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풀베다 계곡 저지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노란 사각 문기둥이 두 개 서 있었다. 가로대 다섯 개를 걸쳐놓은 문으로 한쪽은 열려 있었다. 입구 위에는 표지판이 철사에 매달려 있었다. ‘사유지, 입장 불가.’ 공기는 따뜻하고 조용했으며 유칼립투스나무에서는 수고양이 같은 냄새가 듬뿍 흘러나왔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는 자갈길을 따라 언덕 주위를 돌아서 완만한 경사의 산등성이를 넘은 뒤 좁은 협곡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협곡 안은 더웠다. 고속도로 위보다 온도가 6도에서 8도 정도 더 높은 듯싶었다. 이제 자갈길은 완만한 만곡부에서 끝나고 그 주위로 석회칠한 돌을 빙 둘러싼 잔디밭이 나왔다. 내 왼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텅 빈 수영장이 있었는데, 텅 빈 수영장보다 더 텅 비어 보이는 것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영장 주변 세 면에는 방석 부분이 심하게 색이 바랜 삼나무 레저 의사가 잔디밭이었던 흔적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방석 부분은 원래는 파랑, 초록, 노랑, 주황, 적갈색과 같은 여러 가지 색깔이었던 듯했다. 가장자리 방석 솜은 불룩 부풀어 있었다. 네 번째 면에는 철조망 울타리가 높이 둘러싼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텅 빈 수영장 위의 늘어진 다이빙대는 피곤해 보였다. 표면을 씌운 매트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금속 거치대는 녹이 슬어 벗겨진 상태였다.

 

나는 만곡부 쪽으로 가서 널기와 지붕에 현관이 널따란 삼나무 건물 앞에 섰다. 현관은 이중 방충문이었다. 커다란 검은 파리들이 방충문에 붙어 졸고 있었다. 상록수와 항상 먼지가 덮인 듯한 캘리포니아참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져 있었고 참나무 사이로 언덕 한쪽에는 전원풍 오두막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는데, 어떤 집들은 완전히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집들은 한창때가 지나 방치된 듯한 모습이었다. 문은 닫혀 있고, 창문은 수도사의 옷자락이나 그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재질의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창틀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는 차의 시동을 끄고 운전대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곳은 파라오처럼 완전히 죽어 있었지만 방충문 뒤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 너머 방 안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가벼운 휘파람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고 한 남자가 방충문 뒤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문을 열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참 눈길을 끄는 외모였다.

 

그는 평평한 검은 가우초 모자를 쓰고 모자에 매달린 가죽 매듭끈을 턱 밑에 묶고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 실크 셔츠는 목 부분이 파였으며 손목은 꼭 맞고 윗부분은 헐렁하게 부푼 소매였다. 목 둘레로는 검은 술이 달린 스카프를, 한쪽은 짧고 다른 한쪽은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비스듬하게 매고 있었다. 폭이 넓은 허리띠 밑으로 입은 석탄같이 새까만 바지는 엉덩이 부분이 꽉 끼고, 옆 솔기는 끝단까지 금실로 수가 놓여 있었다. 바지 끝단은 헐렁했고 터져 있었으며 터진 양쪽으로 금단추가 달려 있었다. 발에는 애나멜 무용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는 계단참에 멈춰 서더니 여전히 휘파람을 불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채찍처럼 나긋나긋한 체구였다. 긴 비단실 같은 속눈썹 아래 희뿌연 눈은 내가 이제껏 본 사람 중에 제일 컸다. 몸매는 약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고 완벽했다. 코는 똑바로 솟아 있었지만, 그다지 가느다랗지도 않았다. 잘생긴 입은 약간 내민 채였으며 턱에는 보조개가 있고, 작은 귀는 우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피부는 햇빛이 전혀 닿지도 않은 듯 아주 창백했다.

 

그는 엉덩이에 왼쪽 손을 얹은 자세를 취한 뒤 오른손으로는 공중에 우아하게 커브를 그리며 말했다.

 

“인사드립니다. 날씨가 좋군요. 그렇지 않아요?”

 

“나한테는 여기가 너무 더운데요.”

 

“난 더운 게 좋아요.”

 

단호하게 단정적인 말이라 더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계단에 앉아서 어딘가에서 긴 줄칼을 꺼내더니 손톱을 갈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오셨나요?”

 

그는 올려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베린저 박사를 만나러 왔는데요.”

 

그는 줄질하던 것을 멈추고 멀리 펼쳐진 따뜻한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그는 흥미도 전혀 없다는 듯 물었다.

 

“여기 주인이라는데요. 말수가 적은 사람이군요, 그렇죠?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말하다니.”

 

그는 다시 손톱 손질로 돌아갔다.

 

“뭔가 잘못 알고 오셨네요, 아저씨. 이제 여기 주인은 은행이죠. 은행에서 저당권을 설정했든가 부동산매매 신탁보호 조치를 취했든가 그랬을걸요. 자세한 건 까먹어서요.”

 

그는 자세한 건 자기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올즈모빌에서 내려서 뜨거운 문에 기댔다가 좀더 공기가 통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디 은행입니까?”

 

“모르는 걸 보니 은행에서 온 사람은 아닌가 보네. 은행에서 온 게 아니라면, 여기 볼일도 없겠죠. 그럼 가요. 빨리 꺼지시라고.”

 

“베린저 박사를 만나야 하는데.”

 

“여긴 이제 영업 안 해요, 아저씨. 저기 표지판에 써 있잖아요. 여긴 사유지라고요. 어떤 얼간이가 문을 잠가놓는 걸 잊었나 보네.”

 

“그쪽이 여기 관리인이오?”

 

“비슷한 거죠. 더이상 물어보지 말아요, 아저씨. 내 성격이 그다지 좋지가 않거든.”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데? 땅다람쥐와 탱고라도 추나?”

 

그는 급작스럽고도 우아하게 일어섰다. 그는 섬세하긴 했지만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저 조그만 구형 컨버터블에 굳이 도로 던져넣어줘야 성이 풀리겠어?”

 

“그건 나중에 해주고, 지금은 어디 가면 베린저 박사를 만날 수 있는지나 말해주지.”

 

그는 줄칼을 셔츠 주머니에 넣고 대신 오른손에 뭔가 다른 것을 쥐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주먹에다 번쩍번쩍하는 금속 너클을 낀 것이었다. 광대뼈의 피부가 더 팽팽해지더니 커다랗고 희뿌연 눈에는 깊숙이 불꽃이 일었다.

 

그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좀더 공간을 만들어놓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는 계속 휘파람을 불고 있었지만 휘파람 소리는 이제 고음의 비명에 가까웠다.

 

“싸울 필요는 없는데.”

 

나는 그에게 말했다.

 

“사실 싸울 일도 없잖아. 그러다가 그 아름다운 바지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그는 부드럽게 도약해서 내게 접근했고 왼손이 빠른 뱀처럼 날아왔다. 나는 잽이 날아올 거라 예상하고 머리를 뒤로 뺐지만 그는 내 오른쪽 손목을 노리고 있다가 잡아챘다. 손목 힘도 꽤나 강했다. 그는 나를 잡아당겨 균형을 잃게 했고 금속 너클을 낀 주먹이 크게 곡선을 그리며 빙 돌아왔다. 그 주먹을 맞으면 머리 뒤에 금이 가고 중환자가 될 것이다. 내가 몸을 뺐다면 그는 내 옆얼굴이나 어깻죽지 바로 밑의 팔뚝을 맞혔을 것이다. 그랬으면 팔이나 얼굴이나 뭐가 되었든 둘 중의 하나는 박살이 났을 것이었다. 그런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잡힌 채로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그의 왼발을 뒤에서 걸고 셔츠를 잡자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내 목덜미를 쳤지만 금속은 아니었다. 내가 왼쪽으로 몸을 비틀자 그는 옆으로 넘어졌지만, 고양이처럼 사뿐히 땅에 떨어지더니 내가 미처 균형을 잡기 전에 다시 일어섰다. 그는 이제 싱긋 웃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일이 즐거운 듯했다. 자기 작품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재빨리 공격하러 다가왔다.

 

강하고 둔중한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소리쳤다.

 

“얼! 당장 그만두지 못해! 당장 그만둬, 내 말 안 들려?”

 

가우초 남자는 멈췄다. 그의 얼굴에 약간 병적인 웃음이 퍼졌다. 그는 재빨리 움직였고 어느새 너클은 그의 바지 윗부분 넓은 허리띠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몸을 돌리자 단단하고 퉁퉁한 몸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남자가 팔을 흔들며 오솔길을 따라 우리 쪽으로 서둘러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약간 빠르게 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너 미쳤냐, 얼?”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박사님.”

 

얼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미소짓더니 몸을 돌려 걸어가서 계단 위에 앉았다. 그는 위가 납작한 모자를 벗고 멍한 표정으로 빗을 꺼내서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1, 2초 후 그는 부드럽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요란한 셔츠를 입은 뚱뚱한 남자는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일어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뭐하는 거요?”

 

그가 으르렁댔다.

 

“댁은 누구시오?”

 

“말로우라고 합니다. 베린저 박사를 찾아왔는데요. 얼이라고 부른 저 청년은 게임 한 판 하고 싶어하더군요. 날씨가 너무 더웠나 봅니다.”

 

“내가 베린저 박사요.”

 

그는 위엄 있게 말했다. 그는 머리를 돌렸다.

 

“집 안으로 들어가, 얼.”

 

얼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신중하게 관찰하는 표정으로 베린저 박사를 보았지만 커다랗고 희뿌연 눈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런 다음 그는 계단을 올라가서는 방충문을 잡아당겨 열었다. 파리가 두어 마리 성난 듯 왱왱거리다 문이 닫히자 다시 방충문 위에 앉았다.

 

“말로우?”

 

베린저 박사는 다시 주의를 내게 돌렸다.

 

“그럼 무슨 일로 오셨소, 말로우 씨?”

 

“얼리 그러는데 박사님은 여기서 이제 영업을 안 하신다면서요.”

 

“맞소. 이사 나가기 전에 법적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 얼과 나는 여기서 단둘이 살아요.”

 

“이런, 실망이군요.”

 

나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웨이드란 남자가 박사님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풀러 사(유명한 옷솔 회사) 직원이 관심을 보일만한 눈썹을 치켜떴다.

 

“웨이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아는 것도 같고… 흔한 이름이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이 왜 나랑 함께 있겠소?”

 

“치료약을 받으러죠.”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눈썹을 가진 남자치고는 찡그린 표정을 잘 짓는 사람이었다.

 

“난 의사요, 선생. 하지만 더이상 진료하지 않아요. 도대체 무슨 종류의 치료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요?”

 

“이 친구는 술꾼입니다. 때때로 정신이 나가서 실종되고는 했지요. 어떨 때는 자기 힘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남에게 실려 오기도 했고, 어떨 때는 찾으러 가야 했죠.”

 

나는 명함 한 장을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별로 기쁜 기색 없이 명함을 읽었다.

 

“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자기가 뭐 발렌티노(미국 초기 영화의 전설적인 배우)나 되는 줄 아는 겁니까?”

 

그는 다시 눈썹을 치켜세웠다. 매혹적인 눈썹이었다. 부분적으로 3센티 정도 저절로 말려올라가 있었다. 그는 살집 있는 어깨를 으쓱했다.

 

“얼은 위험한 애가 아니오, 말로우 씨. 다만 때때로 약간 꿈속에 빠져 있을 뿐이지. 놀이 속 세계에 사는 거와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박사님이야 그렇게 말하겠죠. 내 입장에서 볼 때는 거칠게 놀던데요.”

 

“쯧쯧, 말로우 씨. 너무 과장하시는군요. 얼은 옷을 차려입기를 좋아해요. 그런 면에서는 어린애나 다름없이 천진난만하지요.”

 

“바보란 뜻이겠죠.”

 

나는 말했다.

 

“여기는 일종의 요양소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과거에만 그랬나요?”

 

“아니지요. 영업하고 있을 때는 예술가 마을이었어요. 나는 식사와 숙박, 운동과 오락시설을 제공하고 무엇보다도 속세와 격리될 수 있도록 해주었죠. 그것도 아주 적절한 가격에. 선생도 알고 있겠지만, 예술가 중에 부유한 사람은 거의 없거든. 예술가라는 용어 속에는 물론 작가나 음악가, 그런 것도 다 포함하는 거지. 나한테는 보람 있는 일이었소. 그 일이 지속되는 동안은.”

 

이 말을 할 때 박사는 슬퍼 보였다. 눈썹은 거의 입에 닿을 것처럼 바깥 모서리 쪽으로 축 처졌다. 눈썹을 좀더 기르면 입에도 들어갈 것 같았다.

 

“알고 있습니다. 파일에 있더군요. 그리고 오래 전에 자살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도요. 약물 사건이었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처진 눈썹을 다시 바짝 세웠다.

 

“무슨 파일?”

 

그는 날카롭게 물었다.

 

“소위 철창 의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파일이 있습니다, 박사님. 철창이란 발작이 덮쳐와도 뛰어내릴 수 없게 되어 있는 그런 곳들을 가리키죠. 소규모의 사설 요양원이라 알코올 중독자, 약물 중독자, 경미한 정신병자들을 수용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런 곳은 법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오.”

 

베린저 의사는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론적으로야 그렇죠. 하지만 잊어버릴 때도 있는 거니까.”

 

그는 뻣뻣하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남자는 그런 일에는 위엄이 있었다.

 

“그 말의 속뜻은 꽤나 모욕적이군요, 말로우 씨. 내 이름이 왜 당신이 언급한 목록에 올라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이제 가주셨으면 좋겠소.”

 

“웨이드 얘기로 돌아가보죠. 여기 가명으로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여기에 얼과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소. 우리 둘뿐이에요. 이제 실례가 안 된다면…”

 

“좀 돌아보고 싶은데요.”

 

이따금 화를 돋우면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린저 박사는 아니었다. 그는 위엄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눈썹도 줄곧 그와 함께 했다. 나는 집 쪽을 보았다. 안에서 음악 소리, 댄스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도 들렸다.

 

“저 친구 안에서 춤을 추고 있나 보군요. 탱고인데요. 저 안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다는 말이죠. 특이한 친구로군.”

 

“안 걸 거요, 말로우 씨? 아니면 얼의 힘을 빌려 당신을 내 사유지에서 몰아내야만 할까?”

 

“알았습니다. 가도록 하죠. 나쁜 감정은 없습니다, 박사님. V로 시작하는 이름이 단지 세 개밖에 없었고, 그중 박사님이 제일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죠. 우리가 가진 오직 하나의 진짜 단서라고는 V 박사밖에 없거든요. 그 친구가 집을 나가기 전에 종이에 끼적였답니다. V 박사라고.”

 

“그런 사람이 한 다스는 될 거요.”

 

베린저 박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아, 물론이죠. 그렇지만 철창 의사 파일에는 한 다스는 없습니다. 시간 내줘서 고맙습니다, 박사님. 얼이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나는 몸을 돌려 내 차로 가서 올라탔다. 내가 문을 닫을 때까지 베린저 박사는 내 옆에 있었다. 그는 유쾌한 표정으로 차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우리가 다툴 필요는 없어요, 말로우 씨. 당신 같은 직업에서는 때때로 약간은 남을 귀찮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아요. 얼이 무엇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는 거요?”

 

“그 친구는 너무 명백히 가짜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어떤 한 가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것도 그럴 거라 기대하는 법이지요. 이 친구는 조울증 환자죠?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침묵 속에서 나를 응시했다. 그는 엄숙하고 정중한 태도였다.

 

“많은 재미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머물렀소, 말로우 씨. 그들 모두가 다 당신처럼 정신이 똑바른 건 아니지요. 재능 있는 사람들은 자주 신경질적이 돼요. 그렇지만 나는 정신병자나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시설은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종류의 일에 취미가 있다고 해도 말이오. 나는 얼 말고는 다른 직원은 두고 있지 않고 얼은 환자를 돌볼 타입은 아니지 않소.”

 

“그럼 어떤 타입입니까, 박사님? 풍선춤 같은 것은 제쳐둔다면?”

 

그는 문에 기댔다. 그의 목소리는 낮아졌고 비밀스러워졌다.

 

“얼의 부모는 내 친한 친구였소, 말로우 씨. 누군가 얼을 돌봐주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죠. 얼은 도시의 소음과 유혹에서 떨어져 조용히 살아야만 하는 애요. 불안정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위험하지 않은 애입니다. 나는 아주 쉽게 저 애를 다룰 수 있지요. 말로우 씨도 보셨다시피.”

 

“대단한 용기를 지니셨군요.”

 

나는 말했다.

 

그는 한숨지었다. 그의 눈썹이 마치 수상한 곤충의 더듬이처럼 살짝 물결쳤다.

 

“희생이지요.”

 

그가 말했다.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어요. 나는 얼이 여기서 내 일을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저 애는 테니스도 잘 치고, 수영과 다이빙은 챔피언처럼 잘하며, 밤새 춤출 수도 있어요. 거의 언제나 저 애는 사람스러움, 그 자체라오. 그렇지만 때때로…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그는 마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저 뒤로 밀어버리려는 듯 넓적 한 손을 휘저었다.

 

“결국 얼을 포기하든가 이곳을 포기하든가 해야 했소.”

 

그는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편 뒤 뒤집었다가 옆구리께로 떨어뜨렸다. 그의 눈은 눈물이 고여 축축했다.

 

“나는 여기를 처분했어요.”

 

그는 말했다.

 

“이 평화롭고 작은 골짜기가 진짜 부동산 개발지가 된답디다. 인도와 가로등이 있고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애들이 라디오를 쿵쿵 틀어대는 곳이 된다지요. 게다가…”

 

그는 버림받은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텔레비전도 들어온다지 뭐요.”

 

그는 쓸어버리듯 손을 흔들었다.

 

“나무들은 그냥 남겨뒀으면 좋겠소. 그렇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군요. 대신 산등성이를 따라서 텔레비전 안테나가 들어설 테지. 그렇지만 얼과 나는 멀리 가 있을 테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박사님. 박사님 때문에 내 마음도 찢어질 듯 아프군요.”

 

그는 손을 내밀었다. 축축했지만 아주 힘있는 손이었다.

 

“보여주신 동정과 이해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말로우 씨. 그리고 슬레이드 씨를 찾는 데 도움을 못 드려 유감입니다.”

 

“웨이드입니다.”

 

“미안해요, 웨이드. 그렇군요. 그럼 안녕히, 행운을 빌겠소.”

 

나는 시동을 걸고 자갈길을 따라 돌아 빠져나왔다. 슬프기는 했지만 베린저 박사가 원했을 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나는 정문을 나와서 고속도로의 커브길을 돌아 내려와 사유지 진입로가 안 보이는 곳에 주차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다시 포장도로 가장자리까지 걸어가서는 전기 철조망 울타리부터 정문을 볼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나는 유칼립투스나무 밑에 서서 기다렸다.

 

5분 정도가 지나갔다. 그러더니 자갈을 울리면서 차 한 대가 사유도로를 내려왔다. 나는 약간 더 풀숲 속으로 물러섰다. 뭔가 끽끽 거리는 소음이 나더니 무거운 문고리가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슬이 감기는 소리가 났다. 자동차 엔진이 더 세게 울리더니 차는 길을 따라 올라가버렸다.

 

차소리가 잦아들자 나는 내 올즈모빌로 돌아가서 다시 시내 쪽으로 향하기 위해 유턴을 했다. 베린저 박사의 사유지로 향하는 정문을 지나치면서 그 문이 자물쇠가 달린 사슬로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이것으로 방문객은 사절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