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_good_bye.jpg“나는 이것을 내가 원하던 대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난 미스터리가 공정하고 명료한지 아닌지는 신경 스지 않았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람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기묘하고 타락한 세계, 그리고 정직해지려고 애를 쓰던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어떻게 감상적으로 또는 단순한 바보로 보이게 되는가였습니다.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는데 그것이 계속 모방되고 심지어 표절하는 이까지 있을 때, 마치 나 자신이 나를 흉내 내는 이들을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하지요. 위험은 독자들도 따라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 레이몬드 챈들러, 1952년 《기나긴 이별》 원고를 뉴욕 출판사에 보내며 쓴 편지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추리작가 레이몬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이다. 그는 188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많은 시간을 영국에서 보냈다.

 

1910년대에는 런던의 몇몇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시와 수필을 썼다. 이 당시에 쓴 시와 수필에서는 기사 영웅담과 이상 사회에 대한 동경이 드러나 있어 필립 말로우가 가진 감수성과 강한 정의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직업을 거친 끝에 석유 회사의 부사장까지 올랐으나 음주와 장기결근으로 쫓겨난 그는 1930년대부터 펄프 매거진에 범죄 단편들을 기고하기 시작하여 젊은 시절 고전 영문학에 열정을 바치던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문학인생을 시작한다.

 

1939년 발표한 첫 장편 《빅 슬립》이 큰 성공을 거둔 뒤 1940년 《안녕 내 사랑》, 1942년 《하이 윈도우》, 1943년 《호수의 여인》, 그 후 6년 뒤에 《리틀 시스터》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에는 헐리우드에서 느낀 환멸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954년 후기의 걸작 《기나긴 이별》을 출판한 그는 18세 연상의 사랑하는 아내 시시가 세상을 떠난 뒤 실의에 빠져 알코올에 중독되어 지내다가 195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창조한 필립 말로우는 후대 하드보일드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53년, 《리틀 시스터》의 발표 후 4년 만에 나온 《기나긴 이별》은 챈들러의 진정한 마지막 장편으로 꼽힌다. 헐리우드 시절 시나리오로 썼다가 제작되지 않아 소설로 재구성한 《플레이백》이나 네 챕터 정도만 쓴 미완성작 《푸들 스프링스》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챈들러 작품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챈들러 자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예견했을까. 이 작품은 첫 장편 《빅 슬립》과 일종의 대척점에 서 있다. 두 번째 작품 《안녕, 내 사랑》과도 유사점이 약간 보인다. 말로우가 재벌 노인의 두 딸 - 큰 딸은 냉정하지만 인간적이며 작은딸은 색정광인 - 과 얽혀 큰딸과 감정적 유대를 갖게 된다든지, 사위가 재벌가와 어울리지 않는 성품의 사내로 부자들의 속물근성과 비뚤어진 마음의 희생자가 된다든지 하는 부분은 《빅 슬립》을, 우연히 술집 앞에서 마주친 남자 - 그것도 일종의 패배자 - 와 기묘한 인연과 왠지 모를 호의를 갖게 되어 사건에 휘말리고 옛 사랑의 애증이 피를 부른다든지 또 사건과는 별 관계없는 사기꾼 의사와 충돌한다든지 등의 부분은 《안녕 내 사랑》을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이들 세 작품만 읽어본 국내 독자들은 말로우 시리즈가 다 똑같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고, 《기나긴 이별》만 읽은 독자는 너무 느끼해서 싫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설정과 내용을 만년의 챈들러는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자신의 눈으로 다시 그려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빅 슬립》에 등장하고 그 다음부터는 나오지 않았던, 말로우의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버니 올즈가 오랜만에 나와 인간미 있는 매력을 발산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어쨌든, 《빅 슬립》에서는 삭막한 재벌 집안의 죽어가는 스턴우드 장군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던 인간미 있는 사나이가 행방불명되고 장군이 그를 그리워하여 말로우에게 사건을 의뢰한다는 구도였지만, 여기서는 재벌 노인이 구제불능의 냉혹한 인간이며 그의 사위인 인간미 있는 사나이는 패배자로서 말로우를 찾는다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결국 테리 레녹스는 러스티 리건과 동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패배자이기도 하다. 러스티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테리는 나약하게 휘둘렸다는 데에 차이가 있지만, 만약 이 작품이 《빅 슬립》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은 러스티 리건이라는 존재를 굳이 찾아내어 되살린 이야기라는 가정에서 본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적한 대로 ‘무언가를 절실히 찾지만 찾아낸 그것은 변질되어 있었다’ 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두 작품은 양 끝이 이어진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끝에 가서 말로우가 처음으로 여자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암시적이다. 말로우가 린다와 결혼한다면 결국 테리의 뒤를 따르는 셈이 되니까. 《푸들 스프링스》에서 린다 로링과 필립 말로우가 결혼하고 말로우가 그렇게 부자 아내의 그늘 속에서 자신이 경멸하던 ‘새틴 방석 위의 푸들’ 이 되는 것도 여기서 이미 예견된 결과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본다면 말로우는 변절한 테리를 맹렬히 비난하지만 결국 자신도 다를 바가 없다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이렇게 출발점으로 회귀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지치고 환멸을 느낀, 말 위에서 내려와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디딘 말로우는 《플레이백》과 《푸들 스프링스》에서 평범한 중년 남자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기나긴 이별》에서 우리가 알던 필립 말로우는 이미 죽은 셈이다.

 

썩은 경찰 조직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강직하게 자기 일을 해가는 경찰 버니 올즈는 필립 말로우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인기 하드보일드 캐릭터에도 당당히 오른 바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챈들러의 초기 단편 《Finger Man》에도 올즈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초기 챈들러의 탐정 카마디가 도움을 얻는 지방 검사 휘하 수석 수사관으로, 여기서도 올즈는 뚝심 있고 터프한 경찰로 나와 주인공 카마디와 함께 악당에게 총을 발사한다. 그는 ‘중간 체격에 흰 눈썹과 툭 튀어나오고 끝이 갈라진 턱을 가진 금발 남자’ 로 묘사된다. 이 단편에는 필립 말로우가 처음에 살던 아파트 호바트 암스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사소한 거지만, 《하이 윈도우》와 《안녕 내 사랑》에는 유명 인사에 대한 정보를 주는 거티 아보가스트라는 인물도 공통적으로 나온다.

 

여러 연구서에서 필립 말로우는 한 개인이기보다는 일종의 아이콘으로서 논의된다. 그만큼 말로우는 끝없는 내면의 독백과 생생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상화된 인간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헐리우드의 환멸과 긴 공백을 겪은 뒤에 나온 《리틀 시스터》와 이 작품은 뭔가 변화가 감지된다. 두 작품의 연결점은 《리틀 시스터》 해설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리틀 시스터》의 끝에 나오는 지방검사 슈얼 엔디코트는 본 작품에서 변호사로서 말로우와 재회하며 두 작품 모두 ‘더 댄서스’ 라는 레스토랑 겸 바가 등장한다. 아울러 그 이전의 작품들에 대한 회상이 없다는 사실은 전기와 후기의 단절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필립 말로우가 사건에서 만난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한다. 필립 말로우가 터프하고 냉혹하다는 선입견 외에 또 한 가지 잘못된 선입견이 바로 바람둥이라는 것인데, 이전까지의 작품에서 그는 여성과 키스 이상의 행위를 한 적이 없었다. 알몸으로 달려드는 색정광들을 만나서도 매정하게 뿌리치던 그이지만 앤 리오단 외에는 진심으로 만난 여자가 없었다. 그러던 그가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사실도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아일린 웨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온갖 금발에 대한 설명을 들어 무척 호들갑스럽게 그녀의 찬란함을 묘사한다.

 

챈들러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로우가 왜 여자에게 빠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말로우는 문란해짐으로써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섹스에 대해 쓰기 싫다고 말하며 하지만 말로우도 유일하게 《기나긴 이별》에서 여자와 정사를 가지며,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싫긴 했지만 이런 식의 것은 자기로서도 좋다고 대답했다.

 

사실 많은 하드보일드 영웅들 가운데서도 필립 말로우는 유달리 고독한 편이다. 샘 스페이드나 마이크 해머는 매력적이고 반 연인 관계에 있는 비서가 있고, 콘티넨탈 오프는 소속된 회사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며, 루 아처는 결혼한 경력도 있지만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는 동료 탐정도 있다. 스펜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말로우는 늘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체스를 두고 혼잣말을 한다. 버니 올즈가 그래도 친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 관계 외에 만나는 것 같지는 않다. 잠깐 사귀는 것 같던 앤 리오단도 그 다음 사건에서는 그저 회상 속의 여인일 뿐이다. 뭐랄까, 말로우는 타락한 세계에서 홀로 순결을 지키며 싸워야 하는 성스러운 기사, 즉 갤러헤드와 같은 존재였다. 그가 타인들과 감정을 나누고 마음이 흔들리면 그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할까. 그것으로 자신의 단단한 냉소의 갑옷을 유지하여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고 오염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말로우는 그러한 갑옷을 잃어버린다. 처음부터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취객을 지켜보다가 끼어들어 도와준다. 솔직히 말로우는 이때껏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을 권하는 남자였지 말리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파트가 아닌 자신만의 집을 갖고 있다는 것도 뭔가 다르다. 그는 작고 지저분하지만 나름대로의 추억과 긍지가 깃든 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떤 마음에서인지 유칼립투스 숲 근처의 호젓한 집에서 사는 것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표현을 빌면 ‘추악한 얼굴의 천사’ 가 드디어 인간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말로우는 도덕과 정의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아까지 않는 남자이나 그의 노력은 배신당한다. 처음으로 한 인간을 위해 자신의 기사도적 투쟁을 헌신적으로 바쳤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말로우 자신의 신념을 더럽힌 것이다. 결국 말로우의 기사담은 이렇게 씁쓸한 끝을 맺는다. 말로우는 이제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기사가 될 수 없다. 그는 이상과 냉소라는 갑옷과 칼을 버린 것이다. 이후의 탐정들도 마찬가지로 기사의 갑옷을 걸칠 수 없게 되었다.

 

말로우가 가정을 이루고 사람들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던 챈들러이지만 이 작품에서 말로우는 결혼의 가능성을 비친다. 물론 부정적인 예견을 하고 있지만. 그리고 미완성으로 남긴 《푸들 스프링스》에서는 이 작품의 린다 로링과 마로우가 결혼한다. ‘스펜서 시리즈’ 로 유명한 로버트 B. 파커가 챈들러의 유고 원고에 이어 집필하여 완성을 하는데, 여기서 말로우는 나이 들어 부유한 여인과 결혼하여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역시나 권태를 느낀다. 길들여지지 않은 느낌의 말로우가 늙어서 부자 아내와 산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또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챈들러가 자신을 작품에 투영한 것일 수도 있다. 챈들러는 자신보다 18세나 연상인 아내 시시를 깊이 사랑하긴 했지만 마음속에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말로우 시리즈에서 언급되는 결혼치고 행복한 결혼은 없다. 테리 레녹스는 자존심과 교양을 가졌으면서도 인생에 낙오했고 술에 취한 상태로 부유하고 색정광인 여자에게 자신을 팔아버린다. 어쩌면 이것은 챈들러 자신의 모습을 비틀어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말로우가 평소와 달리 레녹스에게 연민을 느끼고 크게 실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이 좀더 고상한 정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돈 때문에 통속소설을 쓰고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도 괴로워하는 작가 로저 웨이드라든가 선량한 신사이지만 어떻게든 작가를 쥐어짜내 책을 팔아야 하는 출판업자 하워드 스펜서 같은 인물들은 챈들러 주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웨이드가 알코올 중독으로 발작을 일으키면서도 꾸준히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모습은 챈들러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1작 《빅 슬립》에서 나왔던 말로우와 올즈는 모두 그때는 젊고 정력적이고 강인한 모습이었지만 그 이후 이 작품에 와서야 비로소 해후한 두 사람은 나이 먹고 치지고 어딘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 《리틀 시스터》까지도 30대이던 말로우가 40줄에 들어섰기 때문일까. 말로우는 전에 하지 않던 행동, 계속 사회와의 관계를 의식한 채 사람들에게 그것을 일깨우려 한다. 친구 때문에 감옥에 갔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말하고 할란 포터라는 권력자와 만났었다는 사실도 상대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한다. 언뜻 다소 치사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레녹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셈이라며 언론에 사건 전모를 공표시키기까지 한다. 이것은 참 낯선 모습이다.

 

챈들러는 유달리 이 작품에서 변질된 꿈과 이별에 대해 반복하여 말한다. 친구와의 이별, 꿈과의 이별, 미워하기도 좋아하기도 어려운 남자와의 이별, 이중성에 시달리는 선량한 출판업자와의 이별,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 경찰과의 이별. 이것이 그의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한 것일까. 어쩌면 그렇게 때문에 다소 말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집어넣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바람에 전체적인 구조가 좀 산만해졌다는 생각이다. 특히 후반부는 정점에 도달한 다음 마련된 단계가 너무 많아 긴장감이 풀어지고 이야기의 과잉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기나긴 이별》은 챈들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초기의 예리함을 잃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아무튼 확실히 이전의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다.

 

재미있는 점 하나는, 중간에 말로우가 일반 의뢰를 맡아 처리하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런 의뢰는 살인 사건이니 갱이니 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먼 사소한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챈들러는 “현실 속 미국의 사립탐정들은 살인 사건을 맡는 일이 없다. 그들은 그저 집 나간 아내 찾고 미행하고 뒷조사를 할 뿐이다” 라고 말했다. 《하이 윈도우》《안녕 내 사랑》《호수의 여인》 등에서도 사실 말로우는 가출한 여자를 찾는 일을 맡아 나서는 것이다. 어쨌든 다른 하드보일드 탐정물에서는 이렇게 일상적인 사건을 처리하는 모습은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고독하게 살인 사건 의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사소한 문제를 들어주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탐정을 보여준다. 물론 의뢰인을 내쫓는다거나 아예 의뢰비를 받지 않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긴 하지만.

 

1951년부터 챈들러는 《아이들밸리의 여름》이라는 제목의 여섯 번째 장편을 쓰기 시작했고 에세이 등 다른 집필활동도 했다. 그와 아내 시시는 50년대 초기부터 온갖 질병 때문에 괴로움을 겪었다. 고질적인 폐병으로 아내 시시가 쇠약해졌고 챈들러는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손톱 끝이 갈라지고 발진이 목과 가슴으로 퍼졌다. 그는 타이핑을 하기 위해 손톱을 붕대로 감아야 했으며 독서하기 위해서는 장갑을 끼어야 했다. 영국에 다녀온 뒤 아내 시시는 건강이 악화되어 54년에 사망했는데, 이때 의사가 시시에게 데메롤을 투입하는 것을 보고 챈들러는 자신이 《기나긴 이별》에서 데메롤을 등장시킨 것을 상기하며 고통스러운 아이러니를 느꼈다. 이후 챈들러는 극도로 침울한 상태에 빠져 술을 지나치게 마셨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욕실에 주저앉아 입에 권총을 물고 쐈으나 발사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한 인터뷰에서, “성공한 자살은 비극이지만 실패한 자살은 광대극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을 오갔으나 몇 가지 법적인 문제를 만나 곤경에 빠졌고 알코올 중독과 과로로 입원도 몇 차례 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명성이 높은 작가였지만 단순히 미스터리 작가로 취급한 미국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그를 진지한 예술가로서 높이 평가했고 이 사실이 그를 무척 기쁘게 했다. 챈들러는 미국인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영국인에 가까웠기 때문에 특히 만년에는 영국에서 살고 싶어했다. 그래서인지 《기나긴 이별》도 53년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고 54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아이들밸리의 여름》은 이제 《기나긴 이별》로 바뀌어 있었다. 이 작품은 기존 작품들보다 더 길고 사회적인 시각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출판업자는 초고를 받고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처음에는 인물들의 이름도 조금 달랐고 세부사항들도 달랐다. 테리는 성불구자이고 캔디와 아일린이 결혼한다는 등의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출판업자는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말로우의 미덕 중 하나가 강인함이었는데 여기서의 말로우는 너무나 유약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보일 정도라고 했다. 챈들러는 충격을 받았다.

 

“나도 말로우의 성격이 바뀐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처럼 된 줄은 몰랐다.”

 

그는 즉시 보냈던 원고들을 회수하여 고쳐썼다. 전기작가 프랭크 맥셰인은 말한다.

 

“그가 《기나긴 이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기나긴 이별》은 출간되자마자 비평과 판매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새로운 경지, 즉 사회적, 정치적, 인종적, 성적, 환경적으로 의식 있는 탐정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챈들러는 이 작품으로 1955년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에드가 상을 받았다.

 

1957년에는 48년에 유니버살 스튜디오를 위해 쓴 시나리오 《플레이백》을 장편소설로 고쳐썼다. 그는 친하게 지낸 작가 이안 플레밍의 007 시리즈 《닥터 노》에 대한 서평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58년 출간된 《플레이백》의 초판은 6000부가 팔렸다. 1959년 그는 자신의 출판 대행업자인 헬가 그린에게 청혼을 했고 헬가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약혼은 얼마 가지 못했다. 「예술 형식으로서의 탐정소설」 이라는 에세이도 출간하고 같은 해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의 회장직도 받아들였으나 폐렴에 걸려 입원한 뒤 사흘 만에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국과 미국을 똑같이 사랑하고 오갔던 그는 양쪽에서 모두 이방인 같은 생활을 하고 결국 캘리포니아에서 죽었던 것이다.

 

말로우 시리즈에서 이 작품의 위상이 어떤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에 매료된 것이 사실이다.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의 《블랙 아이스》에서도 이 작품의 한 구절을 언급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인 여성이 LA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기나긴 이별》을 과제로 내준다며 “스스로 만든 함정처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 는 구절과, 바로 앞에 나오는 “내가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것은 뚱뚱한 우체부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다” 를 인용한다. 그런데 좀 엉뚱하게도 ‘White Night’ 을 코넬리는 ‘White Knight’ 으로 잘못 인용하고 있다. 어쩌면 필립 말로우의 기사담적 성격을 염두에 두다가 저지른 실수일지도 모른다. 코넬리는 다른 작품의 후기에도 챈들러의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코넬리의 작품성향은 챈들러와는 차이가 있어 그럴 것 같지 않지만 그는 챈들러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노라고 몇 차례 고백했다.

 

또한 이미 《빅 슬립》 해설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의 대표 장편 《댄스 댄스 댄스》의 일부는 《기나긴 이별》의 완벽한 오마주이다. 말로우가 아내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친구 테리 레녹스를 도망치게 도와주고 경찰에 잡혀가 고생을 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장면이 재현되고 있다. 하루키는 스스로 《기나긴 이별》을 수십 번 읽었노라고 술회했고, 《해변의 카프카》 발표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다시 셀 수 없을 정도로 읽었다고 말했다. 하루키가 ‘챈들러는 나의 영웅이었다’ 라고 말했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선전을 위한 과장이라고 선입견을 가지곤 하지만 이것은 하루키의 인터뷰에 나오는 표현이다. “레이몬드 챈들러는 1960년대 내 영웅이었습니다. 《기나긴 이별》 같은 책은 열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나는 그의 소설의 인물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있고 매우 독립적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외롭긴 하지만 고상한 삶을 찾습니다.”

 

심지어 마틴 스콜세지조차 <비열한 거리>(1973)는 레이몬드 챈들러가 남긴 단 한 줄의 문장에서 나온 영화라고 고백했을 정도이다.

 

“남자라면 이 비열한 거리를 통과하여 걸어가야 한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셜록 홈즈가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됐듯이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도 패러디와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패러디의 대상은 말로우보다는 챈들러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필립 말로우의 모습은 무수한 후에 후배 탐정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7년, 하이버 콘트리스는 《인생의 10퍼센트》라는 장편을 썼으며, 여기서 말로우는 챈들러의 출판 대행업자의 살인범을 잡으러 돌아와 작가 챈들러와 함께 수사를 한다. 이 제목은 원래 챈들러가 출판업자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에세이의 제목이었다. 게이로드 라슨은 《A Paramount Kill》이라는 작품에서 아예 헐리우드 시절의 챈들러를 탐정으로 등장시킨다. 그런가 하면 윌리암 놀란은 대실 해미트, 레이몬드 챈들러, 얼 스탠리 가드너가 삼인조 탐정으로 나오는 시리즈를 쓴 바도 있다.

 

파커는 《푸들 스프링스》로 인해 많은 독자와 작가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나 그에도 굴하지 않고 1991년 《빅 슬립》의 속편격인 《Percbance to Dream》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는 말로우가 요양소에서 사라진 카멘 스턴우드를 찾아나선다. 1988년 챈들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추모 단편집에서 많은 작가들이 필립 말로우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을 썼지만 비난은 오로지 파커에게만 집중되었다. 파커의 작품이 평소 더 폭력적이면서 좀더 잘난 척하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98년 라졸라 페스티벌에서는 ‘국제 레이몬드 챈들러 모방 작품 경연대회’ 가 열렸다.

 

《플레이백(1958)》

 

필립 말로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그다지 대접을 못 받는 작품이다. 헐리우드 시절 영화 시나리오로 썼다가 영화화되지 못하고 나중에 소설로 고쳐쓴 것인데, 그 양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짧은 편이고 문체도 매우 단순하며 말로도 뭔가 좀 덜 우아해 보인다고 할까, 여러 모로 챈들러를 경애하던 독자와 평론가를 실망시켰다. 북하우스의 이번 필립 말로우 시리즈에서도 제외되어 앞으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기나긴 이별》의 묵직한 쓸쓸함 뒤에 이 작품을 접하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필립 말로우는 이른 아침 유력한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갑작스럽게 기차를 타고 가는 한 여성을 미행하라는 의뢰를 받는다. 영문도 모른 채 여자를 미행하던 말로우는 그녀가 어떤 남자에게 협박당하고 있음을 눈치채는데, 휴양지까지 따라가서 남자와의 대화를 엿들은 뒤 여자의 정체와 의뢰인의 의도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자기 말고도 여자와 남자를 뒤쫓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기나긴 이별》에서 중년이 되어 다소 지치고 슬픈 모습을 보여주던 말로우가 여기서는 좀 경박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가볍게 행동한다. 의뢰인의 여비서에게 수작을 부리기도 하고 옆방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청진기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에 실망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어떤 평론가는 챈들러 자신이 《기나긴 이별》에서 말로우가 처음으로 여성과 침대에 들어간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플레이백》에서는 두 번이나 그런 모습을 보여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추리소설 작가로서, 그리고 미국 문단의 일원으로 거장의 반열에 이른 다음 나온 작품이라 더욱 냉담한 반응을 얻은 것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허탈해하는 말로우에게 전화가 온다. 바로 파리에서 걸어온 린다 로링의 전화이다. 린다는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고 1년 반 만에 전화하면서도 자신은 말로우를 잊을 수 없었다며 결혼하자고 거의 사정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로 올 수 있게 비행기표를 보내주겠다고 하자, 말로우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비행기표는 내가 보내겠소. 내 표를 받든지 아니면 오지 말아요’ 라고 다소 마초적인 대답을 한다. 전화를 끊고는 린다 로링의 모습을 그려보며 말로우는 그리움에 잠긴다. 챈들러는 정말로 이상적인 기사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필립 말로우는 계속 그리고자 했던 것일까.

 

《신비의 칵테일 - 김릿》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또 다르다. 그것은 바로 김릿을 사랑받게 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등의, 재즈와 미국 소설 등을 사랑하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김릿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김릿이라고 하면 언제나 《기나긴 이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여기 사람들은 김릿 만드는 법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김릿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라임이나 레몬주스와 진을 섞고 설탕이나 비터를 약간 탄 것에 지나지 않아요. 진짜 김릿은 진 반, 로즈 사(社)의 라임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는 비교도 안 됩니다.” (3장)

 

위의 대사는 칵테일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서점에 가서 칵테일 책을 한 권 꺼내 김릿을 찾아보라. 테리 레녹스의 말이 거의 빠지지 않고 인용된다. 사실 시중의 칵테일 서적은 대부분 일본 것을 그대로 빌려온 것인데 일본에서는 추리소설이 우리나라보다 대중화되어 있고 챈들러도 상당히 유명하므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테리 레녹스가 말하는 ‘진짜 김릿’ 은 사실 신맛이 너무 강해서 마시기가 어렵다. 로즈 사의 라임주스는 칵테일에 쓰는 유명한 재료로 다른 제품과 맛의 차이가 많아 레녹스가 하는 말이 공감이 간다.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인데 필자도 구해서 ‘진짜 김릿’ 을 만들어보니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레녹스가 비판한 비터를 넣은 김릿이 일반적인 형태이고 칵테일 레시피에도 거의 그렇게 나와 있다. 진 말고 보드카로 만들기도 한다. 로렌스 샌더스의 ‘맥널리 시리즈’ 에서 주인공 맥널리도 보드카 김릿을 즐겨 마신다.

 

아마 맛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도 많을 것이다. 챈들러가 묘사한 대로 새콤달콤하면서 강렬한 맛으로, 흔히 칵테일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달착지근한 트로피컬 칵테일과는 다른,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한 술이다.

 

필립 말로우 시리즈는 전편에 걸쳐 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정보를 캐내기 위해 위스키를 제공하는 일조차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술의 의미는 좀 각별하다. 주요 인물인 테리 레녹스나 로저 웨이드나 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들은 제각기 과거의 상처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고 그것을 술로 망각하려 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술은 ‘예고된 자살’ 에 지나지 않는다. 말로우는 술에 취한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맑은 정신의 그들을 보며 저렇게 품위 있고 예리한 사람들이 어째서 술로 자신을 파괴하는지 의아해한다. 술은 그들의 고통의 상징물이다.

 

레녹스가 그토록 애정을 담아 말하는 김릿은 어쩌면 그가 과거에 가졌던 유일한 긍지와 품위의 상징물인지도 모른다. 김릿은 사실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술이다. 말로우는 절대로 달착지근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당연히 ‘하드보일드한 술이다. 하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술이기도 하다. 한번쯤 아직 손님이 들지 않은, 갓 문을 연 바에 들어가 로즈 사의 라임주스로 만든 김릿을 청해보자. 그리고 신비로운 녹색 액체를 감상하며 테리 레녹스와 필립 말로우의 우정을 떠올려보자.’

 

미국영화의 거장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1973년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각본은 1945년판 《빅 슬립》에서 포크너와 공동 각본을 맡았던 리 브래킷이 맡았다. 주연은 엘리어트 굴드로, 국내 팬에겐 다소 생소한 배우이나 히치콕 영화의 리메이크 판 <사라진 여인>의 주인공으로 TV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알트먼은 자신의 전작 <M#>에서 함께 작업한 엘리어트 굴드를 고집했다. 그 전에는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감독을 맡기로 했고 그는 로버트 미첨을 생각했으나 제작자가 바뀌고 감독이 바뀌면서 엘리어트 굴드에게 돌아간 것이다. 제작자인 캐스너는 로스 맥도널드의 《움직이는 표적》을 영화화한 <하퍼>를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빅 슬립>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필립 말로우 영화이지만 비난도 많이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알트먼은 원작을 충실히 읽지 않았고 또 그다지 원작에 따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하드보일드 스토리를 가지고 자기의 영화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원작과 꽤 차이가 있었으며 결말도 완전히 다르다. 챈들러의 팬들은 이 영화의 결말에 상당히 분노했다. 왜냐하면 원작의 중요한 정서를 완전히 반대로 바꿔버렸고 소설에서 구축한 필립 말로우의 모습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테리 레녹스도 예민하고 마음 약한 남자가 아니라 철두철미한 치사한 악당으로 그렸고 필립 말로우는 여기서 살인까지 한다.

 

작품 자체만 가지고 본다면 독특하고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며, 어찌 보면 챈들러의 의도를 나름대로 살린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어둡고 흐릿한 영상은 아름다우며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렇지만 알트먼은 거장으로 꼽히는 감독치고는 기복이 심한 편으로, 이 작품은 부정적인 평가 쪽에 가깝긴 하다. 나중에 자신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60년대 《리틀 시스터》를 영화화한 <말로우>가 1940년대의 말로우를 60년대로 옮겨 오려고 애를 쓴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50년대 초의 말로우를 70년대로 옮기고자 고심한 결과이다. 알트먼은 ‘립 밴 말로우’ 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는 50년대 잠이 들었던 말로우가 70년대 깨어나 혼란스러워하며 누군가를 찾아 방황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에게 말로우는 철저하게 40~50년대의 인물이며 70년대에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말로우는 여기서 필연적으로 패배자이며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혼자 중얼거리고 반문을 한다. 엘리어트 굴드는 <빅 슬립>에서 상황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보가트와 달리 늘어진 긴 얼굴에 깊은 그늘을 깔고 이리저리 얻어맞는 것이다. 심지어 기르던 고양이마저 잃어버린다. 그는 언제나 무슨 일을 당하든 “It's OK with me”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중얼거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에 악당 부하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이름도 없고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그러고 보면 필립 말로우 영화에는 실베스터 스탤론, 이소룡,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는 전설적인 액션스타들이 단역으로 출연했었다.

 

1990년에는 프랑스의 거장 장 뤽 고다르 감독이 이 작품을 재조합하여 완전히 다른 영화 <누벨 바그>를 만들었다. 알랑 드롱이 출연한 이 작품에서 필립 말로우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여성 기업가 엘레나가 술에 만취한 레녹스라는 인물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다시 여러 갈등을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54년 TV에서 요약된 부분이 딕 파웰 주연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라디오 드라마로도 제작이 됐었다.

 

1998년, <푸들 스프링스>가 TV 영화로 제작되었다. 나이 먹은 필립 말로우는 <대부> 등에 나왔던 제임스 칸이 연기했다. 아내 역은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 주인공의 동료 군인 디지로 나왔던 다이나 메이어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