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에서, 나는 이긴 것인가. 헤아릴 수없이 많은 적들이 명량으로 몰려왔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이 명량에서 죽었다. 남동 썰물에 밀려갔던 적의 시체들이 다시 북서 밀물에 밀려 명량을 뒤덮었다.

 

죽을 때, 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 적선이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 아래에서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 죽어서 물 위에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적어도,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명량에서의 일들을 적은 장계를 조정에 보냈으나 한 달이 넘도록 유시가 없었다. 종사관 김수철이 나에게 제출한 장계 초안은 정직했고, 정직한 만큼 어리숙했다.

 

김수철의 초안은 사실에 입각하려고 애썼고,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들을 분명히 구분했다. 10만쯤으로 되어 보이는 적병들이 몰려왔다가 8만쯤으로 되어 보이는 적병들이 죽었고 적선 1백여 척을 깨뜨렸다고 김수철은 썼다.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 떴으나 전투 상황이 급박하여 다만 머리 여덟 통을 수습해서 도원수부로 보냈다고 김수철은 글을 끝맺었다. 나는 김수철의 초안을 대폭 수정했다. 적병의 숫자를 모두 지웠고, 포격과 불화살로 깨뜨린 적선은 30척이며, 적의 수급 여덟을 얻었다고 고쳤다. 그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깨어진 적선이 얼마인지 헤아릴 길은 없었으나 아군의 공격으로 깨드린 적선은 30척이었고 나머지는 물살에 휘말리면서 적선들끼리 부딪혀 깨어졌다.

 

깨어지고 불타면서 경상 해안 쪽으로 밀려난 적선의 적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따라가보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전투 상황이 급박하여 죽어서 뜬 적병들의 머리를 일일이 벨 수 없었고, 수급 챙기기에 부지런했던 원균도 이미 죽고 없었다. 죽은 적병의 머리 여덟을 챙겼는데, 그것들은 모두 아군의 배로 넘어들어 왔다가 갑판 위에서 칼을 맞아 죽은 자들이었다.

 

임진년에 여러 포구에서 이겼을 때, 매번 적병의 숫자를 장계에 써 보낸 것이 5년이 지난 정유년에 조정에서 문제가 되었다. 전공을 허위로 보고해서 임금을 기만하고 조정을 능멸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죽어야 할 죄목의 하나였다. 견내량에서 이겼을 때부터 나는 장계에 적병의 숫자를 적지 않았다. 그날 견내량 싸움을 끝내고 한산 통제영으로 돌아와 장계를 쓸 때, 나는 그 숫자가 어느 날 나를 죽이게 되리라는 예감에 몸을 떨었다. 그날 밤 나는 종사관을 물리치고 밤새도록 혼자 장계를 썼다.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한산 통제영에서 그리고 그 후의 여러 포구와 수영에서 나는 자주 식은땀을 흘렸고, 때때로 가엾고 안쓰러워서 칼을 버리고 싶었다.

 

명량 전투에 관한 소문은 내가 보낸 장계의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그 소문은 명나라 총병부의 정탐들이 퍼뜨리는 것 같았다. 나는 등골이 으스스했다.

 

명량의 장계를 보낸 지 두 달 만에 논공행상이 내려왔다. 선전관은 오지 않고, 조정의 명을 받들어 도원수부가 시행했다. 거제 현령 안위가 정삼품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고 전투에 참가했던 여러 읍진 수령과 군관들이 승진했다. 나에게는 상금으로 은전 스무 냥을 보내왔다. 스무 냥의 무게와 질감은 섬뜩했다. 그 스무 냥 속에서 남쪽 바다를 들여다보는 임금의 눈은 가늘게 번뜩이고 있었다.

 

스무 냥이 내려온 지 이틀 뒤에, 임금이 보낸 선전관 이원길이 목포 앞바다 고하도 수영에 도착했다. 이원길은 수하를 거느리고 병영 막사 공사장까지 나를 찾아왔다. 서울 출신 문관인데, 바다를 평생 처음 본다고 했다. 몸매가 가냘팠고 흰 손가락이 길었다. 먼 길을 온 사람 같지 않게 그는 의관이 반듯했고 여독의 기색이 없었다. 수군 병영의 온갖 너저분한 풍경에 그는 자주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공사장 천막에서 그를 맞았다. 나는 인사했다.

 

“객고가 크시겠소. 전하께서 수군을 이처럼 염려하여 주시니 감읍할 뿐이오.”

 

“전하의 근심이 실로 깊소이다. 달아난 배설 말이오.”

 

명량 전투 직전에 탈영 도주한 경상 우수사 배설을 체포해서 끌고가는 것이 임무라고 그는 밝혔다. 그가 데리고 온 부하들 중에는 무관들이 섞여 있었다. 배설은 이미 수군에서 도망쳤는데, 배설을 체포하는 일로 선전관이 남해의 수군 수영에까지 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설은 이미 달아났지 않소? 배설을 잡으려면 이리로 오실 게 아니라 그의 본가 마을로 가셔야 하지 않겠소? 경상도 성주 말이오.”

 

“통제공,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소이다. 성주에도 군사들을 보냈으나 잡지 못했소. 배설이 성주에 들어온 흔적도 찾지 못했소. 배설이 비록 달아났다 하나 본래 담력 있는 무장이었소. 따르던 장졸들도 많았던 것으로 아오. 이자가 달아나서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전하의 근심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오.”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 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

 

이원길은 열흘 동안 수영에 머물렀다. 이원길은 데리고 온 수하들을 풀어 병영 안을 모두 뒤졌고 수영 인근 백성들의 마을 헛간까지 뒤졌다. 이원길은 명량 전투 이전과 이후의 장졸들의 숫자를 점검했고 각 읍진의 탈영자 숫자를 확인했다. 이원길의 수하들이 수영의 모든 군관들을 불러서 배설의 탈영 경위와 탈영 직전 상황을 수사했다. 이원길의 수사의 초점은 배설이 수영에서 탈영했느냐 아니냐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원길은 귀로에 우수영, 벽파진, 삼지원까지 뒤지고 돌아갔다.

 

나는 돌아가는 이원길을 전송하지 않았다. 이원길이 돌아가는 날짜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날 나는 목수들을 데리고 앞 섬의 산속으로 들어가 신축 막사에 쓸 목재를 실어내고 있었다. 산속 가파른 비탈에서 목수 한 명이 굴러내리는 나무에 깔려 죽었다. 내 종사관 김수철이 돌아가는 이원길 일행에게 점심을 차려내고 건어물을 싸주어 보냈다.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을 받았다. 도원수부의 행정관이 면사첩을 들고 왔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글자 밑의 옥새는 인주가 묻어날 듯이 새빨갰다.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 적은 오지 않았다. 명량에서 흩어진 적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경상 해안의 여러 포구에서 다시 분산된 중심들을 도모하고 있다는 소문만이 흘러들어 왔다. 소문은 비 오는 바다 위의 안개와도 같았다.

 

종사관 김수철이 저녁때 막사 신축 공정과 수군 징모 실적을 보고하는 일로 내 숙소에 들었다. 서안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김수철은 실눈을 뜨고 담벽에 걸린 면사첩을 들여다보았다. 김수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었을 때 김수철은 내 함거의 뒤를 따라 서울까지 걸어서 올라왔었다. 내가 하옥되었을 때, 김수철은 임금을 대면했다. 일개 지방 수영의 종사관에 불과한 그가 어떻게 임금을 대면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 영의정 류성용이 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김수철은 임금 앞에서 이마로 대전 마루를 찧으며 울었다. 나를 심문하던 위관들이 김수철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때 김수철은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전하, 통제공의 죄를 물으시더라도 그 몸을 부수지 마소서. 전하께서 통제공을 죽이시면 사직을 잃으실까 염려되옵니다.”

 

임금이 대답했다.

 

“너희들이 남쪽 바다에서 사직을 염려했느냐?”

 

김수철은 수영을 이탈한 죄로 곤장 50대를 맞고 풀려났다.

 

김수철의 시선은 오랫동안 면사첩에 박혀 있었다. 그가 눈물을 떨구었는데, 그의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환갑연의 덕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으리, 오래오래 사십시오.”

 

“알았다. 내 그럴 작정이다.”

 

“보고는 내일로 미루리다. 편히 주무십시오.”

 

“그래라. 피곤하니 물러가라.”

 

김수철은 들고 왔던 문서 두루마리를 펼치지 않은 채 그대로 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