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쯤에 일을 끝낸 피욜 판사는, 서기와 함께 디에프로 돌아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욜 판사는 불안하고 초조한 것 같았으며, 서기에게 같은 말을 두 번씩이나 물었다.

 

“보트를레 군은 못 봤나?”

 

“예, 못 봤습니다. 판사님.”

 

“제기랄, 어딜 갔을까? 온종일 안 보이는 걸.”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가방을 서기에게 맡기고는, 저택을 한 바퀴 돌아 폐허 쪽으로 달려갔다. 보트를레는 그 곳에 있었다. 그는 그곳의 커다란 아케이드 옆에서, 솔잎이 깔린 땅바닥에 누운 채, 한쪽 팔을 베고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피욜 판사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니, 어찌된 거야? 자고 있나?”

 

“천만의 말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다니! 첫째, 보지 않으면 안돼. 사실을 조사하고, 실마리를 찾아내야 하는 거야.”

 

“예, 알고 있습니다… 그건 평범한 방법입니다. 물론 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저는 또 다른 방법이 있어요. 저는 첫째 깊이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을 내다보지요. 그런 뒤에, 이 전반적인 흐름과 일치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가정을 세웁니다. 그런 다음에야만 비로소 사실들이 제 가정에 맞는지 어떤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그건 참 우스운 방법이군!”

 

“확실한 방법이지요, 판사님. 도리어 판사님의 방법이 확실하지 못한 겁니다.”

 

“무슨 소린가? 사실은 사실인걸.”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거라면, 옳은 말씀이지요. 하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계략을 쓰고 있다면, 사실 그 자체를 꾸며 내고 마니까요. 여러분들이 수사의 기초로 삼고 있는 이른바 단서라는 것을 상대는 마음대로 늘어놓을 수가 있답니다. 그러니까, 뤼팽 같은 사람을 상대로 하고 있을 땐, 그런 사실을 따라가다간 엉뚱한 방향으로 끌려가 버리는 겁니다. 셜록 홈즈 같은 사람도 함정에 빠지고 마니까요.”

 

“뤼팽은 죽었어.”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일당은 남아 있는데, 그런 선생의 제자들이고 보면, 그들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피욜 씨는 보트를레의 팔을 잡아 끌면서 말했다.

 

“여보게, 실은 중대한 얘기가 있는데, 잘 들어 보게나. 가니마르는 지금 파리에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며칠 후가 아니면 못 올 형편이야. 한편, 제브르 백작은 셜록 홈즈에게 전보를 쳤는데, 홈즈는 다음 주에는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 말이야, 이런 명사들이 도착했을 때,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일은 다 끝났습니다.’ 라고 그들에게 말해 줄 수 있다면, 영광이 아니겠는가?”

 

이 피욜 씨가 한 것보다도 더 교묘하게 자기의 무능함을 고백하기란 불가능하리라. 보트를레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속아 넘어가는 체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오후에 제가 여러분의 수사에 참가하지 않은 건, 실은 그 결과를 판사님께서 알려 주시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뭘 알아내셨습니까?”

 

“알아보니 이렇게 됐더군. 어젯밤 11시에, 크비용 수사 반장이 저택에 보초로 세워 놓은 세 명의 경관에게, 급히 경찰서로 돌아오라는 반장의 명령이 전달됐어. 그래서 돌아가 봤더니…”

 

“그랬더니 그들은 속은 것이고, 그 명령은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앙브뤼메지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말씀이죠?”

 

“맞았어. 그들은 수사 반장과 함께 돌아왔어. 그러나 한 시간 반이나 비워 놓은 동안에 범행이 일어났어.”

 

“그 상황은 어땠습니까?”

 

“농장에서 사다리를 가져다가 저택의 3층에 기대어 놓고, 유리창을 뚫고 두 사나이가 쉬잔 양의 방으로 들어가, 고함을 지르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렸어. 그러고는 끈으로 묶은 뒤에, 레이몽드 양의 방으로 들어갔어. 쉬잔 양은 신음 소리와 버둥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조금 후에 사나이가 손발을 묶고 재갈을 물린 사촌언니를 떠메고 가는 것을 보았대. 그들은 쉬잔 양의 앞을 지나 창으로 나갔다는 거야. 쉬잔 양은 무서워서 까무러쳐 버렸어.”

 

“그러나 개는 어찌 됐나요? 제브르 씨는 무서운 개를 두 마리나 기르고 있지 않아요?”

 

“둘 다 독약을 먹여 죽여 버렸더군.”

 

“정말 알 수 없어! 그야 어쨌든, 두 사나이는 폐허를 지나 샛문으로 나갔어. 그런 뒤에 저택에서 500미터 쯤 가서, 큰 떡갈나무 밑에 이르러 계획을 실행한 거야.”

 

“레이몽드 양을 죽일 생각으로 왔다면, 왜 방안에서 해치우지 않았을까요?”

 

“모르겠어. 아마 저택을 나간 뒤에 무슨 일이 생겨서 죽이게 됐는지도 모르지. 아가씨가 용케도 묶은 끈을 풀었을지도 모르고, 내 생각으론, 주운 쇼올은 손목을 묶는 데 쓰였을 것이거든, 어쨌든, 아가씨를 죽인 건 큰 떡갈나무 아래였어. 내가 모은 증거는 틀림없어.”

 

“그러나 시체는?”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어. 하지만 그건 이상할 게 없어. 사실,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까 바랑즈빌 성당의 낭떠러지 꼭대기에 있는 옛 묘지까지 계속되었거든. 거기는 100미터나 되는 낭떠러지이고, 그 아래는 바위와 바다야. 하루 이틀 지나면 밀물로 시체가 떠오르겠지.”

 

“얘기가 참 간단하군요.”

 

“응, 여기엔 사실 아무 문제가 없어. 뤼팽이 죽으니까, 그 일당이 전에 협박한 대로, 복수하기 위해 레이몽드 양을 죽인거야. 하지만 뤼팽은 어찌 됐을까?”

 

“뤼팽 말인가요?”

 

“그래, 아마 일당은 아가씨와 동시에 뤼팽의 시체도 꺼내 갔겠는데. 그 증거가 없거든. 폐허에 숨어 있었다는 증거도,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도 통 알 수가 없단 말야. 바로 그 점이 수수께끼일세. 여보게, 보트를레 군, 레이몽드 양의 살해 사건으로 일이 더 까다로워졌어. 두 달 동안, 앙브뤼메지의 저택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만약에 우리가 이 수수께끼를 풀지 않으면, 딴 사람들이 와서 해결해 버릴거야.”

 

“언제 오나요? 그 딴 사람들은…?”

 

“수요일… 어쩌면 화요일일지도 몰라…”

 

보트를레는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토요일이죠. 저는 월요일 저녁에 학교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 10시에 여기에 나와 계시면 이 수수께끼의 열쇠를 가르쳐 드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말인가, 보트를레군?… 틀림없겠나…?”

 

“그렇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 이제부터는 어딜 가려고?”

 

“저는 이제 이 사건의 전반적인 의도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사실이 그것과 맞아들어가는지 어떤지, 이제부터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만약에 맞아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사실이 틀린 것이 되겠지요.” 하고, 보트를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경우엔 더 잘 맞아들어가는 다른 사실들을 찾아야겠지요. 그럼 월요일에 뵐까요, 판사님?”

 

“그러게, 월요일에 만나세.”

 

잠시 후에 피욜 씨는 디에프로 돌아가고, 보트를레는 제브르 백작에게서 자전거를 빌어타고, 코드백 앙 코오로 가는 길을 달렸다. 루벤스의 그림이 어는 길로 운반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였다.

 

보트를레는 이렇게 가정했다. 즉, 네 폭의 그림은 틀림없이 자동차에 실려갔다. 그러나, 코드백 앙 코오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차에 옮겨 실려, 세느강을 건넜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보트를레는, 달리고 달려 한밤중에 강가의 주막집을 두드렸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의 명부도 들여다보았다.

 

4월23일 목요일에 자동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럼 마차는? 달구지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어요.”

 

아침 나절 내내, 보트를레는 알아보러 다녔다. 그러다가 막 딴 곳으로 가려고 했을 때, 간밤에 묵은 주막집의 심부름꾼 아이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그날 아침 달구지는 봤는데, 강을 건너가진 않았습니다.”

 

“뭐라고?”

 

“건너가진 않고, 강둑에 매어 두었던, 쾌속정 같은 것에 짐을 옮겨 실었습니다.”

 

“그 달구진 어디서 온 거지?”

 

“그건 제가 잘 알고 있는데요, 바티넬 아저씨의 달구지였어요.”

 

“어디 사는 사람인데?”

 

“루브토 마을이요.”

 

보트를레는 루브토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저녁 9시에야 겨우 술집에서 바티넬 씨를 만났다.

 

“응, 그래. 그날 아침,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5시에 나오라고 해서 가 보았더니, 이렇게 높다랗고 큼직한 물건 네 개를 내놓더군. 한 사람이 나를 따라와서, 그 물건을 쾌속정까지 싣고 갔었지.”

 

“그들을 전부터 알고 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내가 그들의 일을 해 준건, 이번이 여섯 번째인걸!”

 

보트를레는 몸을 떨었다.

 

“여섯 번째라고요?… 그건 언제부터입니까?”

 

“그날까지 매일이었지! 그때의 물건은 다른 것이었지만… 커다란 돌덩어리거나… 더 작고 길쭉한 것들이었는데, 보물처럼 소중히 싸 가지고 실어 갔어. 내겐 손도 못 대게 했었지… 아니, 어찌 된 거야? 그렇게 새파래지다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무 더워서요…”

 

보트를레는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뜻밖의 발견으로 너무 기뻐서 정신이 멍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