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uille_creuse.jpg절대로 체포되지 않는 괴도(怪盜), 성관(城館)이나 상류사회의 살롱이 아니면 습격하지 않는 이상한 신사, 어떠한 사람으로도 변장할 수 있는 사나이로 등장한다. 이러한 도둑이면서 신사라는 통쾌하고 멋쟁이인 1인 2역이 프랑스인 기호에 잘 들어맞아서 뤼팽은 괴도의 대명사가 되었다.

 

뤼팽은 도둑이면서 명탐정으로도 활약하고 게다가 골동품 애호가에 열렬한 애국자로도 변모하여 독일인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또 역사적으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처럼)영국의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를 상대역으로 출연시켜 당시 상당한 잡음도 만들어 내었다.

 

작가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은 1846년 루앙에서 태어나 1941년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페르티그낭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작은 조선 공장을 경영하는 선주였다. 집안이 유복하여 모리스는 이 도시에 있는 꼬르네이유 중등학교에 다녔다. 성적은 우수했고 또한 가정이 문학적인 분위기에 싸여 있었으므로 그의 문학적인 소질을 살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어렸을 때 조부모의 영지 가까운 윈드리유 사원안에 지어졌던 야외극장에 가서 누이 조르세뜨가 출현하는 연극을 열심히 구경했다. 소년인 그는 그 가운데 《맥베드》며 《헬레아스와 메리잔드》에 특히 감격했다고 한다.

 

파리에 나온 르블랑은 맨처음 <질 블라스>등의 신문잡지 편집자가 되었다. 본디 그는 자유사상가로서 무정부주의자이며, 19세기 끝무렵에서 20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여론을 둘로 나누었던 드레퓌스 사건에 있어 에밀졸라 등과 함께 드레퓌스를 변호하고 정의를 위해 싸웠다.

 

플로베르며 모파상 문학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역시 그와 같은 자연주의적 풍속소설을 써서 그것을 <질 믈라스><피가로><꼬메디아><주르날>등에 기고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질 블라스>지에 발표한 <어떤 여인>은 매우 평판이 좋아 쥘르 르나아르라든가 독설가로 유명했던 레옹 브르와의 호칭을 얻었다. 이때부터 소설과 희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부부들><괴로움 많은 사람들><신비의 시간><그려진 입술>등이 그의 청년시절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 책 이름들이 보여주듯이 어느것이나 심리소설 및 풍속소설이었지만 이미 자유 사상가이며 반속주의자였던 그는 이러한 중편소설에서 그 무렵 부르조아 사회의 풍속이며 모든 제도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당시의 일부 사람들에게는 인정되었지만, 뒷날의 모리스 르블랑만큼 유명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출판사를 경영하는 피에르 라피트의 부탁으로 홈즈와 라플즈를 혼합한 것 같은 주인공을 활약시키는 엔터테인먼트를 써냈다. 이것이 그의 단편 《뤼팽 체포》였다.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라피트는 이 단편을 잡지에 싣기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뛰어난 편집자였던 라피트가 르블랑으로 하여금 좀 더 많은 작품을 쓰게 만들려는 생각에서 취한 처사였다. 그리하여 그 단편과 똑같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열편 넘게 쓰도록 했던 것이다.

 

《813》은 1910년에 쓴 것인데, 그것은 작품집 제 4권째에 해당하는 것이며, 장편으로서는 《기암성》에 이어지는 제 2작이다.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낸 첫 장편인데 《813》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은 그 전편으로서, 후편의 제목은 《아르센 뤼팽의 세가지 범죄》이다.

그의 처녀 단편 《뤼팽 체포》는 거의 화제에 오르지 않았으나 홈즈를 상대역으로 삼는 《뤼팽 대 홈즈》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기에 이르자, 이것이 방아쇠가 되어 뤼팽시리즈가 프랑스에서 대대적으로 읽혀지게 됐다. 홈즈를 상대역으로 등장시킴으로서 독자의 인기를 휘어잡으려 하는 르블랑의 의도가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뤼팽이 인기를 얻게되자 프랑스에서 홈즈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홈즈시리즈가 대체로 무난한 완성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반면 뤼팽시리즈는 후기로 접어들면서 졸작수준으로 전락한다. 르블랑의 정열이 식어간 것과 더불어 트릭의 속임수가 품절이 되어버렸던 것이리라.

 

《기암성》은 첫 루팡시리즈 장편으로서 그 라이벌인 가스통 르루를 의식해서 썼을 것이다. 《노란방》보다 2년 뒤에 쓰인 이 소설은 소년기자 룰르타비유와 괴도 라르상을 보트를레 탐정과 뤼팽으로 대치해 보면 르블랑이 얼마나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란방》에서 다루어진 인간증발 등의 속임수는 뤼팽시리즈 장편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에 이르러 뤼팽시리즈는 평가절하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지나치게 다른 유명 작가들을 의식하여 작품을 쓴 탓인지 도처에서 그 강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디 신문연재 소설의 전통을 갖추고 있는 프랑스 대중소설의 기본은 감각적 소설인데 그 전통적인 패턴 가운데 하나가 괴도시리즈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것이 뤼팽이었다. 이것을 잘 읽어보면 모험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추리소설의 실마리를 착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센세이셔널 노블에 새로운 추리소설 기법을 받아들인 르블랑의 공적은 역시 잊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6년 전인 1935년에 이르기 까지 50권쯤 되는 추리소설을 썼다. 그것은 르블랑이 상상력이 풍부하여 차례차례로 재미있는 줄거리를 생각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르블랑이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즐겼던 것이 크게 도움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그가 소설을 씀에 있어 매우 엄격했음을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는 같은 장을 열번이나 고쳐쓰는 일이 있다. 나는 작중 인물을 그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무대와 마찬가지로 하나하나의 장면이 잘 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해, 그리고 또한 심리적인 움직임이나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효과가 있도록 써나간다. 그런데 그 기초에는 엄격한 논리와 딜레탕티즘(예술, 문학 등을 도락적으로 하는 입장)의 요소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모험소설의 참다운 처방이라 하겠다.”


르블랑의 《뤼팽》시리즈를 내용면에서 살필 때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추리를 기본요소로 하는 본격적인 탐정소설이고, 또 하나는 역사 또는 전설의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괴기모험소설, 마지막 세 번째가 현실의 <뉴스>적 사건을 소재로 구상한 모험탐정소설인 것이다.

 

첫째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괴신사》《괴인대 거인》《버네트 탐정사》 등이 있고 두 번째 것은 《기암성》《악마의 저주》, 세 번째 것은 《금삼각》《수정안》 등이다.

 

《기암성》은 여러 면에서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이나 《뤼팽 대 홈즈》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스토리의 다층적인 전개와 복선들이 보다 정교화되고, 주제와 소재 및 시공간적 스케일이 놀랄 만큼 확대되었다.

 

역시 홈즈가 뤼팽의 호적수로 등장하며, 새로운 영웅인 소년탐정도 선을 보인다. 원래 심리소설 작가였던 저자의 섬세한 시각이 더욱 돋보이며, 주변 풍광에 대한 인물의 감정이입도 대단한 수준이다. 뤼팽의 전인적(全人的) 면모가 발휘된 작품이며 그의 페이소스를 한껏 느껴볼 수 있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