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영의 가을 물빛은 날카로웠다. 먼 산과 먼 섬들의 갈묏빛 능선이 도드라졌고, 바람의 서슬은 팽팽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바다에서, 저녁마다 노을은 투명한 하늘 위로 멀리 퍼졌다. 적은 오지 않았다. 저녁 노을의 붉은 기운이 갑자기 검게 바뀌거나, 저무는 수평선 쪽에서 먼 섬들이 흔들려 보이면 비가 내렸다. 적은 몇 달째 오지 않았다. 먼바다 쪽에서 붉은 구름과 흰구름이 어지럽게 뒤엉키면 바람이 불었다. 망군들은 산꼭대기에서 일몰의 바다를 주시했다.

 

해남반도 끝에서, 이따금 적의 연기가 올랐다. 적의 척후가 진도 벽파진 앞바다에 나타나 나의 척후를 척후하였고 나의 척후가 적의 척후를 척후하였다. 해남, 강진, 여수와 그 너머 경상 해안 쪽으로도 망군과 척후를 보냈다. 더러는 배를 타고 갔고 더러는 육로로 갔다. 육로로 간 망군들은 적이 장악한 포구의 인근 산꼭대기에 올라가 적정을 염탐했다. 열흘 후부터 산발적인 보고가 도착했다. 첩보는 여러 읍진의 망군들을 통해 역송되어 왔다.

 

적은 분산되어 있었고, 여러 포구를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적은 중심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첩보가 엇갈리기는 했지만 경상 해안 쪽의 적은 전라 해안 쪽으로 이동하면서 해남반도 남쪽 어란진 일대에 새로운 중심을 도모하는 듯했다. 어란진은 우수영에서 한나절 물길이었다. 밀물의 앞자락에 올라타면 반나절이면 족했다.

 

딱히 어란진이 아니더라도, 적이 우수영 쪽으로 다가오면서 새로운 포진을 도모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적이 경상 해안 쪽 여러 작은 중심들을 해체하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망군과 척후들은 적에게 바싹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의 여러 중심들로부터 적의 군량과 화약은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이동은 확실해 보였다. 첩보는 일치했다. 군량의 이동은 대공세의 조짐이었다. 적은 기나긴 항해를 예비하는 모양이었다. 적의 장기 항해란, 목포 앞바다를 돌아서 서해로 북상하다가 전라, 충청의 서해안에 상륙하거나 아니면 한강 물줄기를 따라서 서울을 겨누는 전략일 수도 있었다. 망군 두 명이 기한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생포되었거나 투항했다면 나의 빈손은 적에게 노출되었을 수도 있었다. 진도 벽파진 쪽 망군들은 언제나 먼바다 쪽으로 돌아서 있었고, 망군의 목측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적들은 오고 있었다.

 

정유년 늦가을에 나는 교서를 받들고 우수영에 부임했다. 우수영은 진도와 마주보는 해남 쪽 바닷가 언덕이었다.

 

내 기나긴 관등과 관직명처럼, 우수영은 이름뿐이었다. 수영이 버려졌던 시절에, 백성들의 초가집과 논밭이 수영 주변에 들어차서 끼니때마다 삭정이 타는 연기 속에 보리밥이 익는 비린 향기가 퍼졌고 양지바른 남쪽 언덕은 남루했으나 평화로워 보였다. 이따금씩 대열을 이탈한 적들이 섬의 연안을 집적거리기는 했으나, 물 건너 진도는 아직도 맑은 땅이었고 백성과 농토가 온전했다. 진도로 흘러들어온 피난민들은 섬의 서쪽 연안을 따라 움막을 짓고 모여 살았다. 원주민들이 피난민들에게 마을 앞 어장을 나누어주었고 묵은 밭을 내주었다. 피난민이 들어간 지역은 누런 땅이 어느새 푸르게 바뀌었다. 겨울에도 무, 배추, 대파가 새파랗게 들을 덮었다.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진도 여자들은 바닷가 언덕에 모여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뛰고 노래했다. 우수영 쪽 여자들도 바닷가에서 둥글게 춤추면서 물 건너 진도 쪽 여자들에게 화답했다. 그 노래 소리는 수영 안까지 들렸다. 스스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명이 모질고도 신기하게 느껴져, 칼 찬 나는 쑥스러웠다. 적들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고 그 밖에는 말할 것이 없었다. 수졸들은 내가 연안을 돌면서 한두 명씩 끌어모은 자들이거나 칠천량 패전에서 흩어졌던 자들을 불러모은 무리들이었다. 거제 현령 안위, 미로항 첨사 김응함, 녹도 만호 송여종, 경상 우수사 배설 들도 우수영 관하로 들어와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칠천량 패전 이후 임지와 작전 구역을 적에게 빼앗긴 지방 수령들이거나 수군 지휘관들이었다.

 

우수영에 부임하던 첫날, 장졸들을 수루에 모아놓고 교서에 절까지 했다. 지방 수령과 수사, 여러 읍진의 만호들은 누각 위에 앉았고 병졸들은 누각 아래 마당에 가마니를 깔고 앉았다. 제주에서 보내온 소 3마리를 잡고 술 10말을 풀었다. 먼 읍진의 장졸들에게도 약간의 군량과 가축을 허락하여 먹게 했다. 내장과 선지를 수영 부근 백성들의 마을에 보냈다. 주린 장졸들은 걸신들린 듯이 먹어댔다. 군복을 제대로 걸친 자가 없었다. 그들은 다만 누린내 나는 음식에 껄떡거리는 피난민일 뿐이었다. 이미 멸망을 체험한 자들의 깊은 무기력이 고기 건더기를 넘기느라고 꿈틀거리는 그들의 목울대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국물을 넘기느라고 꿈틀거리는 그들의 목을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안위의 눈빛도 힘을 잃고 있었다. 안위는 내 시선을 피했다. 바다 쪽으로 돌린 그의 옆 얼굴은 광대뼈가 드러나 있었다.

 

경상 우수사 배설은 교서에 절하지 않았다. 배설은 심한 허리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배설은 수루 난간에 기대앉아서 이빨을 쑤셨다. 칠천량 전투 때, 배설은 원균의 휘하였다. 조선 수군의 일자진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그는 전선 10척과 수졸들을 포위망에서 빼내 진도로 물러섰다. 그 전선은 아직 나에게 인계되지 않고 있었다. 칠천량에서 물러설 때 그는 적들의 상륙이 임박한 한산 통제영에 불을 질렀다. 계사년 이후 내 통제영 본부 건물인 운주당도 그때 불타버렸다. 불탄 운주당 별실에서는 원균의 기생 12명이 그을린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나는 배설의 후퇴 경위를 조사하지 않았다.

 

“통제공, 무운을 비오.”

 

숙배례가 끝나고 교서를 거둘 때, 배설은 그렇게 말했다. 배설의 말은 전쟁의 밖에서 전쟁의 안쪽으로 보내오는 덕담처럼 들렸다. 배설은 잇새에 낀 고기 찌꺼기를 혓바닥으로 털어내 뱉었다. 그때, 나는 어느 날 배설의 후퇴 경위와 한산 통제영 방화 경위를 조사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겨우 그의 덕담에 대답해 주었다.

 

“존망의 길에, 운세란 없는 것이오. 아시겠소? 배수사.”

 

배설은 빙그레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통제공, 용맹할 때는 용맹하고, 겁을 낼 때는 겁을 내는 것이 병가의 전략이라 알고 있소만… 그게 바로 무운이라는 것 아니겠소.”

 

(이 자식 봐라…)

 

내 몸의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흔들리면서 솟구쳤다. 나는 침을 삼켜서 그 뜨거운 것을 몸 속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물었다.

 

“그래, 지금은 그 어느 때요?”

 

배설은 대답했다.

 

“허허, 그야 통제공께서 판단하실 일이 아니겠소. 저처럼 병든 몸이 어찌…”

 

나는 물었다.

 

“칠천량에서는 마땅히 겁을 내야 할 때였소?”

 

배설의 옆자리에서 안위의 얼굴은 얼어붙어 있었다. 배설은 대답했다.

 

“용맹과 겁은 흔히 같은 것이오. 다만 쓰일 때가 다를 뿐이오. 송장에 덮인 바다 위에서 목숨의 귀함을 깨닫는 것 또한 용맹이오. 용맹은 인(仁)에 가까운 것이오. 아시겠소? 통제공.”

 

(베어야 하나?)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징징징 우는 칼의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아시겠소 통제공,에서 배설은 내 어법을 흉내내고 있었다.

 

배설은 또 말했다.

 

“그게 오묘한 일이오. 이거다 저거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오. 그러니 병법 아니겠소. 칠천량에서 살아남은 것은 내가 빼돌린 전선과 수졸들뿐이오. 통제공께 다 드리리다. 그나마 통제공의 홍보이고 무운으로 아시오.”

 

(베어야 한다…)

 

등판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그가 진도의 어느 갯가에 감추어둔 10척의 전선을 생각했다.

 

(아직은 아니다.)

 

내 속에서 우는 칼을 나는 달랬다. 칼은 좀처럼 달래지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오래 주려 기진한 장졸들이 몇 잔 술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날 밤 경상 우수사 배설은 탈영해서 도주했다. 아침에 보고를 받았다. 전날 숙배례가 끝나고 장졸들이 임지로 돌아갈 때 배설은 아픈 허리에 침을 맞아야겠으니 육지에 머물러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허락했다. 배설은 그 길로 달아났다. 아침에 그가 달아난 목포 쪽으로 군사를 보냈다. 배설은 이미 추격권을 벗어나 있었다. 배설은 잡히지 않았다. 군사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진도에 군사를 풀어서 모든 연안 갯벌을 뒤졌다. 그가 감추어둔 전선 10척을 수습했다. 노가 몇 개 부러져 있을 뿐 배들은 온전했다. 총알자리도 그을린 자리도 없었다. 칠천량에서 배설은 전투 초기에 물러섰던 모양이다. 그날 배설은 잡히지 않았다. 도원수부에 서찰을 보내, 조선 팔도를 다 뒤져서라도 배설의 머리를 우수영으로 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도원수는 알았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그날 밤, 내륙 깊숙한 곳 남원이 함락되었다. 조선 관민 4천과 명군 4천이 전멸되었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흩어졌다. 남원을 무너뜨리고 나서 육지의 적들은 전주로 향했다. 밤새 바람이 불었고 새벽에 비가 내렸다. 배설을 잡지 못했다. 저녁 때 여종을 불러서 머리의 서캐를 잡게 했다.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배설을 잡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