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개인물품 보관증 사본을 꺼내서 제출하고 원본에 확인 서명을 해주었다. 나는 소지품들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어떤 남자가 접수대 끝에 아무렇게나 몸을 기대고 있다가 내가 돌아서자 일어나 내게 말을 걸었다. 190센티도 넘는 큰 키였으나 꼬챙이처럼 마른 남자였다.

 

“집까지 태워다줄까요?”

 

어두침침한 불빛 속에서는 겉늙었고 피곤하며 냉소적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사기꾼 같지는 않았다.

 

“얼마면 됩니까?”

 

“공짜로 해드리죠. 나는 저널 지(誌)의 로니 모건입니다. 지금 퇴근하던 중이거든요.”

 

“아하, 경찰 출입 기자시로군.”

 

“이번 주만이죠. 내 담당 구역은 주로 시청입니다.”

 

우리는 건물 밖으로 걸어나가 주차장에 있는 그의 차를 찾아갔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지만 주변이 너무 환했다. 시원하고 쾌적한 밤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그의 차에 올라타자 그는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저기 로렐캐년에 삽니다. 아무 곳에나 내려줘요.”

 

“경찰은 사람들을 차에 태워서 끌고오죠.”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갈 때는 어떻게 가든지 걱정하지 않는다니까요. 이 사건은 아주 흥미가 있어요. 약간 불쾌한 방식으로.”

 

“사건이랄 게 없어 보이는데.”

 

나는 말했다.

 

“테리 레녹스는 오늘 오후에 자살했습니다. 그렇다고 경찰이 말하더군요. 경찰은 그런 식으로 말합디다.”

 

“아주 편리하군요.”

 

로니 모건은 앞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의 차는 조용한 거리를 조용히 스쳐갔다.

 

“그렇게 하면 벽을 치는 데 도움이 되죠.”

 

“무슨 벽?”

 

“누군가 레녹스 사건을 두고 벽을 치고 있어요, 말로우. 그 정도는 알 만큼 영민한 분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사건이 점점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연극처럼 되어가고 있어요. 지방검사는 오늘밤 이 동네를 떠나 워싱턴으로 갈 겁니다. 무슨 회의가 있다나요. 그 사람은 몇 년씩이나 누려왔던 유명세보다도 더 달콤한 인기를 얻을 수 있은 일에서 스스로 빠져나왔어요. 왜겠습니까?”

 

“나한테 물어봤자 소용없어요. 나는 차디찬 감방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누군가 그럴 가치가 있도록 해주었겠죠.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돈다발 같은 조잡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녜요. 누군가 그에게 중요한 뭔가를 약속했고, 이 건과 관련해서 그런 일을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죠. 그 여자의 아버지 말입니다.”

 

나는 머리를 차 구석에 기댔다.

 

“별로 그럴듯하게 들리진 않는데.”

 

나는 말했다.

 

“언론은 어떻게 됐죠? 할란 포터가 신문사 몇 개를 소유하고는 있지만 경쟁지는 어떻게 된 거요?”

 

그는 웃긴다는 표정으로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신문기자 해본 적 있어요?”

 

“아뇨.”

 

“신문사를 소유하고 출판하는 건 부자들이죠. 그런 부자들은 같은 사교 클럽 회원이고. 물론 경쟁지는 있어요. 배급이나 취재 구역, 특종기사를 둘러싸고 심한 경쟁을 하죠. 그게 소유주의 특권이나 지위에 해가 되지 않는 한은요. 하지만 기사가 소유주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 같으면 바로 규제가 내려오는 거죠. 레녹스 건에도 규제가 내려왔다고요. 레녹스 건은 잘만 구성하면 신문이 불티나듯 팔릴 겁니다.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어요. 재판을 하게 되면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어 특집기사로 쓸 겁니다. 그렇지만 재판은 일어나지 않겠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레녹스가 퇴장해버렸으니까. 내가 말한 대로, 아주 편리하게 됐죠. 할란 포터와 그 가족들에게는.”

 

나는 몸을 펴고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 모든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말하는 거요?”

 

그는 야유하는 듯 입을 삐죽댔다.

 

“레녹스가 자살하는 데 도움을 좀 받았을 수도 있단 거죠. 체포할 때 약간 저항하거나 해서. 멕시코 경찰들은 권총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거든요. 약간만 내기를 걸어보겠다면, 총알구멍 숫자를 셀 수도 없었을 거라는 쪽으로 걸죠.”

 

“당신 말은 틀린 것 같은데.”

 

나는 말했다.

 

“난 테리 레녹스를 잘 알아요. 그는 오래전에 자기 자신을 포기해버린 사람이오. 만약 경찰들이 생포하려고 했다면, 순순히 따라왔을 거요. 살인죄로 처벌을 달게 받았을 거라고.”

 

로니 모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전혀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만약 그가 여자를 쏘거나 머리를 박살낸 정도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요. 그렇지만 수법이 지나치게 잔인했어요. 그 여자의 얼굴은 얻어맞아 걸레가 되어 있었지요. 잘 받아봤자 2급 살인죄고, 그만해도 야단법석이었을 걸요.”

 

“당신 말이 맞겠지.”

 

그는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남자와 아는 사이라고 했죠. 그 일이 조작되었다는 데 동의합니까?”

 

“피곤해서 오늘밤은 생각할 기분이 아니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로니 모건은 조용히 말했다.

 

“내가 거지 같은 신문기자가 아니고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그가 여자를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요.”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자동차 계기판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그는 여윈 얼굴에 시종일관 찡그린 표정을 띠고 고요히 담배를 피웠다. 로렐캐년에 다다르자 나는 큰길에서 빠지는 지점을 말해줬고 다시 내가 사는 거리로 들어서는 길을 알려줬다. 그의 차는 요동치며 언덕을 올라가 우리 집 삼나무 계단 발치에 멈췄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태워다줘서 고마워요, 모건. 한잔 하겠소?”

 

“나중에 하는 걸로 하죠.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테니.”

 

“혼자 보낸 시간은 너무 많았소. 지겹게도 많았지.”

 

“작별 인사를 한 친구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을 위해 감방에 처박히는 것을 감수할 정도라면, 친구가 있었다고 해야겠죠.”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그랬다고 누가 그럽디까?”

 

그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 기사를 쓸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잘 있어요. 또 봅시다.”

 

내가 차문을 닫자 그는 차를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차 후미등 불빛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나는 계단을 올라가 신문을 주워 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전등을 죄다 켜놓고 창문을 죄다 열었다. 집 안은 후덥지근했다.

 

나는 커피를 만들어 마신 뒤 커피통에서 100달러 지폐 다섯 장을 꺼냈다. 지폐는 돌돌 말려서 커피통 속 한쪽에 들어 있었다. 나는 손에 커피를 들고 왔다갔다하다가, TV를 켰다가 끄고,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나는 현관 계단에 쌓여 있던 신문을 샅샅이 읽었다. 레녹스 사건은 초기에는 거창하게 보도되었지만 그날 아침쯤에는 뒷면으로 밀려나 있었다. 실비아의 사진은 실려 있었지만, 테리의 사진은 없었다. 그런 사진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내 스냅사진도 실려 있었다. ‘LA의 사립탐정, 심문을 위해 구류 중’ 이라는 기사였다. 엔시노에 있다는 레녹스 저택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뾰족한 지붕이 많은, 어설프게 흉내 낸 영국식 저택으로 창문을 닦는 데만도 100달러는 들 것 같았다. 저택은 로스앤젤레스치고는 꽤나 널따란, 2450평방미터나 되는 부지 내의 둔덕 위에 서 있었다. 저택 본관의 축소판 모형처럼 보이는 손님 별채의 사진도 있었다. 나무 울타리가 별채를 에워싸고 있었다. 두 장 모두 먼 곳에서 찍어서 확대한 다음 가장자리를 잘라낸 것이 분명했다. 신문에서 말하는 소위 ‘죽음의 방’ 사진은 없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이전에 감옥에서도 보았지만, 기사를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부유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살해당했고 언론은 철저히 차단당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아마 사건에 대한 압력은 아주 일찌감치 내려왔을 터였다. 범죄 전담 기자들은 이를 득득 갈았겠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녀가 죽은 바로 그날 밤 테리가 패서디나에 있는 장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경찰에 신고가 들어오기도 전에 십여 명의 경호원이 저택에 깔렸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이를테면 그녀가 맞아 죽은 방식.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테리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전등을 끄고 열린 창문 옆에 앉았다. 바깥 수풀 속에서는 지빠귀가 밤을 나기 위해 내려앉기 전,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 지저귀며 스스로의 목소리에 심취해 있었다.

 

목덜미가 가려웠으므로 나는 면도와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들어 똑바로 누워서 마치 어둠 속 저 먼 곳으로부터 어떤 목소리, 모든 사실을 명료하게 밝혀 줄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내게 레녹스 사건을 설명해주지 않으리라.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살인자는 자백하고 죽었다. 사인 심의회조차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저널 지의 로니 모건이 평한 대로, 아주 편리하게 되어버렸다. 테리 레녹스가 아내를 죽였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를 재판할 필요도 없어졌고 온갖 불유쾌한 점들을 들출 필요도 없어졌다. 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좋았다. 죽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죄를 뒤집어씌우기에 적당한 사람이다. 결코 대꾸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