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정유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전선 7척을 새로 만들었다. 적들이 한동안 오지 않아서, 배 만들기에 좋았다. 내륙 관아에서 모아 온 목수 30명을 우수영으로 데려왔고, 경계 병력을 제외한 전 장졸들을 벌목과 목재 운반에 투입했다. 여러 읍진에 분산되어 있는 조선소들은 목재의 비축량과 목수의 숫자가 고르지 않아서 조선소마다 공정이 들쭉날쭉했고 목수들의 솜씨도 차이가 났다. 발진포에서는 대팻날이 뭉그러지고 톱날에 이가 빠졌는데, 갈아 끼울 날이 없어서 일손을 놓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발진포 만호는 대팻날과 톱날을 보내달라고 사람을 보냈다. 울포에서는 갑판 밑에 까는 삼베와 나무못을 요청했다. 수군 통제사가 주머니 속에 대팻날을 넣고 있는 것도 아니고, 조정에서 나무못을 보내줄 것도 아니었다.
여러 읍진에 흩어져 있던 조선소들을 모두 우수영으로 불러들였다. 목재와 연장과 목수들을 나누어 쓰도록 했고 권관 2명과 만호 1명을 배속시켜 감독하게 했다. 통합된 조선소는 우수영 왼쪽, 진도 망금산을 마주보는 물가에 들어섰다. 진입로가 넓고 평탄해서 목재를 실은 소달구지가 드나들기 편했고 작업장 뒤쪽이 산으로 막히고 언덕이 양지발라서 겨울에도 찬바람을 맞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조선소 쪽에서는 늘 목도를 지어 통나무를 나르는 군사들이 발을 맞추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뒤로 주저앉는 소를 때리고 당기는 군관들의 고함 소리도 들려왔다. 제주 목사가 보낸 돼지 5마리를 조선소로 내려보내 먹게 했다. 돼지를 잡던 날 조선소 군사들이 우수영 연안 백성들을 영내로 불러들여 함께 먹었으며 백성들이 술과 반찬을 가져왔다고 종사관이 보고했다. 나는 모른 척해두었다. 어두운 수평선 너머에서, 사각 사각 사각, 적의 함대가 노 저어 다가오는 환청에 시달리는 저녁이나,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숙사 방에서 요를 적시는 식은땀의 한기에 깨어나는 새벽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주 조선소를 돌아보았다.
배는 살아 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과 협선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힘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힘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써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가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함경도 국경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나는 승진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종팔품이었다. 종팔품 수군 만호가 되어 남해안 발포진에 부임했을 때, 처음 보는 바다는 외면하고 싶도록 두려웠다. 나는 바다와 맞선다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고, 그 위에서 적과 싸운다는 일도 내용과 질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는 다만 건널 수 없고, 손댈 수 없는 아득함으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때 발포진은 남루하고 쇠락한 포구였다. 갯가였지만 낡은 고기잡이배 두어 척이 뻘밭에 처박혀 있을 뿐, 밭농사로 연명하는 백성들은 야위어서 눈이 커 보였다. 다만 물과 뻘과 하늘뿐이어서, 사직의 그림자는 자취도 없었다. 거기는 아무의 나라도 아닌 것처럼 차고 스산했다. 백성들은 가렴주구의 혈세를 소잔등의 짐처럼 짊어지고 낮게 엎드려 있었다. 만호진은 석축이 무너져내렸고, 석축이 끝나는 물가에 양쪽 노가 모두 부러져버린 판옥선 2척과 구멍 뚫린 협선 10척이 시퍼런 물이끼를 뒤집어쓴 채 묶여 있었다. 그것이 만호진 수군의 전부였다.
그때 발포 만호진의 배들은 싸움의 도구라 하기에는 눈물겨웠으나 나는 그 깨어진 판옥전선을 들여다보면서 처음으로 배의 몸과 나의 몸을 동일한 조건의 목숨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물 위에서 나아가고 물러서는 일은 모두 다 몸의 일이었고, 배와 몸이 다르지 않았다. 임진년의 옥포, 한산도, 안골포에서도, 정유년의 명량에서도 배와 몸은 다르지 않았다.
명량 싸움에서 돌아온 판옥전선들 중 3척을 우수영 조선소에 끌어다 놓고 해체했다. 이음새가 삐걱거렸고 밑창이 썩어 있었다. 해체된 목재들 중 쓸 만한 것들을 골라서 작은 협선을 만들게 했다. 섬의 나무들은 키가 작고 구부러져서 목재로 쓸 수가 없었다. 송진만을 뜯어오게 했다. 거제도에 높고 곧은 소나무숲이 좋았으나 거제도 소나무는 적의 배에 쓰일 것이었다. 연안의 해송을 베어냈고 안면도에 군사를 보내 홍송을 베어 뗏목으로 끌고오게 했다.
조선소에서 나는 때때로 목수들의 일을 눈여겨 들여다보았다. 목수들은 둥근 고임목을 괴고 그 위에 선체를 만들어나갔다. 고임목은 선체를 진수시킬 때 바퀴 구실을 했다. 배 밑창에 목재를 댈 때 이음새에 송진을 처발랐다. 목재를 포개서 붙일 때는 나무못을 박았다. 목을 수직으로 박지 않고 비스듬히 박아 위아래를 관통시켰고 남은 못대가리를 대패로 밀어냈다. 이물과 고물을 얹을 때는 나무못을 쓰지 않고 목재의 접합부를 파내서 사개를 물렸다. 갑판은 대청마루를 깔듯이 장귀틀에 잇대서 목재를 물려나갔고 갑판 밑에 두꺼운 삼베를 깔았다. 대나무 속을 긁어내서 죽처럼 만든 뱃밥을 모든 틈새마다 이겨넣었다. 송진기가 많은 목재는 늘 물에 닿는 아래쪽에 썼고 결이 촘촘하고 단단한 박달나무로 멍에를 박았다. 참죽나무 가운데 토막을 다듬어서 노를 깎았다.
목수들이 배를 만들어내는 일은 사람의 몸을 빚어내는 일과 흡사했다. 싸우는 바닷가에서 싸움배를 만들 때도, 목수들의 대패와 톱은 연장으로서 평화로워 보였다. 우수영 통합 조선소에서 연장과 무기 사이의 거리가 먼 것인지 혹은 가까운 것인지 나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전선 7척을 진수시키던 날도 나는 그 거리를 가늠하지 못했다. 진수하던 날 새 배에서는 송진 향기가 났다. 목수들이 뱃전에서 시루떡을 바다에 던졌다. 군관들이 새 배를 끌고 나가 연안을 한 바퀴 돌며 총통을 쏘아댔고, 장졸들이 배 위에서 함성을 질렀다. 나는 우수영 쪽 물가에 앉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