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
《말타의 매(1930)》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미스터리문학사에 새로운 역사를 이룩한 기념할 만한 작품이다. 작가 대쉴 해미트는 그때까지 써온 수수께끼 풀이 위주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에서 손을 떼고 하드보일드 파(派)라 불리는 새로운 분야의 미스터리소설을 써낸 창시자이다. 《말타의 매》가 바로 그 첫작품으로, 문학사상 불후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해미트가 미친 영향은 굉장하여 하드보일드파가 그 뒤 미스터리소설계의 지배적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계자의 한 사람인 레이먼드 챈들러는 《단순한 살인 예술(1944)》이라는 작품의 평론 속에서 그 의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챈들러는 우선 코난 도일 이후에 나온 영국계 수수께끼 풀이 미스터리소설, 특히 A.A. 밀른과 플리먼 윌즈 크로프츠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일러 비현실적이고 기계적인 이야기라고 헐뜯었다. 논리와 추리놀이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로 조금도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미트를 정점으로 한 새로운 ‘현실적 미스터리소설’ 의 문학운동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 세계를 묘사했으며 사물의 이면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력에도 굽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일상적인 말을 써서 무질서와 폭력이 지배하는 악으로 가득찬 사회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분명 해미트가 만들어낸 사뮤엘 스페이드라는 탐정은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같이 초인적인 추리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스페이드는 두뇌의 추리보다 일단 부딪쳐보는 행동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비교적 인간적인 탐정이다.
드러내놓고 돈벌이에 집착하며, 힘이 세고, 경쟁심도 뛰어나지만, 실수도 하고 화도 낸다. V자형 얼굴생김도, 처진 어깨며 원추형 몸집도 아주 보기흉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전혀 주인공답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표정이 변하지 않고 감상적인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인을 안는 데도 결코 빠지는 일이 없고, 술과 담배(직접 말아피우는)와 주먹을 동무삼아 사는 억센 사나이, 냉혹비정하고 고독하나 긍지를 지닌 이 사나이는 인간 존재의 불안한 상황에 놓인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다. 지금까지의 수수께끼 풀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분석적 명탐정을 대신하는 새로운 행동파 탐정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 작품 ‘허공에 그려진 G’ 첫머리에는 이야기 줄거리와 아무 관계없는 프리트클래프트라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스페이드의 입을 통해 나오는데, 실은 이것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사나이가 인식한 인생의 부조리야말로 이 작품의 밑바닥에 깔린 의미이며, 그러한 인간존재의 불안한 상황이야말로 이 작품이 그리는 세계의 축도(縮圖)라고 할 수 있다. 하드보일드파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하드보일드는 안정된 사회의 산물인 본격파 미스터리소설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광란의 20년대, 금주법과 재즈 시대의 미국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문학이었다.
프랑스의 문예평론가 자크 카보는 《잃어버린 대초원(1966)》이라는 미국 문학론에서 ‘미국을 이룩한 15편의 소설’ 에 대해 기술했는데, 그 가운데 이 《말타의 매》가 포함되어 있다. 카보가 그 저서에서 서부 대초원의 고독한 사나이를 그리는 미국 소설의 전형이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금주법시대의 도시로 무대를 옮겼다고 말하며 대초원은 도시의 뒷거리로, 인디언은 갱으로, 카우보이는 탐정으로 모습을 바꾸지만 거친 사나이의 규칙은 억센 사나이의 모랄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 점이 재미있다.
그는 이어서 재즈와 영화가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고, 해미트의 문체는 카메라 눈을 통한 리얼리즘이고, 문장은 사실과 동작을 세밀하게 묘사한 데 지나지 않으며, 언어는 사물의 반주를 이루고 있다고 평했다. 그리하여 헤밍웨이의 메마른 문체에 탐정이야기를 집어넣고 암흑과 폭력 세계에 새디즘과 에로티즘을 섞어 ‘명예’ 라는 사나이의 모랄에 사는 인간을 그린 새로운 분야의 미스터리소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카보의 견해이다. 이 견해는 수긍이 갈 만하다.
대쉴 해미트는 1894년 5월 27일 메밀랜드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인 프랑스의 드 셰르 집안은 모든 전쟁에 출전하여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하는데, 해미트도 제1, 2차 세계대전에 나갔다가 두 번이나 병에 걸려 평생 건강 때문에 괴로워했다. 이것도 무슨 인연이라고 해야 할는지.
어린시절을 볼티모어 시에서 지냈으나 집이 가난하여 13살 때 중학교를 중퇴하고 철도 메신저보이로부터 시작하여 7년 동안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하였다. 철도공원이나 짐꾼 같은 육체노동도 했고 광고문안작성 사무원 같은 사무일도 해보았으나, 마침내 미국의 유명한 사립탐정 사무실 핀커튼 사에 들어가 탐정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그의 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뮤엘 스페이드는 물론 《그림자 없는 사나이(1932)》에 나오는 닉 찰스도 작가 자신의 자세가 현실적이라기보다 이상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말타의 매》의 작중 인물도 대개 모델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브리짓 오쇼네시는 실제적인 사건의뢰인이었으며, 개트맨은 독일의 스파이로 작가 자신이 미행했던 사나이고, 윌머는 보석사기사건에 관련되어 작가가 체포한 불량배이며, 카이로는 그가 잘못 체포했던 사나이였다. 그들은 저마다 힌트를 얻은 실존인물이 있으니 그가 그리는 인물이 실감을 주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위생병으로 종군했으나 결핵에 걸려 병원을 옮겨다니다 다시 탐정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남의 사생활에 관여하기가 싫어 얼마 안 되어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하여 대중 소설과 순문학의 융합을 꾀했다.
그 무렵 나오던 <블랙 마스크>라는 대중잡지는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신문잡지 판매장에서 굉장한 인기를 불러모았다. 이 잡지는 편집장 조제프 T. 쇼의 방침에 따라 본격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대중성을 겨냥한 것인데, 1929년 8월호에 실린 해미트의 《끈끈이 종이》라는 범죄실화식 단편소설이 주목을 끌었다.
이어서 발표한 장편 《피의 수확(1929)》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잔혹한 시니시즘과 공포에 있어 완벽’ 하다고 격찬했다. 거기에 대해 해미트는 ‘그런 호모 녀석의 입에 내 말이 오르내리는 것은 싫다’ 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남자다운 소설에 생사를 거는 그의 면목을 엿볼 수 있다.
뒤이어 《데인 집안의 저주(1929)》《말타의 매》《유리열쇠(1931)》《그림자 없는 사나이》 등 행동파 범죄소설의 성공작이 계속 나왔다.
뒷날 미국의 유일한 여류작가가 된 릴리안 헬먼과의 교우관계는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은 그 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그림자 없는 사나이》에서 퇴직한 탐정 닉 찰스의 아내 노라는 릴리안이 모델이라고 한다. 한편, 릴리안의 출세작이 된 희곡 《아이들 시간(1934)》의 제재는 낡은 법정기록 속에서 해미트가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해미트는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약했는데, 그 대표작은 릴리안의 희곡 《라인의 감시(1941)》를 시나리오화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진하여 통신병에 지원하여 종군했으나 거기서 폐기종을 얻어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 《샘 스페이드의 모험(1944)》《콘티넨탈 탐정(1945)》 등의 작품이 크게 히트하자 샘 스페이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등장하여 시청자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만일 매사추세츠 주의 휴양지 매사즈 비너드 섬의 아담한 집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는 릴리안과 평화롭고 행복한 노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좌익 소탕의 매커시 사건이 일어나 그는 1915년 6달 동안 형무소에서 살았다. 그가 보증하여 보석(保釋)이 허용된 네 사람의 공산주의자가 행방을 감췄기 때문에 그는 법정에 불려나가 보석금의 출처 등을 조사받았으나 증언을 거부하여 법정모욕죄로 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샘 스페이드처럼 결코 약점을 보이지 않는 해미트는 병과 싸우며 복역했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형무소행을 ‘대학입학’ 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2년 뒤 그는 다시 비미활동위원회에 불려나갔다. 《말타의 매》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좌익책이라 하여 정부도서관에서 추방되었다.
매카시 의원이 그를 보며 “만일 당신이 우리 입장에 있다면 당신책을 도서관에 두도록 하겠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나 같으면 도서관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961년 1월 10일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6, 7편의 장편소설을 썼을 뿐이다. 미스터리소설작가로서는 뜻밖이라고 할 만큼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하드보일드파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공로는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이 분야가 한편으로는 이른바 액션 이야기라고 불리는 에로티즘과 새디즘을 내세운 통속범죄소설로,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 이야기와 스파이 이야기 등의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