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새로 만든 배 7척을 진수시키던 날, 조선소 목수와 장졸들에게 돼지 5마리와 술 10말을 허락했다. 낡은 전선에서 뜯어낸 헌 목재로 만든 협선 10척도 그날 완성되었다. 진도의 작은 조선소에서도 전선 2척이 진수되었다. 진도에도 술과 고기를 보냈다. 고임목 위에 올라앉은 새 배는 푸르고 싱싱했다. 군사들이 배를 밀고 당겨서 물 위에 띄웠다. 격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노를 일제히 물 위로 치켜들고 흔들었다. 노가 다시 물에 박히자 배는 나아갔다. 새 배는 새로 태어난 생선처럼 조심조심 바다로 나아갔다. 이물에 깃발을 세우고 북을 울렸다. 사부들이 총구멍마다 총통을 쏘아댔다. 조선소 마당에서는 군사와 백성들이 풍물을 치며 놀았다. 나는 우수영 쪽 물가에서 배를 향해 대장기를 흔들어주었다. 총통의 폭발음에 놀란 새들이 새까맣게 날아올랐다.
진도에서 만든 배 2척이 총통을 쏘아대며 우수영 내항으로 들어왔다. 배마다 함성이 일었고, 포환이 터졌다. 깃발에 덮인 전선 9척이 빠른 속도로 내항을 여러 바퀴 돌았다. 총구멍마다 흰 화약 연기가 풀려나와 배 뒤로 띠처럼 너울거리며 흘렀다. 나는 화약 연기를 몸 깊숙이 들이마셨다. 내 허파에 스미는 화약 연기는 매캐하고도 향기로웠다. 유황이 타는 냄새는 먼바다를 뒤덮은 적들의 냄새였고, 그리고 나와 내 함대의 냄새였다.
임진년의 싸움은 힘겨웠고 정유년의 싸움은 다급했다. 모든 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그렇게 날마다 낯설고 날마다 새로운 싸움 속에서, 화약 연기의 기억만이 흩어지지 않는 안개로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명량에서나 한산도에서나 적의 화약 연기와 나의 화약 연기는 뒤섞여 해풍에 밀려다녔다. 싸움이 끝나고, 기진한 함대가 모항으로 돌아간 뒤에도 생사와 존망의 쓰레기로 덮인 바다 위에서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화약 연기 냄새는 오래 남아 있었다.
전선 9척은 내항을 서너 바퀴 돈 뒤 포구로 돌아왔다. 전선들이 다가오자 연기 냄새는 더욱 짙었다. 죽은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물컹거리던 젓국 냄새와 죽은 면이 어렸을 때 쌌던 푸른 똥의 덜 삭은 젖냄새와 죽은 어머니의, 오래된 아궁이 같던 몸냄새가 내 마음속에서 화약 냄새와 비벼졌다.
진수식은 저녁 무렵에 끝났다. 목수들에게 군량 2가마와 무명 1필씩을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감독 만호와 군관들에게 열흘씩 휴가를 주었다. 술에 취해서 목재 운반을 한나절 동안 지연시킨 죄로 곤장 20대를 맞고 옥에 갇혀 있던 완도 향리 3명을 풀어주었다.
그날 저녁, 조선소 감독 만호가 진수식 고사머리에 쓰고 남은 돼지 대가리 한 통을 내 숙사로 보냈다. 어머니가 죽고 이어 아들 면이 죽은 뒤 나는 포유류의 누린내를 감당하기 버거워서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돼지 대가리를 종사관 김수철에게 주어 위병들을 먹였다. 저녁때 진눈깨비가 날리더니 젖은 함박눈이 내렸다. 바람은 잠들었으나, 잿빛 하늘의 먼 쪽이 고르지 않았다. 새벽에 또 눈과 비가 뒤섞인 모양이었다. 임진년에 총 맞은 자리가 꾸물거렸다. 아궁이에 장작을 한 번 더 넣으라고 종에게 일렀다. 일찍 자리에 누웠다. 수영에서 먹이는 진돗개들이 눈을 맞으며 뒹굴고 뛰었다.
“나으리, 도원수부 군관이 왔습니다.”
종사관 김수철이 문밖에서 고했다. 나는 일어나 장지문을 열었다. 말에서 내린 군관은 댓돌 아래서 임금이 보낸 유지를 받들고 있었다. 나는 마당에 내려가 절하고 유지를 받았다. 군관은 임금의 하사품이라며 작은 대나무 상자 하나를 놓고 돌아갔다. 나는 유지 봉투를 뜯었다. 종이는 바스라질 듯이 얇았다. 접힌 자리가 뚫어져서 글자의 획이 끊어져 이었다. 조정의 궁상을 알 만했다. 나는 유지를 읽어나갔다.
“지난번에 다녀온 선전관 편에 들으니, 너는 아직도 상례를 지키느라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더구나. 사사로운 정이 간절하다 할지라도 나라의 일은 지엄한 것이다. 싸움에 나가 용맹이 없으면 효도가 아닐진대, 어찌 채소와 나물만 먹고 능히 해낼 수 있겠느냐. 상례에도 원칙이 있고, 방편이 또한 있지 않겠느냐. 내 헤아리되 그러하다. 그대는 내 뜻을 따라 방편을 좇으라. 그러므로 이제 술과 고기를 보내니, 너는 받으라.”
군관이 놓고 간 대나무 상자를 열었다. 쇠고기 5근과 술 2병이 들어 있었다. 임금의 명에 따라 도원수가 보낸 물건이었다. 갓 잡은 고기는 살에서 경련이 일 듯이 싱싱했다. 칼이 한 번 멈칫거린 듯, 칼 지나간 자리가 씹혀 있었다. 잘려진 단면에서 힘살과 실핏줄이 난해한 무늬를 드러냈다. 붉은 살의 결들이 어디론지 흘러가고 있었다. 칼이 베고 지나간 목숨의 안쪽에 저러한 무늬가 살아 있었다. 내가 적의 칼에 베어지거나 임금의 칼에 베어질 때, 나의 베어진 단면도 저러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단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종을 불러서 숯불을 피워 방 안으로 들였다. 종사관 김수철과 영내에서 당직 번을 서던 안위를 불렀다.
“받아라. 어사주다.”
안위가 잔을 받았다.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벽에 나는 기대앉았다. 김수철이 석쇠 위의 고기를 뒤적거렸다.
“다시 고기를 드시니, 장졸들의 복이올시다.”
김수철의 잔이 내게로 건너왔다. 나는 마셨다.
“전하의 고기다. 많이 먹어라.”
김수철과 안위가 일어서서 석쇠 위의 고기를 향해 절했다. 안위가 말했다.
“탑니다. 어서 드십시오.”
나는 먹었다. 김수철이 말했다.
“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
“그렇지 않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
나는 마셨다. 독주가 창자를 찌르며 내려갔다. 누런 연기가 방안에 번졌다. 김수철과 안위의 붉은 얼굴이 연기 저쪽에서 번들거렸다. 숯불 위에서 연기는 계속 피어올랐다. 화약 냄새와 죽은 면의 젖내와 죽은 여진의 젓국 냄새가 또다시 내 마음속에서 겹쳤다. 나는 말했다.
“닷새 후에 수영을 목포 앞 고하도로 옮기겠다. 망군과 정탐과 봉수는 현 위치에 남으라. 읍진마다 군관 다섯씩은 임지에 남으라. 벽파, 금갑, 녹도는 선발대로 내일 아침 발선하라. 선발대는 군량과 무기를 옮기고 현지를 평탄케 하라. 안위 너는 장졸 백을 거느리고 우수영에 남으라. 너에게 협선 스무 척을 맡긴다. 너는 즉각 발 빠른 전령을 세워 고하도에 선을 대라. 너는 경상 해안 깊숙이 정탐을 운영하라. 김수철 너는 닷새 후 새벽에 전 함대를 우수영 내항에 집결시켜라. 닷새 후면 그믐이다. 그날, 바람과 관계없이 발선하겠다. 내일부터 이동 준비를 하도록 너는 모든 읍진에 시달하라. 우리는 고하도로 간다. 이상이다. 물러가라.”
김수철과 안위가 돌아간 뒤 장지문을 열어 연기를 빼고 자리에 누웠다. 누린내는 밤새도록 방 안에 배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