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맥비가 르브랭의 전화로 죽은 앨버트 메리맨에 관해서 뉴욕 경찰국과 통화를 하려고 애쓰고 있던 시떼 로(路)의 경찰청 건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베라 모느레는 멍하니 센 강 위로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뚜르넬 다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프랑수아 끄리스띠앙과의 관계를 끝낸 것이 잘 한 일이었다. 물론 그녀는 자기가 아무리 다정하고 정중하게 그 일을 마무리하더라도, 그 결별이 프랑수아에게 고통을 안겨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으로는, 프랑스 내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떠난 것이 꼭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정형 외과 의사 때문은 아니었다. 진정한 사실은, 그녀도 또 프랑수아도 이제까지의 관계를 언제까지고 지속시킬 수 없고, 두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발전이 없는 삶은 결국 스러져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가 했던 일은 개인적인 생존을 위한, 말하자면 프랑수아가 마침내 언젠가는 자기의 진정한 사랑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했을 법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긴 계단 꼭대기에 이르자 그녀는 몸을 돌려 파리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센 강과 노틀담 사원의 장려한 아치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둘러보았다. 나무며, 지붕이며, 대로를 메운 차들이 그녀에게는 아주 생소해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로맨틱한 말들도 그러했다. 프랑수아 끄리스띠앙은 훌륭한 남자였고, 베라는 자신의 삶에 그가 있었다는 것을 고맙게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의 관계가 끝난 것 또한 똑같이 고마웠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처음으로 아무 부담 없이 자유로워졌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었다.
왼쪽으로 돌아서 베라는 자기의 아파트를 향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그녀는 폴 오스본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은 계속 그에게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오스본이 자기가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주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에게 관심과 열정을 보여 줌으로써 오스본은 그녀에게 내재되어 있던 믿음, 즉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능력이 충분히 있는, 독립적이고, 지성적이고, 매력적인 여자라는 사실을 새롭게 해주었다. 그리고 베라에게 프랑수아와 결별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준 것은 바로 그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 될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폴 오스본이 상처를 입게 될까 봐 염려스러웠고, 마음 한구석으로는 그 관심과 염려가 여성의 본능적인 속성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자기와 가까운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한다고 느낄 때 해야 할일이었다. 하지만 베라는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그가 상처를 입지 않게 될 때까지 그를 사랑하고, 그 이후로도 더욱더 사랑하는 것이었다.
“봉주르, 마드모아젤.”
동그스름한 얼굴에 제복 차림인 도어맨이 선조 세공을 한 철제 덧문을 열어 주면서 쾌활하게 인사를 건넸다.
“봉주르, 필리페.”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이고 그의 옆을 지나 로비로 들어섰다. 그리고 재빨리 반들반들 윤을 낸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선 뒤 그녀는 문을 닫고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줄기가 긴 스물네 송이의 붉은 장미가 꽂힌 꽃병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카드를 펴지 않고서도 누가 그것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어쨌든 펼쳐 보았다.
“오 르브와르(안녕), 프랑수아.”
프랑수아가 자필로 쓴 것이었다. 프랑수아는 그녀를 이해한다고 했었고, 또 이해했다. 그 쪽지와 꽃들은 그들이 언제까지고 친구라는 뜻이었다. 베라는 잠시 그 카드를 들고 있다가 봉투에 도로 집어 넣곤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의 한쪽 귀퉁이에는 소형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흑단과 남유리로 된 긴 커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큼직한 소파가 직각으로 놓여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으로는 복도와 두 개의 침실이 있고 복도 끝에는 서재로 통하는 입구가 있었다. 왼쪽은 식당이었다. 그리고 식당 뒤로는 식품 저장실, 그 뒤로는 주방이었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 때문에 온 도시가 어두컴컴하게 흐려져 있었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과 우중충한 회색빛으로 인해 모든 것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이 아파트가 따스함이나 포근함이라고는 없는, 너무 크고 볼품없는, 그녀보다 훨씬 더 근엄하고 훨씬 더 나이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할 장소인 것처럼 보였다.
파리를 덮고 있는 하늘처럼 을씨년스러운 외로움이 밀려오자, 베라는 무심결에 폴이 거기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지고, 그로 하여금 자기를 만지게 하고 싶었다. 그들이 어제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침실에서건 욕실에서건 그리고 그가 자기를 원하는 그 어느 곳에서건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그를 느끼고, 온몸이 아파질 때까지 몇 번이고 거듭해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오스본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자기가 그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령 베라가 그 비밀이 무엇이지 모르더라도, 또 그가 알려 줄 수 없다 하더라도, 오스본으로서는 그녀를 믿는 데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었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그는 그녀에게 그 비밀을 알려 줄 것이고, 그러면 둘이 함께 거기에 대해서 무슨일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오스본이 무엇보다도 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원하는 한 언제나 베라가 그의 곁에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