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에 나는 식당 별관에서 들어오는 방향 오른편 세 번째 부스 안에 앉아 있었다. 나는 벽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들어가고 나가는지 다 보였다. 스모그도 없고 하늘 높은 곳에 안개도 없는 화창한 아침이었으며, 유리벽으로 된 바 앞에서 시작해서 식당 저 끝까지  뻗어 있는 야외 수영장 수면 위에 햇빛이 어지러이 반짝였다. 하얀 샤크스킨 수영복을 입은 뇌쇄적인 몸매의 여자가 다이빙대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그을린 허벅지와 수영복 사이에 보이는 하얀 선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여자의 모습이 앞으로 쑥 튀어나온 지붕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여자가 한 바퀴 반 회전을 하면서 뛰어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보라가 태양에 닿을 듯 높이 솟구쳐올랐고 여자만큼이나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다. 여자는 사다리를 올라와 하얀 수영모자 끈을 풀더니 염색한 머리를 흔들어 풀었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하얀 작은 테이블로 걸어가, 흰 운동복 바지를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남자 옆에 가서 앉았다. 피부를 어찌나 골고루 태웠는지 수영장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이 확실해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여자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여자는 비상용 소화 양동이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그 모습에 그 여자에 대한 내 관심이 싹 사라져 버렸다. 웃음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입을 벌리자 얼굴에 난 구멍만 봐도 충분했다.

 

바는 아주 한산했다. 세 부스 떨어진 자리에 있는 교활하게 생긴 남자 두 명은 돈 대신 두 팔을 사용해가면서 서로의 작품을 20세기폭스 사에 팔아넘기려고 하고 있었다. 그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를 사이에 두고 2~3분 간격으로 전화를 해서 자눅(최초의 유성영화 시퀀스를 만든 제작자)이 누구의 아이디어를 더 마음에 들어할지 맞추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젊고, 피부를 그을렸으며, 정열적이고 활력에 가득 차 있었다. 전화 거는 데만도 내가 뚱뚱한 남자를 네 계단 정도 들어올리는 데 쓸 만한 근력을 쓰고 있었다.

 

바의 의자에 앉아서 바텐더와 이야기하는 슬픈 남자도 있었다. 바텐더는 유리잔을 닦으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애쓸 때 으레 짓는 꾸민 미소를 띠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손님은 중년에 옷을 잘 차려입은 남자로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얘기를 하고 싶어했고 얘기를 하고 싶지 않더라도 어떻게 말을 멈출지 모르는 듯싶었다. 그는 정중했고 친근했으며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때는 별로 더듬거리지 않는 것 같았으나, 그런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병을 쥐고서는 저녁에 잠들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 법이다. 그는 남은 인생 대부분을 그렇게 보낼 것이고 그게 그의 인생이었다. 그런 친구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결코 알 수가 없는데 얘기를 해주더라도 그 말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왜곡된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조용한 바에는 그렇게 슬픈 남자가 한 명씩은 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 지체 높으신 출판업자께서는 벌써 20분이나 늦은 셈이었다. 나는 반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떠날 작정이었다. 고객이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도록 놔두어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고객이 나를 밟아 뭉개도록 놓아두면 그는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게 되고, 그러면 나를 고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저기 멀리 동부에서 온 멍청한 친구가 나를 말몰이꾼으로 이용하도록 놔둘만큼 돈이 절실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방음장치가 되어 있고 버튼과 인터콤이 줄줄이 달려 있는 85층의 사무실에서, 해티 카네기의 직장 여성 특집에 나온 옷을 입고 크고 아름다우며 전도유망한 눈을 가진 비서를 두고 일하는 회사 간부 같은 사람이겠지. 이런 남자들은 9시 정각에 오라고 말해놓고서는 자기는 깁슨(드라이 마티니에 초절임 양파를 곁들인 칵테일)을 더블로 한잔 걸친 뒤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나, 내가 상판에 기쁜 듯한 미소를 띠고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회사 간부답게 격노하며 발작을 일으키고서는 반드시 5주간 아카풀코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다시 고고한 기세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이 든 바텐더가 조용히 다가와 내 잔 속의 묽어진 위스키와 물에 슬쩍 눈길을 주었다. 고개를 저었더니 그는 흰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바로 그때, 꿈에서나 만날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 순간 내게는 바 안에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고, 교활한 젊은 남자 둘은 협잡질을 멈추었으며 의자에 앉아 있던 술꾼은 주정을 멈추었다. 모든 것이 마치 지휘자가 악보대를 가볍게 두드리고 팔을 들어 자세를 잡은 직후의 순간 같았다.

 

그녀는 날씬하고 아주 키가 컸으며 흰 리넨 정장을 입고 목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물방울 무늬가 있는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동화 속의 공주처럼 옅은 금발이었다. 작은 모자는 마치 둥지를 튼 작은 새처럼 금발 머리 위에 살짝 얹혀 있었다. 푸른 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수레국화 빛깔이었고, 속눈썹은 길고 지나치게 옅은 색이었다. 그녀는 건너편에 있는 테이블로 가더니 기다란 흰 장갑을 벗었고 나이 든 웨이터는 이제껏 내가 어떤 웨이터에게도 받아본 적이 없는 태도로 테이블을 빼주었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장갑을 가방끈 아래 밀어넣고서는 미소를 지으며 웨이터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상냥하고 세련되면서도 순수하던지 웨이터는 거의 마비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여자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무어라 말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임무를 맡은 듯한 태도였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가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1센티 정도 눈을 들었지만 나는 이미 눈길을 돌려버린 뒤였다. 그러나 눈을 어디에 두고 있든 간에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세상에는 금발이 널리고 널렸으며 요새는 거의 농담처럼 쓰이고 있다. 모든 금발 여자들은 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는데, 예외라면 염색을 한 줄루 족 같은 머리에 성격은 보도블록만큼이나 딱딱한 금속성 금발 머리가 있다. 지지배배 떠들어대는 귀엽고 깜찍한 금발이 있는가 하면, 얼음같이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사람들을 밀어내는 커다란 조각상 같은 금발도 있다.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기는 하지만, 향기가 근사하고 희미하게 반짝거리며 남자 팔에 매달리기를 좋아하면서도 집에 데려다주는 동안에는 언제나 너무너무 피곤하다고 하는 금발도 있다. 그런 여자는 꼭 동작은 무기력하며 심한 두통이 있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과 희망을 투자하기 전에 그런 두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빼놓고는 한 대 때려주고 싶어지는 여자들이다. 왜냐하면 두통은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며, 절대 닳지 않는 무기로 자객의 쌍날검이나 루크레치아(로마의 지배자 체사레 보르자의 여동생)의 독약병처럼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또 부드럽고 기꺼이 몸을 내어주며 알코올 중독인 금발 머리도 있다. 그런 여자들은 밍크이기만 하다면 무엇을 입든지 신경 쓰지 않고, 스타라이트 루프(빅 밴드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출 수 있는 호화판 댄스 클럽) 같은 곳이나 드라이 샴페인이 잔뜩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 가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약간 창백하지만 자기 몫은 자기가 지불하며 명랑하며 상식적이고, 유도를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트럭 운전수를 어깨 너머로 메치는 기술도 갖추고 있으며 새터데이리뷰 지의 사설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는 활기찬 금발도 있다. 악성은 아니지만 불치병인 빈혈에 걸린 듯 창백하기 그지없는 금발도 있다. 이런 여자는 심히 나른하고 심히 그늘이 져 있는데다가 아주 조용조용 말하며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가뜩이나 건드리고 싶지 않은 분위기에 《황무지》를 읽거나 단테를 원서로 읽거나 카프카나 키에르케고르를 읽기도 하고 프로방스어를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런 금발은 음악 애호가라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힌데미트를 연주할 때면 여섯 대의 콘트라베이스 중에서 어떤 것이 4분의 1박자 늦게 시작했는지 말해줄 수도 있다. 토스카니니도 그런 차이를 분간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기는 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두 명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는 거물급 조직 두목 세 명이 죽어나가게 하고 다시 백만장자 두어 명과 결혼한 끝에 한 사람당 백만 불씩 받아, 앙티브(프랑스 리비에라 해변가에 있는 휴양지)에 있는 연장 장밋빛 벽의 빌라를 서서 운전기사와 조수까지 완벽하게 갖춘 알파로메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구닥다리 귀족들 한 떼와 어울리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찬란한 특별 사례도 있다. 그런 여자는 나이 지긋한 공작이 집사에게 밤인사를 건넬 때와 마찬가지로, 애정이 넘치지만 무심한 듯한 태도로 그런 귀족들을 다룬다.

 

그러나 내 앞으로 다가온 꿈속의 여인은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부류일 뿐더러 세상에 같은 부류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유형이었다. 분류할 수 없는 여자로 산 정상의 샘물처럼 동떨어져 있고 맑았으며 그 물의 색깔처럼 정의하기 힘들었다. 나는 팔꿈치 가까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여전히 그 여자만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많이 늦었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늦었군요. 제가 하워드 스펜서입니다. 말로우 씨겠죠, 물론.”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소 통통한 체격의 중년 사내로,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은 옷차림이었으나 면도를 단정히 하고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두 귀 사이로 넓게 펼쳐진 머리 뒤로 조심스럽게 빗어넘기고 있었다. 그는 번쩍번쩍하는 더블 단추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보스턴 출신 여행객이 입은 모습이 아니라면 캘리포니아에서는 볼 일이 없는 옷이었다. 그는 테 없는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이것’ 이 해당되는 것이 분명한 낡고 오래된 서류가방을 소중히 쓰다듬고 있었다.

 

“이 안에 각각 한 권 분량이 되는 신간 원고가 세 부 들어 있습니다. 소설이죠. 거절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잃어버리면 낭패니까요.”

 

그는 막 꿈속의 여인 앞에 뭔가 녹색 음료가 담긴 긴 잔을 놓고 물러난 나이 든 웨이터에게 신호를 보냈다.

 

“저는 진앤오렌지에는 사족을 못 쓰지요. 정말 바보 같은 술이지만 말입니다. 같은 걸로 드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늙은 웨이터는 자리를 떴다.

 

나는 서류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 저 원고를 거절하리란 것을 알고 있죠?”

 

“정말 대단한 원고라면, 굳이 작가가 직접 내 호텔을 들고 오지는 않죠. 뉴욕의 어떤 대행사들은 저 원고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왜 챙겨놓은 겁니까?”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출찬업자들이 갈망하는 것처럼 천 권에 한 권 나올까말까 한 베스트셀러를 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보통은 칵테일파티 같은 데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소개받는데 그중 몇 사람에게는 써놓은 소설이 있더라는 식이지요. 그러면 적당히 술도 들어갔겠다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게 되어서 그 원고를 보고 싶다고 말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갑자기 멀미를 일으킬 만한 속도로 호텔에 원고를 갖고 들이닥치니 읽지 않을 수 없는 거죠. 말로우 씨야 이런 출판업자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으시겠지요.”

 

웨이터가 술을 가지고 왔다. 스펜서는 잔을 들고 기운차게 들이켰다. 그는 저편에 앉아 있는 황금빛 여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내게 모든 주의를 쏟고 있었다. 훌륭한 면담 태도였다.

 

“그런 게 업무의 일부분이라면, 저라도 가끔 책 한 권은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출판사의 중요한 작가 한 분이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도 책을 읽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로저 웨이드라고.”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군요.”

 

그는 슬프게 미소지었다.

 

“역사 로맨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나 보죠. 그렇지만 그런 책들은 무지막지하게 잘 팔리거든요.”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 아닙니다, 스펜서 씨. 그 사람이 쓴 책을 한 번 본 적 있죠. 제 생각에는 졸작이던데요. 실례가 되는 말입니까?”

 

그는 싱긋 웃었다.

 

“아닙니다. 말로우 씨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죠. 하지만 요점은 현재 그가 써내는 대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출판사나 지금처럼 비용이 들면 그런 작가가 두 명은 있어야 버텨나가죠.”

 

나는 황금빛 여인을 건너다보았다. 그녀는 라임에이드인지 뭔지를 다 마시고,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은 손목시계를 흘깃 들여다보았다. 바에는 점점 사람이 차고 있었으나 아직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교활한 남자 두 명은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고 바 의자에 홀로 앉아 있던 술꾼에게는 두 명의 동료가 생겼다. 나는 다시 하워드 스펜서를 보았다.

 

“말씀하신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 웨이드란 사람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조심스럽게 한 번 훑어보았다.

 

“자기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말로우 씨. 그러니까 불쾌하지 않으시면.”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전 허가받은 사립탐정이고 그 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외로운 늑대인 셈이죠. 미혼에 중년이고 부자도 아니지요. 감옥에 한 번 이상 갔다 와봤고 이혼 사건은 맡지 않습니다. 술과 여자와 체스, 그리고 그 밖에 몇 가지 것들을 좋아하죠. 경찰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친하게 지내는 경찰도 두엇 있습니다. 본토박이로 센타로사에서 태어났고 양친은 돌아가셨으며 형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얻어맞고 쓰러진다고 해도 인생 끝난 듯이 충격받을 사람들은 없죠. 그런 일이야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고 요새는 어떤 일을 하든지 또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많은 이들이 당할 수 있는 일이니.”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나는 진앤오렌지를 비웠다. 이 술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고 싱긋 웃었다.

 

“한 가지 일을 빼먹었군요, 스펜서 씨. 내 주머니에 매디슨의 초상화가 들어 있습니다.”

 

“매디슨의 초상화라고요? 무슨 말인지…”

 

“5천 달러 지폐죠. 항상 들고 다닙니다. 행운의 부적으로.”

 

“이런 맙소사.”

 

그는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그거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모든 위험은 다 똑같아진다고 한 건 누가 한 말이었죠?”

 

“월터 배젓(영국의 저널리스트, 경제학자, 사회과학자, 문예비평가)인 것 같군요. 고층건물 수리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요.”

 

그러자 그는 싱긋 웃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출판업자니까요. 좋습니다, 말로우 씨. 당신에게 운을 걸어보죠. 그러지 않으면 내게 지옥에나 가라고 하시겠죠, 맞습니까?”

 

나는 다시 웃어주었다. 그는 웨이터를 불러서 술을 두 잔 더 주문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로저 웨이드하고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그 사람이 책을 끝내질 못하고 있거든요. 집중력이 떨어져가는데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친구 지금 부서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입니다. 발작적으로 술을 마셔대고 성질을 부리죠. 가끔씩은 며칠 연속으로 실종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부인을 아래층으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부인이 갈빗대가 다섯 대나 부러져서 입원하기도 했답니다. 평소에는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없었다는군요, 전혀. 그 친구는 단지 술만 마시면 정신이 나가버리는 거죠.”

 

스펜서는 뒤로 기대더니 음울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우린 이 책을 끝마쳐야만 해요. 이 책이 절실히 필요하거든요. 어느 정도는 내 직업이 이 일에 달려 있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이제까지 써온 작품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유능한 작가를 구해주고 싶은 거죠. 뭔가 아주 잘못되었어요. 이번 출장에서는 심지어 나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더군요. 이런 일은 정신과 의사가 할 일처럼 들리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웨이드 부인이 동의하지 않았어요. 부인은 남편이 완벽하게 정상이지만 뭔가 죽도록 두려운 걱정거리가 있어서 그럴 뿐이라고 확신하더군요. 예를 들자면, 협박꾼 같은 거죠. 웨이드 부부는 5년 전에 결혼했습니다. 그의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어림짐작이지만, 치명적인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는데 다른 사람에게 증거를 잡혔는지도 모르고요. 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알고 싶은 거죠. 문제가 뭔지 정확히 짚어낼 수만 있다면 보수는 후하게 지불할 겁니다. 의학적인 문제라는 것이 밝혀지면, 글쎄요,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해답이 있을 겁니다. 그 동안 웨이드 부인을 보호해야 하고요. 다음번에는 부인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죠.”

 

두 잔째 술이 도착했다. 나는 내 잔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놔두고는 그가 한입에 반 잔을 들이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서 그저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탐정이 필요한 게 아니군요.”

 

나는 말했다.

 

“마술사가 필요하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하나 있겠습니까? 만약 내가 우연히 딱 맞춰서 그 자리에 있고, 그 사람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사납게 나오지 않는다면 그를 쓰러뜨려서 침대에 눕힐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전제하의 얘기입니다. 거의 백분의 일 정도 확률이죠. 그 정도는 아실 텐데요.”

 

“웨이드는 몸집이 말로우 씨와 비슷합니다.”

 

스펜서가 말했다.

 

“그렇지만 건강 상태는 말로우 씨만 못합니다. 그러니 항상 웨이드가 난동을 피우는 자리에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리가요. 그리고 술꾼들은 교활한 법이죠. 그는 내가 주위에 없는 시간을 골라서 발작을 일으킬 겁니다. 나는 남자 간호사 일을 구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남자 간호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로저 웨이드는 남자 간호사를 용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아주 재능 있는 작가지만 자기 통제 능력이 약간 느슨해진 것뿐입니다. 멍청이들을 위한 쓰레기 같은 소설을 써서 돈 좀 벌었죠. 그렇지만 작가를 구원하는 방법은 글쓰기밖에 없잖습니까. 그 친구 내면에 있는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젠가는 밖으로 나올 겁니다.”

 

“좋습니다. 그 사람의 재능은 인정하겠습니다.”

 

나는 지친 듯이 말했다.

 

“그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죠. 뭔가 죄책감을 느낄 비밀을 갖고 있는데 그걸 알코올로 날려버리려고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종류는 내 일이 아닙니다, 스펜서 씨.”

 

“알았습니다.”

 

그는 걱정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면서 시계를 보았다. 그 표정 때문에 얼굴이 더 나이 들고 작아 보였다.

 

“뭐, 그저 제안해본 것이니 너무 나무라진 마십시오.”

 

그는 두툼한 서류가방에 손을 뻗었다. 나는 황금빛 여인을 건너다보았다. 그녀는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백발의 웨이터가 계산서를 들고 여자 위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웨이터에게 돈과 아름다운 미소를 주었고 그는 마치 하느님과 악수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입술 화장을 고치고는 하얀 장갑을 기자 웨이터는 여자가 걸어나갈 수 있도록 테이블을 방의 저편으로 밀어주었다.

 

나는 스펜서를 흘끗 보았다. 그는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인 빈 잔을 찡그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릎 위에 서류가 방을 올려놓고 있었다.

 

“이것 봐요.”

 

나는 말했다.

 

“굳이 원하신다면 그 남자를 만나서 상태를 판단해 볼 수는 있습니다. 부인과 얘기를 해보죠.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 남자가 저를 집 밖으로 던져버릴 것 같군요.”

 

스펜서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아니에요, 말로우 씨.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이는 당신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고개를 들어 보랏빛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테이블 끝에 서 있었다. 나는 일어섰지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부스에 기댄 꼴이 되어버렸다.

 

“일어서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여름 구름 속에 넣는 솜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를 드려야겠군요. 하지만 자기 소개를 하기 전에 말로우 씨를 관찰해볼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서요. 아일린 웨이드예요.”

 

스펜서가 투덜대듯 말했다.

 

“관심 없으시다는군요, 아일린.”

 

그녀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내 생각은 다른데요.”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균형을 잃고 입을 벌린 채 그대로 서서 귀여운 여고 졸업생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던 것이었다. 정말 미인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거의 마비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흥미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웨이드 부인. 내가 한 얘기는, 아니 하려고 했던 얘기는 내가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큰 실수일 수도 있단 겁니다.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여자는 이제 아주 진지했다.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시네요. 하는 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사람 됨됨이로 판단해야죠.”

 

나는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바로 테리 레녹스에 대해서 생각한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 메넨데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참호에서 짧게나마 영광스러운 행동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사실이 결코 모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일생 동안 몇이나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품성이 어떤지 알아보셔야 하는 거죠.”

 

그녀는 상냥하게 덧붙였다.

 

“안녕히 가세요, 말로우 씨. 만약 마음이 바뀌시거든…”

 

그녀는 가방을 재빨리 열더니 명함을 한 장 주었다.

 

“오늘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자는 스펜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여자가 바에서 나가, 식당으로 이어지는 유리벽으로 된 별관 통로를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걸음걸이도 아름다웠다. 나는 여자가 로비로 이어지는 아치 아래서 몸을 돌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모퉁이를 돌 때 마지막으로 하얀 리넨 스커트 자락이 팔락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나는 긴장을 풀고 부스 안으로 들어가 진앤오렌지 잔을 집었다.

 

스펜서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뭔가 어색한 빛이 돌았다.

 

“멋지게 해냈군요. 하지만 가끔은 부인 쪽을 바라봤어야죠. 저렇게 꿈결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건너편에 앉아 있는데 20분 동안이나 눈치도 못 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바보 같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으나 실제로는 별로 웃을 기분이 아닌 듯싶었다. 그는 내가 여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사립탐정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요. 탐정을 자기 집에 들이려고 생각할 때는…”

 

“이런 탐정을 선생 집에 들인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나는 말했다.

 

“어쨌거나 우선 다른 사연을 생각해내셔야겠는데요. 술에 취했건 제정신이건 간에 저렇게 멋진 여자를 아래층으로 내던져서 갈빗대 다섯 대를 부러뜨렸다는 말보다는 나은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그는 얼굴이 빨개졌다. 서류가방 위에 놓인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거짓말쟁이란 말입니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당신도 연극을 했잖습니까. 당신도 저 숙녀분에게 약간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벌떡 일어섰다.

 

“당신 말투가 마음에 안 드는군.”

 

그가 말했다.

 

“당신이 마음에 드는지도 잘 모르겠군요. 부탁하는데 이 모든 얘기를 다 잊어주시오. 이 정도면 시간 내어준 데에 대한 답례는 되겠지.”

 

그는 20달러를 테이블 위에 던지고는 웨이터 팁으로 몇 달러를 더 얹어놓았다. 그는 잠시 서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눈은 빛났고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결혼해서 애도 넷이나 있소.”

 

“축하합니다.”

 

그는 목구멍으로 요란한 소리를 잠깐 내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나는 잠시 동안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남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흔들어 빼서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나이 든 웨이터가 다가와서 돈을 보았다.

 

“다른 것 좀 갖다드릴까요, 손님?”

 

“아니오. 이 돈은 다 가져요.”

 

그는 천천히 돈을 집었다.

 

“이건 20달러짜리 지폐입니다, 손님. 저 신사분이 아마도 실수를 하신 모양이군요.”

 

“그 사람도 글을 읽을 줄은 알겠죠. 돈은 다 가지라고 말했는데요.”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손님, 정말 틀림없이…”

 

“정말 틀림없습니다.”

 

그는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여전히 찜찜한 표정으로 가버렸다. 바에는 사람이 차고 있었다. 잘 빠진 여자 두 명이 재잘거리며 손을 흔들면서 지나갔다. 그들은 저쪽 끝 부스에 앉아 있는 잘난 척하는 두 남자와 아는 사이였다. 공기는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와 주홍빛 손톱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얼굴을 찌푸리면서 담배를 반쯤 태우다가 가려고 일어났다. 담뱃갑을 집으려고 몸을 돌렸을 때 무언가 뒤에서 내게 세게 부딪쳤다. 바로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었다. 몸을 홱 돌리자 딱 바라진 몸에 지나치게 주름을 많이 잡은 옥스퍼드 플란넬 양복을 걸치고 있는 인기 배우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의 팔은 유명인사답게 길게 뻗어 있었고, 언제나 잘 팔리는 자의 세로 5센티, 가로 15센티에 달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 길게 뻗은 팔을 잡아 그를 돌려세웠다.

 

“무슨 일이야, 잭? 혼자 지나가지도 못할 만큼 복도가 너무 좁은가?”

 

그는 팔을 탁 치더니 거칠게 나왔다.

 

“장난치지 마셔. 턱을 날려버리기 전에.”

 

“하하. 양키즈 팀의 중견수를 맡아서 식빵으로 홈런을 치는 편이 낫겠는데.”

 

그는 굵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봐, 매니큐어 조심하라고.”

 

그는 애써 감정을 눌렀다.

 

“별놈 다 보겠군, 잘난 척하는 자식 같으니.”

 

그는 코웃음쳤다.

 

“다른 날 내 머리가 더 한가할 때 보자고.”

 

“지금보다 더 한가한 날도 있어?”

 

“웃기지 말고 꺼져.”

 

그가 으르렁댔다.

 

“한 번만 더 헛소리 지껄이면 틀니를 새로 맞춰야 할걸.”

 

나는 그를 보고 싱긋 웃어주었다.

 

“전화하라고, 잭. 그렇지만 다음에는 대사 처리를 좀더 잘 해야겠어.”

 

그의 표정이 바뀌더니 웃음을 지었다.

 

“당신도 영화에 출현하나?”

 

“포스터를 우체국에나 붙여놓는 그런 종류의 영화에만.”

 

“곧 범죄자 사진 명부에서 보게 되겠군.”

 

그는 여전히 싱긋 웃으면서 가버렸다.

 

아주 유치한 짓거리였지만 덕분에 언짢은 감정이 날아가버렸다. 나는 연결 통로를 따라 호텔 로비를 지나서 정문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잠깐 멈춰 서 선글라스를 썼다. 차를 타고 나서야 아일린 웨이드가 주고 간 명함을 들여다볼 생각이 났다. 인쇄한 명함이었지만,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의례적인 방문용 명함은 아니었다. 로저 스턴스 웨이드 부인. 아이들밸리 로 1247번지. 전화번호 아이들밸리 5-6324.

 

나는 아이들밸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정문과 그 앞을 지키는 사설 경호원을 갖춘 거대한 주택들이 세워지고 호숫가에 카지노가 들어섰으며 50불짜리 매춘부가 있던 동네 모습이 많이 변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카지노가 문을 닫은 후 돈이 조용히 그 지역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돈이 아이들밸리를 부동산업자들이 꿈꾸는 동네로 바꿔놓았다. 어떤 클럽이 호수와 그 주변 땅을 소유하고 있어 클럽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호수에서 즐길 수도 없었다. 그곳은 폐쇄적이었는데, 그 말은 단순히 비싸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밸리에 돌아다니는 것은 바나나 스플릿(아이스크림을 친 얇게 썬 과일) 위에 올려진 펄어니언(칵테일 등에 쓰는 아주 작은 양파)과 같은 꼴일 것이다.

 

하워드 스펜서가 그날 오후 늦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이제 화가 가라앉은 듯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다시 생각해보았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청한다면 만나보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알았습니다. 특별수당을 지급해…”

 

“이보세요, 스펜서 씨.”

 

나는 짜증이 나서 말했다.

 

“돈으로도 운명을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웨이드 부인이 그 남자를 무서워한다면 집에서 나오면 될 거 아닙니까. 그거야 부인 문제죠. 누구라도 부인을 하루 24시간 내내 그 남편으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없어요. 게다가 그것만 해달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어째서, 그리고 언제 그 남자가 난간에서 뛰어내릴지 알아봐주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도록 상황을 바로잡아달라는 거죠. 적어도 그 책을 끝마칠 때까지만이라도. 그건 그 사람에게 달린 겁니다. 그 빌어먹을 책을 절실히 쓰기 원한다면 그렇게 할 때까지 술병을 놓겠죠. 지금 선생께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다 서로 맞물리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모두 한 가지 문제죠. 그렇지만 당신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 말로우 씨가 하는 작업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미묘한 것이겠죠.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오늘밤에 비행기로 뉴욕에 돌아가야 해서요.”

 

“좋은 여행 되시기를.”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가 준 20달러를 웨이터에게 줬다는 얘기를 하려다가 잊고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말해줄까 했으나, 그 사람도 이미 충분히 비참한 기분이리라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나는 사무실 문을 닫고 테리가 부탁한 대로 김릿 한잔 하기 위해 빅터의 바로 향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 일을 할 만큼 감상적인 기분이 아니었다. 대신에 로리 식당으로 가서 마티니 한 잔과 커다란 갈비 스테이크, 요크셔 푸딩을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TV를 켜고 권투 경기를 보았다. 별볼일 없는 경기로, 아서 머레이(미국의 유명한 무용수이자 사업가) 밑에서 무용 강사로 일하는 편이 나았을 선수들뿐이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잽과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작과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서로 페인트하는 게 다였다. 그중 어떤 선수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를 깨울 만큼도 세게 때리지 못했다.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으며 심판은 화끈하게 경기를 하라고 계속 손뼉을 쳐댔지만, 선수들은 계속 비틀대면서 벌벌 떨었고 긴 왼손 잽만 날려댔다. 나는 채널을 돌려 범죄 드라마를 보았다. 어떤 의류 보관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 배우들은 피곤하고 늘 보아온 얼굴이었으며 아름답지 않았다. 대사는 진부해서 심지어 모노그램 사(B급 서부영화 제작사)의 영화에도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군데군데 웃긴 장면을 삽입하려고 했는지 탐정은 흑인 조수를 달고 다녔다. 실상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탐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웃겼기 때문이었다. 광고는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 우리에 가두고 깨어진 맥주병 위에서 키운 염소도 병을 일으킬 만큼 한산했다.

 

나는 TV를 끄고 길고 차가우며 꼭꼭 포장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내 목에 잘 맞았다. 좋은 담뱃잎으로 만든 것이었다. 무슨 브랜드였는지는 확인해둔다는 것을 잊었다. 거의 꿈속으로 빠져들려는 찰나, 강력반의 그린 경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친구 레녹스가, 이틀 전 그 사람이 죽은 멕시코 마을에 매장되었다는 얘기를 알고 싶어할 것 같아서. 그 집안 변호사가 거기 가서 장례식에 참석했다더군. 이번에는 아주 운이 좋았어, 말로우. 다음에 국외로 튀려고 하는 친구를 도와줄 때는 잘 생각해봐.”

 

“시체에 총알구멍이 몇 개나 있었지?”

 

“그게 무슨 말인가?”

 

그가 호통쳤다. 그러고 나서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었다. 그는 약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한 개. 그렇게 들었네. 머리를 날려버릴 때는 하나면 충분하지. 변호사가 지문 샘플과 주머니에 든 잡동사니를 가지고 온다고 하더군. 더 알고 싶은 게 있나?”

 

“있지만 당신은 말해줄 수 없을 텐데. 누가 레녹스의 아내를 죽였는지 알고 싶은데.”

 

“이런! 그 친구가 상세한 자백서를 남겼다고 그렌츠가 말 안해줬나? 어쨌거나 신문에 나왔는데. 더이상 신문도 안 읽나?”

 

“전화해줘서 고맙네, 경사. 정말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워.”

 

“이봐, 말로우.”

 

그는 거슬리는 어투로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나 본데, 그런 얘기를 하면 슬픔만 더할 뿐이야. 이 사건은 끝났어. 최종 결론이 났고 저 구석에 처박혔지. 당신은 기가 막히게 운 좋은 거야. 사후 종범은 우리 주에서는 5년 형까지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얘기 하나만 더 하겠네. 오랜 경찰 생활에서 내가 확실히 배운 한 가지는, 감옥에 가는 건 꼭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는 거야. 법정에 갔을 때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려 있는 거지. 그럼 잘 있으라고.”

 

그는 귀에다 대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전화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양심에 거리낄 만한 짓을 한 정직한 경찰은 언제나 거칠게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건 부정직한 경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나를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