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이별
아침에 나는 다시 면도를 하고 옷을 입은 뒤 평소처럼 시내로 차를 몰고 가서 평소 세우던 곳에 주차했다. 내가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주차장 요원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는 위층으로 가서 복도를 따라가 열쇠를 꺼내서 내 사무실 문을 열었다.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매끈하게 생긴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당신이 말로우요?”
“그렇다면?”
“어디 가지 말고 있으쇼.”
그가 말했다.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등을 벽에서 떼고 나른하게 걸음을 옮겼다.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우편물을 집어들었다. 야간 청소부가 가져다놓은 우편물이 책상 위에 좀더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연 뒤 봉투들을 뜯어보고 필요없는 건 버렸다. 사실 쓸모없는 우편물뿐이었다. 나는 다른 문의 버저 스위치를 켜고 파이프에 담배를 채운 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렸다.
나는 초연한 태도로 테리 레녹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 그는 벌써 아득히 멀어져가고 있었으며, 백발과 흉터가 난 얼굴, 은은한 매력과 특이한 자존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를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았다. 어쩌다 상처를 입었는지, 어쩌다 실비아 같은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질문한 적이 없었다. 그는 항해 중에 우연히 만나서 무척 친해진 듯해도 사실은 전혀 아는 게 없는 사이의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부두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는, 친구, 연락하고 지내자고, 하고 말하고 떠나지만 서로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뻔히 아는, 그런 사람처럼 떠나갔다. 그런 사람은 다시 볼 수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보게 된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그저 특별객차에서 마주친 로터리 회원의 한 사람일 뿐이다. 요새 일은 어때? 아, 별로 나쁘지 않아. 자넨 좋아 보이는군. 자네도 그런데. 나는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었어. 우리 모두 마찬가지 아냐? 그 프랑코니아 호라나 뭐라나 하는 배를 타고 같이 여행했던 거 기억나나? 아, 물론이지. 멋진 여행이었어, 그랬지?
멋진 여행이긴. 지루해서 죽을 뻔했다. 주위에 재미있어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 남자와 얘기를 나눈 거지. 어쩌면 그게 테리 레녹스와 나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니, 아주 똑같지는 않다. 나는 그의 한 부분이나마 가졌으니까. 나는 그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며 그 때문에 큰집에서 사흘이나 지냈고, 침을 삼킬 때마다 떠올려야 했던, 턱에 맞은 강타나 목에 꽂힌 펀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그는 죽었으니 그의 500불을 돌려줄 수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런 사소한 일은 항상 기분을 언짢게 한다.
문에 붙은 버저와 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나는 전화를 먼저 받았다. 버저 소리는 단지 손바닥만 한 내 대기실에 누가 들어왔다는 의미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말로우 씨 계십니까? 엔디코트 씨가 통화하고자 하십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가 연결되었다.
“슈얼 엔디코트요.”
그는 마치 자신의 빌어먹을 비서가 벌써 이름을 대준 것을 모른다는 듯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엔디코트 씨.”
“경찰에서 풀려났단 소식을 들으니 기쁘오. 현명하게 판단해서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오만.”
“머리 굴린 적은 없습니다. 그냥 버텼더니 풀어주더군요.”
“더이상 후환은 없을 거라 생각하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연락하시오.”
“왜 그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 남자는 죽었는데요. 경찰들은 그 친구가 내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도 시간깨나 들여야만 할 겁니다. 다음으로는 내가 유죄가 될 만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도망쳤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겠죠.”
그는 헛기침을 했다.
“어쩌면.”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은 그가 상세한 자백서를 남겼다는 얘기를 못 들었나 보군.”
“들었습니다, 엔디코트 씨. 나는 지금 변호사하고 얘기하고 있잖습니까. 그 자백서도 그의 필적이 맞고, 내용이 진짜인지도 증명해야만 할 거라고 말하면 너무 도가 지나친 겁니까?”
“미안하지만 법적인 토론을 할 시간은 없는 것 같소.”
그는 날카롭게 말했다.
“나는 다소 우울한 임무 수행이 있어서 멕시코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중이오. 무슨 일인지는 짐작하겠죠?”
“으흠. 그야 당신이 누구 대변인인가에 달려 있겠죠. 나한테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기억나십니까?”
“똑똑히 기억하오. 그럼 잘 있으시오, 말로우. 내가 도와주겠다고 한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오. 그렇지만 당신에게 가벼운 충고 하나 해주지. 당신 혐의가 완전히 벗겨졌을 거라고 너무 자신하지는 마시오. 당신 직업은 약점투성이니까.”
그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조심스럽게 전화에 올려놓았다. 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에 손을 댄 채로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못마땅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워버리고는 일어나서 대기실로 향하는 중간문을 열었다.
한 남자가 창문 옆에 앉아서 잡지를 들추고 있었다. 그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연청색 체크무늬의 청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꼬아 앉은 다리에는 두 군데 구멍으로 끈을 내어 묶는, 모카신 모양의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산책용 신발처럼 편안해 보였으며 한 블록만 걸어도 양말이 닳아버리는 그런 종류의 구두가 아니었다. 하얀 손수건은 네모반듯하게 접혀 있었으며 그 뒤로 선글라스의 끝부분이 보였다. 머리는 숱이 많고 짙은 곱슬머리였다. 피부는 햇빛에 바짝 그을려 있었다. 그는 새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들고는 가느다란 콧수염 밑에서 미소지었다. 번쩍이는 흰색 셔츠 위에는 짙은 적갈색의 뾰족한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잡지를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이 허접한 잡지들은 쓰레기 같은 내용만 싣는다니까.”
그가 말했다.
“코스텔로(세금 포탈로 기소되었던 갱스터)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었지. 그래, 이 기자들은 코스텔로에 대해서 꽤나 잘 알고 있나 봐. 내가 트로이의 헬레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는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나를 훑어보았다.
“커다란 빨강 스쿠터를 탄 타잔이로군.”
그가 말했다.
“뭐라고요?”
“당신 말이야, 말로우. 커다란 빨강 스쿠터를 탄 타잔이라고. 경찰들이 많이 험하게 다루던가?”
“여기저기 굴려댔지.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오?”
“올브라이트가 그레고리우스에게 명령을 내린 다음에도?”
“아니, 그 이후로는 아니고.”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 한 방 먹여주라고 올브라이트에게 부탁하다니 머리가 꽤나 좋은데.”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는데. 올브라이트 국장과는 우연이라도 안면이 없고, 그러다 보니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지. 그 사람이 왜 내 부탁을 들어주겠소?”
그는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표범처럼 우아한 태도로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가서 내 사무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내 쪽으로 머리를 살짝 흔들어 보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디에 있든 자기가 주인인 양 행세하는 남자였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책상 옆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삼류구만.”
그가 말했다.
“영 삼류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고.”
나는 책상 뒤로 가서 기다렸다.
“한 달에 얼마나 버나, 말로우?”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기껏해봤자 750달러 정도겠지.”
그가 말했다.
나는 타버린 성냥을 재떨이에 던져넣고 담배만 뻐끔거렸다.
“당신은 겁쟁이야, 말로우. 하찮은 사기꾼이지. 너무 하찮아서 자네를 들여다보려면 돋보기가 필요하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구려 감정이나 갖고 있는 인간이지. 모두가 싸구려야. 어떤 남자와 친구로 사귀고, 술 몇 잔 하고, 농담 몇 마디 지껄이고, 그 친구가 상황이 안 좋으면 돈 좀 찔러넣어주고, 그렇게 그 친구에게 푹 넘어가는 거지. 프랭크 메리웰(어린이용 소설 시리즈) 소설을 읽는 초등학생처럼 말이야. 배짱도 없고 머리도 없고 연줄도 없고 세련된 맛도 없으니, 잔뜩 허세를 부리고 앉아서 사람들이 눈물을 짜내며 신세 타령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거지. 커다란 빨강 스쿠터를 탄 타잔이라니까.”
그는 피곤한 듯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내 보기엔 당신은 한 푼 값어치도 없는 인간이야.”
그는 책상 위에 몸을 숙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경멸하는 태도로, 나를 다치게 할 마음은 없다는 듯 여전히 미소를 얼굴에 살짝 띤 채 내 얼굴을 손등으로 찰싹 때렸다. 그래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천천히 앉아 책상에 한쪽 팔꿈치를 올려놓고 갈색 손으로 갈색 턱을 받쳤다. 새처럼 맑은 눈은 반짝이고 있을 뿐 아무런 표정도 담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누군지 알아, 좀팽이?”
“이름은 메넨데스. 당신 부하들은 멘디라고 부르고. 선셋 스트립(헐리우드와 베버리힐즈 사이의 길)에서 활동하고 있다지.”
“그래? 어쩌다 내가 그런 거물이 된 줄 아나?”
“모르겠는데. 아마 멕시코인 유곽에서 뚜쟁이부터 시작했겠지.”
그는 황금 담뱃갑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황금 라이터로 갈색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매운 담배 연기를 불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황금 담뱃갑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졌다.
“난 거물급 악한이야, 말로우. 돈을 쓸어담지. 내가 짜낼 수 있는 녀석들을 짜내서 한 몫 챙기기 위해서는, 짜낼 수 있는 녀석들을 짜내서 많은 돈을 돈을 버는 수밖에 없거든. 벨에어에는 9만불 짜리 집이 있고 그 집을 수리하는 데만도 벌써 그보다 많은 돈을 썼어. 밝은 금발의 사랑스러운 마누라에 저기 동부 어디 사립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둘 있지. 내 마누라는 보석만도 15만 불어치가 있고, 모피코트나 옷에도 한 칠만 5천 불 정도는 썼을 거야. 내 뒤를 따라다니는 저 원숭이 녀석은 빼고도 집사에 하녀가 둘, 요리사, 운전기사가 있어. 난 가는 곳마다 대접받지. 항상 최고만 차지해. 가장 좋은 음식, 가장 좋은 술, 가장 좋은 호텔 스위트룸. 플로리다에 별장이 하나 있고, 선원이 다섯 명 딸린 요트도 하나 있지. 벤틀리가 한 대, 캐딜락이 둘, 크라이슬러 스테이션왜건 한 대가 있고 내 아들은 MG(영국산 스포츠카)를 타. 2년 정도 지나면, 내 딸도 한 대 사줄 작정이고. 자네는 무얼 가지고 있나?”
“별로 많지 않은데.”
나는 말했다.
“난 올해에서야 살 만한 집을 하나 구했지. 나 혼자서.”
“여자도 없고?”
“나뿐이지. 거기에다가 여기 지금 보이는 게 있고, 은행에 1200달러 정도, 채권으로 몇천 달러 가지고 있을까. 그 정도면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겠나?”
“한 건 해서 가장 돈을 많이 받아본 건 얼마였나?”
“850달러.”
“이런, 어떻게 그렇게 좀스럽게 사나?”
“이제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용건만 말하시지.”
그는 반쯤 피우다 만 담배를 끄고 즉시 다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의자에 뒤로 기댔다. 그는 입을 비쭉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린 셋은 참호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어. 지독하게도 추웠고 온 천지가 눈이었지. 우리는 통조림을 먹고 있었어. 차가운 통조림 식량. 포격이 약간 있었고, 그 다음에는 박격포 공격이 덮쳤지. 우리는 추위로 파랗게 얼어 있었어, 파랗게. 랜디 스타와 나와 이 테리 레녹스 말이야. 박격포탄이 우리 한가운데에 바로 떨어지더니 무슨 까닭인지 터지지 않더란 말이지. 독일 녀석들은 갖은 잔꾀를 다 쓰니까. 비비 꼬인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거든. 어떨 때는 불발탄인가 싶은데, 3초 후에는 그게 아니란 말이야. 테리가 그 포탄을 집어서 랜디와 내가 몸을 빼기도 전에 방공호 밖으로 들고 나갔지. 일급 미식축구 선수처럼. 그 친구는 아래를 보고 몸을 날리면서 그 물건을 멀리 던졌는데 그만 공중에서 터져버렸어. 대부분 그 친구 머리 위로 날아가 버렸지만 파편 하나가 그의 옆얼굴에 박혔지. 바로 그때 독일놈들이 공격을 퍼부었고 그 다음에 생각나는 거라고는 우리는 더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거야.”
메넨데스는 말을 멈추고 어두운 눈동자에서 광채를 내뿜으며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말해줘서 고맙군.”
“잘 받아넘기는데, 말로우. 괜찮은 놈이로군. 랜디와 나는 한참 이야기한 끝에 테리 레녹스가 처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머리가 이상해졌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어. 오랫동안 우린 테리가 죽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죽지 않았지. 독일놈들이 그 친구를 잡아간 거야. 독일놈들은 1년 반 동안 테리를 심하게 다뤘어. 독일놈들이 응급치료는 해주었지만 테리는 너무 깊이 상처를 입었지. 그 사실을 알아내는 데 돈이 들었고 그 친구를 찾아내는 데도 돈이 들었어. 그렇지만 우리는 전후에 암시장에서 돈을 꽤 많이 벌었거든. 그 정도는 여유가 있었지. 테리가 우리 목숨을 구해주고 받은 대가라고는 완전히 달라진 얼굴 반쪽하고, 백발, 그리고 이상해진 정신뿐이었어. 저기 동부 어디서 그 친구는 술병을 끌어안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거의 누더기가 되어 있더군. 그 친구 마음속에는 뭔가 있었지만 우리야 뭔지 알 수 없었지. 다음으로 알아낸 건 테리가 이 부잣집 아가씨와 결혼해서 출세했다는 거였어. 그 여자랑 이혼한 다음에는 다시 신세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다시 결혼했다고 하더니 그 다음엔 여자가 죽어버리더군. 랜디와 나는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네. 라스베가스에서 잠깐 일했던 직장을 구해준 것 말고는 우리의 도움을 받지 않았네. 그리고 그 친구가 진짜 곤경에 빠졌을 때는 우리에게 오지 않고 너 같은 좀팽이 탐정에게 갔지. 경찰들이 쉽게 괴롭힐 수 있는 사람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 친구는 죽어버렸어. 우리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빚을 갚을 기회를 주지도 않고 말이야. 멕시코에 있는 내 연줄을 이용하면 거기 언제까지나 숨어 있을 수도 있었는데. 나는 도박사들이 카드를 섞는 것보다 더 빨리 테리를 이 나라에서 꺼내줄 수 있었다고. 그렇지만 그 친구는 울며 네 품으로 달려갔지. 그래서 기분이 나빠. 좀팽이 녀석, 경찰들이 아무렇게나 밟아버릴 수 있는 녀석인데도.”
“경찰들은 아무나 밟아버릴 수 있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그냥 손 떼.”
메넨데스가 딱딱하게 말했다.
“뭐에서 손 떼라는 거야?”
“레녹스 사건으로 돈이나 유명세 좀 얻어보려는 속셈을 버리라고. 그 사건은 끝났어. 마무리지어졌다고. 테리는 죽었고 우리는 더이상 그 친구가 시달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그 친구는 고생할 만큼 했으니까.”
“감상적인 깡패라.”
나는 말했다.
“웃겨 죽겠군.”
“입 조심해, 좀팽아. 입 조심하라고. 멘디 메넨데스는 말싸움을 하지 않아. 다만 명령할 뿐이지. 돈 좀 만지고 싶으면 다른 길을 터봐. 알아들었어?”
그는 일어섰다. 면담은 끝났다. 그는 장갑을 집었다. 눈처럼 하얀 돼지가죽 장갑이었다. 장갑은 한 번도 끼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외모에 꽤나 신경 쓰는 사람이군, 메넨데스 씨는. 그렇지만 그 뒤에는 거친 면모를 감추고 있다는 건가.
“유명세 같은 건 얻고 싶지 않아.”
나는 말했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돈을 준 적 없어. 사람들이 왜, 무엇 때문에 그러겠나?”
“농담하지 마, 말로우. 네가 마음이 상냥해서 감옥에서 사흘이나 보낸 건 아니잖아. 돈을 받았을 것 아냐.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나도 감이 있다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쪽은 돈이야 넘치고 넘치지. 레녹스 사건은 끝났고 언제까지나 끝난 채로 남아 있을 거야, 설사…”
그는 갑자기 말을 딱 끊고 장갑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탁 쳤다.
나는 말했다.
“설사 테리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말이지.”
메넨데스가 놀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난 반응은 주말에 해치워버린 결혼식 반지에 씌운 금만큼이나 희미한 것이었다.
“나도 그것만은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싶어, 좀팽이. 그렇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지. 허나 말이 된다고 해도 테리가 일이 이렇게 되기를 바랐다면, 그냥 그대로 남겨둬야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히죽 웃었다.
“커다란 빨강 스쿠터를 탄 타잔이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
“터프가이란 말이지. 나를 여기로 들여보내서 자기를 완전히 깔아뭉개도록 내버려두는. 동전 몇 푼이면 살 수 있고 누구에게나 쉽게 밟히는 남자야.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전망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 좀팽이, 잘 있게.”
나는 턱을 꽉 다문 채 가만히 앉아 책상 모서리에 놓인 그의 황금 담뱃갑에서 흐르는 빛을 바라보았다. 나이 들고 지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담뱃갑을 집었다.
“이걸 잊었군.”
나는 책상 뒤로 돌아가며 말했다.
“그런 건 반 다스나 있어.”
그는 비웃었다.
나는 그의 곁에 다가서서 담뱃갑을 내밀었다. 그는 무심히 담뱃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런 것 반 다스는 어때?”
나는 이렇게 물으며 있는 힘껏 그의 배 한복판을 쳤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굽혔다. 담뱃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벽에 기대었고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손을 앞뒤로 휘저었다. 그는 애써 허파에서부터 숨을 내쉬었다.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극심한 노력을 통해서 그는 몸을 쭉 폈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섰다. 나는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그의 턱뼈를 따라 쓰다듬었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그는 갈색 얼굴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말했다.
“이런 성깔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다음에는 총을 가지고 와. 아니면 나를 좀팽이라고 부르지 말든가.”
“총을 지닌 녀석을 데리고 왔지.”
“그럼 그 친구를 옆에 두든가. 필요하게 될 테니까.”
“화를 돋우기가 어려운 놈이군, 말로우.”
나는 발로 황금 담뱃갑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몸을 숙여서 주운 뒤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받아서 주머니 속에 떨어뜨렸다.
“자넬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나는 말했다.
“왜 굳이 시간을 내서 여기 와서 내 성질을 긁는 걸까? 그 다음에는 너무 단조로워지더군. 거친 친구들은 다 단조롭거든. 모두 에이스만 있는 카드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자넨 모든 것을 가졌지만 또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 자넨 그냥 거기 앉아서 자기 자신만 바라보고 있어. 테리가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그건 창녀에게 돈을 꾸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그는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배를 눌렀다.
“그런 말을 하다니 유감이군, 좀팽이. 한 번에 너무 많이 잘난 척을 하려고 하는데.”
그는 문 쪽으로 가더니 문을 열었다. 경호원이 반대편 벽에 기대어 있다가 몸을 쭉 펴고 돌아보았다. 메넨데스는 고개를 까닥했다. 경호원은 사무실로 들어와 서서 무표정하게 나를 훑어보았다.
“이 친구 잘 봐둬, 칙.”
메넨데스가 말했다.
“만에 하나 나중에라도 알아볼 수 있게 잘 봐두라고. 조만간 서로 볼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벌써 잘 봐뒀습니다, 두목.”
미끈한 외모에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입을 꽉 다문 남자가, 그런 작자들이 선호하는 입을 꽉 다물고 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자식은 별로 힘들 것도 없어요.”
“저 친구한테 배나 얻어맞지 마.”
메넨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른손 훅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경호원은 단지 나를 보고 비웃기만 했다.
“그렇게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할걸요.”
“자, 그럼, 잘 있게나, 좀팽이.”
메넨데스는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또 봅시다.”
경호원은 차갑게 말했다.
“내 이름은 칙 아고스티노요.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더러운 신문 쪼가리인 줄 알았네. 얼굴 밟지 않게 미리 알려달라고.”
그의 턱 근육이 불룩 튀어나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두목을 따라 나갔다.
기압 장치에 의해서 문이 천천히 닫혔다. 나는 귀를 기울였지만 복도를 따라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걷나 보다. 그냥 확인하고자 1분 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지만 복도는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책상 뒤로 돌아가서 자리에 앉은 뒤 왜 메넨데스처럼 지역 조직폭력배 중에서는 나름대로 거물급인 인물이 내 사무실에 직접 행차해서 이 일에서 손 떼라고 경고해주는 일에 귀한 시간을 들이는지를 잠깐 동안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슈얼 엔디코트에게서 다른 방식이기는 해도 비슷한 경고를 받은 직후에.
결국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아서, 하는 김에 완벽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라스베가스에 있는 테라핀 클럽으로 전화를 걸어 필립 말로우가 랜디 스타 씨와 일대일로 통화를 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전혀 소용없는 짓이었다. 랜디 스타 씨는 출장 중이라고 하니 다른 사람하고 통화해야 할까?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심지어 스타하고도 그렇게 절실히 통화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스쳐지나간 생각일 뿐이었다. 그 친구는 너무 멀리 있어서 나를 해치진 못할 테니까.
그 후 사흘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나를 두들겨 패거나 총을 쏴대거나 전화로 불러내거나 이 일에서 손 떼라고 경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집 나간 딸이나 바람난 아내, 잃어버린 진주 목걸이나 사라진 유언장을 찾아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단지 우두커니 앉아서 벽만 바라보았다. 레녹스 사건은 일어난 과정만큼이나 순식간에 잠잠해져버렸다. 약식 사인 심의회가 열렸지만 나는 소환당하지 않았다. 사인 심의회는 사전 고지나 배심원단도 없이 기묘한 시간에 열렸다. 레녹스가 검시관의 관할 구역 밖에서 사망했으므로, 심의회에서는 실비아 포터 웨스터헤임 디 조르지오 레녹스의 죽음은 남편 테렌스 윌리엄 레녹스의 의도적 살인이었다는 검시관의 소견 발표만이 있었다. 추측컨대, 검시관들이 만족할 만큼 확증된 내용이었을 것이다.
시체는 매장을 위해 유족들에게 넘겨졌다. 시체는 비행기에 실려 미국으로 운반되어 가족 묘지에 묻혔다. 언론사 기자들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가족들 중 아무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니 인터뷰를 절대 하지 않기로 유명한 할란 포터 씨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달라이라마만큼이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다. 수십억 달러의 재산이 있는 남자라면 하인, 경호원, 비서, 변호사, 말 잘 듣는 간부들이 막처럼 에워싼 뒤에 숨어서 기이한 삶을 산다고 해도 괜찮다. 추측컨대, 그 사람들도 먹고, 자고, 이발도 하고, 옷도 입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알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읽고 들은 모든 것은 일단의 홍보 담당자들에 의해 뭔가 단순하고 깨끗하고 날카로운, 편리한 인격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그 내용은 사실일 필요도 없다. 그저 알려진 사실에 일치하기만 하면 되고, 사실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만 알려지면 된다.
사흘째 되는 날 오후 늦게, 자기 이름이 하워드 스펜서이며 뉴욕의 어느 출판사 대표인데 캘리포니아에 잠깐 출장차 왔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와 의논하고 싶은 문제가 있으니 다음날 아침 8시에 리츠베벌리 호텔의 바에서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다소 미묘한 일이라서요.”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전적으로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입니다. 합의가 잘 되지 않으면 시간당 보수는 드리겠습니다, 물론.”
“고맙습니다, 스펜서 씨. 그렇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추천을 한 겁니까?”
“말로우 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긴 합니다. 물론 최근 경찰하고 마찰이 있었던 일까지 포함해서요. 그 일 때문에 흥미를 끌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 일은 그 비극적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건 다만… 저, 전화보다는 만나서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하는 편이 낫겠는데요.”
“큰집에 갔다 온 사람과 어울려도 되겠다 싶습니까?”
그는 웃었다. 웃음과 목소리, 둘 다 유쾌했다. 그는 뉴욕 사람들이 플랫부시(뉴욕 브루클린 중앙에 위치한 거주지역) 말투를 익히기 전에 말하던 방식으로 말했다.
“제 관점에서는 말이죠, 말로우 씨. 그게 하나의 추천장입니다. 아니, 덧붙이자면, 말로우 씨 표현대로 큰집에 갔다 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런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난해한 소설처럼, 쉼표를 많이 섞어서 말하는 사람이었다. 전화 대화일 뿐인데도.
“알았습니다, 스펜서 씨. 아침에 뵙죠.”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누가 나를 연결시켜주었을지 궁금했다. 슈얼 엔디코트일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확인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주 내내 출장 중이었고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나 같은 직업에서도 가끔은 만족한 고객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이 필요했다. 아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집에 가서 매디슨(미국 제4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동봉된 편지가 배달된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