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는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들고만 있는 것이었다. 중간 구경의 자동권총으로 외제였으며, 확실히 콜트나 새비지는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과 흉터, 세운 코트 깃과 푹 눌러쓴 모자에, 총을 든 그는 마치 치고받는 옛날 갱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10시 15분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티후아나까지 좀 태워다주게나.”

 

그가 말했다.

 

“여권과 비자도 있고 교통편만 빼고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LA에서 출발하는 기차나 버스, 비행기는 탈 수 없어. 5백 불이면 택시비로 적당한가?”

 

나는 문간에 그대로 서서 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주지 않았다.

 

“5백 불에 총까지 얹어주면 어때?”

 

나는 물었다.

 

그는 다시 정신이 나간 듯이 총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총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호신용일 뿐이야. 자네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럼 안으로 들어오게.”

 

나는 한쪽으로 비켜섰고 그는 지친 발걸음으로 들어와 의자에 주저앉았다.

 

거실은 집주인이 창문을 가리도록 내버려둔 두터운 관목 때문에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램프를 켜고 담배를 슬쩍 집었다. 그리고 담뱃불을 붙였다. 나는 그를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미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더 헝클었다. 나는 늙고 지친 웃음을 얼굴에 띠웠다.

 

“이렇게 화사한 아침에 잠이나 자고 있다니 나도 참 어떻게 된 것 아닌지 모르겠군. 10시 15분이라고, 응? 시간이 아주 넉넉한데. 부엌으로 나가자고. 내가 커피를 내릴 테니.”

 

“난 정말 엄청난 곤경에 빠졌네, 탐정 양반.”

 

탐정, 그가 그렇게 나를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은 그가 내 집에 들어온 방식, 옷매무시, 총 등 그 모든 상황과 잘 어울리는 데가 있었다.

 

“오늘 날씨는 근사할 것 같은데. 산들바람이 가볍게 불고 있어. 저 길 건너 단단하고 오래된 유칼립투스나무가 서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군. 왈라비(캥거루과의 동물)가 가지 아래서 뛰어놀고 등에 새끼를 업은 코알라가 기어오르던 옛 오스트레일리아 시절 얘기나 나누는 소리가 말이야. 그래, 자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은 받았지. 그럼 내가 커피 두어 잔 마신 다음에 그 얘기를 해보자고. 나는 언제나 막 일어난 직후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거든. 허긴스 씨와 영 씨하고 먼저 회의부터 하자고.”

 

“이봐, 말로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무것도 걱정할 거 없어, 친구. 허긴스 씨와 영 씨는 둘 다 정말 최고지. 두 사람은 허긴스 영 커피를 만들거든. 그들의 평생의 과업이자, 자긍심이고 기쁨이야. 허긴스 씨와 영 씨는 조만간 합당한 평가를 받게 될 거라고 보네. 이제까진 돈밖에 벌어들인 게 없거든. 그 사람들은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할 거야.”

 

나는 명랑하게 수다를 떨며 그를 남겨두고 뒤에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뜨거운 물을 틀고 선반 위에서 커피메이커를 꺼냈다. 대롱을 물에 축인 뒤 커피를 재서 위에 넣는 동안 물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 기계의 아래부분에 물을 가득 채우고 불 위에 올려놓았다. 위쪽 부분은 끼운 뒤 꼭 맞게 돌렸다.

 

그때 그가 따라 들어왔다. 그는 잠깐 문간에 기대 있더니 간이 테이블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나는 올드그랜드대드(위스키의 종류)를 선반에서 꺼내 큰 잔에 따라주었다. 그에게는 큰 잔이 필요할 듯싶었다. 그걸 마시는 데도 두 손으로 들어서 입에 갖다 대야 했다. 그는 꿀꺽 삼키더니 잔을 쿵 하고 내려놓고 부딪치듯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거의 기절할 뻔했어.”

 

그는 웅얼거렸다.

 

“일주일 내내 깨어 있는 기분이야. 지난밤 내내 자지 못했거든.”

 

커피메이커는 거의 부글부글 끓으려던 참이었다. 나는 불을 낮추고 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유리관 바닥에 물이 약간 맺혀 있었다. 나는 물이 끓어 올라올 수 있게 불을 약간만 더 키웠다가 재빨리 다시 낮췄다. 나는 커피를 젓고 그 위를 덮었다. 타이머는 3분 정도로 맞춰놓았다. 질서정연한 남자, 말로우. 그의 커피 끓이는 기술에 방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지. 필사적인 인간이 손에 들고 있는 총조차도.

 

나는 그에게 위스키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그냥 앉아 있게. 아무 말 하지 마. 그냥 앉아 있어.”

 

그는 두 번째 잔은 한 손으로 들고 마셨다. 화장실에 가서 재빨리 세수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때마침 타이머가 울렸다. 나는 불을 끄고 커피메이커를 탁자 위 밀짚매트 위에 올려놓았다. 어떻게 그렇게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하느냐고? 그건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모든 사소한 일까지도 마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했고 동작 하나하나가 분명하고 아주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해와 몸에 배어버린 동작들조차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해내야 하는 때였다. 그런 경우가 되면 소아마비를 앓은 직후에 걷는 것을 배우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자연스럽지 않아진다. 절대로 아무것도.

 

커피가 다 내려지자 평소처럼 공기가 쉭쉭거리며 밀려들어왔고 커피는 부글거리다가 가라앉았다. 나는 커피메이커의 윗부분을 떼어내고 커버의 구멍에 끼운 뒤 건조대 위에 놓아두었다.

 

나는 두 잔을 따르고 그의 잔에는 술을 첨가했다.

 

“자네 건 블랙이야, 테리.”

 

내 잔에는 각설탕 두 개와 크림을 약간 탔다. 나는 이제 긴장감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참이었다. 어떻게 냉장고를 열고 크림통을 꺼내는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식탁 구석에 굳은 듯 기대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예고도 없이 테이블 위에 엎드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건너편으로 가서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우저 7.65구경으로,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나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탄창을 빼냈다. 완전 장전 상태였다. 약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커피를 보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마셨다.

 

그가 말했다.

 

“아무도 쏘지 않았네.”

 

“뭐, 최근에는 아니란 얘기겠지. 총을 소제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자네가 이걸로 누구를 쏘았을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는데.”

 

“자초지종을 말해주겠네.”

 

“잠깐만 기다려.”

 

나는 뜨거움을 참으며 커피를 최대한 빨리 마셨다. 그리고 잔을 다시 채웠다.

 

나는 말했다.

 

“이 말을 해두려고 했지. 나한테 말하는 건 좋지만 조심하게. 내가 정말 티후아나까지 태워다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들어서는 안 될 얘기가 두 가지 있어. 첫 번재는… 듣고 있는 거야?”

 

그는 아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머리 너머 벽을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의 흉터는 진한 납빛이었다. 피부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으나 흉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빛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나는 천천히 반복했다.

 

“자네가 범죄라거나 경찰이 범죄라고 할 만한 심각한 짓을 저질렀다면 내가 그런 얘기를 들어선 안 되네. 두 번째로, 자네가 그런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 그 또한 들을 수 없어. 내가 자네를 티후아나까지 태워다주길 바란다면 말하지 마. 알겠나?”

 

그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초점은 있었지만 생기가 없었다. 그는 커피를 뱃속에 집어넣었다. 낯빛은 파리했지만 침착했다. 나는 그에게 커피를 좀더 따라주고 먼저처럼 술을 넣었다.

 

그가 말했다.

 

“곤경에 빠졌다고 말했잖나.”

 

“들었지. 하지만 어떤 종류의 곤경인지는 알고 싶지 않아. 나도 먹고살아야 하고 면허도 유지해야 한다고.”

 

“자네에게 총을 들이댈 수도 있었어.”

 

그가 말했다.

 

나는 싱긋 웃고 테이블 너머로 총을 밀어주었다. 그는 총을 내려다보았지만 손대지는 않았다.

 

“티후아나까지 내내 계속 총을 들이댈 수는 없었을 거야, 테리. 국경도 넘지 못하고 비행기 계단도 오르지 못했을 테지. 나도 때때로 총으로 일을 해결하는 사람일세. 총 얘기는 집어치워. 내가 너무 무서워서 자네가 시키는 대로밖에 할 수 없었다고 경찰한테 말하면 내 꼴이 퍽이나 좋게 보이겠군. 물론 혹시나 경찰한테 할 얘기가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들어봐.”

 

그가 말했다.

 

“누군가가 그 방문을 두드리는 것은 정오나 그 이후가 될 걸세. 하인들도 그 여자가 늦잠 잘 때는 깨우지 않아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정오까지는 하녀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갈 거야. 그 여자는 자기 방에 있지 않겠지만.”

 

나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녀는 침대를 보면 그 여자가 거기에서 잠을 잔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겠지.”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 다른 장소를 찾아볼 생각을 하겠지. 본채에서 멀리 떨어진 뒤쪽에 커다란 손님용 별채가 있거든. 그 별채에는 개별 차도와 차고 등도 딸려 있어. 실비아는 거기서 밤을 보냈지. 하녀는 마침내 거기서 아내를 찾아내고 말 거야.”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아주 조심스러워지는군, 테리. 부인이 집 말고 다른 곳에서 밤을 보낼 수도 있지 않았겠나?”

 

“아내 옷이 방 여기저기 널려 있거든. 아내는 아무것도 걸어놓는 법이 없어. 하녀는 그녀가 잠옷 위에 실내복을 걸친 차림 그대로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러면 갈 곳은 손님용 별채뿐이지.”

 

“반드시 그런 건 아니잖아.”

 

“손님용 별채로 가게 될 거야. 제길, 하인들이라고 손님용 별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줄 아나? 하인들은 항상 알고 있어.”

 

“그렇다고 치지.”

 

나는 말했다.

 

그는 빨간 줄이 갈 정도로 세게 손가락으로 멀쩡한 쪽 뺨을 긁어 내렸다.

 

“그리고 손님용 별채에는 말이지.”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녀가 보게 될 것은…”

 

“지독하게 취해서 몸은 마비가 되고 목이 막혀서 눈썹까지 얼음처럼 차가워진 실비아겠지.”

 

나는 매섭게 말했다.

 

“아.”

 

그는 그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한참 생각했다.

 

“물론이야.”

 

그가 덧붙였다.

 

“그렇게 된 것이지. 하지만 실비아는 술꾼은 아니야. 선을 넘어서면 아주 정신이 없지만.”

 

“그게 얘기 끝인가?”

 

나는 말했다.

 

“아니면 남은 게 있나. 잠깐 생각나는 대로 얘기 좀 하겠네.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우리가 같이 술 마셨을 때, 내가 자네에게 좀 심하게 대했고 그냥 가버렸지. 자네는 나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을 거야. 그 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네는 그저 재앙에 빠진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를 조소하고 싶었을 뿐이란 걸 알았네. 여권도 비자도 갖고 있다고 했지. 멕시코로 가는 비자를 얻는 데는 시간이 약간 걸려. 아무나 받아주지는 않는다는 걸세. 그러니 자넨 언젠가는 날라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오래 머뭇거렸는지 오히려 의아할 뿐이지.”

 

“좀 모호하지만,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들었던가 봐. 아내가 단지 노인이 너무 간섭하는 것을 막아내는 방패막이 이상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어쨌거나 한밤중에 자네에게 전화했었네.”

 

“난 잠이 깊이 들어 듣지 못했네.”

 

“그래서 증기탕에 갔었지. 거기서 두 시간 정도 있으면서 한증탕에 들어갔다가 온탕에도 들어가고, 샤워도 해보고 때도 밀면서 두어 번 전화를 더 했네. 차는 라브레아와 파운틴 거리 사이에 놔뒀어. 거기서부터 걸어왔네. 내가 자네 동네로 들어오는 걸 본 사람은 없네.”

 

“두 통 다 나한테 건 건가?”

 

“한 통은 할란 포터에게 했지. 노인이 어제 사업상 패서디나로 출장을 떠났거든. 집에는 들르지 않았어. 통화하느라 애 좀 먹었네. 그렇지만 마침내 통화가 됐지. 미안하지만 떠나야겠다고 말했지.”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슬쩍 눈길을 피해 싱크대 너머 창문과 차양에 어른거리는 나뭇가지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유감스러워했네. 행운을 빌어주었지. 돈이 필요하냐고 묻더군.”

 

테리는 거칠게 웃었다.

 

“돈이라니. 그의 사전에는 항상 첫 번째로 있는 단어지. 돈은 많다고 했어. 그리고 실비아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네. 그쪽에도 대강 비슷한 얘기를 했고. 그게 다야.”

 

“이건 물어보고 싶은데.”

 

내가 말했다.

 

“부인이 손님용 별채에서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네. 어렵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런 적은 없어.”

 

“자네 커피가 식는데.”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아.”

 

“남자가 많았다고, 흠? 그렇지만 자넨 돌아가서 다시 결혼했잖아. 나도 부인이 꽤나 매력적인 여자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했잖나. 제길, 애당초 내가 왜 그 여자를 떠났겠나? 그 후에 내가 다시 그 여자를 만날 때마다 점점 술 냄새에 절게 되었겠나? 내가 왜 그 여자에게 돈을 구걸하는 대신 도랑에서 굴렀겠나? 아내는 나와 결혼한 걸 빼도 다섯 번이나 결혼했어. 그중 어떤 사람이라도 아내의 손아귀로 돌아가고 싶어했을 거야. 단지 백만 불 때문만이 아니라도.”

 

“꽤나 매력적인 여자지.”

 

나는 시계를 보았다.

 

“왜 10시 15분 티후아나에서 타야만 하는 거지?”

 

“항상 비행기에 빈 자리가 있으니까. LA에서 출발하는 사람이면 코니(록히드 사의 4발 68인승 여객기)를 타고 멕시코시티까지 일곱 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굳이 DC-3(더글라스 에어크래프트 사의 쌍발 28인승 여객기)를 타고 산맥을 넘어가려 하진 않거든. 게다가 코니는 내가 내리려고 하는 데는 착륙하지 않아.”

 

나는 일어서서 싱크대에 기댔다.

 

“그럼 하나만 더 얘기할 테니, 끼어들지 말게. 자네는 오늘 아침 흥분한 상태로 우리 집에 와서는 아침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티후아나까지 태워달라고 했네. 주머니에는 총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못 본 거야. 자네는 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참아봤지만 어젯밤 폭발했다고 했네. 자네 부인은 죽은 듯 취해 있었고 어떤 남자가 부인하고 같이 있었다고 말했지. 그리고 거기서 나와서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러 증기탕에 갔고 아내의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전화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했다는 거야. 자네가 어디로 가는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지. 멕시코로 가는 데 필요한 서류는 갖추고 있었네. 어떻게 가는지도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지. 우리는 친구니까 나는 별생각 없이 자네가 해달라는 대로 했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겠나? 나한테 돈 같은 건 주지 않았어. 자네는 차가 있었지만, 너무 마음이 상해 있어서 혼자 운전할 수는 없었다고 해. 그것도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자네는 감정적인 친구고 전쟁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으니. 자네 차를 가져와서 잠시 맡아둘 수 있도록 어디 차고 같은 데나 처박아놓아야겠군.”

 

그는 옷 속에 손을 넣더니 가죽 열쇠고리를 꺼내서 탁자 너머로 밀어주었다.

 

그가 물었다.

 

“말이 되는 것 같나?”

 

“누가 듣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자넨 입고 있는 옷하고, 장인에게 받은 돈 약간 빼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거야. 라브레아와 파운틴 가 사이에 주차해놓은 멋진 쇳덩어리를 포함해서 아내가 준 건 남겨두고 온 걸세. 어디까지 가든 가능한 한 깨끗하게 떠나고 싶었던 거지. 좋아, 이렇게 입을 맞추도록 하지. 그럼 이제 면도하고 옷 좀 갈아입겠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가, 말로우?”

 

“내가 면도하는 동안 술이나 한잔 마시게.”

 

나는 탁자의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를 그대로 놔둔 채 나갔다. 그는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었고 가벼운 톱코트도 입은 채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좀더 생기가 돌았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면도했다. 침실로 돌아와서 타이를 매고 있는데, 그가 들어와 문간에 섰다.

 

“만약을 대비해서 컵은 씻어놓았네.”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생각을 좀 해봤어. 어쩌면 자네가 경찰한테 전화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럼 직접 하게나. 난 경찰에게 할 말이 없으니까.”

 

“내가 그러길 바라나?”

 

나는 홱 돌아서서 그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이런, 망할!”

 

나는 거의 고함치다시피 말했다.

 

“제발 얌전히 좀 있을 수 없나?”

 

“미안하네.”

 

“물론 미안하겠지. 자네 같은 남자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미안해한단 말이야.”

 

그는 몸을 돌려 복도를 지나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나는 옷을 다 갈아입고 뒷문을 잠갔다. 거실로 돌아와보니 그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옆으로 떨어뜨리고 핏기 없는 얼굴로 피곤에 지쳐 온몸이 늘어진 채 잠들어 있었다. 그는 불쌍해 보였다. 어깨를 건드리자 그는 마치 자기가 있는 곳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 아주 먼 여로인 양 천천히 깨어났다.

 

나는 그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가방은 어떻게 할까? 그 하얀 돼지가죽 가방이 내 옷장 선반 위에 그대로 있네.”

 

“그 가방엔 아무것도 없어.”

 

그는 흥미 없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너무 눈에 띄지.”

 

“짐이 전혀 없으면 더 눈에 띌걸.”

 

나는 침실로 돌아가서 옷장 안에 있는 발판을 딛고 올라가 맨 위 선반에서 하얀 돼지가죽 가방을 꺼냈다.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는 천장 통풍구를 위로 밀어 열고 손을 가능한 한 멀리 뻗어 자동차 열쇠고리를 먼지투성이의 넥타이걸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물건 뒤에 던져놓았다.

 

나는 여행가방을 가지고 내려와서 먼지를 털고 그 안에 몇 가지 물건, 한 번도 입지 않은 잠옷, 치약, 여분의 칫솔, 싸구려 수건 두어 개와 목욕가운, 면 손수건 한 꾸러미, 15센트짜리 면도 크림, 면도날 한 상자를 같이 끼워준 면도기 하나를 넣었다. 모두 새것이었고 표시도 없었으며 튀지 않는 제품들이었다. 그런 이점을 제외하면 그가 사용하던 것들이 훨씬 나았을 터였다. 나는 버번 반 리터를 포장지에 싸서 넣었다. 가방을 잠근 뒤 열쇠는 잠금쇠에 꽂고 현관으로 날라갔다. 그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를 깨우지 않고 문을 연 뒤 가방을 차고로 가져가 컨버터블의 뒷자리에 넣었다. 차를 꺼내고 차고 문을 닫은 뒤 계단을 다시 올라가 그를 깨웠다. 문단속을 마친 후 우리는 집을 떠났다.

 

나는 차를 빨리 몰았지만 단속에 걸릴 만큼 빨리 몰지는 않았다. 우리는 가는 도중 내내 별말 하지 않았다. 중간에 멈춰 식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국경 통과도 별문제 없었다. 나는 티후아나 공항이 있는 바람 부는 바위언덕 위, 사무실 근처에 차를 세웠고 테리가 티켓을 사는 동안 그냥 앉아 있었다. DC-3는 이륙을 준비하는 듯 벌써 프로펠러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회색 유니폼 차림의 키 크고 근사한 조종사는 네 명의 일행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190센티 정도의 키로 총이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바지 입은 여자와 몸집이 자그마한 중년 남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의 키가 너무 커서 중년 남자가 보잘것없이 보였다. 멕시코인이 확실한 사람들도 서너 명 근처에 서 있었다. 그게 승객 전부인 듯싶었다. 탑승구 앞에는 계단이 내려와 있었지만 아무도 서둘러 타려고 하지 않았다. 이윽고 멕시코인 승무원이 계단을 내려와 섰다. 스피커 시설이 없는 듯했다. 멕시코인들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지만 조종사는 여전히 미국인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 옆에는 커다란 패커드가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내려서 차에 붙어 있는 면허증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상관할 바 아닌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머리를 도로 빼자 키 큰 여자가 내 쪽을 쳐다보는 게 보였다.

 

그때 테리가 흙먼지가 이는 자갈길을 가로질러 왔다.

 

“준비가 다 됐네.”

 

그가 말했다.

 

“이제 이별 인사를 해야 할 시점이야.”

 

그는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는 이제 상당히 상태가 좋아 보였으며, 그저 피곤할, 그저 지독히도 피곤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올즈모빌에서 돼지가죽 가방을 꺼내 자갈길 위에 놓았다. 그는 화난 듯 가방을 쳐다보았다.

 

“필요없다고 말했잖나”

 

그는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안에는 근사한 술 반 리터도 들어 있네, 테리. 잠옷 같은 물건들도 좀 넣었고. 모두 표시가 안 나는 것들이야. 필요없으면 맡기거나 버리면 돼.”

 

“필요없다고 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네.”

 

그는 딱딱하게 말했다.

 

“나도 이유가 있어.”

 

그러자 그는 갑자기 미소지었다. 그는 가방을 들더니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내 팔을 꽉 쥐었다.

 

“알았네, 친구. 자네 하라는 대로 하지. 그리고 잊지 말게.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자네 좋을 대로 행동하게. 자넨 나한테 빚진 게 하나도 없어. 우리는 술을 몇 잔 같이 마시며 친하게 지냈고 내가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뿐이야. 자네 커피 깡통 속에 백 달러 다섯 장을 넣어놓았네. 그렇다고 언짢아하지는 마.”

 

“그러지 말지 그랬나.”

 

“난 가진 돈의 반도 쓰지 못할 거야.”

 

“안녕히, 테리.”

 

두 명의 미국인이 계단을 올라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넙적하고 거무스름한 얼굴에 몸집이 땅딸막한 남자가 사무실 건물의 문에서 나와 손을 흔들며 손가락질을 했다.

 

“비행기를 타게.”

 

나는 말했다.

 

“자네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걸세.”

 

그는 바짝 긴장했다. 온몸이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하네.”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만 자네는 잘못 생각하고 있네. 나는 천천히 걸어서 비행기를 탈 거네. 나를 막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

 

그는 걸어갔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사무실 문간에 서 있는 남자는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다지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멕시코인들은 조급해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는 손을 아래로 내밀어 돼지가죽 가방을 두드리며 테리를 보고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옆으로 비켜섰고 테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테리는 입국 수속을 처리하는 세관원들이 대기하던 쪽의 반대편 문으로 나왔다. 그는 여전히 천천히 걸어서 자갈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거기서 멈춰 서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신호를 보내거나 손을 흔들지는 않았다. 나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비행기에 탔고 계단이 접혀 올라갔다.

 

나는 올즈모빌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는 차를 후진해서 돌려서 주차장을 반쯤 가로질렀다. 키가 큰 여자와 작은 남자는 여전히 활주로에 나와 있었다. 여자는 손수건을 꺼내 흔들었다. 비행기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활주로의 끝까지 미끄러져 나갔다. 활주로 맨 끝에서 비행기가 선회하자 엔진은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며 더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앞으로 움직였다.

 

비행기 뒤에서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다. 그런 후에 비행기는 이륙했다. 나는 바람이 불어대는 가운데 비행기가 천천히 떠올라 공활한 푸른 하늘 너머 남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후에 나는 그 자리를 떴다. 국경선을 지키는 보초들은 내 얼굴이 시계바늘만큼의 의미도 없는지 별로 관심 있게 쳐다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