 톰?”

 

톰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나 분명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댄디를 지켜보았다. 경감이 말을 이었다.

 

“나도 톰에게 그와 똑같은 말을 했소. 나는 톰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샘 스페이드라는 사나이는 자기집 일은 자기가 처리하는 사람 같군’ 하고 말이오.”

 

스페이드의 눈에서 경계의 빛이 사라지고 지루한 듯 흐릿한 눈으로 바뀌었다. 그는 얼굴을 톰 쪽으로 돌리며 무관심한 말투로 물었다.

 

‘자네의 동반자는 대체 무엇이 애가 타서 저러나?’

 

댄디는 그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나 두 개의 손가락 끝으로 스페이드의 가슴을 두드렸다.

 

“잘 들어 두시오. 새스비는 밸리트 거리를 떠난 지 35분 뒤 그가 묵고 있던 호텔 앞에서 총을 맞았소.”

 

그는 손가락 끝으로 장단을 맞춰 두드리며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발음했다.

 

스페이드 역시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요. 눈에 거슬리는군.”

 

경감은 두드리던 손가락을 떼었으나 말투는 바뀌지 않았다.

 

“톰의 말을 들으니 당신은 동료의 시체를 한 번 볼 여유도 없을 만큼 굉장히 서둘렀다던데…”

 

“샘, 그게 뭐였나. 꼭 도망치는 사람처럼.”

 

톰은 우물쭈물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경감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당신은 아처의 부인에게도 가지 않았소. 전화를 걸었더니 당신 사무실의 여비서가 받으며 당신 심부름으로 왔다고 말했지요.”

 

스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하고 조용한 얼굴이었다.

 

댄디 경감은 다시 구부린 손가락을 두 개 들어올려 스페이드의 가슴께로 가져가다가 허둥지둥 내렸다.

 

“전화를 찾아 그 비서에게 부탁하는 데 10분 걸렸다고 봅시다. 그리고 새스비의 숙소까지 가는 데 10분, 레븐위스 거리 근처에 있는 기얼리까지 10분이면 충분할 거요. 많이 잡아도 15분이면 되오. 그리고 상대방이 나타날 때까지 10분 내지 15분쯤 기다렸다고 합시다.”

 

“내가 그 녀석의 주소를 알고 있었단 말이오? 그리고 그 자가 마일즈를 죽인 뒤 곧장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거요?”

 

스페이드가 물었다.

 

“당신이 집에 돌아온 것은 몇 시였소?”

 

“4시 20분전이요. 생각에 잠겨 거리를 돌아다니다 온 거요.”

 

경감은 그 동그란 머리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당신이 3시 30분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전화를 걸어봤으니가. 어디를 돌아다녔소?”

 

“부슈 거리를 왔다갔다했소.”

 

“누구 만난 사람이 있소?”

 

스페이드는 유쾌한 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아니오. 증인은 한 사람도 없소. 아무튼 앉으시오. 아직 술이 남아 있군. 톰, 자네 잔을 이리 주게.”

 

“아니 난 그만하겠네, 샘.”

 

경감은 자리에 앉았으나 자기 잔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스페이드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쭉 들이키더니 빈 잔을 테이블에 놓고 침대로 돌아갔다.

 

“내 입장을 이제야 알겠소.”

 

그는 친근한 눈길로 두 형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화를 낸 것은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들어오자마자 느닷없이 무슨 죄인이라도 다루듯 딱딱거리니 화가 안 나겠소? 마일즈가 살해되어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착잡한데, 당신들까지 으르대니… 그러나 이제는 문제 없소. 당신들이 온 목적을 알았으니까.”

 

“그만하면 됐네.”

 

톰이 말했다. 경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스비는 죽었소?”

 

스페이드가 물었다. 경감이 대답을 망설이자 톰이 대신 그렇다고 대답했다.

 

댄디 경감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고 있다면 알아두는 게 좋을 테니 말해 두겠소.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죽어버렸소.”

 

스페이드는 담배를 말면서 얼굴도 들지 않고 말했다.

 

“지금 한 말은 무슨 뜻이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요?”

 

“바로 말 그대로의 뜻이오.”

 

댄디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스페이드는 눈을 든 채 한쪽 손으로 담배 끝을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 라이터를 집어들며 경감의 얼굴을 보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당신은 아직 나를 묶을 준비를 하지 못한 모양이지요, 경감님?”

 

댄디는 녹색 눈으로 흘끗 스페이드를 흘겨보았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일일이 참견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경감님?”

 

“여보게, 샘, 시비조로 나오지 말게.”

 

톰이 끼어들었다. 스페이드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더니 웃으면서 연기를 뿜어냈다.

 

“좋아, 시비조로 굴지는 않겠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새스비라는 사나이를 죽였는지 다시 말해 주겠소? 그만 잊어버렸거든…”

 

톰이 불쾌한 듯 코를 킁킁거렸다. 댄디 경감이 입을 열었다.

 

“호텔로 돌아가려는 그를 거리 반대쪽에서 등을 향해 네 발 쏘았소. 44나 45구경 권총으로, 목격자는 없지만 대충 그렇게 추정하고 있소.”

 

“그는 루가를 넣은 권총 케이스를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한 발도 쏘지 않았더군.”

 

톰이 설명해 주었다.

 

“호텔 사람은 그에 대해 뭔가 알고 있던가, 톰?”

 

스페이드가 물었다.

 

“1주일 전부터 묵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더군.”

 

“혼자서?”

 

“혼자서.”

 

“그가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이나 방에 있던 것으로 뭔가 발견되지는 않았습니까, 경감님?”

 

그러자 댄디는 입술을 빨아들이듯하며 되물었다.

 

“무엇이 발견되었을 것 같소?”

 

스페이드는 구부러진 담배로 공중에 아무렇게나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의 신원이나 장사에 관련된 일을 알아낼 만한 단서 같은 것 말이오.”

 

“우리는 당신에게서나 그 점을 알아낼 수 있을까 해서 찾아온 거요.”

 

스페이드는 노란빛 도는 회색 눈에 과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담담한 빛을 떠올리며 경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새스비라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소. 살았을 때도 죽은 뒤에도.”

 

댄디 경감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톰도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이제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 물어본 셈이오.”

 

댄디는 녹색 자갈 같은 엄격한 눈 위의 눈살을 험상궂게 찌푸렸다. 그는 콧수염을 기른 윗입술을 이에 찰싹 붙이고 아랫입술만 움직이며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나 당신보다 우리 쪽에서 더 많은 말을 했소. 그러니까 지나칠 정도로 공평한 거요.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요? 비록 당신이 했든 하지 않았든 나는 어디까지나 공평한 태도로 승부를 겨룰 참이오. 기회도 충분히 주겠소.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당신을 특별히 비난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적당히 봐 주는 일도 없을 거요.”

 

“정말 공평하시군요. 그러나 그 잔을 비워주면 한층 더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요.”

 

스페이드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댄디 경감은 테이블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잔을 들어 천천히 마셨다. 이윽고 그는 한 손을 내밀었다.

 

“편히 쉬시오.”

 

두 사람은 점잖고 엄숙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톰과 스페이드도 엄숙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스페이드는 두 사람을 보내자 옷을 벗고 불을 끈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