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성
그는 조용히 돌아와서, 그 날 저녁은 바랑즈빌 마을에서 묵고, 이튿날 아침은 국민 학교 선생과 함께 면사무소에서 한 시간 쯤 보냈다. 그런 뒤에 저택으로 돌아오니, 편지 한 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다.
‘두 번째의 경고! 입을 다물고 있거라. 그렇지 않았다간…’
“아뿔싸, 이제 내 몸의 안전을 위해서 좀 조심해야 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놈들의 말대로…” 하고 보트를레는 중얼거렸다.
9시였다. 그는 폐허를 거닐다가, 아케이드 옆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어때, 잘 됐나?”
약속 시간에 피욜 씨가 온 것이다.
“예, 매우 기쁩니다. 판사님.”
“그렇다면?”
“제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겠다 그 말씀입니다. 이런 편지가 오긴 했지만요…”
그는 편지를 피욜 씨에게 보였다.
“이런 제기랄!” 하고, 판사는 외쳤다.
“설마 이러한 것 때문에 자네가 구애를 받지야 않겠지…”
“그럼요, 판사님. 약속을 지키겠다고 얘기했는걸요. 10분도 못 가서 진상이 밝혀질 겁니다. 진상의 일부가…”
“진상의 일부라고?”
“예, 제 생각으론, 뤼팽이 숨은 곳을 찾아 내는 것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밖의 것에 관해서도 곧 알게 될 겁니다.”
“보트를레군, 나는 자네가 하는 일엔 별로 놀라지 않네만, 그래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는지?”
“그야 아무것도 아니죠! 에티엔 보드레, 즉 뤼팽에게 보낸 하알링턴 씨의 편지 속에 내가 늘 수상히 여긴 구절 하나가 있어요. 그건, ‘다른 것도 가능하시면 같이 보내주십시요.’ 라는 구절입니다.”
“그래, 나도 생각 나.”
“이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미술품? 골동품? 이 저택에서 귀중한 것이라곤 루벤스의 그림과 벽 장식 융단밖에 없어요. 보석? 그건 별 것 아니지요. 그럼 무엇이었을까요? 그런데 뤼팽 같은 천재가, 다른 것도 보내겠다고 말해 놓고선, 같이 보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건 물론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뤼팽이 그러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지.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으니까.”
“실패하지 않았어요. 뭔가 없어졌어요.”
“루벤스의 그림이야 없어졌지만…”
“루벤스와 또 다른 것이 없어졌습니다. 루벤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것으로 뭔가를 바꿔치기 한 겁니다. 루벤스보다도 훨씬 더 귀중하고 진귀한 뭣인가를 말입니다.”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안타깝게 그러지 말고 어서…”
두 사람은 폐허를 걸어서 샛문으로 가다가, 예배당 옆에 이르렀다. 보트를레는 걸음을 멈추었다.
“뭔지 알고 싶으세요, 판사님?”
“응, 알고 싶다뿐인가!”
보트를레는 느닷없이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예배당 앞에 세워 놓은 조각상 하나를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아니, 미쳤나!”
피욜 씨는 얼빠진 듯이 부서진 조각상 쪽으로 뛰어가면서 외쳤다.
“미쳤어! 이 성자상은 굉장한 것이었는데…!”
“그럼요, 굉장한 것이고말고요!”
보트를레는 지팡이를 다시 휘둘러, 또 성모상을 쓰러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피욜 씨는 그의 몸을 꼭 붙잡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또다시 동방 박사 상의 모가지 하나가 날아가고, 이어서 아기 예수와 함께 구유가 날아갔다.
“더 계속한다면 쏘겠다!”
어느새 제브르 백작이 달려와 권총을 들고 있었다. 보트를레는 깔깔 웃었다.
“저걸 쏘십시오, 백작님… 저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걸 말입니다.”
성 요한 상이 부서졌다.
“이런!” 하고, 백작은 권총을 겨누면서 외쳤다.
“이런 몹쓸 놈 같으니! 저런 걸작을!”
“가짜예요. 이건, 백작님!”
“뭐! 무슨 소리야?”
백작은 권총을 내리면서 외쳤다.
“가짜에요.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모조품이라구요!”
“아니! 원… 이럴 수가 있나?”
“속이 텅 빈 겁니다!”
백작은 몸을 구부리고 깨진 조각물의 파편 하나를 주웠다.
“잘 보십시오. 백작님… 석고입니다! 오래 된 돌처럼 잘 손질되어 녹슨, 축축한 석고란 말입니다. 이게 그 진짜 걸작에서 남아 있는 전부예요… 이것이 그 놈들이 며칠 동안에 해 놓은 작업입니다! 바로 루벤스의 그림을 베껴 그린 샤르프네 씨가 1년 전에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는 이번에는 피욜 씨의 팔을 잡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판사님? 훌륭합니까? 거창합니까? 예배당을 도둑맞다니! 조각품들은 송두리째 없어지고, 회반죽 인형으로 바뀌다니! 참으로 비상한 일이 아닙니까, 판사님! 정말 천재가 아닙니까, 이 사나이는!”
“자네는 흥분하고 있군, 보트를레군.”
“흥분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런 인물이 하는 짓이라면 무엇이고 감탄할 만하지요. 그 사나이는 모든 것 위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도둑질 속에는 풍부한 구상이 있고, 능력과 권위와 절묘함이 있어, 몸이 오싹 할 지경입니다.”
“그가 죽어서 안됐군.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노틀담 성당의 탑까지도 훔쳐 갔을 텐데…”
보트를레는 어깨를 으쓱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죽었더라도, 판사님을 깜짝 놀라게 할 겁니다.”
“하기야 그의 시체를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면 나도 감격되지 않는 건 아니야… 물론 그의 일당이 그 시체를 꺼내 가 버리지 않았다면 말이지만.”
“더구나…” 하고, 제브르 백작도 끼여들었다.
“내 가엾은 조카딸을 해친 놈이 바로 그 놈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예, 바로 그놈이고 말고요." 하고, 보트를레는 장담했다.
“레이몽드 양의 총을 맞고 폐허에서 쓰러진 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다시 일어났다가 또 쓰러져서, 아케이드까지 기어가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거예요. 이건 정말 기적이었는데, 그 점에 관해선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그런 뒤에 이 돌의 피신처까지 겨우 왔는데… 여기가 결국 그의 무덤이 되고 만 셈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지팡이로 예배당의 문턱을 두드렸다.
“아니! 뭐라고?”
피욜 씨는 깜짝 놀라 외쳤다.
“이 곳이 무덤이라고? 이런 데서 숨을 수가 있을라고…”
“여기가 숨은 곳입니다. 여기가…” 하고, 보트를레는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미 뒤져 봤지 않아?”
“잘못 뒤졌던 거죠.”
“여기엔 숨을 곳이 없습니다. 난 예배당을 잘 알고 있어요.” 하고, 제브르 백작이 말했다.
“아닙니다. 백작님, 숨을 곳이 있습니다. 바랑즈빌 면사무소에 가서 옛 서류를 조사해 보십시오. 그것을 보면, 이 예배당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뤼팽이 그런 것까지 알았을까?”
“예배당을 훔쳐 가는 일을 하다가 자연히 알게 되었을 겁니다…”
“여보게 보트를레 군,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 아닐까?”
이 때 제브르 씨가 하인을 불러, 예배당의 열쇠를 가져오게 했다. 세 사람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시 살펴 본 뒤에 보트를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제단이 모조품이라는 건 이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제단 앞쪽에서 시작되어, 밑을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뤼팽은 일을 하다가 지하실을 발견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보트를레는 백작이 가져오게 한 곡괭이고, 계단을 두들겼다. 석고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럴 수가 있나! 빨리 알고 싶군.” 하고, 피욜 씨는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고 보트를레는, 고통스러운 듯이 얼굴이 새파래져 가지고 말했다.
그는 곡괭이를 부지런히 놀렸다. 그러자 갑자기 곡괭이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무슨 단단한 것에 부딪혀 튀어 올랐다. 그러고는,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곡괭이에 맞은 돌덩어리와 함께 제단의 나머지가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보트를레는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성냥불을 켜 들고, 구멍 위를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계단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앞쪽, 거의 입구의 포석아래에서 시작되어 있군요. 여기선 맨 아래 층계가 보입니다.”
“깊은가?”
“3, 4미터나 돼 보입니다.”
“거 참 이상하다.” 하고, 피욜 씨는 말했다.
“레이몽드 양이 납치됐을 때, 세 경관이 잠깐 떠난 사이에, 공범자들이 이 지하실에서 시체를 꺼내 갈 만한 겨를이 있었을 것 같지 않은데… 게다가 또,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야, 내 생각으론, 시체는 거기에 있을거야.”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구멍 속에 세워 놓고, 보트를레는 사다리의 끝을 힘껏 눌렀다.
“판사님, 내려가 보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