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산하뿐이었다. 포구마다 부서진 전선 두어 척이 뻘밭에 밀려와 처박혀 있었다. 수리해서 쓸 만한 물건이 못 되었다. 불타다 만 선체는 널빤지 한 장 뜯어낼 것이 없었다. 나는 광양만에서 구례 쪽으로 걸었다. 적들이 해안에 상륙하자 피난민들이 내륙으로 몰려들었다. 거꾸로 내륙의 피난민들은 남쪽 물가를 향해 내려갔다. 양쪽의 피난민들이 길에서 마주쳐 서로 떠나온 곳의 형편을 물었다. 피난처는 아무 곳에도 없어 보였지만, 그들은 죽을 힘을 다하여 어디론지 가고 있었다. 어디론지 가고 있다는 것만이 그들의 위안인 듯 싶었다. 쓰러진 자들은 숨이 끊어지기 전에 길섶에 버려졌다. 나는 그들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성 없는 마을마다 지방 수령들의 수염은 길게 자라 있었다. 그들은 무기력했고, 무기력한 만큼 격렬하게 비분강개했다. 나는 그들이 가져다 주는 밥을 먹고 그들의 숙사에서 잠을 잤다. 도원수 권율에게는 아무것도 보고할 수 없었다. 보고할 사실이 나에게는 없었고, 세상에도 없었다. 다만 도원수의 안부를 묻고, 내가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내용만을 간략히 적어서 지방 아전 편에 도원수부로 보냈다.

 

구례에 도착하던 밤에 혼자서 술을 마셨다. 술이 먼 것들을 가깝게 당겨주었다.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백의종군 길에 고향 마을인 아산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받던 날, 나를 호송하던 의금부 도사는 길을 재촉하지 않았다.

 

부고를 받던 날 시골 객주집 행랑방에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어머니를 순천에 모셔왔다. 순천은 우수영이나 통제영에서 가까웠다. 어머니는 내가 출옥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천에서 아산으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남해안을 돌아서 서해로 올라가는 화물 배편을 얻어 탔다. 엿새가 걸렸다. 어머니는 배에 관을 싣고 있었다. 배가 아산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배 안에서 당신 혼자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싣고 온 관 속에 누웠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의 시신은 가랑잎처럼 가벼웠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의 초상을 치를 수 없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순천에 모실 때 가끔 찾아뵈면, 어머니는 아들을 어려워했고, 아들에게조차 내외를 했다. 어머니는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고 이부자리를 단정히 했다. 안아보면 어머니는 한 움큼이었다. 어머니의 몸에서는 오래된 아궁이의 냄새가 났다. 내가 안을 때, 어머니는 고개를 돌리며 수줍어했다.

 

“어서 가거라. 가서, 나라의 원수를 크게 갚아라.”

 

내가 돌아갈 때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어머니가 어리광을 부려주기를 바랐다. 두 달이 지났으니, 어머니는 땅 속에서 썩었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취했다. 허리가 결리면서, 비가 내렸다. 차가운 늦가을 비였다. 어머니의 몸과, 피난민들의 노숙 자리에 내리는 비를 생각하면서 나는 자꾸 마셨다. 술은 비처럼 몸 안으로 스몄다. 아침에도 비는 멎지 않았다. 안주 없이 마신 술에 속이 쓰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뒤채었다. 더 이상 떠돌아다니면서 확인할 것도 건질 것도 없었다.

 

그날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내 숙사로 찾아왔다. 그는 도원수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나에게 왔다. 그는 임금의 교서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교서를 내밀 때, 나는 그가 사약을 들고 온 의금부 도사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교서 두루마리에 절했다. 양호가 두루마리를 펼쳐서 큰 소리로 읽었다. 임금의 수사는 장려했다.

 

“왕은 이르노라. 어허, 국가가 의지할 바는 오직 수군뿐인데, 흉한 칼날이 다시 번뜩여 마침내 삼도의 군사를 한 번 싸움에 모두 잃었으니 누가 바다 가까운 여러 고을을 지켜주리오. 한산을 이미 잃었으니 적들이 무엇을 꺼리리오…”

 

칠천량 패전과 한산 통제영의 붕괴가 임금에게 보고된 모양이었다. 양호는 계속 읽어나갔다.

 

“지난번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케 한 것은 역시 나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것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인에게 임금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임금이 가여웠고, 임금이 무서웠다. 가여움과 무서움이 같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임금은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왔다. 양호는 계속 읽었다.

 

“이제 그대를 상복을 입은 채로 다시 기용하여 옛날같이 전라 좌수사 겸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부하를 어루만지고 도망간 자들을 불러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회복하고 요해지를 지켜 군의 위엄을 떨치게 하라. 그대는 힘쓸지어다. 군율을 범하는 자는 장졸을 막론하고 그대의 지휘로 처단하려니와, 그대가 나라 위해 몸을 잊고 나아감은 이미 다 겪어보아 아는 바이니 내 구태여 무슨 말을 길게 하리오…”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 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 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武)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나의 죄는 유죄가 되어도 하는 수 없을 것이었다.

 

나는 못대가리 하나 건질 것 없는 텅 빈 바다와 목 잘린 시체가 썩어가는 연안을 생각했다. 나는 먼 섬들에서 오르던 적의 봉화를 생각했고, 불타버린 한산 통제영을 생각했다. 물러설 자리 없는 자의 편안함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지에서는 본래 살길이 없었다. 그러자 몸의 깊은 곳이 자꾸 뜨거워져 갔다. 성욕 같기도 하고, 배고픔 같기도 한 것이 자꾸만 내 속에서 끓어올랐다. 양호는 보따리를 풀어 지필묵을 꺼내놓고 동헌으로 물러갔다. 동헌에서 양호는 임금에게 가져다 바칠 나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바다 위로 크고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식은땀이 흘렀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저녁 무렵까지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양호가 종을 보내 답신을 재촉했다. 나는 붓을 들어 장계를 써나갔다. 문장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런 의전상의 단어와 상투적인 어구를 끌어대며 장계를 지었다. 나는 장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붓을 들어 맨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나는 그 한 문장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