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북서풍이 몰고 가는 눈보라가 바다를 덮었다. 먼바다에서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부딪힐 때마다 눈보라는 뒤엉키며 회오리쳤고, 잿빛 섬들이 회오리 속으로 불려갔다. 수면을 훑는 바람이 밀물로 달려드는 물결을 거꾸로 때리면 뒤집히는 물결이 곤두서면서 흰 칼날들이 일어섰다. 포구에 묶인 배들이 서로 뱃전을 부딪히면서 삐걱거렸고, 배를 끌어올린 장졸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 몸을 녹였다.
종사관 김수철이 보름 동안 연안의 읍진과 내륙의 관아를 돌아왔다. 김수철은 서면으로 보고했다. 보고서를 살피는 일에 하루가 걸렸다. 마루 너머에서 겨울 바다는 길길이 뛰었고, 댓돌 앞에서 창을 든 위병은 바다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김수철의 보고서는 마른 붓을 휘둘러 급히 쓴 글씨였다.
녹진 만호가 시체 230구를 거두어 묻었다. 피난민과 적병의 시체가 섞여 있었다. 녹진 수영 뒷담이 10자쯤 무너졌다. 녹진 군량은 닷새분 남았다. 색리 2명이 달아났다. 만호가 달아난 색리를 잡지 못했다.
벽파진에서 시체 50구를 태웠다. 시체가 탈 때 중이 염불을 했다. 벽파진 군량이 끝났다. 수졸과 군관 2명이 섬의 안쪽으로 달아났다.
금갑진에 역질이 돌았다. 백성들이 토하고 쌌다. 시체 100여 구를 묻었다. 모두가 백성들이었다. 금갑진 둔전에 겨울 배추 싹이 올랐다. 둔전에 배속된 백성들이 역질로 죽었다. 금갑 무당이 굿을 했다.
용장산 봉수대가 무너졌다. 용장산에서 벽파진으로 오는 통신 축선이 끊겼다. 수졸들은 달아났다.
삼지원 선착장이 무너졌다. 여름에 개울이 넘쳐 수영 뒷담이 무너졌다. 삼지원 뒷산 옥매봉 봉수대가 무너졌다. 수졸들이 달아났다.
옥도에서 피난민의 계집들과 수군 장졸들이 뒤엉켜 음란한 짓을 했다. 전라도 계집과 경상도 계집이 제 고장 노래를 불렀다. 옥도 군관들이 백성의 개를 빼앗아 잡아먹었다.
해남 어란진 선착장이 무너졌다. 적들이 해남을 떠난 뒤에도 백성들은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적들이 마을을 불질렀다. 개울물이 시커맸다. 해남 백성들 사이에 '이순신은 서해로 갔다. 적들은 다시 올 것이다'는 유언이 돌았다.
수의도 수졸 30명이 작당해서 배를 타고 달아났다. 군관이 뒤쫓아갔으나 잡지 못했다. 만호가 군관을 매질했다. 매 맞은 군관이 달아났다. 배도 찾지 못했다.
광양에 적들이 상륙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조선 임금이 이미 항복했고 가토의 군대가 서울을 접수했으며, 서울의 미인들은 가토의 첩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경상 연안에서 전라 연안 쪽으로 번져왔다.
도양 백성들이 수영을 습격해서 군량 30가마를 실어냈다. 백성과 군관이 함께 달아났다. 달아나던 백성들 12명이 죽은 염소를 끓여 먹고 설사 끝에 죽었다.
당포진 둔전에 겨울 대파 싹이 올랐다. 둔전을 맡은 백성들이 역질로 죽어서 묻었다. 당포 군관이 선비 집 유부녀를 강간했고 여자는 자살했다. 무당이 굿을 했다.
매포 군관들이 밤마다 여염의 계집들을 수영 안으로 불러들였다. 계집들은 머리에 술과 안주를 이고 있었고 아전들이 계집들을 뒤따라갔다.
방포진 해자가 무너졌고, 포작선 2척이 뻘밭에 얹혔다. 방포진 백성들이 죽은 적병의 옷을 벗겨서 입었다.
영암, 나주, 곡성, 함평에 도적이 끓어 백성들의 가을 곡식을 빼앗아갔다. 피난민들이 빈 논의 벼를 거두었는데, 반 이상을 참새가 먹었다.
함평에서 수군에 배속된 장정 50명을 육군이 몰아갔다. 도원수가 보낸 군사가 열흘 동안 함평을 뒤졌다. 함평 관아 동헌 객사가 무너졌다. 현감이 매일 밤 관기를 끼고 술을 마셨다.
나주에 역질이 돌았다. 백성들이 역질에 걸린 자들을 움막에 모아놓고 불질렀다. 죽은 시체와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을 함께 태웠다. 나주의 여러 고을들이 일손이 없어 추수하지 못했다. 피난민들이 곡식을 걷어갔다.
가리포 군량이 3백 석이라고 보고되었으나 곳간은 비어 있었다. 빈 곳간에 쥐떼들이 끓었다.
사대포 현감이 달아났다. 색리가 소달구지에 군량을 싣고 현감을 따라갔다.
조도에 피난민 3백이 뗏목을 타고 들어왔다. 피난민과 원주민들이 어장을 놓고 다투다가 배가 뒤집혀 피난민 5명이 죽었다.
월명포 무기고 문짝이 떨어졌고, 서까래가 내려앉았다. 돌쩌귀가 썩어서 주저앉았고 쥐가 갈고리 끈을 쏠았다.
강포의 고기잡는 백성들이 밤마다 수군 경계수역 안으로 넘어들어 갔는데 수군들이 막지 않았다. 강포 수군들이 군량으로 밥을 지어 끼니때마다 마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반찬은 백성들이 잡아온 물고기였다. 강포 계집들이 함께 먹었다.
달모산 아래 벽진 마을 백성들이 적과 밀통했던 선비 2명을 붙잡아 낫으로 찍어 죽이고 선비의 딸을 강간했다.
벽진에 경상 연안 쪽 피난민 50여 명이 들어왔다. 벽진 백성의 딸과 피난민의 아들이 무너진 향교 마당에서 혼인했다.
몽포 백성들이 보리를 심고 무씨를 뿌렸다. 흘레가 순조로워 염소떼가 크게 늘었다.
금진포 백성들이 적선의 파목을 끌어모아 뗏목을 만들어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뗏목이 뒤집혀 백성 5명이 마을로 돌아오다가 죽었다.
군내에서 3년 만에 5일장이 섰는데, 겨울 미나리, 좁쌀, 겉보리, 찐 쌀, 묵은 된장, 미역, 매생이, 감자가 나왔다. 닭 2마리와 강아지 1마리를 바꾸어갔고 달걀 1개에 감자 3알씩 바꿔갔다.
용장 봉수대가 무너져 현감이 백성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저녁에 현감이 내려오지 않자, 마을에 남은 백성들이 주먹밥을 싸가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옥수 무당들이 시체 50구를 묻은 자리에서 씻김굿을 했다. 수졸들이 굿판으로 몰려가 국밥을 얻어먹었다. 굿이 끝나는 새벽에 죽은 자들의 귀신이 빨랫줄에 붙어서 끽끽 울었다.
영암에서 군량 2백 석을 수영으로 보내려고 마차에 실었다. 군수가 도적이 무서워서 군사 10명을 마차에 딸려 보냈다.
화도진에서 포구에 묶인 포작선 5척이 바람에 쓸리다가 부딪혀 깨졌다. 화도진에 겨울 땔나무가 없어서 만호가 옥도로 배를 보내 나무와 볏짚을 실어왔다. 화도진 수졸들이 볏짚을 엮어서 백성들의 집을 덮어주었다.
미호 군관 셋이 탈영했다. 만호가 군사를 풀었으나 잡지 못했다. '이순신이 다시 조정으로 잡혀갔다'는 유언이 미호 백성들 사이에 떠돌았다. 탈영한 군관이 그렇게 말했다고, 백성들이 말했다고, 향리가 말했다.
하루 종일 물의 칼들이 일어섰다. 저녁 바다는 거칠었다. 인광의 칼날들이 어둠 속에서 곤두서고 쓰러졌다. 캄캄한 바다에서 칼의 떼들이 부딪혔다. 물보라가 수영 안마당까지 날아들었다. 섬도 수평선도 보이지 않았다. 연안의 읍진들이 어둠 속으로 불려가서 닿을 수 없이 멀어 보였다. 밝는 날 녹진, 금갑진, 벽파진, 남포, 가리포가 그 오목하고 잘룩한 포구에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인지 믿기 어려웠다.
배를 끌어올려 놓고 종일 종사관 김수철의 복명 보고서를 읽었다. 김수철이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진도 구기자술 한 되와 마른 가자미를 가져왔다. 김수철과 늦게까지 마셨다.
김수철은 곡성의 문관이었는데 임진년에는 의병장 김성일의 막하에 들어가 금오산에서 이겼다. 예민하고 담대한 청년이었다. 문장이 반듯하고 행동이 민첩했다. 입이 무겁고 눈썰미가 매서웠으며, 움직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김수철은 졸음을 참고 반듯이 앉아서 핥듯이 마셨다.
“수철아, 읍진이 다 무너지는 것이냐?”
“본래 무너져 있던 세상입니다.”
“수철아, 죽지 마라. 명령이다.”
“네 나으리, 읍진에 무 싹이 올라오고 있으니… 이제 주무실 시간입니다.”
김수철을 내 방에 재웠다. 보름 만에 귀임한 김수철은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새벽에 김수철이 이불을 걷어찼다. 나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동틀 무렵에 코피를 쏟았다. 뒷골이 당기면서 더운 피가 쏟아졌다. 종을 불러 피를 닦게 했다. 구들이 식어 불을 더 때게 했다. 바다는 새벽까지 길길이 뛰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