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나는 32킬로 남짓 달려서 시내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배가 차자 점점 더 이 모든 처사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내가 하고 돌아다니는 식으로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얼이나 베린저 박사처럼 흥미로운 인물들을 만날지는 모르지만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타이어는 닳고 기름 낭비에 입만 아프고 수지도 안 맞는 게임을 하느라 신경만 쓰게 된다. 검정 28번에 룰렛 테이블 한도액까지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V로 시작되는 이름은 고작 세 개뿐이니 내가 찾고 있는 남자를 만날 확률은 엉터리로 게임하는 그리스인 닉(유명한 포커 챔피언)을 이길 확률 정도는 된다.
어쨌거나 첫 번째는 항상 안 맞게 마련이고, 막다른 골목이며, 확실해 보이다가도 아무 예고 없이 허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는 웨이드 대신에 슬레이드라고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는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리가 없고 잊어버렸다면 아예 이름도 잊어버렸을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부카니치 박사와 발리 박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갈까 말까? 가게 되면 오후 시간을 몽땅 허비하게 될 것이었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밸리에 있는 웨이드 저택에 전화를 걸었다가 그 집의 가장이 자기 주소지로 돌아와 있으며 당분간 아무 일 없을 거란 얘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부카니치 박사는 찾아가기 쉬웠다. 그 길을 죽 따라 여섯 블록만 가면 되었다. 그렇지만 발리 박사를 만나려면 알타디나까지 끔찍이도 먼 길을 더운 날 지루하게 운전해서 찾아가야 한다. 갈까 말까?
마지막 대답은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수상쩍은 연줄과 그 관련자들은 잘 알아둘수록 도움이 되기 때문에, 두 번째는 피터스가 나를 위해 꺼내다준 파일에 내가 뭔가 보충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감사와 호의의 표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세 번째는 달리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차를 그 자리에 남겨둔 채 거리 북쪽에 있는 스톡웰 건물까지 걸어갔다. 오래된 건물로 정문에 담배 판매대가 있고 수동으로 조작되는 엘리베이터는 계속 흔들리면서 똑바로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6층 복도는 좁았고 문에는 희뿌연 유리판이 끼워져 있었다. 내 사무실 건물보다 더 오래되고 훨씬 더 더러웠다. 입주자들을 보니 의사, 치과의사, 별로 신통치 않은 크리스찬 사이언스 전도사, 내 상대방이 고용했으면 싶은 변호사… 다시 말해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는 의사들이 그득한 건물이었다. 별로 능숙하지도 않고, 별로 깨끗하지도 않으며, 별로 기민하지도 않고, 간호사에게는 고작 3달러와 공손한 말 정도밖에 주지 못하는 사람들. 현재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종류의 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돈을 얼마나 짜내서 유지비를 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지치고 맥을 잃은 의사들. 신용카드는 받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십니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십니다. 어금니가 상당히 많이 흔들리네요, 카진스키 부인. 새 아크릴 충전재를 하시는 게 어때요. 금니나 다름없답니다. 그럼 14달러에 해드릴게요. 2달러 더 내시면 노보카인도 드리고요.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십니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십니다. 3달러 되겠습니다. 지불은 간호사에게 해주세요.
그런 건물에는 언제나 정말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몇몇 있지만 겉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보호색을 뒤집어쓰듯 초라한 배경에 맞춘다. 한편으로는 석방 보증금 전문 사기단과 손을 잡은 악덕 변호사가 있다. (지금까지의 피해액 가운데 2퍼센트만이 회수되었다고 한다) 고객이 원하는 어떤 직업으로든 행세하며 자신의 설비를 설명해주는 낙태 전문 의사도 있다. 비뇨기과, 피부과 등 치료를 자주 받아야 하고 정기적인 국부 마취가 필요한 모든 분야의 의사처럼 행세하는 마약업자들도 있다.
레스터 부카니치 박사의 대기실은 작고 내부 장식도 빈약했는데, 그 안에서 열두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두 불편해 보이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과 별반 다름없어 보였다. 특징이라고는 없었다. 자제력이 좋은 마약 중독자라면 채식주의자 경리직원과 구분할 수가 없다. 나는 45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환자들은 두 개의 문을 통해서 들어갔다. 정력적 이비인후과 의사라면 진료실이 충분히 넓을 경우 동시에 네 명의 환자를 돌볼 수 있다.
마침내 내가 들어갔다. 나는 들어가서 흰 수건 위에 치료도구 세트가 놓여 있는 탁자 옆 갈색 가죽의자에 앉았다. 벽에 붙은 소독기에서는 보글보글 거품이 일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둥근 반사경을 이마에 건 부카니치 박사가 씩씩하게 들어왔다. 그는 내 앞 걸상에 앉았다.
“안면두통이라고요? 아주 심한가요?”
그는 간호사가 건네준 폴더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끔찍하다고 말했다. 눈이 멀 정도라고. 아침에 일어나면 더욱 심하다고. 박사는 현명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이죠.”
그는 만년필처럼 보이는 것 위에다가 유리 뚜껑을 맞추면서 말했다.
그는 그것을 내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턱은 벌린 채로 그대로 두고 입술만 오므리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껐다. 방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환기팬이 어딘가에서 그르릉 소리를 냈다.
부카니치 박사는 유리관을 빼더니 다시 불을 켰다. 그는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충혈된 부분은 전혀 없는데요, 말로우 씨. 머리가 아프시다면 비강 상태 때문이 아닙니다. 감히 추측컨대 아마 일생 동안 한번도 비강염으로 고생한 적이 없을 듯한데요. 코 격막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는 것 같군요.”
“네, 선생님. 미식축구하다가 채였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튀어나온 뼈 부분이 있는데, 잘라내는 게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하지만 숨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는 걸상 뒤로 기대더니 무릎을 짚었다.
“그럼 정확히 제가 무얼 해드리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는 재미없으리만큼 얼굴이 창백하고 마른 남자였다. 결핵에 걸린 하얀 쥐 같았다.
“내 친구 한 사람에 대해서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아주 상황이 안 좋은 친굽니다. 작가죠. 돈은 많은데 신경이 쇠약해요. 도움이 필요하죠. 결국에는 며칠씩 술독에 빠져서 살아요. 영양을 섭취할 무언가가 더 필요한데요. 그 친구 주치의는 더이상 협조해주지 않으려고 해서요.”
“정확히 협조라는 말뜻이 뭡니까?”
부카니치 박사가 물었다.
“그 친구가 필요한 건 다만 진정할 수 있게 가끔 주사나 놔달라는 거죠. 어쩌면 뭔가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은 문제가 안 되고요.”
“죄송합니다, 말로우 씨. 그런 일은 제 전문이 아닌데요.”
그는 일어섰다.
“굳이 말하자면 약간 접근 방식이 조잡하군요. 원하면 친구분이 직접 진찰받으러 오시죠. 뭔가 치료가 필요한 다른 부분에 이상이 있는 거겠죠. 그럼 10달러 되겠습니다, 말로우 씨.”
“딴전 피우지 마시죠, 박사.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던데.”
부카니치 박사는 벽에 기대 담뱃불을 붙였다. 그는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불어내고 그걸 바라보았다. 나는 연기 대신 바라보라고 내 명함 한 장을 주었다. 그는 명함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게 무슨 명단이죠?”
“철창 의사들 명단이죠. 내 친구를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름은 웨이드입니다. 저쪽 어딘가 작은 하얀 방에 감춰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이 친구는 집에서 나간 뒤로 실종되어서.”
“얼치기 친구로군.”
부카니치 박사가 말했다.
“나는 고작 나흘짜리 알코올 중독 치료 같은 자잘한 일에는 손 안 대.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치료 안 된다고. 작은 하얀 방 같은 것도 없고. 당신이 말한 친구도 몰라. 그런 사람이 실제 존재한다고 쳐도. 그러니까 10달러나 내. 현금으로 당장. 아니면 경찰을 불러서 당신이 나한테 마약을 뜯어내려고 유도했다고 고소할까?”
“그것 참 신사적이군.”
나는 말했다.
“그럴 테면 그러시든가.”
“여기서 나가. 싸구려 사기꾼 녀석.”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내가 실수했나 보군요, 박사님. 이 친구가 마지막으로 실종되었을 때 V로 이름이 시작하는 의사와 함께 숨어 있었다고 했어요. 철저히 은밀하게 영업하는 데죠. 그 사람들은 이 친구를 늦은 밤에 데리고 가서는 그 친구가 정신이 좀 안정되자 똑같은 방식으로 데려다놨죠. 그 친구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볼만큼 기다리지도 않고 가버렸다는군요. 그리고 이 친구가 다시 돌아버려서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자, 자연스레 우리는 실마리를 찾아서 파일을 뒤져본 겁니다. 파일에서 V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의사를 세 명 찾아냈죠.”
“재미있는데.”
박사는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시간을 벌고 있었다.
“선정 기준이 뭐요?”
나는 그를 응시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왼손 팔뚝 안쪽을 위아래로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얼굴은 반짝이는 땀방울로 뒤덮였다.
“미안합니다, 박사님. 우리는 아주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요.”
“잠깐만, 다른 환자가 있어서…”
그는 남은 말은 허공에 띄워둔 채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있는 동안 간호사 한 명이 문 안으로 머리를 쑥 들이밀고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물러갔다. 그러고 나서 부카니치 박사가 행복하고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미소짓고 있었고 긴장도 다 풀린 모습이었다. 눈은 반짝였다.
“어라? 아직도 여기 있었나?”
그는 아주 놀랐거나 단지 그런 척하는 듯싶었다.
“우리의 짧은 면담은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가려던 참입니다. 나보고 기다리라고 한 줄 알았는데.”
그는 킬킬 웃었다.
“이런 거 알아, 말로우 씨? 우리는 기이한 시대에 살고 있거든. 5백 달러만 주면 당신 뼈를 몇 군데 부러뜨려서 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있어. 웃기는 일이지, 그렇지 않나?”
“기분이 들떠 있는데. 나가서 직접 주사 놓고 왔다 보지, 박사? 어디 보자, 얼굴이 확 밝아졌군!”
나는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아스타 루에고, 아미고(나중에 봐, 친구).”
그는 즐거운 듯 짹짹거렸다.
“10불 내는 거 잊지 마. 간호사한테 주라고.”
그가 인터콤 쪽으로 가서 뭐라고 말하는 동안 나는 그 자리를 떴다. 대기실에는 여전히 그 열두 명, 혹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불편해 보이는 열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는 직분에 충실했다.
“10달러 되겠습니다, 말로우 씨. 저희 진료소에서는 현금만 받습니다.”
나는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다리 사이를 지나 문으로 걸음을 뗐다. 간호사는 의자에서 튀어올라 책상 주위를 돌아왔다. 나는 문을 잡아당겨 열었다.
“돈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나?”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화를 내며 말했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보시죠.”
“물론이오. 아가씨는 아가씨 일을 하는 것뿐일 테지. 나도 그렇고. 내가 남긴 명함을 보면 내 직업이 뭔지 알게 될 거요.”
나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은 마음에 안 든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한 대로 의사를 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