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나는 조선 수군 연합 함대가 칠천량에서 전멸되었다는 소식을 도원수 권율에게서 들었다. 한산 통제영은 으깨졌다. 통제영 휘하의 모든 연안 포구와 섬들에 적의 깃발이 휘날렸다. 바다가 내륙 쪽으로 파고들어 아늑하고 오목한 물목마다 적들은 포진했다. 밤이면 술취한 적들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쟁이 소강이던 몇 달 사이에 농토로 돌아왔던 피난민들은 다시 흩어졌다. 그들의 행방을 나는 모른다. 늦여름이었다. 그들이 버리고 떠난 논밭은 아직도 파랬다. 가을에, 적들은 그 수확을 차지할 것이었다.
적들은 불법의 신통력이 전투를 인도해 주기를 기원했다. 《나무묘법연화경》의 깃발이 적선마다 높이 걸려 있었다. 《나무묘법연화경》은 바다를 가득 메우고 밀려들었다. 임진년 개전 이후, 깨뜨린 적선 내부를 수색해 보면 적장의 선실 안에서는 《법화경》이나 《연화경》 책이 발견되기도 했다.
…오는 세상에 너희는 마땅히 성불하리라. 그때 너희 국토에 청정하고 착한 보살이 가득하여 너희 선남자 선여인들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으리라. 아난아, 너는 마땅히 알라, 여래가 중생을 버리지 않느니…
이러한 말들이 그 경전에 적혀 있었다. 선실 안에 불단을 차려놓고, 승려를 배에 태우고 다니는 자들도 있었다. 나의 부하들은 흔히 생포된 적의 승려를 배에서 목 베어 바다에 던졌다. 승려는 합장한 자세로 염불을 외면서 칼을 받았다. 염불을 외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포로까지 먹일 만한 군량이 나에게는 없었다. 내 장졸들은 《나무묘법연화경》의 깃발을 찢어서 부상자들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올이 촘촘한 그 비단 깃폭은 상처를 싸매기에 좋았다. 헐벗은 내 장졸들은 그 비단 깃폭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노 젓는 그들의 등판에 법자나 경자의 획이 드러나 있었다.
그 《나무묘법연화경》의 깃발을 치켜든 적선들은 다시 눈보라처럼 밀려왔다. 전선은 통제 불능으로 확산되었다. 전선과 후방은 구분되지 않았다. 아군 병력은 집중, 분산 양쪽이 모두 불가능했다. 도원수 권율은 이 불가능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모든 불가능은 확실했다. 도원수 권율은 정보가 없었다. 가장 확실한 운명이 가장 모호한 풍문으로 연안과 내륙에 퍼져나갔다.
도원수 권율은 백의종군하는 내가 순천 도원수부에 신고하고 나서도 나의 임지와 보직을 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무기한 대기 상태였다. 아마도 그는 내가 다시 배에 오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연안 일대의 무너진 포구들과 지리산 산속 마을과 섬진강 강가 마을을 떠돌았다. 내륙 지역의 관아는 겨우 회복되었으나 인기척 없는 마을에는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고 버려진 우물 속에서 풀이 자라 올라왔다. 어느 마을에나 장정은 보이지 않았고 건져서 쓸 만한 것은 못대가리 하나 없었다. 진주에서 나는 초계 마을 아전 집 토방에 머물렀다.
도원수 권율이 그 토방까지 나를 찾아온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미리 종사관을 나에게 보냈다. 도원수가 방진 시찰차 진주에 왔다가 나를 보러 온다는 전갈이었다. 진주성은 계사년 여름에 함락되었다. 김천일, 최경희, 황명보, 이종인이 죽었고, 5천여 관민이 모두 다 성 안에서 도륙되었다. 들에는 개 한 마리, 닭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그 후 진주는 폐허로 방치되어 왔다. 도원수가 시찰해야 할 군사 시설이 진주에는 없었다. 그가 방진 시찰 명목으로 진주에 나타난 것은 납득 못할 일이었다.
도원수 권율은 군관과 나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말은 살찌고 기름졌다. 갈기에서 무지갯빛이 부서졌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토방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나졸들은 마당에서 창검과 기치를 정렬했다. 나는 마루로 나와서 그에게 절했다.
“이순신, 자네를 자네라고 불러도 좋겠는가?”
그는 백의종군하는 나의 지위를 명석하게도 나에게 인식시켰다. 환갑의 나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백의의 몸이오니…”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체포되기 몇 달 전인 병신년 초겨울에 나는 한산 통제영에서 그를 대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통제영까지 나를 찾아왔었다. 조정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곧 바다를 건너서 부산으로 진공하게 되어 있는데, 함대를 이끌고 부산 해역으로 나아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적을 요격해서 가토의 머리를 조정으로 보내라고, 그때 그는 나에게 말했었다. 그는 이 작전이 조정의 전략이며 도원수의 지시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다만,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해 주십시오, 라고만 대답했다. 그는 서둘러 돌아갔고 나는 함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반간들로부터 입수했다는 조정의 정보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부산 해역의 연안 포구와 섬들에 적들은 거대한 군비를 쌓아놓고 있었다. 그 섬들 사이로 함대를 이동시키자면 후방과 측방이 모두 위태로웠다. 겨울 바다는 물결이 높았다. 그 물결 높은 바다 위에서 며칠이고 진을 펼치고 언제 올지 모르는 적을 기다린다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조정은 작전 전체의 승패보다도 가토의 머리를 간절하게 원했다. 가토는 임진년 출병의 제 1진이었다. 가토의 부대는 한나절 만에 부산성을 깨뜨리고, 꽃놀이 가는 봄나들이 차림으로 가마 대열을 꾸며 북으로 올라갔다. 붙잡힌 조선 백성들이 그 가마를 메었다. 임금은 가토의 부대에 쫓겨 의주까지 달아났었다. 임금은 가토의 머리에 걸린 정치적 상징성을 목말라했다.
임금은 진실로 종묘사직 제단 위에 가토의 머리를 바치고 술 한잔을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권율이 나를 기소했고 비변사 문인 관료들은 나를 집요하게 탄핵했다.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 권율이 이 궁벽한 산골까지 또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권율은, 바로 이틀 전에 칠천량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되었다는 소식을, 혼잣말을 하듯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전멸'을 여러 번 강조했다. '전멸'이라니까, 정확한 정황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듣기만 했다.
“자네, 서울 의금부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게. 무인이란 본래 그래야 하네.”
권율은 무섭게도 집중된 위엄을 가진 사내였다. 육군인 그는 임진강에서 이겼고, 용인에서 이겼고, 수원에서 이겼고, 이천에서 이겼고, 행주산성에서 이겼다. 그는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 자의 살기를 몸 속 깊이 숨기고 있었고, 나는 나의 살기로 그의 살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정치 권력의 힘으로 전쟁을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육군의 지원을 요청하며 출전을 머뭇거리는 원균을 불러들여 곤장 50대를 때려서 칠천량 바다로 내어몰았다. 그는 예순에 가까운 삼도수군통제사를 형틀에 묶어서 곤장을 칠 수 있는 사내였다. 그는 늙고 우둔한 맹수처럼 보였다. 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자네 무슨 방책이 없겠나?”
울어지지 않는 울음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불덩어리가 내 몸 깊은 곳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방책, 아아 방책. 그때 나는 차라리 의금부 형틀에서 죽었기를 바랐다. 방책 없는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남아 또다시 방책을 찾는다. 나는 겨우 대답했다.
“방책은 물가에 있든지 없든지 할 것입니다. 연안을 다 돌아보고 나서 말씀 올리겠습니다.”
“고맙네, 속히 시행하게.”
권율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순천에서 진주까지는 이틀이 걸린다. 칠천량 전투는 이틀 전에 끝났다. 권율은 패전 보고를 받은 즉시 나를 찾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방책이었을까. 권율이 돌아간 뒤, 나는 종을 시켜 칼을 갈았다. 시퍼런 칼은 구름 무늬로 어른거리면서 차가운 쇠비린내를 풍겼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 속 깊이 빨아넣었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에 나는 종에게 칼을 들려서 진주를 떠났다. 내 늙은 종의 이름은 막쇠였다. 나는 하동, 남해, 여수 쪽 연안으로 길을 정했다. 내가 떠날 때, 묵던 집 아전이 좁쌀과 소금과 말린 생선을 싸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