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보트를레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딴 사람으로 변장하여, 샤토루에 도착했다. 큼직큼직한 바둑판 무늬의 밤색 양복에 짧은 바지를 입고, 기다란 털양말에 여행용 모자를 쓴데다 얼굴은 빨갛게 칠하고 갈색 수염을 달고 있는 품이 영락없이 30세 쯤 되어 보이는 영국인 같았다.

 

샤토루에서 알아본 결과, 보트를레의 아버지가 그 부근에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는 희망에 부풀어 2주일간이나 찾아 다녔다. 그러나 아무런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차츰 자신을 잃어 갔다. 그래도 실망을 안은 채, 며칠을 더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을 통해 제브르 백작 부녀가 앙브뤼메지를 떠나 니스 근처로 이사갔다는 소식을 알았다. 그리고 하알링턴씨가 풀려 났다는 것도 알았다. 아르센 뤼팽의 말대로, 그의 무고함이 밝혀졌던 것이다.

 

보트를레는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아무 보람도 없이, 마침내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월요일 아침, 그는 파리에서 되돌려 보내진, 우표도 붙어 있지 않은 편지 한 통을 받고 매우 놀랐다. 봉투에 적힌 것은 아버지가 쓴 글씨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손이 떨려서, 한참 동안, 감히 뜯어 보지도 못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이것은 저 악독한 적이 꾸며놓은 함정이 아닐까?

 

이윽고 보트를레는 뜯어 보았다. 그것은 확실히 아버지께서 손수 쓴 아버지의 편지였다. 그는 읽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편지가 네 손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납치된 날 밤은, 밤새도록 자동차에 실려간 뒤, 아침에 마차로 옮겨졌다.

 

내 눈은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내가 갇혀 있는 성은 건축과 정원의 식물로 판단하건대, 프랑스의 중부 지방에 있음에 틀림없다. 내가 들어 있는 방은 3층에 있고 창이 두 개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등나무 덩굴로 거의 막혀 있다. 오후엔 때때로 정원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으나, 감시는 엄중하다. 나는 요행을 바라고 이 편지를 써서 돌에 묶어 놓는다. 언젠가는 이것을 성벽 밖으로 던질 수 있겠지. 그러면 어느 농부가 주워 갈지도 모른다. 걱정하지는 말아라. 대우는 잘 해주고 있으니까. 너를 사랑하고 있는 이 늙은 아비는, 네가 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괴롭구나. 보트를레.’

 

보트를레는 곧 우체국 스탬프를 보았다. 퀴종(앵드르도)이라고 찍혀 있었다. 앵드로도라면, 몇 주일 전부터 샅샅이 뒤지고 다녔던 곳이 아닌가! 그는 늘 지니고 다니던 소형 안내서를 들여다 보았다. 퀴종이란 마을은 에귀종에 있다. 거기도 지나갔던 곳이다.

 

그는 영국인의 변장을 집어치웠다. 이 고장에서는 이미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농부 차림을 하고 퀴종으로 떠났다. 그 곳은 조그마한 마을이었으므로, 편지를 부쳐 준 사람을 쉽사리 찾아 냈다.

 

“지난 수요일에 부친 편지 말인가…?” 하고 촌장은 말하면서, 친절히 상의에 응해 주었다.

 

“토요일 아침에, 칼을 가는 샤렐 영감을 길에서 만났더니, ‘촌장님, 우표가 없는 편지도 들어가나요?’ 하고 묻기에, ‘그럼, 들어가고 말고! 다만, 받아보는 쪽에서 돈은 치러야지.’ 라고 대답해줬어.”

 

“어디서 오나요, 그 샤렐 영감님은?”

 

“프레슬란에서.”

 

“그럼, 그 편지는 거기서 오다가 주웠겠군요.”

 

“그렇겠지.”

 

다음 금요일, 프레슬린에서 장이 서는 날, 보트를레가 장터의 주막집에서 점심을 먹고 막 나오려니까, 샤렐 영감이 손수레를 밀면서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곧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의 뒤를 밟았다.

 

샤렐 영감은 도중에 두 군데서 걸음을 멈추고, 오랜 시간 동안 수십 개의 칼을 갈았다. 그러고는 크로쟝과 에귀종 쪽으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트를레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5분도 채 못 걸어가서, 영감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 자기 혼자만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사나이가 걸어가는데, 샤렐 영감이 걸음을 멈추면 그도 서고, 다시 떠나면 그도 걷는 것이었다.

 

‘영감을 감시하고 있구나. 영감이 편지를 주운 걸 눈치채고, 영감이 담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지 어쩌는지 알아보려는 것이겠지.’ 하고 보트를레는 생각했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 성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고장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하여, 크로장에 도착했다. 거기서 샤렐 영감은 한 시간 쯤 쉬었다. 그런 뒤에 그는 내를 건넜다.

 

그런데 이때, 보트를레가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그 알 수 없는 사나이가 내를 건너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나이는 영감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더니, 보이지 않게 되자, 들판 가운데로 통하고 있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어떻게 한담?’

 

보트를레는 어느 쪽을 따라갈까 한참 망설이다가, 딱 마음을 정하고, 그 알 수 없는 사나이의 뒤를 바짝 따르기 시작했다.

 

‘저 놈은, 샤렐 영감이 곧장 가 버린 것을 보고 안심한 게로구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성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하고 보트를레는 생각했다.

 

그 사나이는 개천 위에 솟아 있는 어두컴컴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뒤에 다시 밝은 오솔길로 나왔다. 보트를레도 숲에서 나왔으나, 그 사나이가 보이지 않아 깜짝 놀랐다.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하고는, 얼른 뒷걸음질쳐서 방금 나왔던 숲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오른쪽에 높다란 성벽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기다! 저기다! 저 성벽 안에 아버지께서 갇혀 계신 거다! 뤼팽이 희생자들을 가둬 두고 있는 비밀의 장소는 드디어 발견된 것이다!’

 

그는 천천히, 거의 기다시피하여,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성벽은 언덕보다도 더 높았다. 그런, 그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저택의 지붕을 볼 수 있었다.

 

이 지붕에는 끝이 뾰족한 높은 탑이 솟아 있고, 찹의 주위에는 가느다란 종루가 뺑 둘러서 있었다.

 

보트를레는, 이 날은 그만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깊이 생각하여 작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뤼팽을 여기까지 쫓아온 이상, 싸우는 시간과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렸다고 생각하고, 그는 그 곳을 떠났다.

 

다리 옆에서 그는, 우유를 가득 담은 통을 메고 가는 두 여인을 만나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저 숲 뒤에 있는 성은 뭐라고 부릅니까?”

 

“저건 에귀유의 성이라고 해요.”

 

그저 무심코 물어 봤던 것인데, 그런 대답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에귀유 성이라고요! 아, 그래요!…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요? 앵드르 도인가요?”

 

“아녜요. 앵드르 도는 개천 저쪽이예요… 여기는 크뢰즈랍니다.”

 

보트를레는 눈이 아찔했다. 에귀유 성! 크뢰즈 도! 에귀유 크뢰즈! 그 종이 조각의 열쇠다! 이번에야 말로, 틀림없이 이기리라…

 

그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여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걷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