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그 편지는 계단 발치의 빨갛고 하얀 새집 모양 우편함에 들어 있었다. 우편함 꼭대기의 손잡이에 붙은 딱따구리가 들려 있었으나, 집으로 우편물이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보고도 안을 들여다보지 않을 뻔했다. 그렇지만, 딱따구리는 부리 끝이 달아나버렸다. 나뭇결이 싱싱한 것으로 보아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어떤 깜찍한 녀석이 장난감 총으로 쏘아버린 모양이었다.
편지에는 코레오 아에레오(스페인어로 항공우편)라고 찍혀 있었고 멕시코 우표가 주르륵 붙어 있었는데, 최근 머릿속에 멕시코가 꽤나 꾸준히 달라붙어 있지 않았더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필적으로 쓰여 있었다. 소인은 알아볼 수 없었다. 손으로 찍은 것이었고 잉크 스탬프가 상당히 오래된 듯싶었다. 편지는 두툼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서 거실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저녁이 아주 고요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죽은 남자에게 온 편지는 그 자체의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가 보다.
편지에는 날짜도 머리말도 생략되어 있었다.
나는 오타토클란이라고 하는 호숫가 산골 마을의, 그다지 깨끗하지 못한 호텔 2층에 있는 방 창가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네. 창문 바로 밑에 우편함이 있으니 벨보이가 내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들어오면 나 대신 편지를 부치되 우편함 구멍에 넣기 전에 내가 볼 수 있도록 높이 한 번 쳐들어달라고 할 거네. 그렇게 해주면 100페소 지폐를 주려고 하네. 그 정도만 해도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일 테니까.
뭐하러 이렇게 귀찮은 속임수를 쓰냐고? 저기 문 밖에 거무스레한 피부에 끝이 뾰족한 신발을 신고 더러운 셔츠를 입은 사람이 감시하고 있거든. 뭔가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뭔지 알 수는 없어. 하지만 나를 내보내주지는 않을 거야. 편지만 부쳐진다면야 어쨌거나 크게 상관은 없네. 자네가 이 돈을 가졌으면 해. 나는 이 돈이 필요없고 여기 파출소가 슬쩍 챙길 게 확실하니까 말이야.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냐. 자네를 곤란하게 만든 일에 대한 사과이자 매우 훌륭한 사람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 해두지. 나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온갖 실수를 저질렀지만 용케도 아직 총은 가지고 있다네. 자네는 어떤 한 가지 관점으로 마음을 정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가 그 여자를 죽였을 법한 상황이고, 어쩌면 실제로 바로 내가 그랬는지도 몰라. 하지만 다른 짓은 결코 하려야 할 수도 없었네. 그런 종류의 잔인함은 내 성격에는 안 맞아. 그러니 뭔가 아주 잘못된 거지. 그렇지만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 조금도. 지금 가장 중요한 점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는 걸세. 장인이나 처형이나 결코 내게 해를 끼치진 않았어.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나는 내 삶에 진저리를 치며 여기까지 온 거니까. 실비아가 나를 쓸모없는 건달로 만든 건 아냐. 나는 이미 건달이었으니까. 왜 그 여자가 나와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줄 수는 없네. 아마도 변덕 때문이었겠지. 적어도 그 여자는 젊고 아름다운 채로 죽었어. 남자는 정욕 때문에 늙어가지만 여자는 정욕은 넘쳐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 다 헛소리일세. 부자는 언제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여름뿐이라고 하질 않나. 나는 그런 부자들하고 살아왔지만 그들은 지루하고 외로운 사람들이었어.
자백서를 써놓았네. 기분이 좀 나쁘고 많이 두려워. 책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읽은 적은 있겠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다네. 그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때, 남은 것은 주머니 속의 권총뿐일 때, 낯선 나라의 더럽고 조그마한 호텔방 구석으로 몰려 빠져나갈 길이라고는 하나뿐일 때는 말이지. 내 말을 들어봐, 친구. 고상하거나 극적인 데라곤 하나도 없어. 그저 아주 역겹고 지저분하고 잿빛이고 우울할 뿐이야.
그러니 이제 이 일과 나를 잊어버려. 그렇지만 먼저 빅터의 바에서 나를 위해 김릿을 마셔주게나. 그리고 다음번에 커피를 만들 때는 나를 위해 한 잔 따라놓고 버번을 약간 넣은 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서 잔 옆에 놓아줘. 그러고나서는 모든 일을 잊어버리게. 테리 레녹스, 이제 끝. 그러면 안녕이지.
노크 소리가 들리는군. 커피를 가지고 온 벨보이일 테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총이 발사될 거야. 나는 멕시코인들을 좋아해, 대체로. 하지만 멕시코 감옥은 좋아하지 않지. 잘 있게.
테리.
그게 다였다. 나는 편지를 다시 접어서 봉투에 도로 넣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커피를 가지고 온 벨보이였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편지를 받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 안에 들어 있는 매디슨의 초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매디슨의 초상화는 5천 달러짜리 지폐다.
테이블 위 내 앞에 놓인 것은 녹색의 빳빳한 지폐였다. 이런 지폐는 본 적도 없었다. 랜디 스타나 메넨데스 같은 인물이나 지니고 다닐 법한 물건이었다. 은행에 가서 한 장 부탁한다고 해도 가져다주려면 연방 준비 은행에 연락해야 할 것이었다. 받기까지는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전 미국에 유통되는 물량이래야 천 장이나 될까 싶은 지폐다. 게다가 내가 받은 것은 주위에 멋진 후광이 비칠 정도였다. 자신만의 햇빛을 내쏘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은 채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나는 지폐를 편지 보관함 속에 넣어버리고 부엌으로 가서 그가 주문한 커피를 만들었다. 너무 감상적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부탁한 대로 해주었다. 나는 커피를 두 잔 따라 그의 잔에는 버번을 약간 넣은 뒤, 비행장으로 데려다주었던 그날 아침에 그가 앉았던 쪽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그를 위해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잔 옆의 재떨이 위에 놓았다. 나는 커피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과 담배에서 가는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는 새 한 마리가 노란 나팔꽃 속에서 낮은 소리로 혼자 지저귀다가 가끔씩 날개를 파드득 치며 날아오르곤 했다.
한참 뒤 커피에서는 더이상 김이 오르지 않았고 담배는 다 타올라 재떨이 가장자리에 꽁초만 남았다. 나는 꽁초를 싱크대 아래 쓰레기통에 버렸다. 커피를 쏟아버리고 잔을 닦은 뒤 치워버렸다.
그뿐이었다. 5천 달러의 대가로는 그다지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후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무엇이 나오는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소음과 커다란 얼굴뿐이었다. 다시 집에 와서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루이 로페스 정석을 펼쳐보았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새벽 3시에 나는 거실을 서성대면서 트랙터 공장에서 작업하는 듯한 하차투리안(아르메니아 출신의 작곡가)의 곡을 들었다. 하차투리안은 그걸 바이올린 콘체르토라고 불렀다. 나라면 그 빌어먹을 곡을 늘어진 팬벨트 협주곡이라 불렀을 텐데.
내가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것은 뚱뚱한 우체부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다. 리츠베벌리 호텔에서 나를 기다릴 하워드 스펜서 씨가 없었더라면 술 한 병을 해치우고 뻗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번에 롤스로이스 실버레이스에 탄 점잖은 술주정뱅이를 보면 아무 데로나 줄행랑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