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 밀물에 올라탄 적의 함대는 빠르고 가벼웠다. 적은 원양을 건너가는 어족의 무리처럼 물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적은 십렬종대의 이동 대열로 다가왔다. 적은 벽파진 앞바다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명량으로 접근했다. 선단마다 빨간 기, 노란 기, 흰 기, 검은 기가 펄럭거렸다. 단위 부대들을 끌어모은 연합 함대였다. 적의 배들은 갑판 위 누각에 울긋불긋한 칠을 했고, 이물과 고물에 금박을 입혔다. 출렁거리며 다가오는 적의 이물에서 대낮의 햇빛은 번쩍거렸다. 적의 대열은 찬란했다. 알 수 없는 적의의 신들이 살고 있는 무수한 신전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누각 높은 배들마다 <나무묘법연화경>의 비단 깃발이 나부꼈다. 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깃발들의 함성으로 다가왔다. 그 깃발 위 허공으로 적의 살기는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무지개는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바람의 흐름이 끊어질 때마다 우수영 쪽 산꼭대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울부짖는 피난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몸이 불에 타들어가는 자들의 울음처럼, 그 울음은 맹렬했고 다급했다. 벽파진 앞바다에서, 적의 항로 수정은 정확했다. 적들은 흰 새똥에 뒤덮여 또렷한 석도의 봉우리와, 멀리서 칼날처럼 치솟은 진도 금골산 정상을 향해 지표로 삼아 정확히 방향을 틀어 명량 동쪽 어귀로 들어왔다. 긴 하루가 남아 있는 정오 무렵이었다.

 

적들은 더욱 다가왔다. 일자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적선들에서 함성이 일었다. 적의 제1열과 제2열이 합쳐지면서, 양쪽으로 날개를 벌리기 시작했다. 적은 선두가 전투 대형으로 바뀌었다. 물은 적의 편이었다. 적은 휩쓸듯이 달려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의 힘이 내 몸에 느껴졌다. 나는 뼈마디가 으스러지듯이 아팠다.

 

물러서야 한다고 내 속에서 내가 아닌 내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진을 물려라.”

 

쇠나팔이 짧게 여러 번 울렸다. 격군들이 노를 멈추었다. 일자진은 물결에 밀려 뒤로 흘렀다. 노를 몰아치는 적의 다급한 북소리가 들렸다. 적들의 노가 맹렬한 기세로 물을 헤쳤다. 적의 제3열이 앞쪽으로 나와 양쪽 날개에 가세했다. 해협이 좁아, 적의 날개는 폭이 넓지 못했다. 적은 날개를 서서히 오므려가며 달려들었다.

 

“더욱 물려라.”

 

일자진은 다시 뒤로 흘렀다. 적은 명량 깊숙이 달려들었다. 적의 날개를 피해서 물러선 만큼 적들은 달려들었고, 끌어들인 만큼 다시 걷어내야 할 것이었다. 명량의 동쪽 어귀에서 서쪽 어귀에 이르는 예순 마장의 물길에 적의 대열은 온전히 들어와 있었다. 벌려진 선두의 날개 뒤로 적은 긴 종대를 이루었다. 적의 종심(縱心)은 깊었으나, 역류하는 물결 위에서 나는 적의 종심을 깊이 찌를 수 없었다.

 

일자진 뒤쪽으로 임하도 쪽 바다는 갑자기 넓어진다. 거기서, 다시 넓어지는 적의 날개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물러설 자리는 넓었지만, 물러서서 살 자리는 없었다. 적의 선두 날개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북서 밀물은 기세를 죽이기 시작했다. 양쪽 연안으로 밀려났던 와류들이 가운데로 다시 몰리면서 물결은 낮아졌다. 이물 쪽 기둥에 몸을 묶은 적병들이 이쪽을 향해 조총을 겨누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역류를 앞둔 바다는 문득 호수처럼 고요해졌다. 그 적막 속에 바다는 다시 밀물에서 썰물로 뒤바뀌는 존망의 격랑을 예비하고 있었다. 이제 밀어붙일 것이었다.

 

“닦아라. 적의 제일열을 부수라.”

 

쇠나팔이 길게 울렸다. 대장선에서 화살이 나르고 화포가 터졌다. 적들이 함성을 질렀다. 적의 날개가 점점 좁혀졌다. 총탄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더욱 닦아라.”

 

함대는 따라오지 않았다. 중군장 김응함과 거제 현령 안위는 두 마장 정도 뒤로 물러서서 다만 고요한 바다에 떠 있었다. 노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베어야 했으나 배를 돌릴 수 없었다. 적의 날개는 연안 쪽에서 빠르게 좁혀들고 있었다. 초요기를 세웠다. 김응함이 겨우 다가왔다. 김응함이 내 배로 건너왔다. 김응함의 배 좌현에서 적탄에 맞은 사부 2명이 물 속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김응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응함아, 여기는 사지다. 내 칼에 죽느니 나아가서 적의 칼에 죽어라.”

 

제 배로 건너간 김응함은 격군을 질타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안위가 다가왔다. 대장선으로 건너와서 안위는 갑판에 꿇어앉았다. 나는 말했다.

 

“안위야, 너를 죽여서 길을 열겠다. 네가 군법에 죽겠느냐? 물러서면 살 듯싶으냐?”

 

안위가 몸을 떨었다. 안위는 제 배로 건너갔다. 안위의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칼을 빼든 적들이 갑판 위에 도열해서 함성을 질렀다. 칼을 든 적들은 월선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의 갈고리가 날아와 뱃전에 걸렸다. 사부들이 갈고리 줄을 끊어냈다. 갈고리는 계속 날아왔다. 적들은 20명씩 조를 짜서 한꺼번에 조총을 쏘아댔다. 총알은 무더기로 날아와 방패에 박혔다.

 

“붙지 마라. 떨어져서 쏴라.”

 

군관들이 배에서 배로 고함쳤다.

 

적의 왼쪽 날개 끝에 안위의 배가 포위되었다. 적선 3척이 안위의 배로 달려들었다. 안위의 우현 노가 여러 자루 부러져 있었다. 격군들까지 갑판 위로 올라와 뱃전으로 기어오르는 적들을 찌르고 베고 돌로 찍었다.

 

안위의 배에서 임준영은 우현을 맡고 있었다. 임준영은 창으로 뱃전에 다가오는 적을 찍었다. 적의 머리에 박힌 창끝이 빠지지 않자 임준영은 창을 버렸다. 임준영은 큰 낫으로 아래쪽에서 기어오르는 적의 목을 걷어냈다. 임준영의 팔은 쉴새없이 쳐나갔다. 노가 부러진 안위의 배는 적을 헤치고 나오지 못했다. 안위는 그 포위망 속에서 힘이 다하면 자진할 작정인 듯했다. 안위의 배는 위태로웠다. 나는 안위의 배 쪽으로 다가갔다. 안위는 한 마장쯤 왼쪽에 있었다. 적선 한 척이 안위의 고물을 부수고 있었다. 총통의 조준을 적선의 우현 아래쪽으로 집중시켰다. 적선은 기우뚱했다. 선체에 구멍이 뚫리면서 적선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적의 노졸들이 노를 버리고 갑판 위로 뛰어나왔다. 불화살 30여 대가 적선에 꽂혔다. 적선의 갑판과 선실에서 불길이 넘실거렸다. 적의 돛폭에도 불길이 일었다. 물 위로 뛰어내린 적병들이 부서진 널빤지에 붙어서 안위의 배로 덤벼들었다. 적들은 너무 많았다. 내가 가진 화살과 포환의 숫자보다도 적들은 훨씬 더 많았다.

 

장흥 백성 정명설과 해남 백성 오극신이 아들들을 배에 태우고 싸움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배는 어선이었다. 그들은 가병(假兵)으로, 일자진 뒤쪽 후방에 배치해 둔 어선들이었다. 오극신은 내 대장선의 좌현 쪽을 막아섰다. 오극신은 물 위에 떠서 대장선 쪽으로 접근하는 적병들을 돌로 찍어냈다. 아비가 노를 잡고 아들이 돌로 찍었다. 좌현 쪽으로 오는 적들을 걷어내고 오극신은 더 멀리 나갔다. 오극신이 적선에 다가갔을 때 칼을 빼든 적병 둘이 오극신의 배로 뛰어내렸다. 오극신은 적의 칼에 베어져 물 위로 고꾸라졌다. 오극신의 아들이 아비를 벤 적병의 머리를 돌로 찍었다. 다른 적병 한 명이 오극신 아들의 허리를 베었고, 어선은 뒤집혔다. 물결은 고요했다.

 

정명설은 어선을 저어서 안위의 배 쪽으로 다가갔다. 널빤지에 매달린 적병들이 안위의 고물 쪽으로 몰려들었다. 정명설이 노를 잡고 두 아들이 작살로 적병의 머리를 찍어댔다. 적병이 난간에 매달리자 어선은 기우뚱했다. 적탄이 정명설의 가슴에 박혔다. 아들이 쓰러진 아비를 어창 위에 눕혔다.

 

“사내야 사내야, 사내가 죽어야 한다.”

 

정명설은 두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죽었다. 큰아들이 노를 잡고, 죽은 정명설의 어선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물결은 여전히 고요했다. 격군들은 기진맥진했다. 이물을 돌릴 때마다 물을 밀어내는 격군들의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떨림이 내 몸에 느껴져왔다. 다시 격군을 교대시키고 나팔로 흩어진 진을 수습했다.

 

안위의 배가 포위를 뚫고 나왔을 때, 물살은 일어서기 시작했다. 적의 후미 너머 먼바다에서, 다시 거꾸로 돌아서는 보름 사리의 썰물이 대낮의 햇빛 속에서 반짝였다. 그 물비늘 빛나는 먼바다까지, 이 많은 적들을 밀어붙이며 나는 가야 할 것이었다. 거기서 존망의 길이 어떻게 뻗어 있을 것인지는 나는 알 수 없었다. 조금씩 일렁이던 물길의 가운데가 허연 갈기를 세우며 일어섰다. 물결은 말처럼 일어서서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살을 버티려는 적들의 노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밀어라. 힘껏 밀어라.”

 

밀어라… 밀어라… 밀어라…

 

쇠나팔이 길게 울었고, 난타로 몰아대는 북소리가 울렸다. 불화살과 포탄이 날아갔고, 적의 총탄이 무더기로 날아왔다. 적의 선두가 주춤거리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밀집대형을 이룬 적의 대열이 거꾸로 흐르는 역류에 휩쓸리면서 서로 부딪혔다. 적선들의 노가 무수히 부서져나갔다. 노가 부서진 적선들은 방향을 돌리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밀리는 적들은 점점 더 좁아지고 빨라지는 역류의 물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더욱 밀어라. 멀리 쏴라.”

 

불화살이 멀리 날아갔다. 중위 이후의 먼 적선들에서 연기와 불길이 솟았다. 뒤로 밀리는 적선들이 불타는 적선과 부딪히면서 깨어져나갔다. 적병들은 물 위로 뛰어내렸다. 녹진 앞바다는 명량의 가장 좁은 멱통이었다. 거기서 적의 밀집대형은 아수라로 뒤엉켜 뒤로 흘렀다. 적의 뒤가 나의 앞이었다. 적의 후미를 깨뜨릴 수만 있다면, 뒤로 밀리는 적은 깨어진 적의 쓰레기에 부딪혀 깨질 것이었고, 그 쓰레기에 또 다른 적선이 부딪힐 것이었다.

 

“다가가라. 다가가서 멀리 쏴라.”

 

물 위로 뛰어내린 적병들은 헤엄치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렸다. 폐사된 물고기떼처럼 적병들은 바다를 가득 메우고 떠내려갔다. 사부들은 물 위를 쏘지 않았다.

 

녹도 만호 송여종은 내 왼쪽 열 마장 너머에서, 뒤로 밀리는 적의 삼층 누각선을 붙잡아 족치고 있었다. 삼층 누각에 금박과 단청을 입혔고, 수많은 깃발이 펄럭거렸다. 송여종은 누각에 불을 질러놓고 적선의 왼쪽으로 화력을 집중시켰다. 반쯤 기운 선체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그것이 적장 구루지마의 배였다. 구루지마는 죽어서 물 위에 떴다. 구루지마의 시체는 내 배 쪽으로 떠내려왔다. 사부 김돌손이 갈고리를 던져 구루지마의 시체를 건져올렸다. 갑옷의 상의가 찢어져나갔고 화살 다섯 대가 등판에 꽂혀 있었다. 송여종의 솜씨였다. 그는 도깨비 뿔 같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투구를 씌운 채 목을 베었다. 구루지마의 머리를 대장선 돛대 꼭대기에 걸고 적의 정면으로 향해 나아갔다. 장졸들의 함성이 일었고, 쇠나팔이 높게 울렸다. 연안의 산꼭대기에서 피난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적들은 뒤엉켜서 부서지면서 밀렸다. 나는 일자진으로 밀어붙였다. 노가 부러진 적선들이 물살 위에서 가랑잎처럼 맴돌며 위로 밀렸다. 연기에 가려 적의 후미는 보이지 않았다. 격군을 자주 교대시켰다. 명량 서쪽 어귀에서 아직도 온전한 적의 후미는 이물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추격할 수 없었고, 화살을 보낼 수도 없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불타는 적선들이 어두워오는 수평선 쪽으로 밀려갔다. 살아남은 적들은 저무는 해남 바다 쪽으로 달아났고, 죽은 적들의 시체는 연안으로 몰리는 와류에 휩쓸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이었다.

 

다시 거꾸로 돌아서는 물살은 북서 밀물로 일어서서 목포 쪽으로 몰려갔다. 저물어오는 바다는 추웠다. 나는 벽파진으로 군사를 물렸다. 거기서 인원을 점검했다. 더러 죽고, 많이 살았다. 벽파진에는 남겨둔 군량이 없었다.

 

“돌아가자. 마침 물길이 돌아섰으니.”

 

나는 군관들에게 말했다. 함대는 다시 일렬종대로 펼쳐졌다. 나는 목포 쪽으로 몰려가는 북서 밀물 위에 올라탔다. 죽은 적병의 시체들을 헤치고 함대는 북서진했다. 깃발을 내리고 돛을 접었다. 물살이 함대를 목포 앞 암태도까지 데려다 줄 것이었다. 어두워지는 숲으로 새들이 돌아갔다. 목포 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펼쳐졌다. 해남 쪽 바다에 보름달이 떴다. 돌아가는 함대는 노을 속으로 항진하는 듯싶었다. 허기진 사부들이 갑판에 주저앉아 마른 미역을 씹었다. 새떼들이 끝없이 배를 따라왔다. 다시 거꾸로 흐르는 북서 밀물 위에서 나는 몹시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