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성
보트를레는 당장에 결심했다. ‘이번에는 나 혼자서 행동하리라!’ 고. 경찰에 알리면, 발은 더뎌지고 비밀은 새어나가며, 그러는 사이에 뤼팽은 반드시 눈치를 채고 유유히 달아나 버리리라.
이튿날 아침 8시에, 그는 짐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묵고 있던 퀴종 근처의 주막집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맨 먼저 눈에 뜨인 덤불 속으로 들어가, 농부의 옷을 벗고 전처럼 영국인 화가로 변장했다. 그러고는, 이 고장에서는 가장 큰 읍인 에귀종의 공증인을 찾아갔다.
그는 공증인에게, 이 고장이 마음에 들어 적당한 집이 있으면 부모님과 함께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증인은 몇 군데의 집을 알려 주었다. 보트를레는, 에귀유 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넌지시 말을 던져 보았다.
“글쎄요, 하지만 에귀유 성은, 5년 전부터 우리 집 손님의 것으로 돼 있는데, 팔 집이 아닙니다.”
“그럼, 그 사람이 살고 있겠군요?”
“그 사람이라기보다 그 사람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성이 좀 음산해서 마음에 안 든다며 작년에 떠나버렸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안 사나요?”
“아니요. 이탈리아 사람 한 분이, 여름철에만 세 들어 살고 있는데, 안프레디 남작이라는 분입니다.”
“그래요? 안프레디 남작이라면, 아직 젊은 편이고 점잖게 생긴 분이죠?”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남작이 손님과 직접 계약을 했거든요. 그것도 계약서를 주고 받은 것이 아니고, 편지만으로 그렇게 정해 버렸대요.”
“하지만 남작을 알고는 계시겠죠?”
“아니요, 성에서 통 나오질 않아서… 더러 나온다 하더라도, 자동차로 밤중에만 나오는 모양이니 말입니다. 장은 늙은 식모가 보고 있는데, 그 여자도 통 말을 않는답니다. 참 이상한 사람들예요…”
“댁의 손님은 그 성을 팔지 않을까요?”
“안 팔 겁니다.”
“그 분의 성함이 뭡니까?”
“루이 발메라라는 분인데, 주소는 몽 타보르 거리 34번지입니다.”
보트를레는 가까운 역으로 가서 파리행 기차를 탔다.
다음 날, 세 번이나 헛걸음을 친 뒤에야 겨우 루이 발메라 씨를 만날 수 있었다. 30세쯤 된, 솔직하고 호감이 가는 사나이였다. 보트를레는 굳이 돌려 말할 필요도 없을 듯 싶어 솔직히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틀림없이 아버지는 그 에귀유 성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희생자들도 같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집에 전세 들어 있는 안프레디 남작에 관해서 알고 계신 바를 좀 알아보려고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나도 잘은 모릅니다만, 작년 겨울에 몬테카를로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 때 우연히 내가 성의 임자라는 걸 알아 가지고, 프랑스에서 여름철을 지내고 싶으니 성을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아직 젊은 사람이죠?”
“그렇습니다. 눈이 날카롭고 머리는 금발이고.”
“수염은요?”
“끝이 둘로 갈라져 있더군요. 그리고 어딘지 영국 목사처럼 생겼습니다.”
“그 놈이예요. 바로 그 놈이예요!” 하고 보트를레는 중얼거렸다.
“아니! 그 놈이라니요?”
“댁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은 아르센 뤼팽임에 틀림없습니다.”
루이 발메라는 이 말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뤼팽의 모험도 보트를레와의 싸움의 결과도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손을 비비면서 기뻐했다.
“이젠 에귀유 성도 유명해지겠구나. 빨리 팔아 치워 버리려고 했는데. 이젠 됐어. 다만…”
“다만…?”
“다만 신중히 행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상대방이 뤼팽이고 보면…”
보트를레는 자기의 계획을 말했다. 밤중에 혼자 담을 뛰어넘겠다는 것이었다. 루이 발메라는 곧 그의 말을 막았다.
“그렇게 높은 담은 쉽사리 뛰어넘지 못할 겁니다. 설령 뛰어넘었다 하더라고, 저의 어머니께서 기르시던 두 마리의 사나운 개가 아직도 성 안에 있으니까요.”
“그까짓 것들! 독만두라도 먹이죠, 뭐.”
“좋겠죠! 하지만 개는 그렇다 치고, 그 다음에 건물 안엔 어떻게 들어가시렵니까? 문은 튼튼하고, 창에는 창살이 달려 있어요. 그뿐인가요, 들어갔더라도 누가 안내를 합니까? 방이 80개나 있는데.”
“하지만 3층의, 창이 둘 달린 방인 걸요.”
“오, 그것이라면 알아요. 등나무 방이라고 불리는 방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찾아 내겠어요? 계단이 세 개나 있는데다가 복도가 얼마나 복잡하다고요. 지금 아무리 설명해 드려도 소용 없을 겁니다.”
“그럼, 같이 가 주실 수는 없을까요?” 하고, 보트를레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 돼요. 어머니와 프랑스 남쪽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거든요.”
보트를레는 여관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막 떠나려고 했을 때, 뜻밖에 발메라 씨가 찾아왔다.
“내가 같이 가 드릴까요?”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럼 같이 가십시다. 이런 모험은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자, 이게 내가 협력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면서 발메라는 빨갛게 녹이 슨 커다란 열쇠를 보트를레에게 내주었다.
“이 열시로 열 수 있는 문은?” 하고 보트를레는 물었다.
“성벽에 오랫동안 버려 둔 채로 있는 비밀의 샛문 열쇠요. 그건 세 들어 가는 사람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답니다. 들판 쪽 숲 기슭에 뚫려 있어요.”
그러자 보트를레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놈들은 그 비밀 문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따라가던 그 사내가 정원으로 들어간 건, 틀림없이 그 문으로 였어요. 어쨌든 이번 싸움만은 우리가 이길 겁니다. 물론 섣불리 굴어선 안 되겠지만요!”
그로부터 이틀 후, 여윈 말이 끄는 떠돌이 마차 한 대가 크로장에 도착했다.
마부는 마차를 마을 변두리에 있는 외딴 헛간에 넣어 두는 것을 허락받았다. 마부는 발메라였다. 그 밖에 세 청년이 버드나무 가지로 의자를 엮고 있었는데, 그들은 보트를레와 장송 고등 학교에 다니는 그의 두 친구였다.
그들은 달빛 없는 밤을 기다려, 따로따로 정원 근처를 얼쩡거리면서, 거기서 사흘을 묵었다. 그 동안 보트를레는 한번 성벽의 샛문을 보러 갔다. 그것은 가시 덤불에 가려져 있었고, 성벽의 돌 무늬와 뒤섞여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나흘 째 저녁에야, 하늘에 커다란 검은 구름이 끼었으므로, 모두들 사정을 살피러 가기로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