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숨막혔다. 좀더 정직하게 말해보자. 사실 나는 무인된 자의 마지막 사치로서, 나의 생애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사치는 성립될 수 없었다. 바다에서, 나의 위치는 늘 적과 맞물려 돌아갔다.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늘 머물 곳 없었고, 내가 몸 둘 곳 없어 뒤채이는 밤에도 내 고단한 함대는 곤히 잠들었다.
다시 내 앞에 펼쳐진 바다에서, 적의 조건도 나의 조건도 보이지 않았다. 가을빛이 스러져가는 바다는 차가웠고, 외마디로 짖어대는 새들의 울음은 멀었다. 멀리 부산, 거제, 고성 쪽 해안은 목측이 꺾여져 보이지 않았고, 경상 바다 수평선 안쪽으로 흩어진 섬들에서 적들끼리 서로 부르고 응답하는 봉화가 올랐다. 봉화는 불꽃에서 연기로, 검은 연기에서 흰 연기로 바뀌어갔으나, 나는 그 봉화의 내용을 해독할 수 없었다.
하동에 도착하던 날, 나는 섬진강 물가의 버려진 농가에 머물렀다. 이미 사령장을 받은 여러 고을의 수령들은 적들이 장악한 섬이나 포구로 부임하지 못하고 하동 포구 언저리에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내가 묵던 농가로 찾아와 마당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통곡했다. 그들의 울음은 나에 대한 의전 행사처럼 보였다. 울기를 마치고 그들은 사공을 불러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돌아갔다. 그들은 울기 위해 내 초막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어두워지는 물가에서 왜가리 몇 마리가 물 위에 비친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농가 마루에 앉아서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았고, 내 종 막쇠는 강물에 바지를 걷고 들어가 투망질을 하고 있었다. 저편으로 건너갔던 나룻배가 다시 이편으로 돌아왔다. 그 배 위에 웬 여인네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사공과 여인네뿐이었다. 여인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물가에 내린 여인은 내 농가를 향해 걸어왔다. 미투리가 해져 버선이 땅에 닿았고, 위로 치켜올린 두 겨드랑 사이로 속치마 끈이 보였다. 짐 보따리에 눌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작고 둥근 어깨와 어린아이처럼 좁은 보폭, 그것은 여진이었다. 나는 경악했다. 오랫동안 뒷물을 하지 않은 더러운 여자의 날비린내가 내 마음속에서 살아났다.
“나으리…”
여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당에 쓰러져 울었다. 몸 안으로 밀어넣으려는 울음소리가 몸 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그 여자는 전신으로 울고 있었다. 작은 몸뚱어리 어디에 그토록 깊은 울음이 감추어져 있었는지, 여진의 울음은 길었다. 강 건너편에서 달이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울음이 스스로 추슬러질 때까지, 흔들리는 어깨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병신년 가을에 처음으로 여진을 품었다. 그때, 전쟁은 지리멸렬했다. 적들은 부산과 울산에서 기나긴 농성을 계속하며 바다로 나오지 않았고, 육군은 적들을 바다로 내몰지 못했다. 나는 내륙지방 관아를 돌면서 징모 부정 사건을 색출해 내고 있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아나버린 아전들도 있었다. 수군에서 탈영해 마을로 숨어들어온 자들을 적발하고도, 보리쌀 두 가마를 받고 눈감아준 아전이 있었다. 함평 아전이었다. 아전과 탈영자 세 명을 붙잡았다. 군관을 시켜서 목 베게 했다. 그들은 불탄 향교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목을 벨 때, 그 식솔들은 울부짖다가 실신했다. 잘린 머리 네 개를 마을 정자나무에 걸었다. 보리쌀 다섯 말을 받고 일가족 호적을 부재자로 기재한 아전을 함평 산골에서 붙잡았다. 형틀에 묶고 곤장 40대를 치게 했다. 늙고 병든 아전이었다. 그 아전은 아마 스무대 쯤에서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숨이 끊어진 것을 모른 형리가 나머지 스무 대를 계속 쳤다. 그의 몸은 으스러져서 죽처럼 흘러내렸다. 그날 밤 나는 동헌 객사에 묵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아전의 몸을 으깨던 매와, 보리쌀로 죽을 끓여 먹었을 그의 식솔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맑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
밤늦게, 함평 현감이 내 방으로 술상을 들여보냈다. 여진은 그 술상을 들고 들어온 관기였다. 그때 서른 살이라고 했다. 기생이라기보다는 관노에 가까웠다. 손등이 터져 있었고 머리에서 쉰내가 났다. 그 여자의 몸은 더러웠고, 눈동자는 맑았다. 눈빛이 찌르는 듯해서, 내가 시선을 돌렸다. 정자나무에 매단 머리들의 뜬 눈을 생각하면서, 그날 밤 나는 여진을 품었다. 그 머리들이 내 몸을 여진의 몸 속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그 여자의 몸 속은 따스하고 조붓했다. 오랫동안 뒷물하지 않은 여자의 날비린내 속에서 내 몸은 나로부터 아득해져 갔고, 또 돌아왔다. 그 여자의 몸은 쉽게 수줍음을 버렸다. 그 여자의 몸은 출렁거리며 나에게 넘쳐왔다. 새벽에 여진은 윗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무릎을 안고 울었다. 작고 동그란 어깨가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그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돌아누워 식은땀을 흘렸다. 낮에 정자나무에 매단 머리의 뜬 눈들이 어둠 속에서 커다랗게 나에게 다가왔다.
“왜 왔느냐?”
“나으리, 어찌 그런 말씀을…”
여진은 고개를 떨구었다. 종 막쇠가 저녁상을 차려왔다. 조밥이었다. 강에서 잡은 쏘가리에 시래기를 넣고 매운탕을 끓여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무말랭이가 상 위에 올라 있었다. 여진과 나는 저녁상에 마주앉았다.
“먹어라.”
“겸상을 하여주시니…”
여진은 눈을 들어 나를 쏘아보았다. 맑은 눈이었다.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었고, 쪼그리고 앉은 발 뒤꿈치 각질에 때가 끼어 있었다. 먼 길을 걸어온 모양이었다.
“왜 왔느냐?”
“출옥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여진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먹어라.”
“…네.”
밥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그 여자의 어깨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뒤엉킨 머리카락 밑으로 두 볼이 촛불에 빛났다. 그 여자의 등 뒤, 담벽에 걸어놓은 칼에 그 여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여진은 수저를 들고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손이 떨렸다.
“편히 먹어라.”
“…네.”
“아느냐? 나는 물 위에 뜬 수군이다.”
“…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 입이 작은 그 여자는 큰 놋숟가락을 힘들어했다.
“내가 출옥했기로 네가 어찌 왔느냐?”
“전에, 제 몸을 편안해하시기에…”
그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담벽에 비친 그림자의 입이 그렇게 말했다.
그날 밤, 나는 두 번째로 여진을 품었다. 그 여자의 몸은 더러웠다. 그 여자는 쉽게 수줍음에서 벗어났다. 다리 사이에서 지독한 젓국 냄새가 퍼져나왔다. 그 여자의 입 속은 달았고, 그 여자의 몸 속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에는 다급한 갈증이 섞여 있었다. 새벽에 나는 품 속의 여진에게 물었다.
“밝는 날 어디로 가겠느냐…”
나의 실수였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그 여자의 목소리는 진실로 베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부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여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담벽에 걸린 칼에 달빛이 비치었다. 칼날의 숫돌 자국 속에서 달빛이 어른거렸다. 그 여자의 머리 속에서 먼지와 햇볕의 냄새가 났다. 나는 더욱 끌어안았다. 그 여자는 몸을 작게 옹크리고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여자의 작은 손이 내 등판의 식은땀을 씻어내렸다. 그 여자의 빗장뼈 밑에서 오른쪽 젖무덤까지, 굵은 상처자국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등에도 아문 지 오랜 상처 자국이 있었다. 나는 상처에 관하여 묻지 않았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칼날을 비추었다. 달은 칼의 숫돌 무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칼빛이 뽀얗게 살아났다. 칼은 인광처럼 차가워 보였다. 가늘고 긴 목이 내 품속에서 떨리면서, 그 여자는 다시 말했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저를 보내주시어요…”
나는 다시 그 여자의 몸 속을 파고들었다. 그 여자의 신음은 낮고도 애절했다. 나는 그 여자를 안듯이 그 여자를 베어주고 싶었다. 나는 내 몸을 그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넣듯이, 그렇게 칼날을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넣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를 안는 힘으로 세상의 적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몸을 떨었다.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인이 아니었다. 아침 숲에서 새떼들이 깨어나 지껄였다. 아침에 나는 그 여자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내가 먼저 떠났다. 나는 여진의 삶의 궤적을 알지 못했다. 함평에서도 나는 여진의 내력을 현감에게 물어보지 않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