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성
보트를레는 이 첫 승리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레이몽드를 안정시켜 놓고는, 곧 성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르센 뤼팽의 일상 생활에 관해서, 두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뤼팽은 사흘이나 나흘 걸려서 올 뿐인데, 저녁에 자동차로 왔다가 아침 일찍 떠나 버린다는 것이었다. 올 때마다 갇혀 있는 두 사람을 만나 주었는데, 두 사람은 다 그의 태도가 공손하고 상냥했다고 칭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안에 와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뤼팽 외에는 늙은 식모 하나와 파수군 둘밖에 없다고 했다.
보트를레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 놈들만이라도 무시할 건 못돼요. 지금 곧 쳐들어가기만 한다면…”
보트를레는 즉시 자전거를 타고 에귀종 읍으로 달려가 여덟 명의 경관과 반장을 데리고, 아침 8시에 크로장으로 되돌아 왔다.
두 경관은 마차 옆에 남아서 파수를 섰다. 다른 두 명은 샛문 앞을 지키고, 나머지 네 명은 반장의 지휘 아래, 보트를레와 발메라와 함께 성의 정문 쪽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늦어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 농부가 말하기를, 한 대의 자동차가 1시간 전에 성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저택 안을 뒤져 보았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몇 벌의 의복과 내의, 그리고 가구 몇 개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보트를레와 발메라가 그 보다도 놀란 것은, 그 부상자가 사라져 버린 점이었다. 현관의 바닥에는 싸운 흔적 하나 없었고, 한 방울의 핏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요컨대, 뤼팽이 에귀유 성에 들렀다는 물적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에 처녀가 있었던 방의 옆방에, 훌륭한 꽃다발이 대 여섯 개나 놓여 있었고, 거기에 아르센 뤼팽의 명함이 핀으로 꽂혀 있는 것이 발견되지 않았던 들, 보트를레 부자와 발메라, 생 베랑 양의 주장은 사실이었는가를 의심받아도 별 수가 없었으리라.
그 꽃다발은 처녀로부터 무시를 받은 채 시들어 있었다. 그 중의 하나에는, 명함 외에, 레이몽드가 뜯어 보지도 않은 편지 한 통이 붙어 있었다. 그날 오후, 판사가 그 편지를 뜯어 보니, 거기에는 10 페이지에 걸쳐서, 애원과 약속과 협박과 절망, 오컨대, 경멸과 증오밖에는 받아보지 못한 애절한 사랑의 넋두리가 씌어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레이몽드 양, 나는 화요일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잘 생각해 두십시오. 나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결심입니다.’
화요일 저녁, 그것은 바로 보트를레가 생 베랑 양을 구출한 날의 저녁이었다. 생 베랑 양이 풀려났다. 뤼팽이 탐내던 처녀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뤼팽이 사랑을 위해 휴전을 갈망한 나머지 볼모로 골랐던 보트를레의 아버지도 역시 풀려났다.
두 포로가 모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러한 뜻밖의 뉴스에, 온 세상이 놀람과 기쁨으로 끓어 올랐다. 그리고 또 알 수 없었던 에귀유의 비밀도 이제는 발표가 되어, 세계의 구석구석에까지 알려졌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건의 추이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었다. 패배한 모험가를 비웃는 노래가 유행했다. 「뤼팽의 사랑」이니, 「아르센의 흐느낌!」이니, 「소매치기의 한탄!」 이니 하는 노래가 거리에서 일터에서 불리어지고 있었다.
레이몽드는 기자들로부터 쉴 새 없이 질문을 받았으나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거기엔 편지도 있었고, 꽃다발도 가련한 연애도 있지 않았던가!
뤼팽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대신에 보트를레는 영웅이 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예견하고, 모든 것을 밝혀냈다. 생 베랑 양이 판사 앞에서 자기의 납치 사건에 관해서 한 말은, 이 소년이 상상했던 가정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보트를레는, 아버지에게 사봐의 산중으로 돌아가기 전에 몇 달 동안 휴양을 취하도록 권고하고, 아버지를 생 베랑 양과 함께, 제브르 백작 부녀가 겨울철을 지내기 위해 머물고 있던 니스의 근처로 데리고 갔다.
다음 날, 발메라도 자기의 어머니를 이 새로운 친구들의 곁으로 모시고 갔으므로, 제브르 백작의 별장을 중심으로, 조그만 모임이 이루어졌다.
10월 초에, 보트를레는 파리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는 아무 사건도 없이, 조용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체 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뤼팽과의 싸움은 모두 끝나지 않았던가? 이 점에 관해서는, 뤼팽 쪽에서도 깨끗이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날 그의 다른 희생자였던 가니마르와 셜록 홈즈가 세상에 다시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들이 경찰서 앞에서, 묶인 채 자고 있는 것을 넝마주이가 발견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1주일간이나 넋이 완전히 빠져 있다가 정신이 되돌아왔다. 그들은 '제비호'라는 요트에 실려, 아프리카를 돌고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즐거운 여행이었고, 몸도 자유로웠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때때로 뱃사람들은 외국의 항구에서 상륙을 하는데 자기들만은 뱃바닥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파리로 돌아왔을 때는, 아마 며칠 전부터 잠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을 풀어 준 것은, 뤼팽이 졌음을 인정한 것이고, 이제는 싸우지 않음으로써,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그의 패배를 더욱더 두드러지게 해 주었다. 그것은 루이 발메라와 생 베랑 양의 약혼이었다. 이 두 젊은이들은, 같은 생활 환경 속에서 친밀히 지내다 보니까,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발메라는 레이몽드의 어딘지 고독해 보이는 듯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으며, 인생에 상처를 입고 애정을 갈망하고 있던 레이몽드는, 자기를 살려 내는 데 그렇듯 용감했던 사나이의 힘에 감동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좀 걱정을 하면서, 결혼식날을 기다렸다. 뤼팽이 다시 공격해 오려고 하지 않을까? 자기가 사랑하던 여자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데도 가만히 있을까?
그러나 결혼식은 예정된 날, 제 시간에 치뤄졌고, 레이몽드 드 생베랑 양은 루이 발메라 부인이 되었던 것이다. 운명마저도 보트를레의 편이 되어, 그의 승리를 굳건히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의 팬들 사이에, 보트를레의 승리와 뤼팽의 패배를 축하하는 큰 잔치를 베풀자는 의견이 나왔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으므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보름 동안에, 300명이나 찬성자가 모였다. 파리의 모든 중.고등 학교의 졸업반마다 두 명씩에게 초대장이 보내졌다. 신문에서도 크게 떠들어 댔다. 축하회는 매우 성대했다.
그러나 이 축하회에서, 보트를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겸손했다. 그리고 어떤 명탐정보다도 더 훌륭하다는 극도의 찬사를 받고 그는 매우 기뻤으나, 약간은 어리둥절하고 거북스러웠다. 그의 기분이 그렇다는 말을 간단히 말하자, 사람들은 모두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러자 또 그는 어린애 같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자기의 기쁜 마음을 솔직히 말했다. 사실, 아무리 그가 이성적이고 자제심이 강하다 하더라도, 그는 이 몇분 간이야 말로 정말 잊을 수 없는 황홀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장송 고등학교의 학우들에게, 특별히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온 발메라에게, 제브르 백작에게,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가 인사말을 끝마치고, 모두들 축배를 들고 있을 때, 홀 끝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보니, 어떤 사람이 신문을 흔들면서 몸짓을 하고 있었다. 식탁의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으며, 신문은 이손 저손으로 건너가고, 손님 하나가 펼쳐진 신문을 훑어볼 때마다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읽어요, 어서 읽어요.” 하고 맞은 편 사람들이 외쳤다.
보트를레의 아버지가 식탁에서 일어나, 신문을 받아다가 아들에게 주었다.
“읽어요. 읽어요!”
사람들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보트를레는 일어서서, 푸른 연필로 줄쳐진 대목을 발견하고, 그 기사를 읽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는 읽어감에 따라 차츰차츰 놀라는 목소리로 변해 갔다. 이 놀라운 폭로 기사는, 이제까지의 그의 노력을 모조리 수포로 돌려 버리고, 에귀유 크뢰즈에 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뒤집어엎어 버림으로써, 아르센 뤼팽에 대한 그의 싸움이 헛됨을 새삼 알려주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