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가을에, 내륙에서 적의 육군은 밀리고 있었다. 적의 수군은 명량 수로에서 깨어졌다. 서해를 북상해서 한강으로 진공하려던 적의 수군 주력은 명량 수로를 통과하지 못했다. 명량에서 적은 섬멸적 타격을 입고 흩어졌다. 그때, 가토가 지휘하는 적의 육군 주력은 충청, 경기를 압박했고 관군의 방어선은 한강 유역으로 밀려나 있었다. 한강을 멱통으로 삼아 수륙합동작전으로 서울을 다시 빼앗으려던 적의 전략은 일단 분쇄되었다. 해로를 통한 보급이 끊기고 겨울이 닥쳐오자 적의 육군 주력은 더 이상 북상하지 못했다.

 

한강 이북에서 주춤거리던 명의 육군이 공세로 전환하자 적의 육군 부대들은 방면별로 후퇴했다. 경상 내륙까지 깊이 진출했던 가토의 부대는 창녕을 지나 남쪽을 향했고, 금강을 넘어 경기 접경까지 올라갔던 고니시의 부대는 순천까지 내려왔다. 명군은 접전하지 않았다. 명군은 전투를 피해가면서 달아나는 적들을 남해안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적은 신속히 이동했고, 온전히 이동했다. 포로로 잡힌 조선 백성들이 적장의 가마를 메었고 총포와 말먹이를 실은 수레를 끌었다.

 

붙잡힌 조선 계집들이 적장들의 가마에 일신을 바쳤고 조선 백성 풍물패들이 이동하는 적의 대열 맨 앞에서 풍악을 울렸다. 적들은 이기고 돌아가는 개선의 대열처럼 풍악을 앞세우고 후퇴했다.

 

길에서 쓰러진 조선 계집과 포로들을 마차바퀴로 뭉개버리고 적들은 또 다른 고을의 조선 백성들을 끌어갔다. 적들이 지나간 마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적의 말똥에 섞여나온 곡식 낟알을 꼬챙이로 찍어 먹었다. 아이들이 말똥에 몰려들었는데, 힘없는 아이들은 뒤로 밀쳐져서 울었다. 사직은 종묘 제단 위에 있었고 조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적의 육군 주력은 그렇게 남하했다. 적은 경상도 울산에서 전라도 순천에 이르는 남해안 8백 리 연안포구마다 성을 쌓고 장기 농성 태세로 들어갔다. 명군은 더 이상 적을 압박하지 않았다. 명량 수로에서 무너진 적의 수군은 경상 해안으로 물러가 적의 육군에 가세했다. 일본에서 새로 건조한 전선들이 바다를 건너와 부산포와 울산으로 들어왔다.

 

적은 남해안에 수륙연합의 총병력을 집중시켰다. 집중된 중심은 부산포나 울산인 듯했고, 연안의 포구마다 분산된 중심들이 들어서 있었다. 적은 육군의 지상 거점들과 수군의 기동력을 다시 접속시키고 있었고, 그 서쪽 전진기지는 순천이었다. 순천에서 부산에 이르는 적의 포구들은 봉화와 경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순천은 우수영에서 한나절 물길이었다. 승주 조계산 방면에 박아둔 승군 정탐들이 산줄기를 넘어 우수영에까지 와서 적의 동태를 알렸다. 경상 해안 쪽 적의 군비는 순천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북상 육로가 막힌 적들은 다시 남해를 돌아서 한강을 겨누는 수로에 전투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우수영에서 순천은 너무나 가까웠다.

 

적의 수류합동군이 물길을 따라 서진한다면, 다음번에 내가 죽어야 할 자리는 명량은 아닐 것이었다. 나의 사지는 훨씬 더 뒤로 물러선 자리라야 마땅했다. 적은 이미 명량 수로를 겪었다. 순천에서 발진하는 적의 함대는 명량으로 들어오지 않고 진도 남쪽을 우회할 것이었다. 적의 주력이 다시 명량으로 들어온다 해도 적은 모든 화력을 선두 대열에 배치할 것이었다. 적의 주력이 명량으로 들어오고 동시에 별동함대가 전도 남단을 우회한다면, 명량은 적을 맞을 자리가 아니었다.

 

정유년 겨울에, 적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가까운 자리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임진년처럼, 함대를 몰고 포구마다 적을 찾아다니면서 걷어낼 수도 없었다. 적은 이미 연안에 육상 기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적은 오지 않았고, 나는 우수영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 다시 적이 온다면 우수영 앞 명량 수로는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 나는 명량 수로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아무런 은총도 없는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리는 우수영보다 훨씬 더 뒤쪽이라야 마땅했다. 정유년 겨울에, 다가오는 적의 기척은 밤마다 내 몸에 느껴졌다. 승군 정탐들이 이틀 도리로 산을 넘어와 수군거리는 적정을 보고했다. 적의 육군이 순천에 집결했으므로 우수영은 육지 쪽 뒤통수가 위태로웠다. 우수영에서 머뭇거리다가, 어느 날 밤, 육지와 바다에서 협공하는 적의 야간 기습을 받고 발진하기도 전에 전멸하는 악몽에 나는 오랫동안 시달렸다. 우수영을 버려야 한다... 버려야 한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지만, 우수영은 칼로 베듯이 잘라지지 않았다.

 

우수영을 버리고 수군진을 서해 쪽으로 옮기는 일에 관하여 나는 읍진 수령들과 의논하지 않았다. 종사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 장졸들은 모두 배 만드는 일에 내몰려 밤잠을 못 자고 있었고, 말이 새어나가면 수군이 움직이기 전에 수영 주변 민가의 백성들과 피난민들이 동요할 것이었다. 경상 해안이 완전히 적에게 점령당한 후 경상 연안 백성들은 전라도 서쪽 연안으로 넘어왔다. 그들은 연안과 섬에 흩어졌다. 이제 수영이 옮겨간다면 백성들은 또다시 통곡하면서 수군을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백성들을 들여앉힐 땅이 나에게는 없었다. 우수영을 버려야 한다는 절박한 울림에 귀 기울이면서 나는 죽어야 할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답답함에 조바심쳤다.

 

내가 물러서야 할 자리는 전라도 서북부 연안이거나 충청도 서해안의 어느 섬이나 포구일 것이었다. 나는 충청 물길을 알지 못했다. 충청 해역에서는 한 번도 교전이 없었다. 충청 수군은 개전 이후 줄곧 전라 수군에 배속되었고 독자적인 작전 경험이 없었다. 충청 해역 수로에 관한 정보를 충청 수군에게 기대할 수 없었다.

 

정유년 동짓달, 바람이 순한 날을 가려 나는 전선 한 척을 내서 서해로 올라갔다. 종사관과 군관 5명을 대동했다. 나는 위도를 거쳐 고군산군도까지 나아갔다. 멀고도 낯선 뱃길이었다. 고군산군도에까지 육지에서 건너온 피난민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전선을 타고 나타난 수군들이 무서워서 게처럼 옆으로 피했다. 난데없는 수군의 출현으로 피난민들은 겁에 질렸다. 그들은 어느 나라 백성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연안에서 연안으로 이동하는 철새의 무리들처럼 보였다. 썰물의 갯벌에 겨울 철새들이 부리를 박고 있었다.

 

고군산군도와 위도는 수군 기지를 풀 만한 곳은 아니었다. 섬 앞바다가 막힌 데 없이 넓어서,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 죽을 자리가 아니었고 싸울 자리도 아니었다. 나는 배를 육지 쪽으로 돌려 연안을 돌아보았다. 섬으로 가려는 피난민들이 포구마다 모여 있었다. 봉두난발의 부녀들이 양지쪽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서해는 크게 밀리고 크게 썰었다. 작은 강들이 밀물로 달려드는 바다를 내륙 깊숙이 받아들였다. 썰물의 갯벌이 아득히 넓어서 함대가 드나들기는 불가능해보였다.

 

어디로 물러서야 할 것인지 나는 막막했다. 위도와 연안 사이의 바다에서 내가 죽는다면, 거기에서 한강 어귀까지는 하룻밤 하루 낮의 물길이었다. 거기는 무인지경의 바다였다. 나의 사지는 아무래도 남해 바다의 맨 서쪽 끝 언저리의 어느 바다일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군관들이 항해의 목적을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다만 ‘연안 시찰’이라고만 대답해 주었다. 물러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나는 다시 우수영으로 돌아왔다. 엿새간의 뱃길이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나는 우수영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서해에는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나는 우수영을 버리고 남해의 서쪽 끝 언저리로 가기로 했다. 거기가 나의 자리였다. 거기서 다시 경상 해안 쪽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거기가 나의 자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마침내 적의 전체를 맞아야 하는 날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수영으로 돌아온 날 밤에 나는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