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그랑 주르날」 신문의 제 1면에는 다음과 같이 보트를레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앙브뤼메지 비극의 진상

나는 이 글에서 두 가지의 문제를 해명함으로써, 사건 전체를 설명하려고 한다. 다음에 말하는 사실들 중의 어떤 것은 증명된 것이 아니고, 나의 가정으로 메워져 있는데, 이러한 가정도 사실은 엄밀한 확실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첫째의 수수께끼에 관해서 말하겠다.

 

즉, 치명상을 입었다고 볼 수 있는 뤼팽이 40일간이나, 캄캄한 굴 속에서 구완도 받지 않고, 약과 먹을 것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이다. 사건의 시초로 돌아가자. 4월 23일 목요일 오전 4시, 아르센 뤼팽은 대담하기 짝이 없는 강도질을 하다가 들켜 폐허쪽이 길로 달아나던 중,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이끌고 가다가 다시 일어났다. 거기에는 그가 우연히 발간한 지하실이 있으니, 거기에 숨을 수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리로 다가갔다. 몇 미터밖에 안 남았을 때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기진맥진한 그는 단념했다. 적이 왔다. 그것은 레이몽드 드 생 베랑 양이었다. 이것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처녀의 발 아래에는 죽어가는 부상자가 있다. 그는 2분 후에는 체포되리라. 그런데, 이 사나이는 그 여자가 쏜 총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 여자는 그를 수사관의 손에 넘길 것인가? 만약에 그가 장 다발을 죽였다면, 그렇지, 그 여자는 그를 운명에 맡겼으리라. 그러나 그는, 다발이 제브르 백작의 정당 방위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얼른 말했던 것이다. 그 여자는 그의 말을 곧이들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했을까?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다. 여자는 자기가 상처를 입힌 사나이를 수사관의 손에 넘길 것인가?

 

여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억제할 수 없는 측은한 마음에서, 처녀는 그를 도왔다. 그 여자는 뤼팽이 몸짓으로 시키는 대로, 핏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기의 손수건으로 상처를 동여맸다. 그러고는 뤼팽이 내주는 열쇠로 예배당의 문을 열었다. 그는 처녀의 부축을 받아 들어갔고, 그 여자는 다시 문을 잠그고 떠났다.

 

만약, 이 때에 예배당을 뒤졌더라면, 뤼팽은 미처 기운을 회복할 겨를이 없었으므로, 돌을 떠들고 지하실의 계단을 내려가 자취를 감추지 못하고 붙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예배당을 뒤진 것은 6시간 후였으며, 그것도 건성이었을 뿐이다. 이리하여 뤼팽은 목숨을 건졌는데, 그것은 누구에 의해서였던 것인가? 하마터면 자기를 죽일 뻔했던 여성에 의해서였던 것이다. 그 후부터, 생 베랑 양은 본의든 아니든 간에, 그의 공범자가 된 것이다.

 

이제는 그를 경찰에 넘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간호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지 않았다간 부상자는, 자신이 도와서 숨겨 준 은신처에서 죽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앞을 내다보고, 모든 꾀를 다 썼다. 판사에게 아르센 뤼팽의 생김새를 거짓으로 말한 것도 바로 그 여자다. (이 점에 관해서는 두 사촌형제 간의 의견이 서로 어긋났던 일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뤼팽의 공범자가 운전사로 변장하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운전사에게 알린 것도 그 여자다. 가죽 모자를 바꿔친 것도, 그 여자를 협박하는 편지를 쓰게 한 것도 그 여자다. 그렇게 해 놓으면 아무도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판사에게 내 생각을 말하려고 했을 때, 전날 샛문 바깥길에서 나를 보았다고 말하며, 피욜 씨에게 나를 의심하게 만들어 내 입을 다물게 한 것도 그 여자다. 그것은 확실히 위험한 술책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주의를 불러 일으켜, 거짓 고발로 나를 괴롭힌 그 여자에 대해서 경계심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유효한 술책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시간을 벌 수가 있었고, 내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으니까. 이리하여 그 여자는 40일 동안, 뤼팽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약을 주고, 그를 간호하여 완쾌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첫째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아르센 뤼팽은 첫째는 들키지 않기 위해, 다음엔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구원을 자기의 곁에서, 바로 저택 안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지금 뤼팽은 살아있다. 그래서 둘째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것이 앙브뤼메지의 제 2의 비극에 해당하는 것이다. 뤼팽은 살아나서 자유로운 몸이 되고, 또 다시 일당의 두목으로 전과 같이 실권을 쥐게 되었는데, 이러한 그가 어찌하여 경찰과 세상에 대해서 자기가 죽은 것으로 믿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가? 나는 그의 그러한 노력과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생 베랑 양이 굉장한 미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당연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뤼팽은 40일 동안 이 아름다운 처녀를 대할 수 있었는데, 그 여자가 옆에 없을 때에는 있어주기를 바라고, 옆에 있을 때에는 그 매력과 아리따움에 괴로워하고, 마침내는 자기를 돌봐 주는 여인에게 반해버렸던 것이다. 감사는 사랑으로 변하고, 찬미는 정열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 여자는 구원인 동시에, 그의 눈에 즐거움이었고, 외로운 때의 꿈이었고, 그의 빛이요 희망이었으며, 그의 생명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생 베랑 양은 뤼팽의 사랑에는 무관심했으므로, 그를 찾아갈 필요가 적어짐에 따라, 점점 찾아가는 일이 뜸해지다가, 그가 다 낫자 발길을 끊어 버린다. 그러자 그는 절망하고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무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은신처에서 나와 습격을 준비하고, 6월6일 토요일, 일당의 도움을 받아 처녀를 납치한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이 납치 사건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만 한다.

 

수사도, 추측도, 희망조차 완전히 막아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 베랑 양을 죽은 것으로 믿게 해야만 한다. 살인을 가장하고, 수사에 대처해서 증거를 만들어 둔다. 그러면 범행은 확실해질 테니까. 게다가 이 범행은, 공범자가 예고했던 대로, 두목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서 실행된 것처럼 꾸몄으니, 이 얼마나 교묘한 생각인가! - 이것은 과연, 두목의 죽음을 믿게 하는 실마리로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믿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확증을 주어야 한다. 뤼팽은 내가 참견할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곧 예배당의 속임수를 알아채리라. 그리고 지하실을 발견하리라. 그런데 지하실이 비어 있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리라. 지하실이 비어 있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생 베랑 양의 죽음은, 바닷물이 그 여자의 시체를 밀어 올리지 않는다면, 결정적인 것이 못되리라. 바닷물이 생 베랑 양의 시체를 밀어 올린 것처럼 하자!

 

이 두 가지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 뤼팽 이외의 사람에게는, 그러나 뤼팽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그가 예측한 것처럼, 나는 예배당의 속임수를 알아채고, 지하실을 발견하고, 뤼팽이 숨어 있었던 지하실 속으로 내려갔다. 그의 시체가 거기에 있었다. 뤼팽의 죽음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순간도 그런 추측은 인정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곡괭이로 움직여진 돌덩이가 슬쩍 닿기만 해도 떨어져서, 가짜 뤼팽(시체)의 머리를 곤죽으로 만들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게 하려고 거기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곧 알아챘다. 또 하나의 발견이 있었다. 그 후 반 시간이 지나서, 생 베랑 양의 시체가 디에프의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나는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이 처녀의 것과 비슷한 팔찌를 끼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생 베랑 양의 시체라고 믿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시체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 때 나는 생각나는 것이 있었고, 또 이내 알아챘다. 며칠 전에 나는 디에프의 「라 비지」 신문에서, 앙베르뫼에 묵고 있던 젊은 미국인 부부가 음독자살을 했는데, 바로 그 날 밤에 그들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앙베르뫼로 달려갔다. 그 이야기는 사실이었으나, 시체가 없어졌다는 점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자살자의 형제들이 시체를 찾으러 와서, 검시가 끝난 뒤에 운반해 갔기 때문이었다. 이 형제들이라는 자들이 아르센 뤼팽과 그 일당이었음을 의심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증거는 나온 셈이다. 우리는 아르센 뤼팽이 처녀를 죽인 것으로 가장하고, 자기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세상에 믿게 하려고 한 이류를 알고 있다. 그는 사랑을 하고 있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어떠한 일도 꺼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와 생 베랑 양의 역할을 연출시키기 위해, 두 시체를 훔친다는 믿을 수 없는 일까지도 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가 숨기려 하고 있는 진상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무도? 아니다… 뤼팽은, 적어도 세 사람만은 좀 의심을 품을지도 모르리라고 생각했다. 즉, 가니마르와 셜록 홈즈와 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가니마르를 납치했다. 셜록 홈즈도 납치했다. 그리고 브레두를 시켜 나를 칼로 찔렀다.

 

다만, 애매한 점이 한 가지 남아 있다. 왜 뤼팽은, 내게서 에귀유 크뢰즈의 종이 조각을 빼앗으려고 그렇게도 기를 썼던 것인가? 설마, 그것을 되찾아 가기만 하면, 다섯 줄로 되어 있는 그 글을 나의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그 글의 내용보다도 그 종이 조각 자체나 그 밖의 무슨 실마리가 나에게 어떤 정보를 줄까봐 염려가 되었던 것일까?

 

그야 어쨌든, 앙브뤼메지 사건의 진상은 이상과 같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 설명과 내 자신의 조사 속에는 가정이 상당한 구실을 하고 있다. 뤼팽과 싸우는 경우, 증거와 사실만을 기다린다면,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뤼팽이 준비해 놓은,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론으로 유도되는, 그런 증거와 사실을 발견하게 될 우려가 많은 것이다.

 

사실들이 모두 밝혀지는 날에는, 나의 가정은 모든 점에서 확증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 바이다.

 

이리하여 보트를레는, 한때 아르센 뤼팽에게 정복당하고, 아버지의 납치에 당황하여 패배한 것으로 체념했으나, 결국은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진상은 너무나도 희한하고 기기묘묘했으며, 그가 할 수 있었던 증명은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명확했으므로, 그는 진상을 그릇 전하기를 용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온 세상이 그의 진상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했던 것이다. 그의 기사가 발표된 바로 그 날 저녁에, 여러 신문들은 보트를레의 아버지의 납치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다. 보트를레 자신은, 3시에 세르부르에서 보내 온 전보로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