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가 되어, 판사가 제브르 백작의 식사 대접을 받고 다시 객실로 돌아왔을 때, 디에프에 파견되었던 경관이 돌아왔다. 그 가죽모자는 어느 운전사에게 팔았다는 보고였다.

 

“운전사에게?”

 

“예. 운전사가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손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면서, 노란 가죽으로 만든 운전사용 모자가 없느냐고 묻더랍니다. 마침 그 모자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운전사는 치수도 묻지 않고 돈을 치르고 가버렸는데, 매우 급한 모양이더랍니다.”

 

“언제야, 그건?”

 

“언제라니요? 오늘 아침이지요?”

 

“그럴 리가 있나? 그건 간밤에 정원에서 발견된 것인데…”

 

“오늘 아침이라고 모자점 주인은 말하던데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판사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갑자기 그에게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 우리를 태우고 온 운전사를 데려와!”

 

수사 반장은 얼른 나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부엌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는 뺑소니쳐 버렸습니다.”

 

“차를 몰고?”

 

“아니요. 우빌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간다며, 마부의 자전거를 빌어 타고 갔답니다. 이게 그 녀석의 모자와 외투입니다.”

 

“하지만 맨머리로 떠나지야 않았겠지?”

 

“호주머니에서 노란 가죽 모자를 꺼내 쓰고 갔답니다.”

 

“노란 가죽 모자라고? 그럴 리가 있나? 그건 저기에 있는데.”

 

검사는 좀 비웃는 듯이 말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군! 가죽 모자가 두 개라니… 하나는 진짜이고 유일한 증거인데, 가짜 운전사가 쓰고 가버렸고, 또 하나는 가짜인데, 그걸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거요. 아! 그 녀석에게 정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군.”

 

“빨리 그 놈을 잡아와요, 수사 반장!”

 

판사가 외치자, “벌써 멀리 내뺐을걸요.” 하고 검사가 말했다.

 

“아무리 멀리 갔더라고 꼭 잡아야 하오.”

 

“그야 그러고 싶지만 판사님. 우리는 무엇보다도 여기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쪽지를 읽어 보십시오. 운전사의 외투 호주머니에서 발견한 겁니다.”

 

검사가 피욜 판사에게 건네준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두목이 죽는다면 아가씨를 가만두지 않을 테다.’

 

이 위협의 쪽지는 좌중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판사가 입을 열었다.

 

“백작님, 그리고 아가씨들, 아무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의 안전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하고, 판사는 두 기자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나는 여러분이 신중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번 수사에 참가하시게 된 건 내 호의 때문이니까요. 만약에 내 신임을 저버린다면…”

 

판사는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이 말을 뚝 끊고, 두 청년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한 청년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무슨 신문의 기자지요?”

 

“「르왕」 신문입니다.”

 

“신분 증명서는 갖고 있겠지요?”

 

“예, 여기 있습니다.”

 

증명서는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었다. 피욜 판사는 다른 한 기자에게 물었다.

 

“그리고 당신은? 어느 신문사요?”

 

“예, 저는 여러 신문에 쓰고 있습니다만…”

 

“신분 증명서는?”

 

“없습니다.”

 

“아니, 그건 어찌 된 일이요?”

 

“저는 때때로 이 신문 저 신문에 기사를 써 보낼 뿐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발표되기도 하고, 때로는 퇴짜를 맞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름은? 명함은?”

 

“제 이름을 알아서 무엇 하십니까? 명함도 없습니다.”

 

“직업을 증명하는 무슨 서류도 없나요?”

 

“직업도 없습니다.”

 

“아니, 그럼 자네는…” 하고, 판사는 좀 무뚝뚝하게 말했다.

 

“속임수를 써서 끼여 들어와 가지고 비밀을 캐내려는 게 아닌가?”

 

“판사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왔을 때, 아무 말씀도 물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아무 말씀도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수사가 비밀인 것 같지도 않았고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입회하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범인의 한 사람까지도 말씀입니다.”

 

그는 매우 공손한 말투로 조용조용 말하고 있었다. 매우 훤칠하고 날씬한 썩 젊은 청년으로서, 아주 짧은 바지에, 꼭 쬐는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계집애 같은 장밋빛 얼굴에, 이마는 넓고 머리는 빡빡 깎았으며, 금빛 수염이 더부룩이 나 있었다. 그의 눈은 유난히 총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해 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으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으나, 빈정거리는 빛은 조금도 없었다. 피욜 판사는 의심나는 눈으로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젊은이는 재미 있다는 듯이 외쳤다.

 

“판사님은 저를 공범의 한 사람으로 의심하시는 모양이지만, 만일 그렇다면, 왜 아까 그 패거리들처럼, 적당한 때에 줄행랑을 치지 않았겠습니까?”

 

“농담은 그만두고, 이름은?”

 

“이지도르 보트를레입니다.”

 

“직업은?”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입니다.”

 

“아니! 이건 사람을 놀리는 건가!”

 

“그렇게 놀라시다니 참 이상하군요, 판사님. 제가 장송 고등학교 학생이면 뭐가 안 됩니까? 아, 이 수염 때문인가 보군요. 안심하십시오. 이거 가짜 수염이니까요.”

 

이지도르 보트를레는 턱에 붙였던 수염을 뜯어 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은 한결 더 젊고 더 발그레해 보여 정말 고교생다웠다. 그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어 어린애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이젠 믿어 주시겠지요? 그래도 증거가 필요합니까? 그럼 이걸 읽어 보십시오. 제 아버님의 편지에 주소와 성명이 있으니까요. 장송 드 사이 고등학교 기숙생 이지도르 보트를레.”

 

믿든 안 믿든 간에, 피욜 씨는 이런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듯이,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

 

“여긴 뭐 하러 왔나?”

 

“그저 공부하러 왔지요.”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게 아닌가?”

 

“판사님은 잊으셨나요? 오늘은 4월 23일 . 부활절 휴가중이라는걸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이 방학을 제 마음대로 이용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네 아버지는…?”

 

“아버지께서는 멀리 사브와 지방에 살고 계신데, 저더러 이번에 영불 해협의 바닷가를 돌고 오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렇게 가짜 수염을 달고?”

 

“아! 이건 아닙니다. 이건 제 생각으로 한 거여요. 학교에서 우리는 곧잘 모험 얘기도 하고, 변장한 인물이 나오는 탐정 소설도 읽거든요. 우리는 무시무시하고 복잡한 사건을 많이 상상하지요. 그래서 장난삼아 가짜 수염을 달아봤어요. 어른으로 보이는 것이 이로웠고, 파리의 신문기자로도 통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1주일을 시시 하게 보낸 뒤, 어제 저녁에 르왕의 신문 기자와 알게 됐는데, 오늘 아침에 이번 사건을 안 그가 저를 이렇게 데려와 준 것입니다.”

 

이렇게 순진하고도 솔직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판사도 경계심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재미있다는 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래, 여기에 온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나?”

 

“정말 기쁩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사건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어둠 속에서 여러 가지 사실이 불거져 나와, 차츰차츰 진상이 밝혀지는 걸 보는 것처럼 감격적인 일은 없거든요.”

 

“아, 진상을 밝히겠다고! 그래, 무슨 해결의 실마리라도 잡았나, 젊은이?”

 

“아니요!” 하고, 보트를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만… 짐작이 갈 만한 점도 있고, 또 어떤 점은 아주 명백하기 때문에 결론만 내리면 될 것도 있습니다만…”

 

“허허! 이건 썩 재미있게 돼 가는걸.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그건 판사님께서 생각하실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건 생각하는 일입니다. 사실 그 자체 속에 설명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는 드물거든요. 안 그렇습니까?”

 

“좋았어! 그럼 묻겠는데, 객실에서 훔쳐 간 물건이 뭔지 알겠나?”

 

“예, 알고 있습니다.”

 

“희한한데! 주인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니! 그럼 또, 살인범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나?”

 

“역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